본기도
주님,
주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사오니
주님의 교회를 언제나 자비로이 지켜 주시어
저희를 모든 위험에서 보호하시고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제1독서
<선행을 배우고 공정을 추구하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1,10.16-20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기꺼이 순종하면 이 땅의 좋은 소출을 먹게 되리라.
20 그러나 너희가 마다하고 거스르면 칼날에 먹히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복음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교만해졌음을 알아보는 가장 빠른 법
매리언 존스(Marion Jones): 미국의 유명한 육상 선수인 존스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5개의 메달을 획득한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중에 경기력 향상 약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이로 인해 올림픽 메달이 박탈되고 명성이 손상되었습니다.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 암스트롱은 특히 1999년부터 2005년까지 투르 드 프랑스에서 7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유명한 사이클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경력은 그가 장기 도핑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급락했고, 이로 인해 그는 모든 경력을 박탈당했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평생 프로 사이클 출전이 금지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꼬집습니다. 그들은 말은 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악한 생각과 행위가 가득했습니다.
위 인물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그들처럼 되지 말라고 하시며 스승이나 아버지란 소리를 듣지 말라고 하십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사제가 되었을 때 어른들이 높여주는 것에 취해 교만을 떨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주 겸손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은 제가 보좌신부 때 체육대회를 하고 있었는데 시장님이 와서 신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도 체육복을 입었기에 시장님과 공손히 인사하였습니다. 당시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시장님은 겸손해지려 노력하였지만, 저와 같이 젊은 청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뻣뻣하게 서서 손만 내밀었습니다. 한참을 인사하며 가시다가 신자들에게 여기 신부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주임 신부님은 오지 않으셨고 보좌 신부님만 오셨다며 신자들이 저를 지목하였습니다. 저에게 다가오더니 거의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뻣뻣하게 서서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
어떤 자리에 올라 그만한 대접을 많이 받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집니다. 그런 대접을 받지 않는 게 제일 좋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신부님이란 소리를 들어도 겸손해지려면 자신이 교만해졌는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바로 솔직함입니다. 그런데 저도 어떤 사진에서 위 시장처럼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저보다 나이가 많은 신자에게 한 손으로 뻣뻣하게 악수하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만 뒤에는 항상 감추는 죄가 존재합니다. 교만함의 시작은 위선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어떤 군인이 장군이 되어 사무실에 새로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너무 좋아서 뽐내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어떤 사병이 들어오니까 전화기를 집어 들고 “예, 대통령 각하.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병에게 어쩐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병은 대답했습니다.
“전화선 연결하러 왔습니다….”
왜 위선과 거짓말이 교만일까요? 바로 내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두렁이로 옷을 만들어 입으며 하느님까지도 속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명인들이 왜 한 번에 나락으로 떨어질까요? 바로 교만 때문입니다. 이강인 선수도 워낙 인기를 많이 얻다 보니 어린 나이에 그 인기를 주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 주장에게 대들기 전에 위선적인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속이려는 마음이 있을 때 바로 ‘아, 내가 교만해져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롱런할 수 있습니다.
마약 중독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그렇고, 과거의 빈곤과 학대, 그리고 임신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를 고백한 오프라 윈프리가 그렇고, 성매매로 체포되었지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휴 그랜트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끝까지 감추려 하지 않고 겸손함을 지향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지위를 내려놓을 각오를 하고 솔직해짐을 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용기에 더 크게 감탄합니다. 누구나 다 죄를 짓고 속이며 살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인기를 얻고 성공하면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원인입니다. 그러니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교만해졌음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주교가 되고 수도회의 창립자가 되어 교만해져 있었습니다. 방에서 기도하던 제자를 불렀지만, 그는 황홀경에 빠져 있어서 듣지 못했습니다. 짐짓 자기를 무시하는 줄 알고 문을 열고는 바로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자기 머리를 발로 밟으며 “교만한 아우구스티노야!”라고 세 번 반복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자기의 위선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기에 위대한 인물입니다. 이웃을 판단할 때 뉘우치면 많이 늦습니다. 그것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두렁이로 가리려고 하는 것이 먼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미래를 긍정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행복 수준을 높여 줍니다. 실제로 이들은 자기 계획에 대한 성취도가 높고, 꾸준함도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범죄를 저질러서 돈을 번 사람들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언제 잡혀 들어갈지 모른다’라는 불안감을 늘 간직하고 있기에, 돈을 모으지 못하고 대신 도박과 유흥, 방탕한 생활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안의 불안감을 없애고 행복감을 높이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면 무의식적으로 실패를 바라보게 됩니다. 다른 이의 말이 내 안에서 실재가 되어 나를 좌지우지 하게 됩니다.
지난겨울 중고등부 캠프 프로그램 중에 제주도 한라산 등반이 있었습니다. 힘들게 등반하는데, 한 친구가 허겁지겁 아래로 내려갑니다. 방금 지나갔던 등산객 중 한 명이 무엇인가를 떨어트렸다는 것입니다. 이 친구는 등산객이 놓고 간 검은색 봉지에 담긴 무언가를 들고 뛰어 내려가서 주고 왔습니다. 제가 “그 안에 뭐가 들었는데?”라고 물으니, “쓰레기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버려야죠. 그래서 주고 왔어요.”
누가 내게 쓰레기를 넘겼습니다. 그 쓰레기를 받으면 어떨까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이 쓰레기를 계속 손에 들고 있으면 계속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얼른 그 쓰레기를 다시 넘겨야 합니다.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감정적인 쓰레기들도 넘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지금을 힘차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렇게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쓰레기들을 넘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지 실제로 행동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옳고 자기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모두 틀렸다면서 단죄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 단죄를 받는 사람은 결국 죄인이 되어서 제대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쓰레기를 넘기는 위선자를 따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겸손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쓰레기를 넘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이라는 귀한 선물을 건넬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통해서 높아질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명확한 목적이 있는 사람은 가장 험난한 길에서 조차도 앞으로 나아가고,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사람은 가장 순탄한 길에서 조차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토머스 칼라일).
사진설명: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