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볕살을 쬐며 걸어
이월 초순 수요일이다. 한 해가 시작된 24절기 중 첫 번째 입춘을 맞았다. 입춘 땜하느라 반짝 추위가 찾아오기 상례이나 올해는 대한 이후 장기 한파로 그럴 겨를이 없다. 추위가 다소 누그러진 아침 반송 숲 언덕으로 올라 운동 기구에 몸을 단련하니, 부녀 네댓이 서로는 일상 속 화제를 나눴으나 나는 그들과 면식이 없는 사이라 내외하듯 거리를 두고 운동 기구에만 매달렸다.
시계탑이 9시를 가리킬 즈음 인근 농협 마트 옥외에서 열리는 과일과 채소 시장에 나갔다. 농협은 우리 농산물만을 어디에 저장해둔 것인지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장터를 열어 인기리에 팔려나간다. 나는 그 장을 보고 싶어도 자연학교 등교 시간과 맞출 수 없이 일찍 집을 나서 아쉽다. 점심나절이면 진열 상품은 다 팔려 파장이라 철시가 이른 점도 유감이다.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동네 농협 수요 장터에서 한 가지 사둘 품목이 있었다. 그간 노점상에게 사 먹던 고구마를 신선하고 싼값에 한 상자 사 두었다. 그밖에 무나 시금치는 내가 가꾼 텃밭에서 조달이 되어 굳이 장을 볼 필요가 없다. 과일은 일전에 사다 둔 게 있어 다음에 봐도 되었다. 다른 부녀들이 연이어 끌개를 끌고 나와 장을 보느라 분주히 발길을 움직인 모습을 봤다.
고구마 상자를 집으로 옮겨 놓고 곧장 댓거리로 나가 구산 갯가로 가는 64번 버스를 탔다. 밤밭고개를 넘어 수정을 거쳐 백령고개를 넘은 내포에서 반동을 거쳐 로롯랜드까지 두르는 버스였다. 거기서 다시 되돌아 나와 욱곡을 거칠 때 호수와 같은 바다가 드러났다. 포구에는 어선이 닻을 내려 있고 해수면에는 부표가 떠 있고 어선이 간간이 보였다. 미더덕과 오만둥이 양식장이다.
욱곡에서 낮은 고개를 넘어간 명주에서 내렸다. 마을 앞 포구 부두에는 한 아낙이 미더덕을 까고 있었다. 진동 일대 연안 집중 양식하는 미더덕은 어패류가 아니고, 그렇다고 해조류도 아닌 특이한 수산물이다. 자연산도 있겠으나 주로 해상에 드리운 양식 시설에서 붙어 자라 봄이 오는 즈음 건져 올려 선별을 거쳐 각처로 배송된다. 주로 식품업체나 식당이 주요 거래처지 싶다.
자동차를 몰아가는 이들이 차를 세워 사 가도록 봉지에는 미더덕과 오만둥이가 담겨 있었다. 겨울이 제철인 생굴도 빠질 일이 없었다. 오늘 아침은 날씨가 조금 누그러졌지만 다른 추운 날도 갯가를 지켰지 싶다. 나는 물건을 사 줄 구매 의사가 없으면서도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수고 많으시다고 인사를 건넸다. 진열된 봉지를 사진으로 남기겠노라고 양해를 구해 앵글에 담았다.
명주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해양드라마세트장이 보였는데 거기는 두르지 않았다. 연전 두세 차례 거닌 바다 파도 소리 길이다. 작은골을 지나 군령삼거리와 마전에도 갯마을이 드러났다. 정박한 어선이 보이고 비닐 포장 안에서는 할머니가 뭔가를 손질했다. 갯가에는 구산초등학교 구서분교장이 보였다. 산모롱이를 돌자 행정구역이 구산면에서 진동면으로 바뀐 도만마을이 나왔다.
바다를 조망하는 쉼터에서 간식을 먹고 호젓한 지방도를 따라 걸으니 제말 장군 무덤이 나왔다. 고성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성주 전투에서 큰 활약을 펼치다가 순절한 의병장이다. 진주 촉석루 경내와 내 고향 마을 제씨 집성촌에도 조카 홍록과 함께 충절각이 세워졌다. 다구리 연안은 바라보는 볕 바른 무덤 앞에 서서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430년 전 우리 역사 속 인물이다.
문득 여러 해 전 새해 날씨가 추웠던 날이 떠올랐다. 사대강 사업 이후 강변 풍광이 사뭇 달라졌는데 창녕함안보는 가까워 더러 찾았으나 더 위쪽 창녕합천보를 가보지 못했다. 시외구간 버스로 의령 적교에 내려 도로로 합천보를 건너 달성 구지면 현풍 곽씨 선영에서 곽재우 묘역을 참배했더랬다. 내 고향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노년은 창녕 우강리 망우정에서 보낸 선열이시다. 26.02.04
첫댓글
<미더덕찜>이 맛있다고 들었지만
한 번도 먹지 못했다오.
어떤 이는 회로도 먹다는 데 본 적은 없다네.
언젠가 함께 먹어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