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십일조를 한 것이 아니고 십분의 일을 한 것이죠
히브리서 7장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취득한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이라는 제사장에 주고 복을 빌었죠
이 사건은 딱 한번 있는 사건이죠.
아브라함이 주기적으로 십분의 일을 한 것도 아닙니다.
율법으로 정한 십분의 일을 법 조항입니다. 의무..
또한 소득의 십일조가 아니고 소산의 십일조.
하나님이 땅을 기업으로 주고 그 땅의 소산의 십분의 일을 주라는 명령을 율법의 조항으로 정했기 때문에 십일조라고 하는 겁니다.
율법의 조항이기 때문에
땅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은 땅의 소득의 십분의 구는 가지고 그 중에 십분의 일을 땅의 기업으로 받지 못한 레위 지파에게 주라고 한 것입니다.
신약에서 십일조 혹은 십분의 일을 하라는 말씀이 없죠.
왜.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한 것도 멜기세댁의 제사장에게 했고
율법을 정한 십일조도 제사장에게 한 것입니다.
또 율법으로 사무엘상에서 왕을 세울때. 왕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명을 했죠
또한 고아와 과부등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3년에 한번 십일조를 하라고 명을 했습니다.
율법으로 정한 십일조는 제사장과 왕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3년에 한번.
평균으로 하면 일년에 23.333%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으로 정한 온전한 십일조인데
신약에서는 믿는 사람이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왕과 제사장이 받는 것을 할 필요가 없어요.
율법으로 따지면 십일조를 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받아야 할 대상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나머지 하나.
율법에서 정한 고아와 과부 등 어려운 사람에게 하는 십일조는 신약에서 십일조라는 명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한 것이죠.
그래서 바울도 이런 말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십일조가 아니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야고보서 1 :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삯꾼들은 십일조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요한복음 10장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빠지죠
십일조을 하는 소경이 그 십일조를 받아 처 먹는 먹사. 다 지옥에 빠지는 겁니다.
첫댓글 햐 예수님이 자기가 죽은후에 곧 없어질 십일조였다면 왜 그렇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을까.
십일조를 온전히 드려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많거든 그들이 다들 지옥 간다고 하니 저주가 무섭다. 이게 공갈복음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