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꽃 필 때면 섬진강 옥정호에
오월의 소만 절기를 며칠 앞두고 식물의 광합성 작용이 활발해지며 푸름이 나날이 짙어가는 계절이다. 섬진강 호숫가에 절경을 이룬 작약꽃밭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른 아침 전북 임실군 섬진강댐물문화관에 도착하였다. 이 물문화관은 섬진강 옥정호 중심에 삼각추 모양으로 우뚝 솟은 나래산(해발 544m) 자락의 구 운암교 어귀에 자리하고 있다.
운암대교에서 하운암파출소까지 7.3km 호숫가 산책로가 옥정호 삼백 리 둘레길의 물문화길 구간이다. 물문화관 옆의 나무 데크 길을 걸으니 소나무 숲에서 뻐꾸기가 운다. 호수 건너 산기슭에 마암초등학교 건물이 아침 햇살에 밝고 산뜻하다. 숲속의 아침 산책길은 이슬 맺힌 거미줄이 얼굴에 닿는다.
물문화관에서 하운암 방향으로 도로를 150m쯤 이동하면 운암면 운정리 작약꽃밭이 나온다. 호숫가 7,200㎡의 넓은 꽃밭에 작약꽃이 수없이 펼쳐져 있다. 이 작약꽃밭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부터 몇 년 동안 봄이면 시민들이 우울함을 치유하던 비대면 관광지였다. 활짝 피어난 자연의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관광객들에게 희망을 주는 치유의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다.
작약꽃은 여러해살이풀인데 화려한 색채와 큰 꽃봉오리가 넉넉하여 함박꽃이라고도 하여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제법 있고 사진작가는 작품 사진을 찍는다. 옥정호의 수려한 호반 풍경과 아름답고 향기로운 작약꽃의 조화로움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곳에 오래 머물게 하였다.
지난 3년 동안은 이곳 작약꽃밭이 옥정호 작약의 명소였는데, 올해에는 옥정호 붕어섬에 작약원이 조성되었다. 화려한 작약꽃밭을 새롭게 연출하고 있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붕어섬을 찾아갔다.
운암대교에서 붕어섬으로 가는 749번 지방도로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다. 신록의 5월 아침에 녹음이 짙었다. 이 구간의 도로는 왼쪽에 호남정맥 산맥이 오른쪽에 섬진강이기도 한 옥정호가 거의 평행으로 가깝게 나란히 이어진다.
호수 쪽은 벚나무들이 줄지어 녹음을 드리우고 버찌가 붉어진다. 도로의 왼쪽 호남정맥 산기슭은 도로변을 따라 설치된 방호벽 철망에 매달려 덩굴장미가 붉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 줄지어 핀 덩굴장미의 붉은 꽃들 사이에 가끔 찔레꽃이 하얗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덩굴장미는 찔레나무를 대목으로 하여 접을 붙인다고 한다. 덩굴 위에는 덩굴장미의 빨간 꽃이 피고 밑동인 찔레나무에서 찔레의 싹이 돋아 줄기를 키워 하얀 꽃을 피웠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야생의 찔레나무가 다가와 피어난 찔레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붉은 꽃의 덩굴장미 무리에서 하얀 찔레꽃을 보니 산뜻했다.
이 도로 아래쪽 비탈 호숫가에는 옥정호 둘레길이 이어진다. 이곳 상운암의 붕어섬으로 향하는 둘레길은 구름바위길이 12km 구간이고 외앗날길이 10.5km 구간이다. 외앗날길 일부 구간을 걸으며 붕어섬이 잘 보이는 전망대에서 호수 건너 붕어섬을 조망했다.
붕어섬으로 연결된 출렁다리다. 중앙의 높이 80m 주탑이 붕어의 힘찬 생명력을 표상하며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남아 있는 아침 안개를 배경으로 붕어섬 여정의 목적 지점 세 곳인 작약원(작약꽃밭), 숲속 도서관과 독재(돌고개)를 차례로 찾아보았다.
작약원은 붕어의 아가미 위치에 있다. 작약꽃들이 붕어섬에 싱그러운 생명력을 공급하는 산소 알맹이들 같다. 5월을 대표하는 작약꽃은 울긋불긋한 함박웃음을 머금고 풍성하지만 수줍게 피어난다. 작약꽃의 꽃말은 '한번 정을 주면 떠나지 못한다'이다. 이 꽃말은 작약꽃의 향기가 좋아 꽃밭에 오래 머물게 되는 심정을 표현한 듯하다.
숲속 도서관은 붕어가 살랑살랑 움직이는 꼬리지느러미 위치에 있다. 넉넉한 호수 물결을 바라보며 사색하고 여유롭게 휴식하기 좋은 곳이다. 소나무 아래의 빨간색 우체통은 과거의 나에게 또는 미래의 나에게 편지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붕어의 주둥이 위치에 독재가 보인다. 섬진강 옥정호 지역은 1억 년 전 지질시대에 진안 마이산이 호수일 때 이곳도 같은 호수였다. 이 지역의 지하 지층에는 진안 마이산과 같은 마이산 역암의 퇴적 암석층이 있다.
이 마이산 역암층 위에 화산 작용으로 안산암과 유문암이 오랜 세월을 두고 차례로 쌓이고 다시 화산재가 쌓인 응회암 지층이 생겼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암석 지층이 풍화 침식되어 사라지고 안산암 주상절리가 독재에 남아 있다.
오래된 지질 시대의 암석을 관찰할 수 있는 독재는 높은 바위들이 솟아 있어서 안전을 위해 관광객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호수 건너편에서 조망하며 독재, 작약꽃밭과 숲속 도서관이 붕어의 주둥이, 아가미와 꼬리지느러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니 붕어섬이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듯했다.
붕어섬 출렁다리 매표소에서 관광객들과 함께 줄지어 대기하다가 오전 9시가 되어 출렁다리를 건너 붕어섬으로 들어섰다. 붕어섬 생태공원은 섬 전체에 사계절 꽃의 정원으로 조성되었다. 작약원은 3,800㎡의 넓이로 5월의 생명력으로 싱그러운 작약꽃을 피우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고 이슬을 머금은 수많은 작약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작약꽃은 마음을 맑게 해주고 작약 뿌리는 몸을 치료하는 좋은 약재가 된다. 여러해살이풀이면서 장미나 모란처럼 탐스럽고 화사하다. 애련하고 청초하기도 하여 더욱 사랑을 받는다.
작약꽃 전설은 영원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결혼은 약속한 이웃 나라 왕자를 사랑하는 공주가 있었다. 왕자가 전쟁에 나가 전사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공주가 찾아갔다. 왕자의 무덤에는 모란꽃이 피어 있었다.
공주는 왕자와 영원히 함께하기를 신에게 빌었고, 공주는 이내 작약꽃으로 피어났다. 작약꽃은 연인들이 선물로 주고받으며, 5월의 결혼식 부케로도 잘 어울리는 꽃이다.
붕어섬 생태공원은 하절기인 3월부터 10월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설 이용이 가능하며, 출렁다리는 입구에서 오후 5시에 관광객의 입장이 마감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이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관광객이 많을 때는 셔틀버스가 운행되므로 셔틀버스 구간과 승차장을 확인하고 이용하면 편리하다.
옥정호 생태공원의 운정리와 붕어섬 두 곳의 작약꽃밭은 6월 중순까지 화려한 개화가 이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