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경상도 사투리, 이유가 뭘까? 여행 중 만난 사람들 170 – 그들에겐 친(親) 해양문화의 정서가 DNA 깊숙이 박혀 있다. bestkorea(회원)
(English version is below.) 나처럼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사람은 남다른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 여행자에 관한 것이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들이 없는 곳이 없다. 한국인들은 멀리서 봐도 거의 다 알아맞힐 정도다. 외국 여행 중 만나는 한국인은 반갑다. 개인이든 단체든 가능한 한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눈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약 60-70%, 최소한 50%는 경상도 사투리라는 것. 이는 개인 여행자도 그렇고, 공항, 기차역, 식당 등에서 접하게 되는 단체 여행자들도 그렇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이 바다 건너 멀리멀리 울려 퍼지는 느낌이다. 오늘날엔 많이 달라졌지만 88 올림픽을 계기로 적어도 90년대까지는 젊은이들이 또래들끼리 배낭 하나 메고 세계 여행에 도전하는 자들이 많았다. 노숙(露宿)도 하고 빵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나름대로 야망과 도전정신으로 세계를 경험했다. 이때도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경상도 사투리였다. 유럽도 그랬지만 특히 인도(印度)를 누빈 한국 젊은이들 다수가 그랬다. 이런 현상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발견된다. 몇 년 전 태국 공항에서 본 10여 명의 70대 할머니들도 그랬다. 하도 신기해서 물어봤더니 김천여고 동창생들이라고. 이번에 코타에 오면서 만난 4명의 60대 골프투어 여성들도 다 경상도 사투리였다. 일본 여행 중 우연히 만난 두 명의 70대 남성도, 중국에서 기차 여행 중 만난 80대 두 남성도, 우즈벡에서 만난 50대와 30대 남성도, 인도에서 장기간 머물 때 함께 숙식(宿食)했던 대부분 배낭족도, 시리아 팔미라 유적지에서 만난 30대 젊은이도, 이집트 등등. 그리고 남미 아마존에서도, 오지(奧地) 중 오지인 루레나바케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도 50대 경상도 남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전차로 약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체 게바라 출생지, 그곳에서 만난 잡화상(雜貨商)도 경상도 사람이었다. 이같은 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곳 코타에도 석양(夕陽)을 감상하기 좋은 해안가가 몇 곳 있다. 우리는 어제 오후 5시쯤 한 곳을 찾았다. 이미 수십 명의 한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모두가 경상도 사투리로 시끌벅적했다. 두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온 부부에게 물었다. 그들은 울산에서 4박 6일 투어를 왔다고 했다. 출발지가 김해공항이라는 말에 설마 싶어 다시 물었다. 김해공항에서 코타로 직항하는 비행기가 있을 만큼 여행자들이 많으냐고 했더니 당연하다는 투로 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다시 물었다. 왜 경상도 사람들이 유난히 세계 여행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 본 듯, 모두가 묵묵부답(默默不答). 특히 두 중학생 녀석들이 자기 엄마 아빠를 번갈아 보며 머리를 긁적일 때, 갑자기 가이드가 나타나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자, 다들 모이세요. 저녁 식사가 준비됐습니다. 출발합니다.” 이들은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짐작건대 이 가족은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놓고 열띤 토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그 답을 물어볼 생각이다. 참고:통일신라 시대 이전부터 유독 신라만이 당대(當代) 부강한 나라였던 당(唐)나라에 최고 많은 수의 유학생(100여 명, 최다 180명)을 파견했다. 물론 평민 젊은이들도 청운의 꿈을 안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경지 부족 등 생태 환경을 극복하고자 바다를 건너 세계에 도전했다. 혜초, 혜업, 현각, 혜륜, 오진, 설계두, 원효, 원광, 자장, 도의, 현욱, 무염, 의상, 설총, 최치원 등. 고구려는 당(唐)은 물론 주변국과 끊임없이 싸우느라 그랬고(오늘날 북한과 같음), 백제는 신라보다 먼저 당에 최초의 유학생을 보낸 기록이 있지만, 그게 다였다. 백제는 신라와 달리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해 풍요를 누렸지만, 계속된 내분과 정치적 혼란으로 유학생 개념이 희박했다. 혜초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인도 여행 중(10년)에 수십 명의 젊은 신라인들을 만났다고 한다. 당시의 극한 조건의 장거리 여행은 죽음을 불사(不辭)했다. 실제로 인도 여행을 마치고 생환(生還)한 신라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고 기록했다. 이같은 신라인들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다. 이들은 눈앞에 바다가 나타나면 환호를 지르며 맨발로 뛰어가 바다에 몸을 던진다. 이들에게는 고대(古代)로부터 친(親) 해양문화의 정서가 DNA 깊숙이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감사합니다. ------------------ People met on my backpacking 170 - a Kyongsang dialect that has been globalized People that travel freely over the world, like me, have many unique experiences. One of them is Korean tourists. Everywhere I go, I meet Koreans. Koreans have distinctive qualities. I enjoy meeting Koreans while traveling abroad. I approach them first and say hi, whether they are an individual or a group. What's fascinating is that the majority of Koreans, maybe I think 60-70 percent speak in Gyeongsang-do dialect. It’s the same for both group and solo passengers. Their powerful Gyeongsang-do accents rang out far over the sea. Although times have changed, young people used to backpack extensively until the 1990s. They traveled the world with ambition and a spirit of adventure while living on the streets and eating bread and ramen. The most prevalent statement at the time was in the Gyeongsang dialect. This was true not just in Europe, but also among young Koreans who visited India. This phenomena can be encountered in people of any age or gender. The same was true of ten grandmothers in their 70s I met at a Thai airport few years ago. They were classmates in Gyeongsang Province's Gimcheon Girls' High School. Four women in their 60s from Gyeongsang Province while visiting Kota. Many of the folks I encountered on my journey were from Gyeongsang Province. Two men in their 70s met in Japan, a young guy in his 30s met at the Palmyra ruins in Syria, the owner of a guest house in the Amazon jungle was also from Gyeongsang Province. The same was true of Koreans who met in Buenos Aires at the birthplace of Che Guevara. My spouse and I to the shoreline yesterday at 5 p.m. to take in the Kota sunset. Dozens of Korean visitors were already there, causing congestion. In the local dialect of Gyeongsang Province, everyone was tough tone. I asked the couple with their two middle school kids where they were from, they said they were from Jinhae Airport, which is close to Busan. It meant they didn't have to visit the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There were enough tourists that Kimhae Airport in Busan offered a direct route to Kota. I asked them: "Why do you think people in Gyeongsang Province travel around the world more compared to other regions?“ My question seemed to be the first one to them. Everybody fell quiet. In particular, two middle school kids were staring at their parents and scratching their heads in turn. The guide then came out of somewhere and said, "Come on, everyone. We are now heading to supper." They said a quick hello to us before rushing out. This family would presumably debate sharply over the response to the query I posed. It's a small world, after all. I'm sure I'll run across them again one day. Then I'll probably ask them the same question. Note:From prior to the unified Silla Dynasty, the Silla kingdom sent the greatest number of overseas students (100 or more, up to 180) to Tang. Silla's commoners also overcame the world by crossing the sea. Goguryeo did not send students to Tang since they were continually battling not only the Tang but also its neighbors (just like N. Korea today). Baekje had the distinction of sending the first international students to Tang before Silla, but none since. Unlike Silla, Baekje had enough because of its food self-sufficiency, but it was troubled by internal warfare and political turbulence. According to Hyecho's notes, he met scores of young Silla people throughout his 10-year trip to India. Long-distance travel meant death at the time. In reality, the majority of individuals were declared deceased on their travel to India. The spirit of the sea, which has always been close to the Silla people, is credited to their pioneering and challenging character. When they see the sea in front of them, they cheer, rush barefoot, and dive into it. They demonstrate that emotions associated with marine culture have been ingrained in their DNA since the Shilla Dynasty. Thanks for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