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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8일은 내게 있어 특별한 날이 되고 말았다. 그 날은 <시카고 시니어 클럽>의 컴퓨터 강의가 가을 학기를 대면으로 실시하는 날이었다. 오후 4시 개강에 맞춰 가야겠다 ,하면서 시간이 조금 남길래 <영재 발굴단>의 뮤지컬 영재인 강릉 장발장 홍의현 군의 사연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2012년 경 초등학교 3학년때쯤부터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고 푹 빠져 혼자 영상을 돌려보며 장발장 역에서부터 코제트,앙골라역과 에포닌, 마리우스에서 민중들 역까지 많은 등장인물들의 노래와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하게 된 홍의현 군은 주인공 역엔 그 인물에 몰입해 눈물까지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똘망똘망한 소년이었다. 노래와 대사를 연습하는 사이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까지 섭렵한 그 소년은 벌써 성장해 서울대 의대생이 되어 있었다. 그 프로가 너무 재미있어서였든지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깜짝 놀라 외출준비를 하고 인디언 트레일 도서관으로 가고 있었다.
교차로에서 파란 불로 바뀌어 직진하는 사이, 왼쪽에서 달려오던 차가 내 차를 덮쳐 버린 순간, 나는 정신이 나가 버렸다. 바로 앞길의 숲길로 차를 잠시 옮기고 전후좌우를 살펴 봤지만 어떤 색깔의, 어떤 운전자가 내 차를 박았는지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젊은 부부가 차에서 내리고 어린 아이를 태운 차가 내 곁에 다가와 “폴리스를 불러 줄까요?”하며 호의를 베풀었다. 순식간에 3-4대의 경찰차가 왔다. 온 몸을 발발 떨며 “몸은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힛 앤 런’인 것 같다.나는 내 차를 친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다시 차를 조용한 건물 앞으로 옮기고 경찰이 리포트 하기를 기다렸다.한참 뒤 경찰이 유닛 1,2가 적힌 쪽지를 주면서 “코트엔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차가 박힌 곳을 살펴 본 뒤 한참 동안 차안에서 경찰이 준 쪽지를 계속 들여다 봤다.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 끝에 도서관에서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을 멤버들이 생각났다.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교통사고가 났다, 고 알렸다. 아들들에겐 걱정을 끼치기 싫어 모든 사건이 끝나고 차를 말끔히 고치고 난 뒤 말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멤버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나니 안심이 들었다. 한참 후에 차 밖으로 다시 나왔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 왔다. 미국 백인 할머니였다.
나는 그동안 ‘힛앤런’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 그새 벌써 다른 경찰이 그 할머니를 찾아 리포트 작성을 마친 것이었다. 그 할머니는 벌써 자기의 아들을 불러내어 또 다른 차에서 아들이 왔다.
“내 생전에 이런 사고는 처음이에요.”하고 말하는 할머니를 서로 위로 하며,
나이를 물었더니 70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아들이 “엄마, 70이 아니고 73세예요.”하고 말했다. 나는 “차가 얼마나 다쳤는지 보고싶다”고 말하고 둘이 함께 차 있는 곳으로 가서 보니 앞쪽이 다쳤고 범퍼가 튀어 나와 있었다. 나는 그 할머니가 내 앞에 나타나 준 것이 너무 고마워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곧장 집으로 가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걱정만 더 할 것 같고 생각이 심해지면 혼자 울기도 할 것 같아 다시 도서관으로 가기로 해 시동을 걸었더니 ‘차문이 열려 있다’는 싸인이 계속 나왔다. 다른 방도가 없잖아? 이를 무시하고 도서관으로 가 사람들을 만나고 즐겁게 저녁과 후식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일날이 왔다. 고훈 담임 목사는 ‘슬픔이 기쁨으로’한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다. 이날 따라 모든 말씀이 나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께는 희망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경제의 흉년, 관계의 흉년, 건강과 영적인 흉년이 오더라도, 어떤 힘든 사건을 만나더라도 흔들림과 절망없이 이를 극복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되면 결국 그 선택은, ‘씨앗’으로 바뀌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또 방향을 결정해 말씀을 사모하고 연결 능력에서 기도를 하게 되면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패에서도 배울 것이 있으며, 하나님은 남아 있는 것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결국 탈곡기에서 곡식들의 탈곡을 시작하면 곡식들은 환란을 당한 것처럼 날뛰겠지만 나의 껍질을 벗겨내는 아픔을 당하는 환란의 순간을 겪고 나면 나는 더 알곡처럼 아름답게 변신되고 은혜로운 나로 거듭나게 될 것임을 배우게 되었다.
지난 월요일부터 보험사를 찾고 차를 고칠 오토샵을 찾으며 하나씩 둘씩 새로운 관계 정립을 하고 있다. “나는 탈곡 중이다.” 시간이 지나가면 나도 변하고 내 차도 예쁘게 변할 것임을 믿고 있다.
연세대 국문학과 졸업
1970년 중앙일보(한국)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등단
해외문학 및 미주 문학상 대상
이병주 국제 문학상(예지 문학회)
시집: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나남, 「풀씨와 공기돌」종로서적 , 「보이지 않는 것도 하늘이다」청동거울, 문학수첩 「꽃들은 바쁘다(2018)」
수필집: 공저 「금밖의 세상 만들기」, 「이병주를 읽는다」-국학자료원(2016) 등이 있음
2000년 시카고 예지문학회 창립
현재 '시카고 시니어 클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