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억에 대한 유월의 그리움
조온윤
그의 이름을 부르려면 그곳에서 내려와 작은 키가 되어야 한다
아니, 좀 더 낮게 나를 쌓은 시간 앞에 포복하는 마음이 되어야지
가장 낮은 바닥에서 세월의 더께를 견디는 최초의 스러짐과 눈 맞출 수 있게 우리의 일어섬이 눈 멎출 수 있게 우리의 일어섬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 수 있게
오래된 기억이 층층이 쌓여 우리의 몸과 만나는 곳 그의 이름을 부르려면 신을 벗고 반드시 맨발이 되어야 한다
미끄럽거나 차가운 것, 통점을 찌르는 것 우리가 밟고 서 있는 게 무언지 느낄 수 있게
낮게, 좀 더 낮게 내가 없던 지난날의 죽음 앞에 묵도해야지
주인 잃은 신발, 불타는 청사, 총성 울리는 광장 사라진 기억을 그리워할 유월에게 들려줘야지
그가 아직 오월이었을 때 어떤 봄을 지나왔는지 사라진 기억으로부터 누구의 이름이 태어나는지
발밑으로 오래된 기억이 쌓여 있다면 우리가 기억을 디디고 서 있는 유월이라면
내려와 마주 보아야 한다
낮게, 좀 더 낮게
ㅡ계간 《시결》 2024년 가을호 ------------------------ 조온윤 /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햇볕 쬐기』, 문학동인 ‘공통점’으로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