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회영 등 우당 6형제는 막대한 재산을 모두 처분해 신흥강습소(무관학교 전신) 등 독립운동에 모두 바쳤다. 강습소 운영도 어려운 판에 식구들이 거친 만주 땅에서 굶기를 밥 먹듯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 후 우당가 후손들이 돌아온 고국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엔 관심이 없었다. 생활전선에 내몰린 자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에 남은 이는 광복회장도, 국회의원도 됐지만 부산으로 내려온 이씨 가족들은 그대로 잊혀졌다.
이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마저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10대 중반에 금세공 기술을 배워 살았고, 이후 경비원 일을 오래 했다. 나이가 들어 경비원 일도 할 수 없게 되자 처자식이 없는 그는 피붙이 동생을 찾아 금호마을에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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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으로 받은 혜택은 막내 동생이 딱 한 번 학비를 면제받은 것과 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가 보내준 쌀이 전부다. 함양군과 경남도의 보훈부처는 딱히 이씨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이종원씨는 평소 “내 힘으로 살 수 있는데 국가의 도움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며 자신과 집안 내력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도움을 바라지 않는 그는 정작 남을 돕는데는 제일 먼저 나선다. 마을 수도를 고쳐주고 난로를 만들어 이웃에게 나눠주며 ‘맥가이버’라는 별명도 얻었다.
첫댓글 매국노 재산 뺏어서 다 돌려줘라!!!!
이완용 후손은 땅팔아서 잘먹고 잘산다는데 이런거보면 신은 없다..
이런 분들에게 좀 대우를 잘해주라고
이게 말이되나 ㅜㅜ
서울에 남은 자손들은 꽤 성공했는데 ㅜ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내려가신 거겠지만 안타깝다
이종걸도 이회영 자손이었지? 저분들은 힘들게 사시는거보니 안타까움..
ㅠㅠ
잼시 출동 해줘..
아니 이런 사람들 지원하려고 보훈처 있는거 아니었음?
하....
ㅠㅠㅠㅠㅠㅠ
헐 우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