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고 편한 데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역시 양 진영으로 나뉘어 내전이나 다름없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증오하기 때문인데, 더 확실한 것은 몇 사람의 권력과 재물에 대한 과다한 욕심 때문이다. 권불 10년, 재불 백 년이라는 말도 이제는 그 효용성을 잃은 지 오래, 지금은 좋은 꽃 시절이 2년도 안 되고, 훗날 생각하면 ‘내가 그때 왜 그렇게 살았지’ 하고 후회할 날이 멀지 않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요즘 사람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회자 되는 쇼펜하우어는 그의 대표작인『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판하면서 "이후로 수백 가지 책의 원천과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매우 자찬했다.(그 말은 대체로 사실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책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출판 후 16년이 지난 뒤 출판사로부터 그의 책이 대부분 휴지로 팔렸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 뒤 1851년에는 에세이집인『여록과 보유』를 출판하면서 인세로 열권의 기증본만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염세주의자이면서도 72세까지 살았던 쇼펜하우어는 늦었지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2년여 동안 행복의 절정에 살다가 죽었다.
‘니체 이전의 철학, 니체 이후의 철학’이라는 말이 회자 되는 프리드리히 니체는 어떠한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제 4부를 자비로 출판했고, 팔린 것은 40권이었으며 7권이 기증본으로 나갔다. 기증본을 받았다고 소식을 알린 사람은 한 사람이었고 그 책을 좋은 책이라고 칭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니체는 그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이 그를 돕겠다고 연락을 취해왔을 때 이미 정신병에 걸려있었고, 1900년 비운의 생애를 마감했다.
‘어떠한 인간인가? 하는 것이 무엇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행복에 기여한다.”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신적인 수양보다는 부의 획득에 몇천 배의 힘을 기울인다"고 쇼펜하우어는『여록과 보유』에서, 말하며 "대체로 정신적으로 빈약하고 일반적으로 비속한 사람일수록 더욱 사교적이다"라고 덧붙인다. 니체는 예수를 빗대어 "그는 너무 일찍 죽었다. 만일 그가 원숙한 나이까지 살았다면 그의 가르침을 철회했을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이 철회할 만큼 고상한 인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지상에서 글을 쓰든 또 다른 활동이나 예술활동을 하든, 별이 되지 않고 무명無名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굴욕적이며 힘든 일인가? 하지만 불행과 행복의 잣대를 누가 있어 잴 수 있을 것인가. 말러의 교향곡〈대지의 노래〉에 나오는 구절처럼 "삶도 어둡고 죽음도 어둡다" 그렇게 말한 말러는 살아생전 그 어느 하루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보낸 날이 없었다고 그의 아내가 술회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정치가였던 앙드레 말로 역시『인간의 조건』에서 "죽음이란 없어, 그러나 나는 또 죽고 말지"라고 토로하지 않는가?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요절한 기형도 시인이 빈집의 마지막 부분에 썼던 시 구절처럼 나도 어느 날 빈집 같은 무無속으로 사라져 갈 것을..
‘때가 사람을 모르니 때가 사람을 따를 리 없다.’ 정현종 시인의 시 구절은 얼마나 지당한가.
자, 한 번 밖에 못 사는 삶,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말고,돈과 권력에 욕심 내지 말고, 지금을 잘 살자. 좋은 사람들 만나고, 좋은 책 많이 보고, 세상의 좋은 경치 다 보고, 그렇게 소신껏 살다가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