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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진 귀촌칼럼니스트
어떤 도로(道路)
양평군, 가평군이 도로(道路) 건설 문제로 시끄럽다. 서울-양평 고속도로와 제2경춘국도 얘기다. 두 지역에는 건설되는 노선 관련해서 찬반의 현수막이 어지러이 걸려있다. 대다수 독자들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문제는 중앙언론에서 많이 다뤄 그 내용을 알고 있으나 가평군을 가로질러 춘천으로 가는 제2경춘국도 문제는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제2경춘국도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 내가 가평군에 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내가 볼 때 서울-양평 고속도로 이슈는 기존의 개발 위주의 성장 패러다임 안에서 어느 지역이 또는 (대통령 부부 포함) 누가 더 그 이익을 갖고 갈 것이냐의 싸움이다. 그러나 제2경춘국도 이슈는 기후재앙 시대를 사는 현시대에도 대규모 공사 위주의 개발 방식을 계속 추진할 것이냐 아니면 생태, 문화, 역사, 교육과 같은 지역의 유산을 보존하는 지속가능한 개발 방식을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2경춘국도의 가평군 통과 구간은 제2공구와 제3공구 두 구간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제3공구가 바로 위 선택의 이슈를 만들고 있는 구간이다. 이 도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1. 경기도에 현존하는 하나밖에 없는 조선 임금의 태봉 즉 중종 임금의 태를 묻은 태봉을 가로질러 간다. 가평군은 중종이 임금으로 즉위하고 태봉이 만들어지면서 가평현에서 가평군으로 승격됐다. 가평군의 부모와 같은 유적이 바로 중종대왕 태봉이다. 더구나 경상북도, 충청남도에 있는 다른 임금들의 태봉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인 유적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조선 임금의 생전(태봉), 재위(궁), 사후(종묘) 유적이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완결성을 갖게도 된다. 그러나 제2경춘국도가 태봉의 목을 끊고 지나간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어려워질 것이다.
2. 경기도 문화재인 이방실 장군 묘의 보호구역을 통과한다. 도 문화재는 외곽 경계로부터 300미터의 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는데 제2경춘국도는 그 구역을 통과해 가게 돼있다.
3. 최초의 야담(野談)집으로 평가받는 어우야담의 저자 어우당 유몽인의 묘는 풍수지리가들이 꼽는 천하의 명당이다. 이 묘의 풍수적 경관을 헤치고 제2경춘국도가 지어진다.
4. 제2경춘국도는 위 1~3번과 같은 유적이 있고, 아직도 농경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마을로서 2023년 경기 에코뮤지엄(지붕없는 박물관)으로 지정된 가평읍 상색리, 하색1·2리 마을을 절단내고 건설된다. 지붕 없는 박물관을 둘러보기 위해 만들어질 둘레길은 제2경춘국도로 없어지거나 도로 밑에서 소음을 들으며 걷게 되는 길이 되게 생겼다. 주민 주도로 만들어 보려했던 지속가능한 생태관광의 꿈은 노도와 같은 건설장비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게 생겼다.
5. 가평군의 대표적 교육기관인 가평고등학교 옆, 그것도 기숙사 바로 옆을 지나가 학생들의 학습권, 수면권을 심각하게 방해하게 될 도로. 제2경춘국도다. 가평고는 가평군에 한 곳뿐인 수학능력시험장 운영교다. 수능시험 시의 소음 피해가 우려된다. 더구나 현재 교육부는 12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가평고를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로 만들기 위한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다. 교육부는 교육환경을 개선하려 예산을 쓰고 교통부는 교육환경을 악화시키는 예산을 쓰고 있다.
6. 도로가 계획된 길 아래에는 달전천이 흐르고 있다. 중앙정부, 경기도, 가평군이 함께 약 3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2021년 생태하천으로 복원했다고 홍보했던 곳이다. 복원공사로 인해 파헤쳐졌다가 자리 잡기 시작한 하천 생태가 안정되기도 전에 다시 도로를 놓겠다고 파헤칠 판이다.
이 문제의 도로 노선이 불쑥 공개된 2020년 11월부터 이런 문제점들을 국토교통부에 줄기차게 제기했지만 답은 늘 똑같았다.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가평고의 교사, 학생, 학부모, 동문들이 탄원서를 냈지만 노선은 요지부동이다. 기존의 개발, 토건 패러다임의 깃발 아래 생태보전도, 문화재도, 교육도, 합리적인 재정운영도, 지속가능한 생태관광도 모두 무릎을 꿇었다.
도로(徒路) : 아무 보람이 없는 수고
최근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준비 부족으로 인한 파행으로 대한민국이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다. 여야가 서로 상대방에게 준비 부족의 탓을 하고 있지만 그 싸움을 좀 떨어져서 보면 그들은 같은 패러다임 안에 있는 같은 편이다. 새만금 방조제의 역사는 1971년 박정희 정권 때까지 올라간다. 전두환 정권 때 종합개발사업을 발표하고 1991년 노태우 정권 때 착공이 시작됐고, 2017년 문재인 정권 때 새만금 잼버리 유치를 결정하고, 당시까지 갯벌의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던 해창(海倉)갯벌의 매립이 시작됐다. 환경단체는 “잼버리 취지와 정신을 위배하는 갯벌 파괴 중단”하라고 촉구했지만 역시 지금의 제2경춘국도처럼 중단은 없었다.
이 5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은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고, 갯벌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평가도 나왔고 탄소를 엄청나게 흡수하는 갯벌의 역할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들도 발표됐지만 대규모 공사 위주 토건 패러다임의 관성은 멈추지 않았다. 양대 정당, 중앙·지방 모두 개발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렸다. 각종 준비 부실의 우려에도 문제없다고 호언장담했던 윤석열 정권이 이제 와서 전 정권을 탓하는 모습은 국민의 불안을 먹고 사는 괴물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번에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준비가 잘 됐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웠다는 이번 여름의 폭염은 청소년들의 건강을 위협했을 것이다. 뜨거워진 바다로 인해 우리나라로 접근하면서도 점점 더 세력이 강해지는 태풍 카눈은 결국 잼버리 대회를 중단하게 했다.
내게 이번 새만금 잼버리 대회는 기성세대가 기후재앙을 재촉해 미래세대들을 어떻게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 세계적인 고문 학습의 장으로 보였다. 황량한 매립지 위에서 폭염에 고통스러워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기후재앙으로 용광로처럼 변해버린 미래 지구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디스토피아를 보는 것 같았다. 자연을 거스르며 갯벌의 용도를 바꾸려 한 토건 개발론자들은 미국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이 만든 2030년 해수면 상승에 따른 해안범람을 표시한 지도에 새만금 주변의 군산시, 부안군이 범람 피해 지역으로 표시된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수십 년 추진해온 매립 정책을 이제 와서 포기할 수 없다며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져 더 높은 방파제를 쌓자고, 더 안전한 매립을 하자는 근거로 이 지도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배출과 더 큰 기후재앙은 미래 세대의 몫으로 남겨놓은 채…
클라이밋 센트럴이 제작한 새만금 갯벌 주변 2030년 해상범람 예상지도 캡쳐 화면.
도로아미타불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지난 3월 최종 승인한 제6차 보고서는 지구 온도 상승을 인류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으로 여겨지고 있는 1.5도 이내로 제한하려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의 43%로 줄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얼마 전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The era of global warming)는 끝났다. 지구 열대화 시대(The era of global boiling)가 시작됐다” 라며 ‘지구열대화’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각성을 촉구했지만, 난 인류가 IPCC의 경고를 받아들여 성공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가평군에 와서 진행한 맞손토크에서 가평군이 ‘탄소중립 관광특구’를 추진하면 좋겠다며 이제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 가평군에 자신의 발언에 역행하는 도로가 만들어지는데 어떤 관심도 보이질 않고 있다. 오히려 핫이슈인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에 뛰어들어 서울-양양 고속도로에 연결하는 새로운 도로를 더 건설하는 제안을 하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기후도지사가 되겠다는 김동연 지사마저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암울하다.
산과 들과 물을 깎고 파헤치고 각종 탄소배출 장비를 엄청나게 사용해대는 도로 건설이 탄소중립에 악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얼마 전 오송 궁평지하차도 참사에서 보듯 기후재앙 시대 건설사업으로 인해 폭우, 폭염으로 언제든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로 인한 공사기간의 연장, 공사방식의 변화, 자재비의 상승 등으로 건설비의 증가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재정이 위험하다면서도 도로 건설을 위한 예산 사용은 거침이 없다. 2031년 완공 목표인 서울-양평 고속도로 예산은 1.9조 원이고, 2029년 완공 예정인 제2경춘국도 예산은 1.3조 원이다. 2030년까지 향후 7년이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골든타임인데 그 황금 같은 시간에 정부는 열심히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도로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는다. 그 예산 사용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는 우리나라 드론 산업을 주무하는 부서이기도 하다. 지난 6월30일 발표한 ‘제2차 드론 산업 발전 기본계획(2023~2032)’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드론 제작·운용기술 발전 5단계
위 표에서 보듯 2031년 이후 5단계 때는 완전자율 드론이 1톤 이상의 사람 또는 짐을 싣고 500km 이상 전국 어디든 다닐 수 있는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 중심의 도로는 왜 자꾸 만드는가? 그 도로는 도로아미타불이 되지 않을까? 그 돈으로 드론이 중간 중간 기착할 공간을 만드는 것이 더 미래지향적이고 탄소중립적이지 않을까? 더구나 이런 사업에 사용될 드론에 국산 기체는 한 대도 없고 국산화를 위한 정책지원도 없다고 하니 (K-UAM 상용화 눈앞인데···2025년 하늘위 기체는 '외산천하' 아주경제 2023-07-24 기사 참조) 이게 항공우주산업 선진국을 목표하는 대한민국이 맞는지 놀라울 뿐이다.
국토부에 뿌리 깊은 도로건설 카르텔 또는 마피아가 있는 건 아닌지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도로를 하나 건설하게 되면 관련 대기업, 하청기업, 도로 건설지 주변 상권, 토지주, 해당 지역 정치인과 관련 공무원 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밥줄, 돈줄이 걸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년 지구 역사상 겪어보지 못한 폭우, 폭염, 혹한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삼키고, 죽이는 기후재앙이 모든 것을 도로아미타불로 만들게 될 것이다. 도로(道路)는 도로(徒勞)가 될 것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맛을 봐야만 아는가?
도로(道路), 도로(徒勞), 도로아미타불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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