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호남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기 위하여
삶방에 화순의 군민신문에 인터뷰한 기사 내용을 참고로 올려봅니다
외람 되지만 깊은 이해를 하여 주시기 바람니다 --- 용상배상
인터뷰에 앞서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저는 전라남도 나주시 보산리의 하늘만 파랗게 보이고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인 산골짜기의 고장에서 저의 선영땅이 있는 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아담한 산골짜기 마을에서 전기불도 없고, 라디오‧수도와 문화시설이라는 찾아볼 수 없는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봄이면 아녀자들이 고사리를 꺾어다가 나주나 영산포장에 나가 팔고 장작을 지게다 지고 나가 시내에서 팔아서 근근히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외갓집에서 주신 논밭으로 겨우 논밭 몇 마지기를 지어서 살 수 있는 형편은 되었습니다.
저는 나주시 보산리(현.보산동)에서 어린 시절 나주초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중‧고등학교를 나주에서 졸업을 하고 서울의 넓은 지역에 올라가서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하여 나의 꿈을 이룰 것 같은 희망을 갖고 1966년도에 서울로 상경을 했습니다. 가난을 이겨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넓은 서울에 올라가 더 높은 꿈을 이루고자 서울로 상경한 것입니다. 서울로 상경하여 경인교대에서 초등학교 자격증을 취득하고 발령이 나지 않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서울시 공직을 시작하여 2004년도에 정년퇴직을 하게 됐습니다.
30여 년의 공직에서도 항상 책을 같이 하고 법령을 집행하기 위하여 대한민국법령집과 사례‧판례를 살피면서 업무를 수행하여 왔습니다. 퇴직을 하면서 이제는 있는 것이 나의 시간뿐이 없으니, 원(願) 없이 보고 싶은 책들을 보고 못다 한 학문을 하여 보자고 나름대로 각오했습니다.
퇴직 후에는 젊어서 못다 한 초등학교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계약제 교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남은 시간에는 도서관에 나가 공부를 했습니다. 주로 역사, 고전문학, 한학을 하다가 나중에는 문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詩)를 쓰게 된 시기와 동기는?
저는 2004 년도에 서울시 공직을 정년을 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계약제로 고향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지리산이 장엄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곡성의 ’고달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음에는 강진읍내에 있는 ‘영랑생가’가 있고 만덕산 중턱에 ‘다산초당’이 있으며 앞으로는 강진만이 펼쳐지고 뒤로는 ‘우두봉’이 자리 잡은 강진의 계산초등학교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숨 가쁘게 서울의 도시행정을 하다가 한가한 농촌의 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간이 있을 때면 영랑생가를 찾아가 영랑의 시혼에 젖기도 하여 보고, 만덕산의 ‘다산초당’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시심(詩心)에 젖어 보고 시를 써 보기도 했습니다.
문학에 문외한이고 문학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여 보지 못한 사람이 시를 쓴 다는 게 사실은 어려웠습니다. 또 다음으로는 저의 12대조 시서(市西) 김선(金璇)은 조선 중기 선조 때 태어나고 광해군 그리고 인조 때를 살아오신 고매한 학자이시며 시인입니다.
‘시서유고집’과 ‘초당한람’의 책이 유고집으로 남아 있어 나주시청에서 시서유고집을 나주에 있는 동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김종섭 교수에 의해 할아버지의 유고집이 한역으로 번역이 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한시(漢詩)로 거의 이루어져 있으며 1.250 여수의 시를 지으셨습니다.
나주의 금성산변에 ‘오락정(五樂亭)’을 짓고 당대의 장유 계곡과 남간 나해봉등 호남의 선비들과 영산강변의 영모정을 비롯하여 세지면에 있는 ‘벽류정’ ‘소요정’ 몽탄의 ‘식영정’ 등의 정자에서 한 시대를 학문과 시와 풍류를 즐겼던 시인으로 보냈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유고집에 있는 한시를 이해하고, 영산강변에 있는 정자들을 찾아 유적들을 찾았으며 시서유고집의 한시를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방송통신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이 많은 도움과 한자 1급을 확보하여 공부를 하게 되니 한시를 이해하는데 좀 더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계기가 나의 문학으로 향하는 발돋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되며 이 자리를 빌려 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참 잘 살아오신 삶을
인터뷰하셨군요.
인터뷰내용도 훌륭합니다.
근데 호남선 무임승차는 쏙 빼놓으셨네요.ㅎ
학자이자 시인의 자손답게 선비의 삶을 살아오셨군요.
조선시대같으면 큰 대우를 받으셨을텐데
지금 시대가 그러하지 못한 게 안타깝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을 많이 기다리겠습니다.
고마운 댓글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어줍잔은 이야기를 기사화 하였다고 삶방에 올렸으니
제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고 평생을 살줄은 몰랐습니다
아마도 선비집안의 혈통을 받은거 같습니다.진정한 선비는 누구가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자기의 할일을 묵묵히 해나가면 그로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선친이 아주 선비의 기질을 가지셨는데
그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사셨군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신 모습도 부럽습니다.
서두르며 살아온 제 모습을 돌아보며 좀 과했나? 반성도 해봅니다.~~ ㅎ
원하시는 일들 이루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제가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는 절대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이겨나간 사람임엔는 틀림없습니다
누구나 자기의 삶을 뒤돌아 보면 부족한 면도 다 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삼족오님의 너무 과분한 말씀에 오히려 죄송함을 느낌니다
나의 삶이 대단한것 아니고 ,그러나 어려운 나의 환경을 이겨나가기 위하여 몸부림을
쳤던 것은 사실이고 항상 책을 잡은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선대의 조상님은 정말 훌륭한
선비십니다 아마도 그 기상을 조금은 받은거 같습니다. 이렇게 위로와 격려를 하여주시니 노후의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우울증은 좀 덜 하여가는거 같습니다
오늘도 무등산 자락에 호남문학의 산실인 정자를 찾아 나설것 입니다 그게 노후의 나의행복입니다
너무 과분한 말씀에 더더욱 조심스러워 짐니다 감사합니다
그간의 남다른 학구열에 박수를 보냅니다.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삶을 사셨군요
아이구 심해 지기님께서도 이렇게 격려를 하여주시고
항상 감사를 드림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을 이겨나가 나의 자아완성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은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기님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조께서 훌륭하신 분이셨군요.
선배님께서도
방송통신대 덕분에
문학도가 되셨습니다.
신미주 학우님이나 저나 다같이 공직을 그리고 방송통신대
학우로써 더 더욱 감사합니다
만장봉 어르신께선
화순군에서는 고명하신 문학인이 되셨습니다.
끝이 없는 고독한 길이 문학인의 길입니다.
항상 갈고 닦고 배우고 수정하고 또 정정하고
퇴고하는 습관은 문학인의 기본입니다.
구도자가 도를 구하기 위하여
고행의 길을 가듯
문학인은 고행의 길을 가야합니다.
단 한 편의 시나 수필, 소설, 아동문학을
국민들 가슴에 남기기 위하여......
감사합니다
정말 박시인님의 말씀처럼 , 항상 창작을 위하여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고행의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문학이란 인간의 심성을 밝게하여주는 훌륭한 문학이며 삶의 철학이 담겨있는
학문이며,삶을 노래한 가요입니다 .
인터뷰의 기사가 있어 다 삶방에 제시하고져합니다
박시인님의 건강하시여 좋은 시들이 우리들의 감동을 주는 시들을 보고 싶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무사 안일하게 사는 인생도 복이라 하지만 어려운 역경을 이기고 쟁취한 삶도 박수 받아야 합니다
더 많은 박수로 축하 받을 일이지요 한 시 좋아요 저는 쬐끔 공부 하다 말았지만 언제나 향수같은 것을 품고 삽니다 고맙습니다 대신 공부하셔서 이렇게 눈으로 다시 접할 수있게 해주셔서 말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운선작가님도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헤쳐나가신 장본인 이십니다
글이란 힘들었던 삶의 고뇌와 고난의 역사를 품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배불르고 고통을 받아보지 않는 편안한 삶이 어찌 글로 승화를 하겠습니까?
저도 그어려운 시절에 서울로 상경하여 정말 말로써는 다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으며
또한 아내를 여윈 그 설어움이 아마도 글로 승화를 하고 나의 한(恨)을 글로 나타내나 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이구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나 어울리지않는 과찬입니다
이제 나이를 먹으니 고향을 둘러보고 조상들이 산소를 둘러보는 일이
나의 일입니다 누구나 관심엤게 노력하면 다 되는 일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