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관광학회 유교문화활성화지원사업단에서 주관하는 호남권 서원 참여자 명단입니다.
강순금 김경옥 김수홍 김순임 김은순 김태선 김혜련 김해숙 고은영 나은경
박현숙 박계옥 박경숙 배 홍 서삼천 심영주 안희경 임연선 우보선 유연숙
윤자영 이강부 이사조 이원형 이증미 전영남 조창엽 정부영 최규자 최금선
최인식 최하경 한은진 허정숙 황수영 --35명
모이는 장소 : 운현궁앞 (안국역 4번출구 직진 )
시간 : 7시 50분
이번 프로그램은 고택숙박과 서원을 통해 실질적으로 체험하면서 현실질적으로 생활문화화 하여
교육의 기능과 문화자원의 관광사업화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서원체험 중에는 음주와 흡연은 금지된다고 합니다.
그동안 여러번의 서원행사가 있었는데 음주와 흡연으로 인해 약간의 잡음이 있었기에 주최측에서 특히 협조를 부탁하여 왔습니다. 참석하시는 회원님들께서 조금 불편하시더라고 즐거운 서원체험 답사를 위해 저희 진흥원에서는 선생님들과 함께 적극 협조하기로 하였습니다. ^^
!! 숙소인 청백한옥은 호텔형한옥으로 지어져서 이용하기 편하고 주변이 홍길동테마파크이고 축령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아침 저녁 산책을 하기에 좋다고 합니다. !!
일정은 기존에 공지하여드린대로
전주향교-한옥마을관람-월봉서원-청백한옥(1박)-필암서원-소쇄원-가사문학관으로 진행됩니다.
진행해주시는 측에서 설명을 해주시겠지만 가기전에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전주향교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26-3 (고려시대)
향교는 유학교육과 인재양성을 위해 지방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이 향교는 고려시대에 세웠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당시에는 조선 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사적 제339호) 근처에 있었으나, 향교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끄럽다하여 전주성 서쪽 황화대 아래로 옮겼다 한다. 지금 위치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뒤, 관찰사 장만이 옮긴 것이다.
현재 이 향교에는 여러 훌륭한 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7호)을 비롯해 동무·서무, 계성사,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인 명륜당 등의 여러 건물이 있다. 대성전은 효종 4년(1653)이 고쳐 세웠는데, 이기발이 중건기를 남겼다. 이후 융희 원년(1907)에 군수 이중익이 다시 고쳤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다. 명륜당은 광무 8년(1904)에 군수 권직상이 고쳤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이다.
우리의 옛 교육시설을 둘러 볼 수 있는 이곳은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기능은 없어졌다. 그러나 봄·가을에 공자께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보름에는 향을 피우고 있다.
월봉서원
전남 광주시 광산구 광산동 452 소재.
조선 전기의 문신인 기대승(1527∼1572)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선생은 성리학의 대가로 새 학설을 제시하여 학계에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스승인 이황 선생과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한 8년 간의 서신왕래는 너무나 유명하다.
원래 이곳은 기대승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박상·박순·김장생·김집 등 조선의 명신들을 함께 배향하고 있는 ‘월봉서원’의 강당이었다.
월봉서원은 그가 죽은 뒤 그를 추모하기 위해 큰아들인 기효승이 선조 11년(1578) 세운 것으로 정조가 ‘빙월당’이라 이름을 지어 내렸다.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며 앞면과 오른쪽 반 칸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1980년 새로 세운 사당과 그의 저서를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 내·외삼문이 높다란 대지 위에 서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청백한옥
전남 장성군 황룡면 홍길동로 (홍길동 테마파크내에 있으며 축령산을 뒤로 하고 있는 아름다운 한옥)
필암서원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379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을 닦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고향인 기산리에 세워졌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다. 현종 3년(1662)에 임금께서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셨으며,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서 휴식처가 되는 확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또한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주로 18세기∼20세기초부터 전래된 것으로서, 당시 지방교육과 제도 및 사회·경제상, 그리고 학자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소쇄원
전남 담양군 남면 소쇄원길 17, 등 (지곡리) (조선시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양산보(1503-1557)는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의 정원인 소쇄원을 지었다.
정원은 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로 되어 있다. 4.060㎡의 면적에 기능과 공간의 특성에 따라 애양단구역, 오곡문구역, 제월당구역, 광풍각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원 내에는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들로 된 숲이 있다. 주위에는 흙과 돌로 쌓은 자연스러운 담이 있는데 ‘애양단’, ‘오곡문’, ‘소쇄처사양공지려’의 석판과 목판글씨가 담벽에 박혀있다. 소쇄원 안에는 영조 31년(1755) 당시 소쇄원의 모습을 목판에 새긴 그림이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정원이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첫댓글 친절항 안내 감사 합니다. 지금부터 가슴 설레며 기다려 짐니다~
예 저도 이번 코스가 무척 맘에 들어요 소개해주신 김도현샘께 감사드려요^^
잘 다녀오세요...양산보 사돈인 김인후의 소쇄원 48영 시를 생각하며...그날 촉촉히 이슬비가 오면 더 아름다운
별서정원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여름이 아니라 아직은 비가 안와야 좋아요 요즘 김성한 선생님 뵙기 어려운데 자주 뵙고 싶습니다^^
@안희경 네 자주 뵈야지요...비가 아니라 연무...(황사 빼고)
너무나 좋은 기회 주심에 감사드리며~~ 아울러 자세한 안내까지 감동입니다^^
허정숙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아름다운소쇄원을 몇년만에 다시볼생각하니 가슴이 뛰네요
기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 저도 소쇄원은 두번 다녀왔는데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이어요. 이번에 좋은 곳을 가게 되어 저도 기뻐요. 아침 저녁 동네 한바퀴도 돌고~~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모로 세심하게 준비하여 주셔서 또 감사드립니다. 내일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하겠습니다.
황수영선생님 반갑습니다 진흥원에서도 자주 뵈어요^^
소쉐원을 지은 양산보가 조광조의 제자인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양산보의 손자 양천회가 송강 정철의 사주를 받아 동향(同鄕)의 대신들 1,200여 명을 모함해서 죽인 사화가 기축옥사지요. 결국 양천회도 정철의 손에 죽게 되고 정철은 귀양가게 되며, 그 때 화를 입은 대신들은 정여립을 제외하고 모두 사후 억울함이 풀어져 신원(伸寃), 복관(復官)되어 한 품계씩 증직되게 됩니다. 한 마디로 손자가 조부 망신을 시키게 되는 역사의 현장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