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따라 펼쳐진 부산바다 “절경이네!”
미포~송정역 4.8㎞ 시민 개방 … 시민 · 관광객 발길 이어져
동해남부선은 1935년 12월16일 전 구간을 개통했다. 기찻길 역사는 장장 80년, 사람으로 치면 팔순에 이르는 지긋한 연륜이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미포~송정 구간 옛 철길을 거닐며 추억을 만들고 싶어 하는 시민의 개방 요구가 잇따르자 부산시는 안전시설을 설치한 후 지난 3월1일 시민에 개방했다(사진은 동래남부선 기찻길을 걷고 있는 시민 모습).
기찻길은 소리로 다져진 길. 소리로 다져서 딴딴해진 길. 그래서 기찻길은 소리를 밟으며 걷는 길이며 소리에 스며들며 걷는 길이다.
동해남부선 기찻길은 동해바다 소리와 기차소리로 딴딴해진 길. 그래서 바닷소리와 기차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고 바닷소리와 기차소리에 스며들며 걷는 길이다.
동해남부선은 동해남부지역 기찻길. 부산에서 경북 포항까지 바다를 낀 기찻길이다. 기찻길 역사는 오래다. 부산진에서 해운대, 해운대에서 좌천 등 몇 구간으로 나눠 개통되다 1935년 12월16일 전 구간을 개통했다. 기찻길 역사는 장장 80년, 사람으로 치면 팔순에 이르는 지긋한 연륜이다.
동해남부선 기찻길, 시민 산책로 개방
80년 연륜 동해남부선은 지난해 12월 통 크게 변신했다. 개통 이후 줄곧 단선이던 기찻길이 복선으로 확장된 것. 선로도 일부 바뀌었다.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새 기찻길이 생기고 팔순 지긋한 기찻길은 폐선 됐다. 그러나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미포~송정 구간 옛 철길을 거닐며 추억을 만들고 싶어 하는 시민의 개방 요구가 잇따르면서 부산시는 안전시설을 설치한 후 지난 3월1일 시민에 개방했다.
부산시는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를 시민공원으로 꾸밀 계획이다. 오는 9월부터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공사를 벌여 자전거길, 산책로, 녹지 등을 갖춘 ‘부산 그린 레일웨이’로 만든다고 한다.
시민 품으로 돌아온 동해남부선 기찻길을 걸었다. 개방 구간은 해운대 문탠로드 입구인 미포에서 송정역에 이르는 4.8㎞. 개방 구간 초입은 미포. 집결지로는 달맞이길 입구 공영주차장이 좋다. 해운대해수욕장 유람선선착장 방면 ‘尾浦(미포)’ 입석도 있지만 인근에 초고층 관광리조트 신축공사장이 있어 주변이 어수선한 게 흠이다.
미포 기찻길에 들어서면 텃새인 곤줄박이가 텃세를 부린다. 참새만한 것들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며 짹짹짹 신경질을 부린다. 영역을 침범당해 분한지 소리가 곤두섰다. 가소로운 듯 파도소리가 일거에 새소리를 덮는다. 곤줄박이는 안 되겠다 싶어 더 멀리로 내뺀다. 내빼면서 내지르는 소리가 기찻길을 따라 뻗어간다.
미포에서 송정역까지 기찻길은 고무줄 길이다. 어떤 사람은 한 시간 남짓 걸려 다 가고 어떤 사람은 두 시간이 걸려도 다 못 간다. 사람에 따라서 한 시간도 걸리고 두세 시간도 걸리는 고무줄 길이 동해남부선 기찻길이다.
기찻길 옆으로 푸른 바다 반짝반짝
길은 바다를 끼고 이어진다. 바다는 동해바다. 섬 하나 없이 탁 트인 바다다. 부산사람 탁 트인 성정을 닮은 바다다. 숨을 깊숙이 들이키면 몸 안 깊숙이 빨려들 것 같은 바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금빛 은빛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몸도 마음도 금빛 은빛으로 반짝일 홀수 또는 짝수 사람들. 누구는 팔짱을 끼고 걷고 누구는 서로가 사진을 찍어주며 걷는다.
“사랑하는 이와 손 꼭 잡고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네요.” 개방 첫날인 3·1절 아침 시민걷기행사가 이 구간에서 열렸다. ‘옛 동해남부선 따라 걷는 철길 여행-해운대 삼포걷기’에 참가한 시민은 3천여 명. 삼포는 미포와 청사포, 구덕포 세 포구를 이른다. 이 날 행사에 참가한 박혜련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지배인. 호텔 투숙객에게 부산문화와 관광지를 속속들이 알리는 일에 전념하는 박 지배인 표현대로 여기 기찻길은 사랑을 이룬 사람에겐 사랑을 확인하며 걷는 길이고 아직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에겐 사랑을 기대하며 걷는 길이다.
기찻길 오른편으론 바다. 바다는 파랗다. 바다가 파라니 바닷물에 물든 갯바위가 파랗고 갯바위를 내려다보는 해송 솔잎이 파랗다. 기찻길 따라 심은 나무에서 새로 돋는 순이 파랗고 땅에서 새로 솟는 싹이 파랗다. 쪼그려 앉아 쑥 캐는 아낙들 손끝이 파랗고 아낙들 웃음소리가 파랗다. 바다가 파라니 파도소리마저 파랗다. 파도소리가 다져서 딴딴해진 기찻길은 왜 아니 파랄 것인가.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기찻길 역시 파랗다.
사각터널 지나 만나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
이 구간에서 하나뿐인 터널 이름은 ‘달맞이재.’ 터널은 개성이 넘친다. 둥근 터널이 아니고 사각 반듯한 터널이다. 개성 넘치는 터널이라 멀리서 봐도 티가 난다.
터널을 지나면 동해바다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곡선인 듯하면서 직선이고 직선인 듯하면서 곡선인 수평선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등대 풍경도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등대는 청사포 방파제 등대. 왼쪽 방파제 등대는 붉고 오른쪽 방파제 등대는 희다. 포구로 들어오는 배는 좌측 붉은 등대에 붙어 들어오고 포구에서 나가는 배는 우측 흰 등대에 붙어 나간다. 바다 저 멀리 해상 암초에 세운 등대는 등대처럼 보이는 등표. 가운데는 노랗고 양끝이 검어 배에게 동쪽으로 가라고 알려 주는 항로표지다. 방파제 등대가 좌우를 알려 주는 측방표지라면 등표는 동서남북을 알려 주는 방위표지다.
누가 저런 불을 지폈을까 / 알아서 켜지는 불 / 당신이 오면 / 내 안의 불 / 알아서 켜지리 / 아무리 젖어도 / 절대로 꺼지지 않으리 / 누가 저런 불을 지폈을까 / 알아서 꺼지는 불 / 당신이 떠나면 / 내 안의 불/ 알아서 꺼지리 / 아무리 불붙여도 / 절대로 켜지지 않으리 / 당신이여 오라 / 젖어도 꺼지지 않는 / 청사초롱 / 저 불을 따라서 오라//
-동길산 시 ‘청사포등대’.
1㎞ 이어지는 향나무 길 명물
미포에서 송정역까지 기찻길은 고무줄 길이다. 어떤 사람은 한 시간 남짓 걸려 다 가고 어떤 사람은 두 시간이 걸려도 다 못 간다. 사람에 따라서 한 시간도 걸리고 두세 시간도 걸리는 고무줄 길이 여기 기찻길이다. 빨리 간다고 박수 받지도 않을 테고 늦게 간다고 꾸지람 듣지도 않을 터. 한적한 어촌 같은 청사포에 들러 갯내음에 물씬 젖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해녀들이 갓 잡은 해산물도 맛깔스럽고 등대 낙서도 맛깔스럽다.
‘설아야, 사랑해!’, ‘2014년 1월1일 새해, 탁씨네.’ 낙서는 기찻길에서도 만난다. 청사포 구간 기찻길 왼편에 시멘트 담벼락이 보인다. 70~80m 담벼락이 온통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낙서고 사랑이 두터워지기를 바라는 낙서다. ‘사랑의 벽’이라고 이름 붙여도 토 달 사람이 없겠다. 담벼락을 지나면 오른편 바다 쪽으로 향나무 길이 이어진다. 나무를 보는 순간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서 호방하게 자란 향나무가 과장 좀 보태 1km나 이어진다. 명물이 되고도 남겠다.
300년 된 보호수 자리 잡은 구덕포
잠시 쉬기에는 어디가 적당할까? 딱 한 군데를 꼽으라면 구덕포 가기 직전 가로등 세운 곳이 적당하다. 가파른 암벽을 낀 기찻길 오른편 야트막한 둔덕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광이 일품이다. 보름달 뜨는 초저녁은 천하제일이다. 편평한 바위를 방석 삼아 시멘트 바닥을 돗자리 삼아 바다 풍광에 젖어 보자. 청사포 앞바다 등표가 선명하게 보인다. 등표에서 해안 쪽으로 수중 암초가 네댓 이어진다. 청사포 해녀나 토박이는 암초를 다릿돌이라고 부른다. 징검다리처럼 놓였기 때문이다.
구덕포는 보호수가 유명하다. 300살도 더 된 해송으로 장군나무라고 불린다. 정월 대보름과 유월 보름에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 나무껍질이 용 비늘처럼 거북 등처럼 생겼다. 은하횟집으로 내려가면 맞닥뜨린다. 구덕포에서 송정역까지는 일사천리다. 단선이던 기찻길은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진다. 길이 갈라지기 전에 왔던 길을 돌아보자. 외길 80년 생애를 마감한 동해남부선 기찻길에 경의를 표해 보자. 아버지의 아버지 같고 어머니의 어머니 같은 녹슨 기찻길에 허리를 숙여 보자.
글 동길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