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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경 강릉 청학동 소금강
오대산 동쪽 기슭에 있는 청학동 소금강은 짙은 숲 속을 흐르는 맑은 계류와 불쑥불쑥 솟은 기암절벽이 아름다워 1970년에 명승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강릉 소금강’ 혹은 ‘명주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하는 청학동 소금강. 그렇지만 동해안 팔경 리스트에서 이 청학동 소금강과 무릉계곡을 발견했을 땐 사실 좀 의외였다. 그건 둘의 경관이 함량미달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백두대간 기슭이라 해색(海色)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팔경에 당당히 속한 까닭은 이 둘이 동해안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청학동에 들어선 날은 굵은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지만,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차량으로 주차장은 가득 차 있었다. 기암괴석을 휘돌아 내려가는 계류는 수량이 늘어나 평소보다 더 우렁찼다. 청학동 소금강은 폭우가 내리면 입산을 통제하기도 한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동해안 일대에 호우특보가 내리면 소금강은 입산이 통제된다”며 “야영장도 호우경보가 발령되면 안전을 위해 텐트를 철수시킨다”고 말한다. 다행히 호우경보도, 호우특보도 발령되지 않은 상황. 느긋하게 발길을 내딛는다.
청학동은 청학대피소 부근의 무릉계를 경계로 하류 쪽을 외소금강, 상류 쪽을 내소금강으로 구분한다. 외소금강에는 금강문·옥조대·십자소·옥수연 등 명소가 있고, 내소금강에는 식당암·구룡연·청심대·만물상 등이 절경을 이룬다. 이런 절경을 보며 만물상까지 왕복 3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산행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그 이상은 무리다.
지금이야 산길이 잘 다듬어져서 그렇지 원래 소금강 산길은 상당히 거칠다. 이 산길에 대한 최초 기록은 율곡 이이가 남겨 놓았다. 1569년(선조 2년) 벼슬에서 잠시 물러나 있던 율곡은 외할머니의 병환을 살피러 강릉에 왔다가 이곳이 비경이라는 지인의 말에 따라 시간을 내 탐승길에 나섰던 것이다. 이때 율곡은 <청학산기>에서 빼어난 산세가 마치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곳을 소금강이라 불렀고, 소금강을 끼고 있는 산세는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듯한 형국이라 해서 청학산(靑鶴山)이라 이름 지었다. 지금도 금강사 앞 영춘대에는 율곡이 직접 썼다고 전해오는 ‘小金剛’이란 글씨도 새겨져 있다.
<청학산기>를 뒤적여 보면 율곡은 청학동 소금강의 아름다움을 학자다운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44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느낌은 어찌 이리 똑같을까.
“사방을 두루 돌아보니, 모두 석산(石山)이 솟아 있고 푸른 잣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가 그 틈바구니를 누비고 있었다. 석산이 양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냇물의 근원이 매우 먼데, 수세(水勢)가 거센 곳에 폭포를 이루어 맑은 하늘에 천둥소리가 계곡을 뒤흔드는 듯하였다. 물이 고인 곳에는 못이 되어 차가운 거울에 얼이 없는 듯하는가 하면, 깊고 맑고 아름답고 푸르러 낙엽이 붙지 못하고 휘돌아 흐르는 구비마다 암석 모양이 천변만화하였고, 산그늘과 나무 그림자에 이내가 섞여 어스레하여 햇빛이 보이지 않았다.”
>>숙박
소금강 입구에 있는 오토캠핑장(033-661-4161)은 선착순으로 운영한다. 사용료는 개인당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근처에는 월산민박(033-661-4104), 송천농원(033-661-4371), 청학산막(033-661-0550) 등 숙식을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마운틴밸리(010-3304-7348 http://m-v.co.kr) 펜션도 괜찮다.
제5경 강릉 경포대
경포대로 유명한 경포호는 그리 넓지 않으나 오랜 옛날부터 동해안 석호의 대명사로서 이름을 널리 날렸다. 만약 강릉에 경포대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강릉 사람들은 대부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경포대가 강릉 사람들의 내면에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상상 이상이다. 무형문화유산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단오제, 유형문화재는 오죽헌, 그리고 자연은 경포대. 강릉의 ‘3대 보물’이다.
속초의 영랑호와 마찬가지로 이 호수를 제대로 즐기려면 한 바퀴 돌아봐야 한다. 걸어서. 예술과 문화의 향기가 철철 넘치는 경포대 호수길은 강릉 시민들이 가장 아끼는 산책 코스다. 그들은 이른 아침 호수길을 걷거나 달리면서 건강을 챙기고 자연스레 문학·역사와 호흡하니 참으로 보배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는 경포대 호수길 산책 코스, 그리고 오죽헌까지 다녀오는 코스를 간략히 소개한다. 경포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일출이나 바다를 감상한 다음, 도로를 건너면 경포호.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묵객이 아름다움을 예찬한 곳으로 호수가 거울처럼 맑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새바위에는 월파정이 고운 자태로 앉아 있다.
경포대해수욕장에서 방해정·금란정 등 고풍스런 건축물을 구경하며 20분쯤 걸으면 참소리박물관. 세계 최대 규모의 오디오 전문박물관이다. 그 너머 오른쪽 언덕으로 경포대가 보인다. 조선의 명문장인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으로 알 수 있듯 시인묵객들로부터 크나큰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당시 풍류객들은 달이 뜨는 밤이면 이 경포대에서 달을 보며 즐겼다. 경포대의 달은 하늘에 떠 있는 달, 출렁이는 호수 물결에 춤추는 달, 파도에 반사되어 어른거리는 달, 정자에서 벗과 나누어 마시는 술잔 속의 달, 벗의 눈동자에 깃든 달……. 이렇게 모두 다섯 개나 된다. 마침 달이 뜨는 밤이라면 정취는 곱절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달밤에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여름철에는 무더위도 피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경포대에서 내려서면 산책길은 호수 서쪽을 돌아 남쪽으로 이어진다. 서쪽 끝에 있는 3·1독립만세운동기념탑을 지나면 중간 중간 시비 산책길, 홍길동 캐릭터 산책길 등이 반긴다. 조선시대에 중국에까지 필명을 드날렸던 천재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년)의 생가는 호수 남쪽의 아름드리 솔밭 안쪽에 남아 있다. 허난설헌 생가는 소나무와 벚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전통 가옥의 운치가 제법 넘친다.
허난설헌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교산 허균(蛟山 許筠·1569~1618년)의 누이다. 그녀는 8세에 상량문을 지어 신동이라는 칭송을 받고, 허균의 문장을 봐줄 정도로 출중한 솜씨를 지녔으나 14세에 결혼해 얻은 두 딸을 잃고 시름에 찬 세월을 보내다 27세에 요절한 불운한 천재다. 초당동 허난설헌 생가 입구에는 ‘허초희시비’를 비롯해 당대 허씨 5문장을 기리는 시비를 세워 문학거리가 조성돼 있다.
허난설헌 생가에서 호수로 되돌아 나와 동쪽으로 걸으며 경호교를 건너면 산책길 시작 지점인 경포대해수욕장 앞. 만약 호수길 산책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오죽헌 답사도 도보로 곁들이고 싶다면 경포호 서쪽 끄트머리의 3·1독립운동기념탑 주차장에서 서쪽으로 뻗은 경포로를 따르면 된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걷다 보면 해운정을 지나 선교장(船橋莊·중요민속자료 제5호)이다. 3·1독립운동탑 앞에서 선교장까지의 거리는 1km. 선교장은 ‘배다릿집’이라는 뜻인데, 이는 경포호의 물이 이곳까지 차 있을 때 배가 드나들던 옛 지명인 ‘배다리마을’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안채, 그리고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 별채인 동별당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가운데 “친척들과 더불어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즐긴다”는 구절에서 따왔다. 연못에는 1816년에 지은 아담한 정자 활래정(活來亭)이 돋보인다.
선교장에서 매월당김시습기념관을 지나 오죽헌(烏竹軒·보물 제165호)까지는 다시 1km 정도 걸어야 한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년)가 태어난 몽룡실(夢龍室)은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 유명하다. 신사임당과 율곡이 직접 가꾸던 매화나무인 몽룡실 뒤꼍의 율곡매(栗谷梅)는 몇 년 전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되었다. 율곡기념관에는 율곡의 저서인 <격몽요결>과 신사임당의 글씨·그림 등 율곡 선생 일가의 유품 6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 숙박
선교장 전통문화체험관(033-646-3270, www.knsgj.net)에서 체험형 숙박이 가능하다. 이 외에도 경포대 가까이에는 펜션라고(019-535-1030), 휴심(033-642-5075) 등의 숙박 시설이 있다. 경포해수욕장 근처의 르호텔경포비치(033-643-6699), 비치파크모텔(033-653-9111), 뉴그린모텔(033-644-1960), 씨에스타(033-651-8446) 등은 전망 좋은 숙박시설이다.
정동진역 앞에 모텔과 민박집이 많다. 썬크루즈리조트(033-610-7000 www.esuncruise.com)는 바닷가 절벽 위에 서있는 유람선 모양의 호텔.
제6경 동해 무릉계곡
백두대간 두타산(1,353m)이 품고 있는 무릉계곡은 맑은 계류를 따라 펼쳐진 널따란 반석과 기이한 모양으로 서 있는 바위들 덕분에 명성은 오래전부터 백두대간을 넘어 멀리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정선과 동해를 잇는 옛길로 많은 시인묵객이 지나갔고, 그들은 항상 이곳에 들러 흔적을 남겨 놓았다.
숲 그늘 짙은 계곡은 하얗게 빛난다. 무릉계곡의 백미로 손꼽히는 무릉반석(武陵盤石) 때문이다. 널따란 반석에는 온갖 시구가 빼곡하다. 예전부터 이곳에 들렀던 수많은 시인묵객이 남긴 흔적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글씨는 단연 조선의 명필 양사언이 초서로 쓴 구절이다. ‘武陵仙源(무릉선원), 中臺泉石(중대천석), 頭陀洞天(두타동천)’. 해석하면 ‘신선이 놀던 무릉도원 / 너른 암반 샘솟는 바위 / 번뇌조차 사라진 골짝’이란 뜻이다.
이렇게 빼어난 무릉계곡에서 꼭 해보고픈 일. 바로 탁족이다. 아이들은 완만한 경사의 반석 위로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며 물미끄럼을 타기도 한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광경. 따라해 볼까 하는 유혹도 생기지만 관리사무소 측에서는 혹시 모를 사고 때문에 물미끄럼을 막고 있으니 어른들은 체면 때문에 나서지도 못한다. 그래도 옛 선비들처럼 그냥 발을 담그고 탁족만 즐겨도 콧노래가 절로 나오니 이를 어이하랴.
무릉계곡 탁족이 아무리 좋아도 무릉계곡 전체를 감상하는 일을 빼놓으면 안 된다. 흔히 무릉계곡이라 하면 호암소부터 무릉반석·삼화사·학소대·옥류동·선녀탕 등을 지나 쌍폭과 용추폭포에 이르기까지 약 4km 구간을 말한다. 계곡미? 가히 명불허전이니 걱정 붙들어 매도 좋다. 용추폭포까지 왕복 2시간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시간이 허락한다면 청옥산이나 두타산 산행을 할 수 있지만 산행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에서 물러서도 괜찮다.
이처럼 무릉계곡은 오대산 소금강과 같은 계곡형임에도 넓을 뿐만 아니라 깊은 곳이 없어 매우 안전하다. 경관도 좋거니와 피서 즐기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지 싶다. 그러니 어린이가 딸린 가족이 물놀이를 즐기며 피서하기에는 소금강보다는 이 무릉계곡이 훨씬 낫다.
>> 숙박
무릉계곡 입구에 무릉프라자모텔(033-534-8855), 청옥장(033-534-8866) 무릉반석(033-534-8382)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무릉계곡 야영장(033-534-7306~7)은 텐트 1동당 7,000원.
추암해수욕장에 동해파크장(033-522-4189), 유성장여관(033-521-2443), 추암바다횟집민박(033-521-6167) 등이 있고, 국내 최초의 자동차 전용캠프장인 망상오토캠프리조트(033-534-3110, www.campingkorea.or.kr)는 울창한 송림과 넓은 백사장,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자연친화적인 숙박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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