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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 겨울 나들이 '
(왕궁리유적, 왕궁리5층석탑,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 익산 왕궁리5층석탑
다사다난으로 짙게 얼룩졌던 묵은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한 해가 밝았다. '올해는 정말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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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궐터와 절터가 공존하는 백제 후기 유적지, 아직도 많은 비밀을 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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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 남쪽 왕궁리에는 왕궁평(王宮坪)이라 불리던 너른 대지가 있다. 왕궁평은 왕검이, 왕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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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당터 |
▲ 건물터 |
백제 무왕은 금마저(金馬渚, 익산 금마) 출신으로 백제 29대 군주인 법왕(法王. 재위 599~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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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측 담장 |
▲ 동측 담장 |
왕궁리 유적의 면적은 218,155㎡이다. 허나 북쪽으로 계속 발굴 범위를 넓히고
있고, 경작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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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층석탑 남쪽 건물터 |
▲ 5층석탑 북쪽 건물터 |
왕궁으로 시작된 이곳은
나중에 절로 바뀌었다. 5층석탑과 금당, 강당 등이 왕궁의 주요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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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리유적에서 발견된 거대한 항아리 |
▲ 궁궐 남측 동쪽 문터 |
* 왕궁리 유적 소재지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631-30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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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리유적 둘러보기 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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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수수께끼 보따리, 왕궁리 유적으로 들어서려면 남측 중앙문터를 지나야 된다.
유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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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측 담장 (중앙문터 서쪽) ▼ |
▲ 남측 담장 (중앙문터 동쪽) ▼ |
▲ 남측 담장 서문터 |
▲ 남측 담장 동문터 |
동문은 폭 9.8m 규모로 서문, 중앙문과 달리 오래가지 못하고 없어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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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담장 중앙문을 들어서면 커다란 건물터가 마중을 한다. 현재 왕궁리유적에서 가장
큰 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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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유적 서남부에는 서쪽 담장과 굴립주 건물터, 초석 건물터, 부엌터, 장랑형 건물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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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부엌터는 이름 그대로 왕궁의 음식을 담당하던 공간으로 철제솥 2점과 직구단경호
1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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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터는 규모와 원형 주춧돌을 통해 왕궁의 행정 업무를 돌보던 정청(政廳)으로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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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유적에서는 물을 배출하는 배수로의 흔적도 여럿 발견되었다. 윗 사진의 배수로는
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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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터 서쪽에 남북으로 나란히 자리한 2개의 건물터로 앞쪽 건물터는 강에서 가져온
자갈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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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당터 서쪽에 자리한 남쪽 건물터 ② |
▲ 서쪽에 바라본 강당(講堂)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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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터 뒷쪽에는 강당터가 넓직하게 누워있다. 강당은 설법이나 강연을 하던 교육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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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유적 북부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수수께끼를 밝히려는 불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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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유적은 궁궐 내 후원 유적이 나온 현장으로도 유명하지만 백제시대 화장실의
실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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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적기단이란 기단 바깥을 기와로 쌓아 장식하는 것으로 6세기 중반 이후 백제에서 널리
유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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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의 주요 건물로 여겨지는 터로 잘 다듬어진 면석을 0.8~0.9m 폭으로 세우고
내부를 진흙 |
♠ 왕궁리유적 둘러보기 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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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유적의 한복판이자 왕궁리5층석탑 북쪽에 금당터가 누워있다. 금당(金堂)이란 절의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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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적기단 건물터 옆에 누워있는 건물터로 둥근 형태의 적심이 1.5m 내지 2.8m
간격으로 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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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조성을 위한 기초 시설로 여겨지는 동서 방향 석축 중간에 자리한 건물터이다. 땅을
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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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축을 넘나드는 출입시설로 여겨지는 건물터이다. 동서방향 석축에서 양쪽으로 면을 맞춰
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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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축은 왕궁 안에서 동서 방향으로 4개, 남북 방향으로 2개가 나왔다. 동서 방향의 1번째 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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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리 유적 남부 건물터 |
▲ 유적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으로 다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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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유적 한복판에는 이곳의 백미(白眉)이자 백제탑의 후예인 왕궁리5층석탑이 고운 맵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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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과 남쪽에서 바라본 왕궁리 5층석탑의 위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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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리 유적의 동남쪽 모서리 |
▲ 남측 담장 (동문터 동쪽) |
♠ 왕궁리유적 둘러보기 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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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측 담장은 폭이 3m 정도로 구간마다 돌을 쌓은 방법이 다르다. 폭 6m 정도 되는 문터와 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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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으로 달리는 동측 담장 |
▲ 동측 담장 배수로 ① |
▲ 동측 담장 배수로 ② |
▲ 왕궁리유적전시관 |
왕궁리 유적 남쪽에는 왕궁리유적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2008년 12월 23일에 문을
연 왕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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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시대 소변통 - 요강의 이전 |
▲ 공방터에서 발견된 백제 금도가니 |
▲ 왕궁리 유적에서 나온 온갖 토기들 |
▲ 1917년 왕궁리5층석탑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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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유적 서측 담장은 1번 국도와 맞닿아 있다. 2중으로 이루어진 석축 위에 흙을
쌓은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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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천을 사이에 두고 애타게 바라보고 있는 길쭉한 석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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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리 동쪽 석불 |
▲ 고도리 서쪽 석불 |
금마면 중심지(동고도리)와 왕궁리 유적 중간에는 흥미롭게 생긴 고도리 석불이 있다. 왕궁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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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리 석불은 금마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익산천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약 200m 거리를 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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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리 동쪽 석불 |
▲ 뒷쪽에서 바라본 고도리 서쪽 석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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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고도리 석불을 둘러보니 시간은 어느덧 15시가 넘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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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1년 6월 23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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