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의 하얀 운동화
평생 동안 혼자서 걷지 못하고
목발에만 의지해야 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힘든 걸음마를 연습하기 시작했던 건
맏이인 내가 결혼 이야기를 꺼낼 즈음이었다.
사람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의족을 끼우시더니
그날부터 줄곧 앞마당에 나가 걷는 연습을 하셨다.
한 걸음 걸음 내딛을 때마다 얼마나 힘겨워 보이시는지...
땀으로 범벅이 된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땅바닥에 넘어지곤 하셨다.
"아빠, 그렇게 무리하시면 큰일 나요."
엄마랑 내가 아무리 모시고 들어가려고
해도 아버지는 진땀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얘야, 그래도 네 결혼식 날
이 애비가 니 손이라도 잡고 들어가려면
다른 건 몰라도 걸을 순 있어야재.."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그냥 큰아버지나 삼촌이
그 일을 대신 해주기를 은근히 바랐었다.
경석 씨에게, 그리고 그의 부모님과 친척들,
친구들에게도 의족을 끼고 절룩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힘겨운 걸음마 연습이
계속되면서 결혼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왔다.
난 조금씩 두려워졌다.
정작 결혼식 날 아버지가 넘어지지나 않을까,
신랑측 사람들이 수근 거리지나 않을까...
한숨과 걱정 속에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제일 먼저 현관에
하얀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누구 신발일까?"
경황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긴 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결국 결혼식장에서 만난 아버지는 걱정했던 대로
아침에 현관에 놓여 있던 하얀 운동화를 신고 계셨다.
난 가슴이 뜨끔했다.
"아무리 힘이 든다 해도 잠깐인데
구두를 신지 않으시고선.."
당신의 힘이 모자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떠나는 내게
힘을 내라는 뜻인지 아버진 내 손을 꼬옥 잡았다.
하객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절룩절룩 걸어야 했던 그 길이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멀고 고통스러웠을까.
진땀을 흘리시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아버진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하지만 난, 결혼식 내내
아버지의 하얀 운동화만 떠올랐다.
도대체 누가 그런 운동화를 신으라고 했는지...
어머니일까?
왜 구두를 안 사시고... 누구에겐 지도 모를 원망에
두 볼이 화끈거렸고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무안한 듯한 표정도, 뿌듯해 하시는
미소도 미처 보지 못하고 그렇게 결혼식은 끝났다.
그 후에도 난,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손을 잡고 아버지가 마악 걸음을 떼어 놓는
장면이 담긴 결혼사진을 절대로 펴보지 않았다.
사진 속 아버지의 하얀 운동화만 봐도
마음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버지가 위독해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난 비로소
그 하얀 운동화를 선물했던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내 손을 꼬옥 잡고
천천히 말을 이으셨다.
"아가야, 느이 남편에게 잘 하거라.
네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사실 난
네 손을 잡고 식장으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었단다.
그런데 네 남편이 매일같이 날 찾아와
용기를 주었고 걸음 연습도 도와주더구나.
결혼식 전날엔 행여 내가 넘어질까 봐
푹신한 고무가 대어진 하얀 운동화도 사다 주고.
조심해서 천천히 걸어야 한다고 얼마나 당부를 하던지...
이 애비는 그때 알았단다.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참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그렇게 내게 사랑을 알려주고 떠나신 아버지.
이제 내 남편에게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 난 울지 않는다.
회원님,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지요.
워낙 각양각색 천태만상의 사랑이 있으니까요.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살뜰히 챙겨주는 남편의 사랑이 감동적이고
표현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의 사랑은 크십니다.
거기에 비하면 자식은 부모님의 입장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훗날 자신의 잘 못을 깨닫기도 하지만~~~
어제는 61회를 맞는 현충일이었습니다.
1956년 대통령령 제1145호 (국방부령 27호)를 근거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6월 6일 현충일로 제정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현충 기념일 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되었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공식적으로 현충일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답니다.
이후, 매년 6월 6일에는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과 장병의 호국 정신을
추모하는 추념 행사도 열어오고 있답니다.
저도 현충원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엔 월남 전선에서 함께 싸우다 목숨을 잃은
전우들이 있습니다. 아직 살아 있지만 그들 보기에 부끄러울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 님들 주말과 휴일 잘 보내셨지요?
목숨 바치신 순국선열들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열정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첫댓글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속내를 보이지 않았던 예전 아버지들의 사랑을 자신들은 알지 못하고 자랐죠. ^^ 저희 친정 아버지도 월남 참전하신 분입니다. 저에 대한 사랑은 넘치셨는데...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당시 월남에서 살아오신 전우님들은 천국에 간 전우들 몫을 다 해야겠지요. 아버지께 잘 해드릴 것 같은 '태민 시인님' 태닌님 시를 읽어보았습니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지요. 밥차도 하시고...
^^ 저번 댓글에 말씀 드렸던 관상용 양귀비가 하나씩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얼굴 색이 은은한 것이 참 순수합니다. 우리집 양귀비는 요 밑에 사진방에 피어 있습니다. 가셔서 보십시오.
저도 몇 개 더 사진방에 올려 봅니다~^^
솜씨없는 실력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