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교육과 학생의 참정권 보장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정부의 제재로 일본군위안부 문제, 사드 배치 문제, 세월호 사고, 국정 농단 등 다양한 정치적 이슈에 관하여 토론수업을 할 수 없다. 그동안 교육부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논리를 강조하며 학교의 계기수업을 통제하여, 학생들은 경제교육이나 환경교육은 받을 수 있었으나, 법질서의식, 민주시민의식 등을 배양할 수 있는 정치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의 교육은 교사중심의 주입식 교육이 주된 교육 방식이었기에 정부에서는 교사들이 편향된 이념이나 특정 정당의 논리를 학생들에게 주입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치적 이슈를 주제로 한 계기교육을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일부 정치인들은 ‘학교가 정치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구태의연한 주장을 하면서 교육의 본질을 간과한 정치논리로 학교교육을 좌지우지하려 한다.
독일은 이미 1976년에 전국의 교육자들이 모여서 ‘정치사회적으로 논쟁이 되는 이슈는 학교에서 토론수업을 해야 하며, 교사는 주입이나 교화를 금해야 한다.’는 일명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하였다. 그 협약은 지금도 학교의 정치교육에서 실천하는 국가 차원의 합의된 교육방식이다.
정치적 중립이란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토론수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학생 스스로 가치판단을 하도록 학교와 교사는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인공지능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학생들은 정치, 경제,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지구공동체적 이슈를 이해하고 문제해결을 위하여 연대하고 실천하는 사회참여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에게는 공동체적 가치와 정의를 배우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학습자 중심의 세계시민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세계시민교육에는 반드시 정치교육이 포함되어야 한다.
독일은 유치원에서부터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을 통하여 민주주의교육을 충실히 받는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토론수업을 하며, 만16세에는 정당 활동을 할 수 있고, 만18세에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어 정치인이 될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만16세부터 선거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만16세 이상인 고등학생들은 학교에서 정치적 이슈에 관한 토론수업을 할 수 없고, 헌법과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의사표현의 자유인 선거권도 없으니, 분단국가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비슷한 정치적 상황의 독일과 대한민국은 학생의 참정권 보장 측면에서 너무나 차이가 난다.
OECD의 35개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만18세의 시민인 학생에게 선거권이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이제 우리 어른들은 학생과 학교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학생은 교복입은 시민이고 학교는 학생들의 삶이 있는 시민사회이다. 더 이상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 훈육이 필요한 존재, 책상에만 앉아 있어야 하는 존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학생은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독립된 인격체이며 민주시민이다. 그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해야만 한다.
이번에 서울시교육청에서 발표한 학생인권교육 3개년 종합계획에 담긴 ‘정치적 이슈에 관한 토론수업’, 헌법의 주권재민 정신을 반영한 ‘만18세 학생 선거권 부여’는 조속히 실현되어야 할 과제이다. 나아가 정치권에서는 학생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교육 및 학예를 책임지는 시도교육감 선거에 고등학생들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전향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잠일고 교장 임종근
지역사회교육실천본부 회장
(전)서울시성동광진교육지원청 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