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동아일보 지면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할 주인공은 누가 될까.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이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렸다. 올해도 국내뿐 아니라 중동과 남미, 동유럽 등 해외 각지에서 응모가 이어졌고 연령층도 10대 중학생부터 70대까지 폭넓었다. 예심위원들은 “그야말로 ‘국민적 문학축제’라는 신춘문예의 특성을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예심에는 우찬제 손정수 조경란 천운영(이상 단편소설 부문), 김동식 한강(이상 중편소설 부문), 박형준 문태준(이상 시 부문), 김미희 김대승(이상 시나리오 부문), 정지욱 씨(영화평론)가 참여했다.》
문장력-구성력 수준 향상 언어실험-난해한 詩줄어 시나리오 소재 다양해지고
영화평론 응모작 2배 늘어
“소설은 사회 이슈를 반영한 작품이 많았고 시는 서정의 새로운 실험을 보여주는 작품이 두드러졌습니다.”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9층 회의실에선 2010년 신춘문예 예심이 열렸다. 왼쪽부터 김미희, 김대승, 우찬제, 박형준, 조경란, 정지욱, 문태준, 한강, 김동식, 손정수, 천운영 씨. 이훈구 기자
올해 응모자는 2278명으로 지난해 2394명에 비해 소폭 줄었다. 분야별로는 단편소설 556명, 중편소설 297명, 시 816명, 동화 276명, 문학평론 11명, 희곡 94명, 시조 79명, 시나리오 111명, 영화평론 38명이 각각 응모했다.
단편소설 중편소설 시 부문 예심위원들은 “문장력이나 글의 구성력 등에 있어서 응모작들의 평균수준이 예년에 비해 향상됐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중편소설을 심사한 소설가 한강 씨는 “시놉시스나 앞부분만 읽고 금방 제외시킬 수 있는 작품이 거의 없어져 심사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작품 소재들은 다문화가족, 신종 인플루엔자, 유아 성폭행,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루저 논란, 죽음, 교육 등 사회 이슈를 반영한 응모작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환상적인 경험을 다룬 작품들이 줄어든 반면 현실적인 소재들을 묵직하고 진중하게 다룬 작품이 많았다.
이른바 ‘신춘문예용 소설’들이 줄어든 것도 특징이다. 문학평론가 손정수 씨는 “한동안 신춘문예 등단을 겨냥한 정답 같은 소설이 많았는데 올해는 특정한 형식이나 구성,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우찬제 씨는 “기존 소설문법을 탈피한 개성적인 작품을 등단작으로 선정해온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특성을 감안한 응모자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에서는 서정시의 새로운 실험을 보여주는 작품이 주류를 이뤘다. 시인 박형준 씨는 “과도한 언어실험이나 난해한 시들이 확연하게 줄어든 대신 복고 서정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도시서정과 자연서정을 담은 시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문태준 시인은 “질병, 음식 등을 소재로 현대인의 궁기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반면 현실과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 사회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은 드물었다. 문 시인은 “한국시가 새로운 감각과 사유를 찾아내는 과도기에 놓인 것 같다”면서도 “현실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시들이 지지부진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시나리오 응모작들은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았지만 전체적으로 작품 수준과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화감독 김대승 씨는 “전반적으로 아마추어가 쓴 것 같은 작품들이었지만 유행을 좇아가는 여느 시나리오 공모전과 달리 독창적인 작품이 많아 반가웠다”고 말했다. 김미희 싸이더스 FNH 대표는 “흥행 장르를 따라가지 않는 소신은 의미가 있었지만 응모작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영화평론은 지난해 21명에 비해 응모자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영화평론가 정 씨는 “‘해운대’ ‘마더’ 등 한국영화를 다룬 작품이 많았지만 논의 대상으로 삼은 영화가 한정돼 있어 아쉬움이 든다”고 평했다.
예심위원들은 이야기 자체는 한층 다양하고 풍성해진 데 비해 새로운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인터넷 글쓰기, 예능프로의 토크쇼 범람 등 이야기하려는 욕망은 매우 커진 데 반해 새로운 그릇에 담으려는 노력이 부족하다”(소설가 조경란 씨) “기존 소설의 패러다임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새로운 패러다임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문학평론가 손정수 씨) 등 여러 지적이 나왔다.
신춘문예 심사는 15일 본심에 들어갔다. 예심 결과 시 15명, 단편소설 11명, 중편소설 10명이 본심에 올라갔다. 동화 문학평론 희곡 시조 부문은 예심 없이 본심을 진행한다. 당선자는 25일 이전에 개별 통보하며 내년 1월 1일자 신년호를 통해 발표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 살펴보니
소설, 세태를 반영한 듯… 소재 다양해져 시, 소시민 일상을 노래 서정으로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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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이 끝났다. 소설은 10편, 시는 27명의 작품을 골라 본심위원에게 송부했다. 문학평론 부문 응모작은 예년처럼 예심 없이 곧바로 본심위원에게 전달했다. 오는 23일쯤이면 당선자는 따로 통보를 받게 될 것이다. 올 응모작의 경향을 예심위원들에게 직접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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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이 예심에 몰두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찬호
권지예 박철화 우찬제 박형준 씨. 서상배 기자
■단편소설/ 우찬제(문학평론가)
올 세계일보 신춘문예는 그 열기가 대단했다. 10대 소년에서 70대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철원에서 제주도, 시카고, 파리, 카이로에 이르기까지, 지원자들도 다양했고 그 수도 압도적이었다. 소설의 평균적 수준 또한 매우 고무적이었다. 그 레퍼토리도 교육·환경·성·광기·실업·가족·분단·다문화 현상 등등 매우 다채로웠다. 이야기의 향연을 위한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아쉬운 점도 물론 없지 않았다. 신인다운 패기와 개성, 창조적 전위의 열정과 새로운 실험정신, 현실을 예각적으로 탐문하는 시대정신, 개인의 소박한 고백을 넘어선 이야기의 울림과 확산 가능성 등등의 측면에서 에비 작가들의 수고로움을 더 요청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컨대 우리는 웅숭깊은 창조적 전위를 기대하는 것이다.
■단편소설/ 박철화(문학평론가)
소설은 언어 예술이다. 한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고 해서, 곧 문학적 문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에 오래 수련한 정확한 자세가 필요하듯이, 문학의 언어 역시 갈고닦음의 결과인 세련과 명료함, 압축과 상징의 풍요로움을 요구한다. 여기에 더해 소설은 소통의 언어다. 혼자만의 배설이나 독백을 넘어서야 한다. 자기에 대해서 그토록 말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는 것. ‘나와 너’가 주고받는 말일 때, 좋은 문학이 탄생한다. 고양이나 성적(性的) 상처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이 보였는데, 이것은 세태의 반영일 것이다. 그렇지만 세태는 세태일 뿐, 구체적인 것들을 보편적인 공감의 언어로 만들려는 노력이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편소설/ 권지예(소설가)
예년에 비해 응모작이 더 늘어났지만, 수준은 평년작으로 생각된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 관련 소재가 다양해진 점이 눈에 띄였다. 악플, 스팸, 블로그, 다양한 사이트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꽤 많았다. 거기에다 살인이나 자살, 음모 등의 소재나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추리나 스릴러 같은 장르소설적 기법을 많이 보였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인터넷 속어나 비어가 묘사문에서도 발견되는 걸 보고는 미문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이 컸다. 그럼에도 다양한 시각과 아이디어로 반짝이는 신선한 작품의 등장에 대한 기대를 멈출 수는 없었다.
■시/ 송찬호(시인)
올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작년보다 많은 시가 들어왔다. 응모자들의 나이도 1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하였고 특히 40∼50대 나이의 시적 열기가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눈에 띄는 시의 경향은 개인이나 소시민의 일상을 노래하는 서정으로의 회귀였다. 불황의 그늘이나 소외를 내면화한 ‘생활의 발견’의 시들도 많았다. 한편으로 새로운 시적 모험이나 패기를 엿볼 수 있는 실험과 전위의 작품들이 적은 것은 아쉬웠다. 우리가 새로운 시인들을 고대하는 것은 그 젊은 상상력에 우리 시의 수원(水源)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토의 끝에 담당자의 주문보다 많은 수의 작품들을 예선통과작으로 올렸다. 올해는 그만큼 시의 내용이 풍요롭고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았다.
■시/ 박형준(시인)
세상이 각박하면, 반대로 시는 따뜻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사람과 서정의 회복’이 올해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응모작의 가장 큰 특징이다.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 어려운 삶 속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가족시편들이 많았던 것이 이를 설명해준다. 반면 새로운 언어 미학을 추구하는 실험시는 크게 줄어들었다. 올해 응모자들의 상당수는 유대와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서정의 탐침으로 우리들이 잊어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정을 일깨운다. 문제는 이러한 서정적 어법이 현실과 깊이 있게 만나지 못할 때는 감상적 범주에 머문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본심에 진출한 시편들 중에는 현실의 문제를 독특한 서정으로 접근하면서 미학적으로도 우수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