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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에 심은 나무(시 1: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뉴스를 보면, 사람들의 입에 등장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름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는 이름이지만, 어떤 이름은 우리의 입에서 못된 말이 나오게끔 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이 제각각입니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자리에 있든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삶을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시편 1편 1절에서 6절까지 말씀은 복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악인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일이까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이 소극적인 면에서 범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죄를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아멘.
세 가지 죄라고 하는 것은 첫째 악인의 꾀를 따르는 죄, 둘째 죄인의 길에 서는 죄, 셋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죄입니다. 이 죄들은 한 마디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인”, “죄인”, “오만한 자”는 같은 것 같지만, 각각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에서, “악인”이라는 말은 규정된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행한 자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도덕적인 면에서, 가치 기준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해, 자연히 육체의 욕정에 치우치는 자를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꾀”라고 하는 것은 아직 공공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사악함을 가리킵니다. “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잔머리를 쓰고, 모략을 꾸미고, 인간적인 이성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악인들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욕심을 이루기 위해, 머리를 짜냅니다. 자기의 욕심대로, 행합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자기의 감정대로, 행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은 바로 이와 같은 사악한 마음의 상태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을 지켜서, 하나님을 떠난 악인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잠언 4:23절을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에서, “죄인”이라는 말은 “화살이 과녁을 빗나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목표를 맞추지 못한 자”, “길을 잘못 들어서서 곁길로 빠진 자”를 의미합니다.
행동적인 면에 있어서, 분명히 잘못을 범하며 살아가는 자를 가리킵니다.
“죄인의 길에 선다”는 것은 죄를 짓는 사람들과 생각과 사상을 같이하여, 그들과 행동의 일치를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들과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매순간마다 살펴야 합니다.
셋째,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에서, “오만한 자”라는 말은 본래 “조롱하는 자”, “비웃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거룩하고 진실된 것을 하찮은 농담거리로 여기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더 나아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아주 절망적인 고집의 단계를 접어 들었음을 의미합니다. 죄악스러운 생활 습관으로, 그 마음이 완고해지고, 굳어져 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악된 생활 습관이 무엇인가를 찾아 고침으로써, 그러한 습관으로 굳어져 버리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따르다”, “서다”, “앉다”라는 것은 죄라고 하는 것이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죄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탁월한 듯하지만, 반드시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회에 나와, 은혜로운 말씀은 듣지만, 변화되지 않습니다.
복 받기를 원하면서도, 복 받을 행동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복 받기를 원한다면, 복 받을 행동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아멘.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온통 한 곳에 쏠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열정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깊이 사모하며, 사랑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대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좋고, 교회가 좋고, 믿음 생활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단순히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바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읽거나, 듣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할 이유는 그 말씀이 영생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물질을 취함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놓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저절로 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내 감정이 아니고, 내 뜻이 아니고,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삶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아멘.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항상 기쁨을 공급받는 복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어떠한 가뭄에도 상관없이 잘 자랍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라고 했는데, 이것은 나무가 추수기에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끊임없이 기쁨을 누리는 의인은 인생의 모든 삶에서 자연스러운 축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자는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성공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환란과 곤고, 그리고 좌절과 낙심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가뭄 속에서도 항상 물 근원과 연결되어 자라듯이, 결코 성도는 마르지 아니하고, 실패와 환난 속에서도, 궁극적으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소극적으로는, 세상을 사랑하는 죄에서 떠나는 한편,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할 때, 복 있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어집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습관적으로 행하던 모든 죄악 된 삶을 청산해야 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지켜야 할 것은 잘 간직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 속한 행실을 끊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아무리 심한 환난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 모든 고난을 극복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 남유다를 통치했습니다.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본인은 평안이 넘쳤고, 온 나라는 경제적으로 부요해졌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의 곁에 스가랴 선지자가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26:4-5절을 보면,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더니,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더니,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셔서, 백 배의 복을 받고, 거부로 만들어 주셨고, 창대하게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도 자기 생각과 감정을 버리고, 말씀을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시편 1편을 보면, 의인들과 악인들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복 있는 사람들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4-6절 말씀입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아멘.
악인들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선택해야 합니다.
의인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악인들의 길을 택할 것인가?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결말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이 될 것이지만, 악인의 길은 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요, 의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사는 사람이 바로 악인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인”이라고 하는 말은 “표준이 없는 사람, 기준이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무게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담도 범죄했고, 다윗도 베드로도 범죄했고, 사울도 범죄했고, 그리고 우리도 범죄했습니다. 아담도 망하는 길을 걸었고, 우리도 그러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약속하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 있는 분이시지만, 우리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다.
신명기 33:29절을 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는 생명과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 30:15-16)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느 길을 선택하시렵니까? 이 길을 선택할 수도 있고, 저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잠언 16:25절을 보면,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다윗은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무게 중심을 예수님께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주님께 둘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오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힘쓰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보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을 걷고자 하오니,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오니, 우리에게 말씀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