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지상에 보내셨다.
아들 하나님도 성령님을 지상에 보내신다.
요 16:13 성령님은 스스로 증거하시지 않으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하신다.
요한복음
14:26 |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들을 기억나게 하시리라. | But the Comforter, which is the Holy Ghos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he shall teach you all things, and bring all things to your remembrance, whatsoever I have said unto you. |
15:26 |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나에 관하여 증거하시리라. | But when the Comforter is come, whom I will send unto you from the Father, even the Spirit of truth, which proceedeth from the Father, he shall testify of me: |
성령에 의해 기록된 성경의 목적은 교리이다.
3:16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
3:17 |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 That the man of God may be perfect, throughly furnished unto all good works. |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나타내신다 하더라도 인간으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두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주장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시면서 "나는 있느니라."(I am)는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의 이름은 "여호와"가 아니고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Son of man)로 부르셨다. 그리고 이 이름은 신구약 전체에서 사용된 다른 이름보다 열번은 더 사용되었다. 그 이름은 "여호와"도 아니었고 "아버지"도 아니었다. "인자"였다. 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사용되어질 수 있는 고유한 이름이었다.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께는 이 이름에 속하지 않았다.
8:58 |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고 하시니라. | Jesus said unto them, Verily,verily, I say unto you, Before Abraham was, I am. |
마찬가지로 성령님도 성령님께만 적용되는 이름을 갖고 계신다. 성령님은 단순히 "성령"이라 불리고 (눅 11:13) 또는 "영"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며(요 3:5), "주의 영"(사 11:2), "주 하나님의 영"(사 61:2),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고후3:3), "그리스도의 영"(롬 8:9), "자기 아들의 영"(갈4:6)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경 어디에서도 아버지 하나님을 "위로자"로 말한 곳은 없다. 아무리 성경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성령님께 주어진 이름들은 아들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성령으로 불리지 않았다.
오늘날 성경을 읽지도, 공부하지도 않는 이단들은 그들 자신도 모르는 것들을 계속 떠들어 대며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헛소리한다. 이들은 요한복음 10:30의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니라.>와 요한복음 14:9의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의 두 구절을 가지고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 성경 전체를 읽지 않고 이 두구절로 성경 전체를 해석하려 한다. 이들은 진심으로 하나님 말씀에 관심이 없으며 그들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거짓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알리바이를 찾고자 하거나 하나님 말씀대신 자신의 "느낌"을 따른다가 죄를 짓는데 대한 알리바이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부주의하고 무분별하게 성경을 뒤적이는 것은 현대 근분주의 신학교들의 특징이다. 신학교 교육을 받고 교회를 이십여 년간 다닌 사람들이 삼위일체가 무엇이고 또 성경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모른다.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4:4에서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소 말씀하신 성경의 모든 단어들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들을 과소평가함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불경스럽고, 불성실하고, 부주의하게, 웃기는 것들을 하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부주의하고, 불성실하고, 돈밖에 모르는 사역자는 교회 건물 짓는 것이나 자기 이름을 알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이 책은 (피터럭크만 조직신학) 하나님의 말씀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과 진지하게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사역이나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 맹목적으로 하나님 말씀보다 사역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지상에 있는 어떤 사역보다 더 중요하다.
성령님은 비둘기와 같이 비유된다.
성령님은 불로 비유된다.
성령님의 묘사는 불과 물과 바람(Pneuma)이다.
성령님은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일을 하신다.
성령님은 사람을 축복하시기 위해 오시지 않았다.
성령님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긍정적이다.
그 분은 위로자이시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우로하시기 위해 오셨고 인도하기 위해 오셨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도하기 위해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