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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2015,01,17.맑음 원효사-서석대-입석대-장불재-증심사
원효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광주광역시
무등산은 비할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뜻이다. 북쪽의 나주평야와 남쪽의 남령산지(南嶺山地)의 경계에 있는 산세가 웅대한 산으로, 통일신라 때 무진악(武珍岳) 또는 무악(武岳)으로 표기하다가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란 별칭과 함께 무등산이라 불렸다. 이 밖에도 무당산·무덤산·무정산 등 여러 산명을 갖고 있다.
서석대 산세는 웅대하지만 산정 부근의 암석노출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식생의 밀도가 높은 토산(土山)이어서 믿음직하고 덕이 있는 느낌을 풍기고 있다. 무등산은 동부의 산악 지대와 서부의 평야 지대의 결절점에 위치하고 있다. 북서·남동의 능선은 무등산 천왕봉에서 중봉(915m)·향로봉(367m)·장원봉(386m)에서 망월동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규모가 크다. 동서 방향의 능선은 무등산 천왕봉에서 중봉·중머리재(608m)·새인봉(490m)에서 학동으로 뻗어 있다. 무등산 천왕봉에서 남서 방향으로는 장불재(910m)·만연산(665m)·수레바위산(363m)· 정광산·죽령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뚜렷하다. 이 산줄기는 북쪽의 극락강 수계와 남쪽의 지석천의 분수계를 이룬다. 무등산은 중생대 화상암 산지로서 산지 전체가 부드럽게 풍화되어 있고 곳곳에 주상절리(柱狀節理: 암괴나 지층에 있어서 기둥 모양의 절리가 지표에 대해 수직으로 형성되어 있는 형태) 경관이 있다. 이 주상절리는 남한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서 산정상이나 능선을 따라서 이들 주상절리와 관련된 성곽형의 토르(tor: 차별적인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그 지역의 기반암과 연결되어 지표에 노출되어 형성된 독립성이 강한 암괴미지형)가 발달해 있다. 또한 산지사면을 따라 설형(舌形)으로 발달하는 암설의 퇴적지형인 애추(talus)가 발달되어 있다 . 애추는 우리말로 너덜겅 또는 너덜지대라고 하고 가장 보편적인 주빙하기후 지형으로서, 기계적 풍화에 의해 단애면(斷崖面)으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진 암설이 집적된 지형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골이 많이 발달하였고, 153과 897종의 식물이 고루 분포하는데 그 중 465종은 약용식물이다. 광주광역시는 남부 서안형과 남부 내륙형의 점이지대에 속하며, 연평균 기온은 13.5℃, 강수량은 1,368㎜, 최한월 평균 기온이 0.5℃로 온화한 편으로 온대기후에 속한다. 무등산은 비교적 적설량이 많고 12∼3월까지 눈이 내리고 1,000m가 넘는 무등산에 2주일 이상 눈이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서석대
천왕봉
무등산 백마능선 일대에는 억새가 널리 분포하여 장관을 이루며 매년 가을에 열리는 ‘무등산 갈대제’ 행사가 유명하다. 무등산 일대는 산세가 웅장하고 산중에는 많은 명승고적이 있어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으로는 증심사(證心寺)와 원효사(元曉寺)의 2대사찰과 많은 암자들이 있다. 무등산 최대의 사찰인 증심사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오백나한전·오층석탑·칠층석탑·석조보살입상· 증심사철조비로사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131호) 등을 소장하고 있다. 원효사는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한 절인데, 증심사와 함께 한국전쟁 때의 공비토벌작전으로 소실되었다가 근년에 복구되었으나 그 규모는 휠씬 작아졌다. 광주 시내에서 원효사에 이르는 도중의 북구 충효동은 임진왜란 때의 유명한 의병장인 김덕령(金德齡)의 출생지이며, 부근 산기슭에 그의 사우인 충장사(忠莊祠)가 있다. 무등산의 산정 가까이는 주상(柱狀)의 절리가 발달하여 기암괴석의 명소가 많다. 동쪽 사면을 따라 정상을 오르는 길에는 입석대(立石臺)·서석대(瑞石臺)·삼존석(三尊石)·규봉암(圭峰岩)·풍혈대(風穴臺) 등이 있고 정상 가까이에는 수신대(隨身臺)가 있다. 2005년 12월 16일에 무등산주상절리대 10만 7,800㎡는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화산활동의 산물인 무등산주상절리대는 수직으로 솟아오른 굵은 돌기둥과 동서로 길게 발달하한 돌병풍 등이 빼어난 지질 경관을 이루고 있어 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등산도립공원측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상절리대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위해 8개월동안의 공사를 거쳐 2008년 12월서석대(1,100m)를 개방하였다. 개방된 등산로에 나무판을 깐 산책로를 만들었고, 산책로는 서석대에서 조금 떨어진 입석대(1,017m)까지 이어져있다. 광주에서 무등산에 오르는 길은 증심사를 기점으로 하는 용추계곡 등산로와 원효사를 기점으로 하는 원효계곡 등산로가 있다. 광주광역시는 탐방객의 75%가 증심사 쪽으로 몰리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 무등산공원 증심사지구 자연환경복원사업을 2006년부터 시작하여 2008년까지 진행하였다. 그리고 2009년원효사쪽에 자연지형을 살린 옛길을 복원하였다. 조선시대 만들어져 1960년대까지 이용됐던 무등산 옛길 11.9㎞ 중 경사가 완만한 산수동·청풍쉼터·충장사·원효사 7.8㎞구간의 복원을 마치고 2009년 5월 개방했다. 완만한 산록 지대에서 많이 재배되는 수박과 차는 예로부터 무등산의 특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등산 차밭은 허백련(許百鍊)이 맡아 일구어 삼애다원이라 이름 짓고 ‘춘설’이라는 녹차와 홍차를 생산하였다. 무등산의 웅장한 자태에서 생겨나는 정기는 광주학생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문인·예술가 등을 배출시키는 근간이 되었다.
무등산 주봉인 천왕봉은 군 시설이 있어 출입 제한구역이다 주말이라 많은 등산객이 정상석 인증샷하기 위해 줄 서 있어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규봉암(호남정맥 때 찍은 사진)
증심사 현존하는 당우로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오백전(五百殿)과 대웅전ㆍ지장전(地藏殿)ㆍ비로전(毘盧殿)ㆍ 적묵당(寂默堂)ㆍ종각ㆍ일주문ㆍ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오백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오백전은 대웅전 뒤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초기에 지어진 강진 무위사(無爲寺)의 극락전과 같은 계통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전내의 오백나한상은 1443년의 중창 때 김방이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 오는데,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불상이다. 오백전 옆에는 높이 205㎝의 석불 1구가 있는데, 고려시대(10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조보살입상으로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로전 안에 안치된 높이 90㎝ 정도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철불은 본래 광산군 서방면 동계리에 있던 것을 1934년에 옮겨온 것이다. 이밖에도 문화재로는 증심사 창건 때 만들었다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인 삼층석탑,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1933년의 보수 때 탑내에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금동보살 입상 등이 나왔던 오층석탑,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칠층석탑 등이 있다. 특히,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석조보살입상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분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이 절 입구의 왼쪽 산록에는 약 3만여 평의 차밭이 있다. 이 차밭은 원래 증심사에서 공양을 위하여 가꾸어왔던 것이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경영하였고 광복 후에는 허백련(許百鍊)이 인수하여 고유의 차를 재배하였다. 절 주변이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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