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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 보좌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조선)
[사6:1-8]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설교 요약
선지자를 두 부류로 나눈다면 책을 쓴 선지자와 쓰지 않은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직접 써서 전달한 사람은 이사야부터 시작을 합니다. 책의 분량이 많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대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다음에 호세아부터 나오는 12명의 선지자를 소선지자로 칭합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나라, 이 유대 민족의 희망을 노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희망의 선지자라고 부른다. 특별히 39장까지는 고난과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해 경고하고 40장부터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가 66장까지 계속됩니다. 그래서 39장까지를 제1이사야, 40장부터 66장까지를 제2이사야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불러내시는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 웃시야 왕은 이스라엘 유대 나라의 왕 중에서도 훌륭한 왕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귀한 도우심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웃시야는 전쟁의 이김으로 높이 들림을 받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교만해져서 제사장만 분향할 수 있는 분향을 하다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서 쓸쓸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입니다. 바로 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하는데 갑자기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보좌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데 그 주변을 여섯 날개를 가진 천사들이 날아다니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중요하게 몇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이 돼야 된다, 그러니까 선지자는 누구냐, 하나님 보좌의 영광만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하는 거죠.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청결해지면 영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을 세 가지로 설명했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였다고 했습니다. 옷자락은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옷은 그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동시에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옷자락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예수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어요. 그랬더니 능력이 나가서 이 여자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옷자락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둘째는 스랍 천사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는 분들이 이 스랍 천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6개의 날개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여섯 날개를 가지고 다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앞에 있는 두 날개는 얼굴을 가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일수록 자기의 얼굴부터 가리는 일을 해야 된다. 절대로 나를 나타내면 안 된다고 하는 거죠. 또 뒤에 있는 두 날개를 가지고는 자기의 발을 가렸습니다. 이 발로는 정말 우리가 가야 할 곳, 가지 말아야 할 곳 잘 분별해서 꼭 필요한 곳에 가는 사람이 돼야 한다 한 것이죠.
그다음에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을 설명하기를 연기가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이거는 향기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 구름이 빽빽하더라 또 연기로도 표현하는데 그 연기는 향기입니다.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를 금대접을 받아가지고 하나님께 가지고 올라가는데 이것도 역시 향기를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람은 향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5절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오.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참 이런 고백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악하고 더럽고 추한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때 나옵니다. 이사야가 자기의 모습을 깨닫고 탄식하고 괴로워 몸부림칠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고,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고 말씀하잖아요. 그때에 이사야는 약하고 추하고 무능하고 못난 인간이지만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시옵소서” 하고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와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은 이러한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빨리 나가서 저들에게 전해라. 저들의 가는 길을 stop시켜라. 저들의 방향을 바꿔 복된 길을 가게 하고, 생명의 길을 가게 하고, 구원의 길을 가게 하고, 천국으로 향하여 달려가게 만들어라. 이 사명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우리도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시옵소서” 고백합시다.
2. 누가 능히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리요
[대하2:1-6]
1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자기 왕위를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 2 솔로몬이 이에 짐꾼 칠만 명과 산에서 돌을 떠낼 자 팔만 명과 일을 감독할 자 삼천 육백 명을 뽑고 3 솔로몬이 사절을 두로 왕 후람에게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전에 내 아버지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그가 거주하실 궁궐을 건축하게 한 것 같이 내게도 그리 하소서 4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차려 놓으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5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성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심이라 6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
설교 요약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는 지금도 다윗의 별, 그것이 이스라엘 나라의 국기이다. 그러니까 다윗은 사실 왕이 되어 가지고 수많은 전쟁을 해서 적군을 다 물리치고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상승장군, 백전백승의 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소원했던, 그 간절한 소원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거를 얼마나 사모하고 좋아했느냐면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후에 아비나답의 집에 모실 때까지 한 70년은 있었는데 다윗은 자기가 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옵니다.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어린아이처럼 나가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좋아했었습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다윗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얼마나 기뻐하고 하나님의 전 짓기를 얼마나 사모했는지를 잘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에게 너는 하나님의 전을 짓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짖지 못하게 하십니까? 너는 전쟁을 해서 피를 많이 흘렸다. 그러므로, 너는 성전을 짓지 못한다. 그러면 누가 성전을 지을 것이냐? 너의 다음에 너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될 그 사람, 그 사람은 평화의 사람이다. 그래서 아예 이름도 샬롬이라고 하는 솔로몬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을 짓게 하시지 아니하시고 그의 다음 왕인 솔로몬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짖게 하시더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와서는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이시고 그래서 계시록 21장에 보면, 하나님의 천성에 가봤더니, 거기에는 성전이 없더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이 친히 성전이세요.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너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니까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니까 이 몸을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3장 19절, 6장 10절에 두 번이나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온 세계의 재앙은 점점 많아지는데 인간들은 자꾸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고 그리고 교회 안에서 진실한 성도들은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때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성경대로 바르게 신앙생활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지만 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가 첫째로, 생각해야 될 것은 이 평화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신다 하는 거죠. 그러면 우리도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있는데 첫째, 자격을 갖추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다. 먼저 마음의 성전을 짓고 마음에서부터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이 훈련을 잘 받아야지만 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우리 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을 마음에 가져야 되고 그래서 거기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 성령과 진리로 하는 예배를 드려야 되고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 돼야 되고 찬양을 통해서 기적을 체험하고 지진이 이 땅에 일어나는 이런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우리 신자들이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요. 구원이 뭔지도 몰라요.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다고 하는 그런 진지한 자세가 보이지가 않아요. 첫째, 기도할 줄 모릅니다. 예배가 다 형식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는 우리 교회의 총체적인 위기가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이렇게 전하는 것은 우리가 이제는 깨어서 옛날처럼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우리 개인이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기도를 드리고 진실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이 충만해서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겨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평화를 만들었어요. 하나님 앞에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니까 이전에는 원수였던 나라의 왕들의 마음이 바뀌어요. 솔로몬을 만나보기 위해서 찾아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평화를 지키는 방법의 새로운 장을 열어준 사람이 되었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도 하나님 앞에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만 하겠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면 평화가 옵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성전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 땅에 참 평화가 온다. 그 평화의 왕이 누구시냐?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 오셔서 이 땅에 참 평화를 주시고 주님 자신이 친히 하나님의 성전이 되셨어요. 오늘날 참된 성전을 우리 마음속에 세워가지고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아름다운 생명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야지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평화의 왕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충만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하고, 성령 충만해서 주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기도의 사람 성령의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때를 아는 사람
[왕하5:20-27]
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22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25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설교 요약
오늘 말씀은 게하시가 나병 환자가 된 말씀인데 26절에 엘리사가 게하시를 책망하면서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라고 하자 게하시는 불만이 좀 생겼습니다. 나아만 장군이라는 문둥병자가 와서 깨끗하게 고침받고 그 값비싼 귀한 예물들을 가지고 와서 바치는데 엘리사가 그것을 안 받고 다 돌려주잖아요. 지금 우리가 얼마나 가난하고 또 우리가 돌봐줘야 하는 선지자 생도들이 얼마나 많아요. 하나님의 종들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가운데 엘리사로부터 기도 훈련을 받고, 말씀 훈련을 받고 여러 가지로 바르게 살아가는 훈련을 받으면서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아만이 큰 돈을 가지고 와서 바치는데 왜 도로 돌려보냅니까? 마음에 불만이 생겼어요. 그래서 20절 중반에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게하시의 생각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을 그냥 보낸 거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야. 저 사람이 갖다 바치면 그냥 받으면 되는 거지 그걸 왜 안 받습니까? 우리가 이 게하시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얼마나 많겠어요? 이것은 참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행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때에도 유대인들이나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을 했겠죠. 그렇지만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게하시의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느냐?
첫째로 탐심입니다.
탐심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골로새서 3장 5절 에베소서 5장 5절에서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두 주인입니까? 하나는 하나님이고 또 하나는 재물입니다. 재물은 하나님과 맞먹으려고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어요. 세상 사는 동안 탐심이 우리 속에 불끈불끈 솟아나지만 이런 탐심을 물리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게하시의 죄는 스승을 몰라 봤다는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스승이라고 하는 것은 알고 인정했어요. 그렇지만 훌륭한 스승이라도 가까이서 오래 지내다 보면 그 분에게서 인간적인 냄새가 나잖아요. 흠이 발견되니까 내 마음에 안 맞는 것이 자꾸 드러난단 말이에요. 그래서 속으로 불만을 가지고 불평을 하기도 하고 또 스승을 얕보는 생각도 하고 멸시합니다. 그러니까 나아만 장군이 돈을 갖다 바치는데도 안 받는 걸 보고 불평이 확 솟아올랐습니다. 지금 궁핍한 살림에 저거 받아가지고 쓰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사실은 그게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죠. 스승이 이렇게 행동을 했으면 왜 우리 스승님이 그렇게 하셨을까?하고 순응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 불평 불만을 하고 스승을 얕보고 오히려 대적하는 그런 짓을 했으니까 이게 잘못된 거죠.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잘못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도록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게하시가 만약 이때에 진지하게 하나님께 여쭈어봤다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을지도 모르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되는데 자기의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스승을 함부로 얕잡아보고 비판했다는 것이 큰 잘못입니다. 이런 잘못을 가지게 되니까 한 걸음 더 나가서 그 다음에는 스승 앞에 거짓말을 했어요.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해도 괜찮을 줄로 생각을 했던 거죠. 주님을 섬기는 자세가 어떠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게하시를 통해서 교훈하고 계십니다.
셋째로 게하시의 죄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 어디 갔다 오느냐? 물었을 때 얼른 그 자리에서 선생님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내가 인간적인 생각에 선생님께 불만을 품고 나아만을 쫓아가서 이렇게 물건을 받아왔습니다. 선생님 내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이러면서 회개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인간들은 그거 안 하죠. 특별히 죄를 짓고 나면 이게 더 안 돼요. 우리가 이 게하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을 때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쳐버렸던가 생각해봐야 한다.
본문의 핵심은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게하시는 때를 알지 못했기에 모든 복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게하시를 책망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나무원이나 포도원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냐 이런 것들을 받을 때냐?”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씀에 우리는 정신이 번쩍 들어야 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농사를 지을 때에도 제일 중요한 게 뭐냐? 때를 아는 거다. 전도서 3장은 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기뻐할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고, 그러면 농사를 지어야 할 때가 있고 쉬어야 될 때가 있고 추수할 때가 있는가 하면 씨뿌리는 때가 있고 그래서 이 때를 잘 알아야 된다. 그래서 때를 아는 사람을 철든 사람이라고 합니다. 때를 알아야 성인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배워야 되는 게 이 때를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지금이 어떤 때냐?
로마서 13장 11절에서는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물론 육신이 잠자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죠. 지금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된다.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된다. 하나님 말씀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돼야 된다. 의를 행하는 사람이 돼야 된다. 불의와 싸우는 사람이 돼야 된다. 죄를 미워하는 사람이 돼야 된다. 이것이 깨어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첫째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둘째는 요한복음 4장 23절 24절에 하나님께 예배할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이때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성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된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성령과 진리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과 5장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석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만 눈을 들어서 저 밭을 보아라. 벌써 휘어져서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지금은 추수할 때가 우리 앞에 바싹 다가왔습니다. 한국 통일의 날이 눈 앞에 바싹 다가왔어요. 그래서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라. 벌써 휘어져 추수하게 되지 않았느냐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볼 수 있는 사람 돼야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은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은혜 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아야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때를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참 선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우리를 잠재우지만 참 선지자들은 우리를 깨웁니다. 그리고 영적인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세상은 끼리끼리 불평 많은 사람은 불평 많은 사람끼리 모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끼리 모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과 가깝게 사귀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믿음 좋은 사람을 사귑니다. 은혜 있는 사람은 은혜 있는 교회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세속적으로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은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 해주는 대로 찾아가고 사람 많이 모이는 대로 찾아가고 그냥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기 좋은 데로 찾아갑니다. 마지막 때 좋은 신앙의 친구들을 사귀고 좋은 믿음의 사람을 만나보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야지만 하겠습니다.
4.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렘1:11-14]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설교 요약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불러서 일을 시키시고 쓰실 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십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전에 선지자들에게는 이상이나 꿈으로 그들에게 말씀을 했다. 그런데 모세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는 나를 대면하여서 보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들은 꿈을 꾸든지 이상을 보든지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계시해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되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신다고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상을 보이는 이야기는 성경에 처음부터 계속 나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너는 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세요. 그냥 떠나면 나는 내 마음대로 가는 것 같아도 사실은 하나님이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갈 수 있도록 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게 되면 내가 가는 것 같아도 이게 내가 가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이거를 늘 느끼면서 살아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꿈으로도 보여주시고 아브라함을 데리고 바깥에 나가서 하늘의 별을 한번 쳐다봐라 저 별을 네가 다 셀 수가 있겠느냐 하시면서 내가 너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해주시겠다. 또 이렇게 약속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냥 말씀으로만 우리에게 이야기하시는 게 아니라, 꿈으로든지 또는 이상을 통해서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선지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일꾼이 되려면 이런 것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꿈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과 다니엘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레미야에게 두 가지의 이상을 한꺼번에 보여주십니다.
하나는 살구나무 가지의 이상, 또 하나는 끓는 가마의 이상 두 가지를 보여주셨어요. 이 말씀을 조금 유의해서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레미아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랬더니 첫째는 살구나무 가지를 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네가 잘 보았다 그러시면서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라고 말씀을 하세요. 근데 우리말로는 이게 도무지 무슨 얘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똑같은 어휘를 가지고 두 가지 의미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살구나무 가지를 본다는 말은 내가 내 말을 지켜주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래서 깨어나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내 말을 지킨다 너희는 깨어나야 된다. 살구나무 가지는 새해 봄이 시작될 때 싹을 틔우는 것처럼 춥고 어두운 겨울을 지나고 나서 새 봄이 되면 나무가 싹을 틔우는 것처럼 내 말씀도 이렇게 싹을 틔워 이루어지는 날이 온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에게는 칠흙 같은 어둠의 날이 있고 겨울철 같은 무서운 추운 날이 있고 정말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양식도 다 떨어지고 고생스러운 날이 있지만 이것이 지나고 나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새싹을 틔워주시듯이 너희에게도 새로운 희망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이 첫째로,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야 될 것이 이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살구나무 가지는 권고의 말씀으로 너는 낙심하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라 소망을 가지고 있어라 하는 것이죠. 낙심하는 사람은 이루지 못하고 버림받고야 맙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마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생명의 길이요. 이것이 소망의 길입니다. 잠깐 어둠이 있지만 그다음에는 놀라운 행복과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을 믿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첫째 뜻은 권고하는 가지, 둘째는 교양하는 가지다 그래서 빨리 가서 예언을 해라는 말이고요. 또 보증하는 가지다 그래서 내가 너를 지켜준다. 보증하시는 거고요. 약속하는 가지다 새 봄이 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새로운 생명이 싹튼다 하는 말씀이고 동시에 다섯 째로는 경고하는 가지다 우리가 이렇게 설명을 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첫째 환상에 대한 얘기입니다.
둘째 환상을 하나님께서 바로 또 보여 주시는데 13절과 14절입니다. 또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런데 끓는 가마를 봅니다.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재앙이 북방에서부터 내려온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것을 끓는 가마를 놓고 보여주셨어요. 북방에서부터는 재앙이 끓는 샘물처럼 내려오지만 우리도 거기에 맞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열치열입니다. 끓는 가마에는 우리도 끓는 가마로 대항을 해야 되겠다. 우리 마음이 불가마가 아니라 용광로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끓어올라야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끓어 불타올라야 되고 또 우리의 사명감이 불타올라 이 마지막 때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용사들이 많이 일어나서 북방 땅을 녹여놓을 뿐 아니라 세계 만방에 복음을 전하고 이 세상을 주님께로 돌이키게 만드는 큰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분명히 이런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예레미야에게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평생토록 좋은 꼴을 못 보고 고생고생만 하고 눈물로 살다가 세상을 마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그것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그는 자기 조국을 위해서 유대 나라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종들이 되고, 뭐 선지자가 되었거나 교사가 되었거나 어떤 은혜의 사람이 되었거나 우선 하나님의 일을 할려면 기본적으로 이상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본 것도 없이 자기 마음에서 생각나는 대로 예언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거짓 선지자가 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본 것이 있어야 돼요.
그런데 어떻게 볼 수 있느냐 보는 것도 두 가지예요. 성령이 보여주시는 게 있고 마귀가 보여주는 게 있는데 성령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아야 돼요.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하나님의 모든 종들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이상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신령한 꿈을 꾸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먼저 계시해 주시는 것이 없으면 우리 인간은 자기의 지식이나 자기의 재능을 가지고 절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마귀란 놈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훼방을 놓으려고 하는 놈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계시를 받고 꿈과 이상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려고 할 때에 마귀도 거짓 선지자들을 세웁니다. 그들에게 마귀도 환상을 보여줍니다. 꿈을 줍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사람들도 나도 이상을 보았다. 나도 꿈을 꾸었다 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렇게 해 가면서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대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보면,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그렇고 모든 선지자들의 경우가 다 그렇지만 이 거짓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제일 큰 고통을 당합니다. 일반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너무 좋아하고 다 따라가요 참 선지자들이 하는 말은 죽어라 하고 믿지 않습니다. 그래 가지고 참 선지자들은 많이 고난을 당했고 돌로 쳐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얼마나 어려운 일을 많이 당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종들에게 고난을 당하게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와라 말씀하십니다. 그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다 거짓된 계시를 받고 나도 계시를 받았다. 나도 하나님을 만났다. 이런 소리를 많이 했어요.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면 이런 속이는 말을 그대로 믿고 따라가요. 그래서 우리가 깨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중장치를 해놓으셨는데 첫째 장치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을 듣는다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회개하고 기도하고, 더 깊은 은혜의 세계 속에 들어가도록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게 만드시는 역사가 첫째 역사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기도한다고는 하지만 성령 충만이라는 걸 모릅니다. 이 사람들은 거짓된 계시를 받는 사람들이 되는 거죠.
그리고 둘째로, 가장 중요한 장치는 바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어야 돼요. 이 말씀이 쉬운 말씀 같으면 누가 안 읽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냥 재미있는 말씀 같으면 누가 안 읽으려고 하겠어요. 세상 소설책 같은 거라면은 아무리 명작 소설이라고 할지라도요 삼국지라든지. 수호지라든지. 뭐 이런 것들 그런 것 같으면은 아마 달달 외워서 내용까지 환하게 외웠을 거예요. 근데 성경은 그런 책이 아니거든요. 몇 번 읽으면 내용을 다 알게 되는 그런 책이 아니잖아요. 수백 번을 읽고 수천 번을 읽고 수만 번을 읽는다고 해도 성경의 내용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어려운 책입니다. 그런가 하면 동시에 이 책은 누가 읽어도 다 알수 있는 말씀이기도 해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신비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상을 주시고 음성을 주시고 꿈을 주시는 이 신비 체험을 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의 역사고 또 하나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새롭게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깊이 나아가게 만드시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게 만드시고 주님 잘 섬기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은혜가 충만할수록 더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 안에 깊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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