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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편 영혼(靈魂)의 나라
모나리자
졸업장에 적혀져 있는 그녀의 일생은 이렇게 요약이 되어 있었다.
이름은 한지혜로 성별은 여.
태어난 곳은 충남 계룡산이며 최종적으로 살았던 곳은 서울.
단발머리를 고집하는 30 세의 신문기자로 미혼이었으며, 171센티의 키에 가슴 32B컵. 허리24. 히프 32.
취재를 마치고 휴식 중, 과로의 누적으로 인해 사망함.
방금 인생학교의 졸업식을 마친 지혜는 이제 자신의 죽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한바탕 눈물바다를 이루었던 수원시 영통지구에 있는 연화장 장례식장의 오전에 있었던 졸업식은 모두 끝나고, 오후의 졸업식 준비를 하고 있는 주인공들과 그 가족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번에 지혜와 함께 졸업을 한 동기생들은 모두 8명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혜의 나이가 가장 어렸고, 40대 중년 남자가 다음으로 젊은 측이었으며, 50대 후반의 여자 하나와 60대 초반의 여자, 그리고 다른 네 사람은 모두 살만큼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지혜와 40대의 남자는 자신들의 졸업을 바로 실감하고 또 인정한 것에 비해, 살만큼 살았다할 나머지 사람들은 졸업식이 끝난 지금도 전혀 인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에 살았던 세상에 첫 발을 디딜 때는 엄마와 아빠의 도움을 받았었고, 상당히 긴 세월의 단위를 보호 아래서 사는 일에 관한 적응을 했었다. 하지만 그곳을 졸업하고 나니, 새롭게 입학을 하게 된 영혼의 학교는 그럴 수 없이 혼자서 적응을 해가야 한다.
지혜의 가족과 연화장까지 함께 동행 했던 사람들은 모든 절차를 마치고 이곳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중이다. 하지만 지혜는 이제 더 이상 음식이란 것을 끼니마다 뱃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육신의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그러한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 사람들의 다음 이동지인 양평의 갑산공원으로 이동을 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이곳 연화장 주변을 둘러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졸업을 인정하지 못하는 노인들은 가족과 조문객들을 필사적으로 따라다니며 매달려보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그래도 지혜처럼 일찍부터 졸업을 인정했던 중년의 그 남자는 연화장 근처의 휴식공간에 세워져 있는 천상병 시인의 시비인 귀천 앞에 혼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 자신은 천당에서의 부름을 받을 것을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혜는 종교라는 것을 가진 적이 없는 무신론자였으니 그 남자처럼 기대를 걸 곳이라던가, 마중이라도 나와 줄 누군가 역시 기다릴 일은 없었다.
그래 연화장 주변을 한 바퀴 더 돌아보고는 다시 찾아온 곳이 천상병 시인의 시비 앞이었다. 지혜는 아까 읽었던 귀천을 또 한 번 읽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歸天
천상병 시인(1930.1.29 -1993.4.28.)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를 다 읽고 난 지혜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을 소풍이라도 가기에 좋은 날씨 속의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졸업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었는데, 보이는 세상은 하나같이 아름답기만 했다. 문득, 아름다운 세상은 그 혜택을 언제나 공평하게 주고 있었음에도 사람이 그 혜택에 대한 감사를 너무도 몰랐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가족과 지인들이 영구차에 오르고 있었다. 살았을 때는 꽉 안아주며 애정 표현 한 번 추억으로 주지도 않더니, 아빠는 지혜의 영정 사진을 살아 있는 모습인 양 안고서, 눈가엔 눈물 마를 새가 없었다.
수원의 연화장을 나온 영구차는 양평의 갑산공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곳은 오래 전에 국민 여배우 최진실이 입학을 한 이후 꽤 유명세를 날렸던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 이제는 영혼의 나라에서도 알아주는 곳이다.
그러나 지혜는 이전의 학교에서 그리 유명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계층의 가정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기에, 연화장에서 부터 이곳까지 와야 할 필요도 없었지만, 아빠는 웬일인 지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것이다.
가족들이 졸업 선물로 만들어 준 지혜의 집이 보였다. 봉분이라고도 할 것 없이 두어 뼘 정도로 흙을 고여 쌓은 뒤 잔디를 입혀 놓은 반 평 정도나 될까 싶은 가묘를 폭 좁은 대리석으로 둘러놓은 뒤, 봉분 정면으로는 ‘한지혜 기자의 묘’라는 비가 세워져 있고, 한 발을 물러난 옆으로는 사진과 함께 유골함을 보관하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무신론의 가정이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지혜가 생전에 좋아하던 사과와 참외며 몇 가지를 더 준비해 놓고, 향불을 피워 놓고, 지혜의 사진을 바라보며 연신 눈물이다. 이젠 모든 절차가 다 끝나간다 싶었는지 가족과 친지 외의 조문객들은 미리 알아서 하나 둘 씩 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축가 대신 엄마 아빠의 눈물만 있었던 연화장에서의 졸업식과, 이곳 갑산공원에서의 입학식은 그렇게 끝났다.
-저는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 배워야 하겠지만 노력할 게요. 엄마 아빠 두 분께서도 아프지 마시고 행복 가꾸시며 사세요.-
그렇게 지혜는 엄마와 아빠를 배웅하고 있었다.
지혜는 엄마 아빠가 남겨 주고 간 집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 새로운 학교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할까 하는 뭐랄까, 두려움 같은 그 무엇인가가 함께 하는 속에서 또 다른 입학생들이 오고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혜가 이곳에 입학을 한 뒤로 처음 만난 입학생은 공원에서도 가장 있어 보이는 집들이 넓은 평수로 모여 있는 곳에서였다. 이곳에서는 두 곳에서 거의 비슷한 시간을 두고 입학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지혜는 그 중에서도 참석자들이 유난히 많은 곳으로 이동을 했다.
대략으로도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수십 여 명에 최대한 자연스런 복장의 사람들이 수십 여 명. 게다가 이곳 묘지 학교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주변은 물론 머리와 머리 위로 공중에까지 영혼들이 꽉 찬 모습이다. 이제 막 도착한 지혜는 좋은 자리를 찾지 못해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하며 아예 입학생의 영정 사진 앞으로 가 자리를 잡았고, 입학생인 사진의 주인공이 도리어 옆으로 옮겨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주인공은 지혜도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꽤나 유명했던 목사였다.
사람들 중 젊은 목사가 성경책을 두 손으로 잡아 앞으로 하고 주인공 살아
생전의 업적을 찬양하고 있었다.
-고인께서는 한 알 밑알의 정신으로, 천막 교회로 출발을 해서 하나님 곁으로 가시기까지, 십만의 대군 형제들을 이 땅에서 안내하셨고,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성전을 하나님 앞에 건설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
젊은 목사의 말에 여기저기서 ‘아멘, 할렐루야’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이어 이어진 예배까지의 시간이 모두 지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더는 볼 것이 없는 듯 남아 있는 사람은 오늘 입학한 지혜 그리고 옆에 있는 목사뿐이었다. 지혜는 옆에 있는 목사에게 일어날 다음 일이 궁금해 가까운 거리에서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기대로 가지고 있던 일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를 않았다.
지혜가 다시 이동을 한 곳은 저녁이 가까워서야 마지막 순서로 입학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아까처럼 대단한 사람들이 밀집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이곳 학생들이 먼저 와 있었고, 상복을 입은 가족들은 구정과 같은 대 명절 같은 때 문중의 큰집에서나 차릴 법한 대단한 상을 준비 해놓고 있었다.
이곳 주인공은 90세도 넘은 할머니로 특별한 삶을 살지는 않았던 것 같았지만, 스님들의 모습이 여럿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절실한 불교 신자였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남긴 자식들 중에 맏며느리인 듯 했는데, 그녀는 연신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또 한 편에서는 할머니가 생전에 공양을 해왔던 사찰에서 나왔는지 몇 명의 스님들이 나란히 서서,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함께 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추선공양을 열심히 드리고 있었다. 그래 지혜는 극락 가는 길이 어느 쪽인가 싶어 관심 깊게 주시하고 있었지만 이번의 입학생에게서 역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막상 영혼의 나라에 들어서고 보니, 천당 가는 길도 극락 가는 길도, 그렇다고 지옥으로 가는 길도 없었던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졸업과 입학을 모두 인정한 지혜였지만, 전과 후의 달라진 차이가 뭔가에 대해서는 대단한 혼란이 오고 있었다.
동쪽의 봉우리로부터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지혜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잠이란 것을 자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자신은 낮과 밤의 구분을 두고 잠이란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먹어야 사는 것으로 부터도 자유로워져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각의 활동이었다.
느낌은 만나지는 영혼의 상대를 서로 볼 수가 있었고, 지각은 과거의 학교로부터 훈련해 놓은 모든 것으로부터 현재의 학교로 이어져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언제고 원하기만 하면 세 살적 자신의 모습으로 되기도 하고, 아가씨 적 모습으로 되기도 하고, 이곳으로 오기 전의 마지막 모습으로 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거리의 단위 같은 것에 있어서도 시간이라는 것이 필요치를 않았다. 가고 싶은 곳을 생각만 하면 그 자리에 갈 수가 있었다.
자신의 몸을 꼬집어보지만 아픔 같은 것도 없었고, 아주 슬펐던 일을 떠올려 보지만 몸에서 눈물이란 건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느낌이라는 그 속에 감정이라는 것은 다 살아 있었다.
생.노.병.사.
그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고나 할까.
이 이상 완벽할 수가 없는데, 지혜는 그리 생각되지를 않는다.
지혜는 입학생으로서 이제 겨우 첫 발을 겨우 놓았을 뿐인데, 너무 앞질러 생각을 하는 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다면 생명이라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성.주.괴.공.의 불변진리라는 순리를 따라 모든 발길을 그렇게도 이곳으로 움직였겠는가. 그리 자문자답을 하며 지혜는 첫날의 새아침 속에 있었다.
원하기만 하면 어디든 순간에 다 갈 수가 있었지만 지혜는 산보를 하듯 이곳 갑산공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가을 중간에 들어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이르자 구면인 두 사람이 보였다. 어제 입학식을 늦게야 치룬 목사와 염불을 외우던 집의 그 할머니였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안녕하세요 할머니.-
지혜는 상냥하게 먼저 인사를 했다.
-두 분 다 아직도 이곳에 계셨어요?-
‘아직도’라는 말에는 ‘천당에 안 가셨냐’는 말과 ‘극락에 안 가셨냐’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런 지혜의 인사를 목사는 바로 알아듣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전혀 못 알아들었다. 그렇다고 지혜가 의도적으로 비아냥거리고자 그리 인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마음 전혀 없이 두 사람을 만나자 저절로 그렇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래 놓고는 자신도 미안했는지 말을 돌린다.
-두 분 다 왜 아직도 모습이 그러세요.-
-...... ?-
-...... !-
-가장 원하시는 때의 나이로 돌아가시고, 옷도 가장 잘 어울리셨던 옷으로 입으시고 하지 않으시고요. 생각만 하시면 다 그대로 되는 걸요. 제가 먼저 해볼게요. 저는 대학생 시절이 제일 좋았으니 그 때 모습을 생각하고, 그 때의 가을 중에서 즐겨 입었던 옷 중에서 단풍 무늬가 수놓아져 있던 옷으로 바꿔 볼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혜는 원했던 모습대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는 어렵지 않은 변신의 방법을 목사와 할머니에게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목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어제의 그 옷차림이며 모습에서, 역시 신학대학생 시절의 남학생 모습 때로 변신을 해 있었다. 이번엔 할머니 차례였지만 쉽게 변신을 하지 못한다. 아마, 두 사람 보다 긴 세월을 지니고 있다 보니 쉽게 결정을 못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할머니 역시 아가씨적의 모습으로 변신에 성공을 했다. 그러고서 셋이 서있으니 한 마을의 친구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혜가 보기에는 아직도 다 흡족하지가 않았다. 그래 다시 말한다.
-아직도 이상해요. 그러지 말고 우리 셋이 똑같이 열여덟 살이던 그 속에서의 가장 좋았던 때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기로 해요. 어때요 좋지요?-
지혜가 먼저 변신을 마쳤다.
지혜는 검은 교복의 치마 위로, 32게지 가는 올로 짜진 밝은 주홍 스웨터를 입은 18세 여학생이 되어 있었다.
요령을 습득하더니 이번엔 할머니가 목사보다 먼저 변신을 했다.
생머리를 어깨까지 덮은 18세 고운 모습이었다. 옷도 밝은 빨강의 조끼를 체크무늬 남방에 바쳐 입고, 무릎 아래로 살짝 내려오는 치마로 멋을 낸 모습이 아주 잘 어울린다 싶었다.
이어서 목사가 변신한 모습은 등산복 차림의 18세 모습이었다. 그제야 지혜는 흡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차별이 다 없어졌어요. 이젠 목사님은 목사가 아니고,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네요. 우린 다 같이 열여덟 살 같은 나이예요. 이게 안 좋은가요?-
지혜의 말에 두 사람 모두 활짝 핀 웃음으로 좋아한다. 그리고는 이번엔 할머니가 먼저 제안을 했다.
-나이는 18세, 알겠는데 이름을 모르잖아. 나는 영자야. 조영자.-
그러자 목사는 ‘나는 김영식이야’하며 대답을 지혜에게로 넘겼다.
-한지혜예요.-
그러자 이번엔 목사가 제안을 했다.
-이제 우린 더 나이 꽉 차게 돌아갈 필요도 없고, 지금처럼 동갑내기로 친구하면 어떨까 싶은데....... .-
할머니도 금방 찬성을 했고 세 사람은 이곳에 온 지 하루 만에 외롭지 않은 친구가 되어 있었다.
한지혜. 조영자. 김영식 세 사람은 오늘 하루의 계획을 의논하고 있는 중이었다. 개인적으로야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도 가보고 싶은 게 첫 번째겠지만, 의논에서는 친구가 된 셋이서 움직이고 싶은 곳을 생각해내는 것이었다.
처음엔 영자가 말한 큰 절이 나왔고 영식은 교회 한 곳을 얘기했다. 그러나 지혜가 있어 그 두 곳은 없던 얘기로 하고, 두 번째로 나온 곳이 가을 바다였다. 그래 셋의 마음을 모으고 나니 정동진이었다. 그 외의 몇 곳을 더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거리에 대한 생각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재미있게도 이들 세 사람은 순식간 만에 정동진에 와 있었다.
하얀 물거품을 퍼 올리며 파도가 저 멀리로부터 다가오고 있었다. 넓은 백사장엔 단체로 온 학생들과 연인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나란히 앉은 세 사람도 학생이 된 마음으로 그 시절에 즐겨 부르던 바다의 노래 등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 영식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 바다 쭉 올라가면 북한이네’ 했고, 곧바로 영자가 ‘우리 북한에 가볼까’ 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지혜도 그러자 했다.
북한에 도착을 하자마자 몇 번을 이동해야 했다. 자세히 아는 것도 없이 무작정 북한 땅을 밟았지만, 이왕이면 가보고 싶은 곳을 정확히 하고 싶어서였다. 평양과 금강산, 개성공단 등은 직접은 아니었더라도 정보를 통해 자주 접했던 곳이니 잠깐씩만 들렀을 뿐 바로 제외가 되었다. 그런 식으로 자꾸만 북으로, 북으로 옮기다보니 제대로 어디에 머물지도 못한 채 두만강을 따라가고 있었다.
여기까지 이동을 하며 적지 않은 북한군과 사람들을 보았다. 북한군들은 그래도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주민들은 그 반대로 느껴졌다. 기억으로는 살 붙은 사람들을 아예 못 봤던 것 같았다. 그리고 깊이 남는 기억이라면, 주민들 누구에게서도 밝은 낯빛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강씩만 보며 중국으로 가 보자’는 영자의 말에 셋은 또 한마음이 되어이동을 했다.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지혜가 취재를 다니기도 했던 상해였다.
-여기가 중국 맞아 지혜야?-
상해에 도착하자마자 영자와영식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에 보이는 빌딩들마다 30, 40층은 기본이고 80, 90층에 100층이 넘는 빌딩도 있는 데다, 자동차며 사람까지 홍수를 이루니 다른 나라로 잘못 왔나 싶은 모양이었다. 셋은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며 처음에는 한국의 관광객 인 듯한 사람들을 따라다녔고, 다음엔 교포인 듯한 사람들을, 또 그 다음엔 북한에서 두만강을 건너 탈북 해 있는 듯한 사람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어찌 사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동족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동시대를 살면서도 사는 모습과 사람의 가치가 이리도 하늘과 땅으로 다를 수가 있을까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 세 사람의 느낌은 동족으로서의 거지가 쉽게 만나지는 남경과 운남성 지역 등에 머물면서는 더욱 깊이 느껴졌다.
중국 땅을 돌며 몇 곳에 머물다 보니 날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옛날 같으면 따듯한 불빛이 기다리는 자신들의 집이 있어 돌아갔으련만 지금은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묘지공원 아니던가. 하지만 셋이서 당장에 돌아갈 곳은 그 곳뿐이었다. 바닷물 속으로 해서 돌아가자고 제의를 한 것은 이번에도 영자였다.
세 사람은 처음 떠나왔던 양평의 갑산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산 아래 저 멀리로 사람들 세상의 찬란한 불빛들이 너무도 곱게 수놓아져 있었다.
이제 조금 더 밤이 깊으면 저 속의 불빛들도 하나 둘씩 꺼져가며 하루의 모든 것을 편히 놓고 잠이 드는 시간 속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물론 이곳의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무덤이라던가, 공동으로 지어져 있는 납골당이라던가 하는 곳을 집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굳이 집이라고 한다면 항상 깨어서 어디든 순간 이동이 다 가능한 이곳 태양계 외에도 삼천대천세계라고 할 수 있는, 대우주 전체가 집일 것이다. 다만 하루를 살고, 마지막에 꼭 한 번씩 돌아오곤 하는 이곳을 상징적인 의미에서 집이라고 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었다.
친구가 되어 하루를 함께 돌아다닌 영자와 영식은 지금쯤, 자신들이 육신의 몸으로 한 때를 살았었던 곳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지혜 역시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가고자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도 되는 일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영혼의 나라 어딘가에 먼저 와 있는 할머니와 오빠 그리고, 할머니가 그리도 기다렸던 큰아들인, 큰아버지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지혜는 먼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찾아내야 했다. 그 때는 계룡산 아래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던 때다.
지혜의 집은 십여 호가 모여 있는 속에서도 가장 산 위로 위치하고 있었다. 지혜의 집은 유일하게 기와집이었다. 마당이 있긴 하지만 집은 작아서 안방과 마루 그리고 건너 방으로 두 개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집을 한 번 고쳐지으며 안방과 건너 방의 면적이 같아지고, 건너 방에는 다락이 만들어졌다.
안방은 엄마와 아빠가 사용을 했고, 건너 방에서는 지혜와 할머니가 지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다락방을 오빠가 사용하기 시작 했다. 그러나 세 살 차이던 오빠는 그 해 여름방학 때 시원한 계곡을 찾아 물놀이를 갔다가 친구들과 다시는 돌아오지를 못했다. 그 이후로도 다락방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았고, 늘 비워져 있었다.
-지혜야. 산에 좀 갔다 오자.-
밤 여덟 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밖엔 첫눈까지 쌓이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여러 번 이런 일이 있었지만 겨울에는 처음이었다.
지혜는 익숙한 모습으로 양초와 일회용라이터 그리고 랜턴 하나를 챙겨왔다. 그 사이 할머니는 북어가 들어 있는 비닐의 먼지를 닦아 놓고, 밖에 나갈 지혜의 옷도 챙겨 놓았다.
-단단하게 입어라-
그러면서도 못 믿어, 지혜에게 잠바를 손수 입혀주는 할머니였다.
직각으로 잰다면 50미터 정도 될 법한 위치였지만, 산길로 걸어서는 4백여 미터를 걸어 올라온 곳이 도착지였다. 특별한 곳도 아니고 그저 큰 바위 하나가 있는 곳이었다. 바위의 정중앙쯤의 아래에는 할머니가 오래전에 가져다 놓은 넓적 돌이 있었고, 그 돌의 몸은 촛농이 흘러내려 굳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지혜는 할머니 대신 양초 하나를 꺼내 넓적 돌 위에 접착을 시켜 세워 놓고는 불을 붙였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고무줄 바지 안주머니에서 색 변한 하얀 종이로 몇 겹을 싸놓은 것을 꺼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머니가 입는 모든 속옷 등에는 별도의 주머니가 장치되어 있었는데, 일일이 바느질을 하여 할머니가 직접 장치를 한 주머니였다. 그 주머니에는 할머니의 목숨보다 우선으로 챙기는 물건을 24시간 지니고 살았는데, 남양군도로 징용 간 큰아들의 사진이었다. 방금 꺼내든 것도 그 사진이었던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지혜를 옆에 세워 놓은 할머니는 사진을 들고 혼자 얘기를 한다.
-남양군도에도 눈이 오고 있지 아들아. 방은 따숩냐. 저녁은 잘 챙겨 먹었고. 아직도 혼자 사는겨, 아니면 색시랑 자식들이랑 있는겨. 꿈에랑도 나타나 소식이랑 주지 않고 그러냐. 그래. 이 애미는 아픈 곳 없이 너만 기다리며 잘 있다. 아무 걱정 말고 꼭 한 번 다녀가거라. 집 잊어버릴까봐 애미 방엔 불 끄는 일 없으니까 찾기 쉬울겨. 네가 덮던 담요는 항상 아랫목에 깔아 놓고, 너 오면 먹일려고 밥도 네 놋그릇에 담아서 항상 따듯하게 해놓았으니까
식기 전에 꼭 와야 혀. 집이 기와집으로 바뀌었다고 못 찾지 말고, 애미 이름으로 문패 달아 놓았으니까 잘 읽고 들어와 아들아. 눈길 미끄러우니까 조심하구. 알았지? 근데 정말 왜 안 오는겨. 일본 놈들 몰아낸지가 언젠데 안 오는겨.-
그렇게 순서도 없는 얘기를 혼자 하고 난 할머니는 지혜에게 사진을 보여 주며 말한다.
-잘 봐도라 지혜야. 왼쪽이 네 애비고, 옆에 키 크고 잘 생긴 것이 큰애비다. 열아홉살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다. 이름이 한태선이여. 태선이.-
그러고는 사진을 다시 하얀 종이로 두 겹 세 겹을 싸서 속주머니에 깊숙이 넣는다.
서울로 이사를 오기 위해 엄마와 아빠가 많이 힘들었던 것은 할머니의 이런 일과도 깊은 관계가 있었다. 혼자 남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서울로 따라왔지만, 할머니는 사는 내내 계룡산의 집을 큰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가슴속에 채우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런 그리움과 기다림 때문이었을까.
할머니는 여러 차례 심하게 아프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용감하게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백 살을 살았다. 그리고 다시 세 살을 더 살던 중엔 자신도 어쩔 수 없었는지 생의 끈을 놓은 적이 있었다.
지혜는 그 때 고등학생이었다.
수업 중에 난데없이 방송이 들려왔다.
-1학년 2반. 담당 선생님께서는 한지혜 학생을 교무실로 지금 바로 보내 주세요.-
교무실에서 만난 담임선생님은 지혜에게 할머니 소식을 들려주었다. 면목동의 녹십자 병원에 부모님들이 계시고 할머니가 위독하시니 빨리 가보라는 것이었다.
지혜가 책가방을 들고 집으로 먼저 왔을 때는 할머니가 늘 깔아 놓았던 이불까지 그대로 옮겨 간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드는 느낌이 아주 안 좋았다. 지혜는 책가방을 던져놓다시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이미 하얀 천으로 온몸이 덮여, 영안실 냉동 창고가 있는 건물로 이동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 밀고 가는 침대 양쪽에서 아빠와 엄마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지혜를 바라봤다. 지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오빠의 죽음 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었는데, 죽음이라는 것을 이리 가까이서 처음 보는 지혜는 슬픔이라는 것보다 두려움이라는 게 먼저 느껴졌다. 그 두려움이라는 것은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의 단절 같은 것에서 오는 것이었다. ‘할머니’하며 울음이 터진 것은 그런 느낌이 먼저 스치고 간 바로 뒤였다. 곁에서 말렸지만 지혜는 침대를 세우고, 하얀 천을 내려 할머니의 얼굴을 확인했다. 할머니의 팔을 잡으며 겨우 ‘할머니’ 소리만 되풀이 했다. 그런 지혜를 아빠가 말렸고, 병원에서 나온 남자는 침대를 다시 밀고 가려고 했다. 모두 몇 초 정도의 차이였는지는 모른다. 병원의 본 건물과 장례식장의 영안실로 이어지는 중간의 10여 미터 야외 통로에서, 침대의 위치는 영안실을 바라보며 겨우 몇 미터 정도를 남겨두고 있었다. 아주 길어야 1분도 안 걸려 할머니를 실은 침대는 여안실로 들어서게 될 거리였다. 바로 그 위치에서 지혜는 또 한 번 침대의 이동을 막아 세웠다.
-아저씨, 잠깐만요. 아빠, 엄마..... .-
침대의 이동이 지혜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멈춰졌다. 엄마 아빠는 이런 지혜의 행동에 당황하기만 할 뿐 뭐라 나무라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어찌 달래야 할지도 몰라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있었다.
-분명히 봤어요 아빠. 할머니가 움직였어요.-
엄마는 딸아이를 잡아당기며 떼어 내려 했다. 바로 그 때였다. 네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할머니를 덮어 씌워 놓고 있던 하얀 천이 약간씩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놀라고 있었지만 지혜가 급히 천을 걷어 내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천의 움직임이 아닌 할머니의 몸이 한 번 그리고 두 차례, 짧은 간격을 두고 움직였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모두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어 몸들이 굳어 있는 시간은 아주 찰라와 같았지만 아주 긴 시간이었는지도 몰랐다. 지혜 혼자만이 할머니의 팔을 잡았다. 할머니가 눈을 뜨고 있었다. 지혜는 눈물로 범벅이 되어 할머니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나 좀 일으켜 줘.’하는 소리가 지혜에게만 들렸다. 지혜는 조심스럽게 할머니를 침대에서 앉혔다. 지나던 사람 몇이 처음 보는 광경에 걸음을 멈추고 지켜봤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병원의 남자는 여전히 아무 행동도 못 취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제 정상에 가까운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눈동자의 초점이 바른 상태에서 지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혜구나. 네 오빠 만났다. 네 큰아버지도 만났다. 할아버지도 만났고..... . 근데 내가 왜 여깄냐.-
죽음의 시체가 되어 영안실 입구에서 다시 돌아온 할머니는 뒤로 삼 년을 더 살았다. 감기 같은 것에도 걸리지 않았고 상태로 보아, 앞으로도 열 살이건 스무 살이건 더 살며 큰아들인 태선이의 두 손을 꼭 잡아볼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요일의 점심 무렵이었다.
할머니의 부탁에 지혜는 사우나탕을 함께 다녀왔는데, 이번엔 새 옷을 꺼내 입혀 달라 했다. 그러고 보니 백세의 장수를 축하드린다고 엄마 아빠가 준비해드린 옷을 그 날 이후 한 번도 안 입고 수년째 모셔만 놓았던 옷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할머니는 새 이불을 깔아 달라 했다. 아무 생각 없는 지혜는 ‘왜요 할머니. 어디 다녀오려고요?’하며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뒤 할머니가 좋아하는 박하사탕을 한 봉지를 사가지고 돌아왔을 때는, 새 옷을 입은 채로 잠이 든 모습을 보며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씩’ 한 번 웃은 채 옆으로 누워 쭈글쭈글한 손을 붙들고 낮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렇게 죽음까지도 미리 알고, 미리 준비를 하고 지혜와 이별을 했다.
오빠인 한영민과는 지혜가 일곱 살 때 헤어졌다. 당시, 영민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었던 어느 날.
영민은 친구 몇과 물가로 놀러간다고 나가더니 그 중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오지를 못했다.
졸지에 자식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마을에서 아주 먼 지방으로까지 가서 배웅을 해야만 했다. 그때의 화장터 건물의 한 유리창 앞으로, 한 장 백지 위에 부어진 뽀얀 가루를 보며, 엄마는 왜 실신을 했고, 아빠는 왜 그리 울었는지를 당시에는 몰랐었다. 지혜는 그 가루를 보며, 수제비를 만드는 밀가루라며 좋아했었고, 미숫가루 나왔다며 박수를 쳤었다. 지혜는 오빠를 그렇게 보냈던 것이다.
큰아버지 한 태선은 지혜가 태어나기보다 훨씬 전의 사람이라,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지니고 계셨던 흑백사진 한 장과, 지혜가 자라는 동안 할머니를 통해서 들어왔던 이야기가 전부였다.
태선은 지혜의 아빠와 다섯 살 차이로 열아홉 살이었다. 태선은 하모니카를 아주 잘 불었다고 했다. 태선이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으면 마을의 친구들이 주변에 모여 함께 들었다고 했다.
일제하에 있었지만 태선이가 살고 있는 마을은 다른 곳과 달리 평화로웠다고 했다.
어느 날.
태선이는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와 ‘어머니, 이 친구랑 함께 남양군도에 다녀올 게요’라 했다. 최근 들어 자주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일본인들에 의해 어머니는 여러 차례 징용이라는 말과 남양군도라는 이름을 들은 터였지만, 남양군도가 제주도처럼 남쪽바다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 땅으로만 알고 있었다 했다. 그래도 아들이 집을 떠난다는 것이 싫어서 반대를 했지만, 총을 들고 전쟁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사탕수수밭에서 일을 하여 돈을 벌러 가는 것이라 했다. 그곳에 가면 보수도 많이 받고, 땅도 나눠 주고 한다 하여 이웃 마을 등 여러 곳에서도 아는 친구들이 징용에 동의를 했다고 했다.
이제 곧 일본은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다 돌아 있는 때였다. 마음이 전혀 내키지는 않았지만,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에 있을 먹고 사는 일을 얘기하며 설득하는 태선이와 친구를 끝까지 막을 수 있는 설득력이라던가, 세상에 대한 이해력이 어머니에게는 전혀 갖춰져 있지를 못했고, 그것은 이웃 마을 등의 부모들 또한 비슷한 사정이었다. 이때의 징용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강제 징용이 아닌, 일제의 사기 징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일본 패망 후의 살아갈 일을 위해 남양군도를 향해 고향을 떠났다.
더 이상 짜내도 되지 않는 기억을 떠올리며 지혜는 이동을 해야 했다.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선 가장 예쁜 모습이고 싶었다. 어떤 모습이라 해도 반겨 주고 예쁘다 할 할머니였지만, 여러 모습을 놓고 지혜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변신을 한 것이 가장 사랑을 받았던 초등학생 때의 모습이었다.
다음은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내드렸던 곳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곳은 통일로를 따라 간 경기도 고양시의 벽제 화장터라 불리는 승화원이 있는 곳이었다.
지혜는 초등학생이 된 모습으로 승화원에 도착해 있었다. 주변은 온통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장식을 한 검은 차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오늘도 이곳에선 졸업식과 입학식이 있을 것이었다. 구경을 좋아하는 영혼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그 중에 혹시 할머니도 있을까 해서 승화원 내부를 일부러 돌아보았지만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가을 산에라도 가셨을까 해서 주변의 산 속을 다 다녀보았지만 할머니를 만나지를 못했다. “어디 가셨을까’하며 궁리를 해보지만 집히는 곳이 없었다. 지난 세월이 있었으니 영혼의 나라에 벌써 익숙해졌을 할머니가 마음대로 움직이는 곳을 지혜가 알아낸다는 것은 분명 무리였다. 지금 상태라면 할머니와 관계가 되는 날이거나 할 때라야만 사람들이 사는 곳의 집히는 곳에서 만나야 할 일이었다.
지혜는 이제 오빠인 영민을 만나러 가야 했다. 한데 영민을 만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빠는 그 때 가루가 된 채로 고향 계룡산의 계곡물에 뿌려졌기 때문이다. 그 때의 영민을 싣고 어디로 떠났을지 모를 계곡물이었다.
지혜는 계룡산을 몇 바퀴 돌아도 보고, 영민이 다니던 학교에도 가보고, 어린 시절을 살았었던 마을도 돌아보고 했지만, 아직도 머물고 있을 영민이 아니었다. 오래 된 영혼들은 다 어디로들 가는지를 알 수 없는 영혼의 나라 초급생 지혜였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지혜는 사진 속 모습을 간직하며 남양군도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지혜는 스물일곱 살의 기자적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이곳 남양군도는 방송사의 다큐 팀을 따라와 취재를 했던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때는 마음이 있어도 개인의 시간이 거의 나지 않아 움직이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다 다닐 수가 있으니 말이다. 바라는 것은, 앞전처럼 할머니도 오빠도 못 만나고 너무 쉽게 돌아서야 하는 일이 없기만을 바라는 것이었다.
지혜가 알고 있는 남양군도는 인구 15만의 마이크로네시아 연방공화국이다.
이곳의 섬은 약 6백여 개로 되어 있어 동시에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혜는 우선, 이곳의 군도 중에 가장 가까운 섬부터 돌아봐야 했지만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생각을 바꿔 사이판 섬으로 먼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사이판은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지혜는 그런 만큼 큰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확률도 높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확률이라는 것에서, 큰아버지가 지금의 때에 사이판이든 남양군도의 600여 개 섬 어느 곳에서든 그 중 한 곳에 있으리라는 것은, 대우주를 마음대로 다 다닐 수 있는 영혼의 나라에서 볼 때는 수조 억 분의 일도 안 될 수도 있었다. 다만 대우주 어디를 다니고 있었더라도, 자신이 와 있는 지금의 때에 큰아버지 역시 이곳에 와 있다면 하는 마음의 간절함이었다.
사이판은 작은 섬이어서 모든 영혼들이 한눈에 보이는 듯 했다. 바다 위에도 보였고, 땅 위에도, 허공중에도 보였다. 그 중에서 동양계로 보이는 황색의 영혼들을 구분해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지혜는 그들 영혼 하나하나의 모습을 다시 구분해내고, 남자 영혼들 중에서 큰아버지와 흡사하다 싶으면 자신에게 입력된 큰아버지의 얼굴과 직접 비교를 해보곤 했다. 그렇게 거의 마지막 순서에 이르고 있을 때였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남자 영혼 하나가 지혜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혜는 순간적으로 그 영혼이 큰아버지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남자 영혼은 말없이 몇 차례의 변신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사탕 수수밭에서 일하던 때의 복장을 한 모습이었고, 두 번째는 팔다리가 다 잘려진 채 너덜한 옷은 온통 핏물로 된 모습이었다. 마지막에 변신을 한 것은 지혜도 사진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바로 그 때의 모습이었다. 이제 모든 것을 확신 할 수 있는 지혜였지만, 앞에 있는 남자는 왜 지혜 앞에서 그런 변신을 보여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남자에게 지혜는 ‘이흥남’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느냐 물었다.
지혜는 큰아버지와 함께 남양군도의 섬 한 곳에 와 있었다. 설탕수수밭이 사방으로 펼쳐진 섬이었다. 지혜가 27세적 모습으로 있었기에 19세의 모습인 큰아버지와 맞추기 위해서는 변신이 다시 필요했다. 잠시의 생각 끝에 지혜는 16세의 소녀로 변신을 했다. 이제는 그런대로 어울린다 싶었다.
지혜는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있었다.
-어머니 얼굴 기억하고 계세요?-
-고향이 어딘 지는요?-
-돈을 벌러 가셨다고 했는데, 왜 하필이면 일본을 따라간 거예요?-
-전쟁도 끝나고 했는데 왜 안 돌아오신 거예요?-
-아까 모습을 보았어요. 정말 그렇게 돌아가셨던 건가요?-
지혜의 말에 큰아버지는 차분하게 말했다.
-미안하다. 어머니의 모습이 제대로 안 나.-
-산은 기억이 가물가물 나는데, 미안하다. 많은 기억이 내게서 지워졌단다.-
-잘못했다. 친구들과 돈에 눈이 멀었던 거야. 일본 망하고 나면, 어머니와 하나 뿐인 내 동생 부자로 살게 만들어 주고 싶었거든. 어쨌든 일본 놈들을 따라나선 건 큰 죄를 지은 거야.-
-처음엔 약속대로 사탕수수 재배에 투입이 되었단다. 죽어라 일만 시키고 약속한 임금을 거의 주지 않더니, 우리가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늦었단다. 놈들은 태도를 바꿔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지. 누구 할 것 없이 함께 일했던 사람 모두 놈들의 총알받이로 앞장 세워졌으니까. 미군의 폭격에 맞아 거의 다 죽었단다. 팔다리 달린 채로 죽은 사람도 거의 없었을 거다. 다들 억울하게 죽은 거야. 어떻게 돌아갈 수가 있었겠니.-
-...... .-
-네가 자라는 동안에도 어머니께서 이 못난 아들을 기다리셨구나.-
-아세요. 큰아버지?-
지혜는 기억을 들춰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수제비를 먹으면서도 큰아들의 밥만은 늘 하얀 쌀밥으로 해서, 놋그릇에 담고 뚜껑이랑 덮어, 아들이 덮고 자던 미제담요로 항상 덮어 놓으셨어요.
다들 잠들어 있는 새벽에도 부뚜막에 정안수를 떠놓으시고, 손바닥이 닳도록 치성을 드리셨어요.
큰아들이 바지를 찢어 만든 속에 담아 처음이자 마지막 보내준 설탕을 안 잡수시고 항아리에 담아, 뚜껑도 안 열어보시며 사시는 내내 모시고 사셨어요.
속옷마다 덧댄 주머니를 바느질로 만들어서 큰아들 사진 한 장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니고 계셨었어요.
한 번은 돌아가셨었지만 큰아들 못 잊어 다시 살아나시기도 했고, 큰아들을 만나고 오셨다고도 하셨어요. 그 기다림과 그리움만큼 큰아버지도 그러셨나요. 아닐 거예요. 아닐 거예요.-
감각이 느껴지는 육신의 상태라면 당장에라도 부둥켜안고 통곡이라도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 영혼에게는 느낌으로 형상화된 모습은 있으면서도, 감각으로 존재하는 육신은 없었다. 느낌의 마음이 아무리 눈물덩어리라 해도 물질로 흐르는 눈물은 존재하지를 않았다. 영혼이 된 이후, 고통이란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다면, 상대적인 것 역시 느낌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첫댓글 아, 정말로 재미 있어요 웃다가 감동하다가 참 상상력이 뛰어 나시구나 하며 읽었어요. 다음편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