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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박 화 성
학교에서는 정각 여섯시 반에 퇴근하였는데도 봄비는 버스에서 한 시간을 시달리다가 버스 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이미 일곱 시 반이 지나 있었다.
오늘은 종일 심기가 편안하지 않아 좀 일찍 자리를 떴더니 그 보람이 있어서 근처의 주택 담장들마다 꽃구름처럼 엉긴 장미의 고운 색깔이 화려하게 죽 시야에 들어왔다.
짙은 황혼에서는 그처럼 선연하게 고움을 느낄 수는 없었고 맑고 감미로운 향기만을 들이켜면서 그 밑을 통과했는데 오늘은 붉고 희고 노랗고 연분홍색 등등 갖가지 빛깔의 크고 작은 꽃송이 송이들을 감상하면서 줄곧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내에 싸여 천천히 걷노라니 산란하던 머리 속이 가라앉는 듯 답답하게 가슴에 몽켰던 응어리가 적이 풀리기 시작했다.
‘대자연의 혜택이란 그 어느 것이나 다 고마울 뿐이다.’
이근식(李槿植)은 왼편 손아귀에 들렸던 종이 봉투를 오른편 손아귀로 바꾸어 들었다.
장미꽃 담장이 끝난 모양으로 봉투의 무게가 갑자기 불어난 듯이 느껴졌다.
다음은 집 두어 채가 들어설 만한 빈 터에 여러 가지의 채소와 자잘한 나무들이 우북하게 자라나 작은 숲속을 연상케 하는 까닭에 애착이 가는 곳이었다.
한 또래의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다가 길 쪽으로 뛰어나왔다. 얼핏 보기에는 한 또래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까 한살 터울씩이나 되는지 키나 몸짓이나가 셋이 다 다른데 모두 손에다가 모조 권총을 들고 휘저으며 뛰어다녔다.
모조리 권총을 들고 쫓기며 쫓으며 나무 새로 숨었다가 나왔다가 하는 것에 낮에부터의 잠재의식이었던지 섬뜩한 맘이 들어서 근식은 발길을 멈추고 그들의 동작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어린애들이 장난감 권총으로 어른의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매우 진지하게 행동했다. 칠팔구 세가 아니면 육칠팔 세쯤이나 되었을까 역시 우두머리 행세는 나이 든 쪽이 했다.
“너희들 왜 말 안 들어. 썩 일루와 서지 못해?”
우두머리의 낌새가 강하게 나오니까 두 아이가 앞에 와 나란히 섰다.
“아까 내가 가르쳐준 대루 말야, 네가 날 먼저 쏘구 그 댐에 내가 널 쏜단 말야.”
“그 댐엔 네가 꼬마를 쓴다 이거지?’
“그래그래. 그러니깐 인제부턴 달아나지 않기루다. 알았지? 웅? 꼬마야 너두 알았지?”
“그래 알았어.”
꼬마의 음성은 당차고 폭이 넓었다.
“자 시작!”
둘째 애가 큰애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악을 썼다.
“손들엇!”
큰애가 두 팔을 번쩍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재빨리 다시 내리니까 둘째 애가 두 번째 손들라는 호령을 했으나 큰애는 까딱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둘째 애는 미리 가르침을 받은 대로 큰애의 가슴에 권총을 대고 입으로,
“탕 탕 탕탕.”
총소리를 내자 큰애는 그제야 두 팔을 엉거주춤 들고 몸을 이쪽저쪽으로 약간 뒤채는 양 하더니 뒤로 덜썩 자빠졌다.
“야 멋지다!”
두 아이는 손뼉을 딱딱 치며 재미나 했다. 큰애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며 두 아이에게 말했다.
“잘 봤지? 너희두 차례루 그렇게 한다. 자 시작!”
끝말과 함께 큰애는 잽싸게 둘째 애에게 권총을 들이대며,
“손들엇!”
하고 두 번째 호령에 손을 들지 않자,
“탕 탕 탕탕.”
큰 총소리를 냈다. 둘째 애는 큰애보다도 더 율동적인 몸짓으로 쓰러졌다.
“야 참 멋지게 죽는구나. 자 인제 꼬마 차례다. 시작!”
큰애가 꼬마에게 권총을 대며 손들엇 하자 꼬마는 권총을 쥔 채 두 팔을 올렸다.
“틀렸어! 누가 총을 쥐구 항복을 해? 권총 놓구 다시 한 번 손들엇!”
꼬마는 두 팔을 들었고 두 번째로는 총알에 맞아 죽는 시늉까지 한 후에,
“난 왜 안 쏴? 나두 쏴야지.”
하는 항의를 했다. 두 아이는 그제야 생각난 듯이 깔깔 웃고 큰애가 꼬마의 상대를 해주었다. 꼬마는 다부지게,
“손들엇!”
외치더니 두 번째를 생략하고 이내,
“탕 탕 탕탕.’
큰애의 가슴에 발사했다.
“하니 손들었는데 왜 쏴? 다시 해!”
“싫어. 총 맞았는데 왜 안 죽어? 어서 쓰러지란 말야.”
꼬마는 우르르 달려가 두 손으로 큰애를 뒤로 밀쳤다. 권총이 땅에 끌리면서 꼬마를 따라갔다. 기습을 받은 큰애는 얼결에 꼬마의 뺨을 갈겨 울음을 내놓은 꼬마와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애들의 동작과 언어에 어안이 벙벙해 서 있던 근식은 이 작은 결투에 비로소 자기의 위치를 깨닫고 애들 틈에 끼였다.
“얘들아, 무슨 짓들야? 조용하게 놀잖구. 자 이 팔들 놔!”
국민학교 교원의 관록이 붙은 음성을 민감하게 알아차린 큰애는 근식의 위압적인 호령에 얼른 꼬마에게서 속을 떼고 근식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꼬마는 다시 큰애에게로 덤벼들었다.
“왜 때렸어? 이 새끼 또 때려봐!”
“아하 꼬마! 내가 보니까 네가 첨엔 잘못했어. 잘못두 알아야 착한 애가 되는 거야.”
근식은 꼬마를 안아 떼려고 했으나 의외로 꼬마의 팔 힘은 세었고, 애써 갈라놓을 때도 꼬마의 중량은 퍽 무거웠다.
“앤 권총을 달구 다닌대요.”
태평스러운 얼굴의 둘째 애가 꼬마를 가리키며 히죽히죽˙ 웃었다. 아닌게 아니라 꼬마의 권총은 나무권총인 두 애의 것과는 달리 번쩍번쩍 윤나는 철제인데 단단한 줄에 매어 꼬마의 가죽 허리띠와 연결되어 있었다.
‘비싼 것이라고 잃지 않게 잘 묶었군.’
“쟤네는 부자래요.”
둘째 애가 거듭 설명 했다. 부자니까 값비싼 권총을 가졌다는 자기들의 변명이 은근히 섞여있었다.
“너희들 말야. 될 수 있는 대로 권총놀이는…….”
근식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자기도 삼학년생인 맏아들에게 졸리다 못 해 제법 그럴 듯한 모조권총을 사주치 않았던가? 무슨 대유행이나처럼 권총놀이가 부쩍 심해진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권총놀이는 가끔씩만 하되 착하게 조용하게들 하란 말이다.”
근식은 자기도 모를 설교를 해주고 떠나오는 제 뒤통수가 부끄럽기까지 했다. 권총이란 일종의 무기다. 무기는 전쟁이나 결투에 쓴다. 싸움에서 어떻게 조용하게 착하게 하란 말인가, 아무리 놀음일망정…… 근식의 머리에 교무실에서의 장면 이 떠올랐다.
어제 석간과 오늘 조간 신문에 대서특필로 보도된 은행 강도 체포 기사를 읽은 동료들의 표정들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그들은 점심시간이 지난 잠시˙의 빈 시간에서 제각기의 의견들을 분분히 폈다.
“오리무중에 잠길 줄 알았더니 기어코 드러나서 통쾌하긴 한데…….”
“누가 아니래요. 수백 명의 용의자들은 참 어이없고 허망하게 당했지 뭐요? 그 수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계제에…….”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군요. 가녈핀 아동의 말소리에서…….”
“어쨌거나 용하기들은 하지 않소? 끄나불들을 척척 잡아채니 말요.”
“그게 전문이고 그게 천직이니까 자연히 척척 풀어나갈 게 아니겠어요?”
“만일 아동의 제보가 없었던들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시 오리무중에 잠길 수밖에…….”
“그렇지. 전례대로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많지요.”
“가능성이라?”
“그 가능성을 말살한 한 어린 시민의 신고!”
“그 신고자가 국민학교의 아동이라는 데서 우리가…….”
“왠지 모르게 수치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뿐만 아니라 준렬한 반성을 하게 되죠? 안 그래요. 선생님들!”
육학년 담임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들 동감이라고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거머리처럼 신경에 끈질기게 달라붙었던 한 가닥의 상념을 장미꽃의 아름다움에서 겨우 잊을 뻔했는데 아이들의 권총놀이에서 되살아나 근식의 머리 속은 다시 산란해졌다.
‘아들놈에게서 당장 권총을 압수해야지.’
자기의 아들도 날마다 저렇게 모조권총을 이용하여 동무들을 몇 번씩이나 죽였다가 살렸다가 하였을 일을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아무리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아이들의 장난이라 할지라도 그 행동이 쌓이는 대로 은연중에 아이들의 상식이 되고 습성이 되지 않을까? 더구나 어른들의 흉내란 모두가 다 위험한 것뿐이다. 무엇을, 어른들이 무엇을 아이들에게 이것이노라고 뽐내어 보여줄 수 있는가? 부디부디 내 본을 따서 흉내내보라고 버젓하게 내세울 만한 어떤 자랑거리를 어른들은 가지고 있는가?
그런데도 어쩌다가 이런 위험천만의 권총놀이가 유행 전염병 같이 만연되어 있게 되었는가. 애초에 총이나 권총 같은 살벌한 장난감은 만들어내지 말았어야 할 것 같다. 반드시 겨냥물이 있어야 호과를 낼 수 있는 무기! 그 겨냥물이란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이라야 하는 것일까? 대립되어서야만 쓸 수 있는 무기다. 상대가 대적이 아닌 자신이라 할지라도 그 총이나 권총의 탄환이 비록 자신의 가슴을 겨냥하여 쏘아진다 하더라도 자기와 자기의 대립임에 틀림없지 않는가.
그 겨냥이란 크게 말하여 한 나라가 될 수 있고 작게 말하여 한 가정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재물을 겨냥한다. 그것도 내 것이 아닌 남의 재물과 대립하여 그것을 겨냥하고 총알과 탄환을 난사하는 것이다.
매양 권총이란 의(義)에서보다 불의(不義)에서 흔히 사용된다.
이등박문의 가슴을 꿰뚫은 그 귀중한 탄환은 나라를 위한 애국심의 극치의 결정체이지만 불의를 위하여 남용되는 탄환은 우리에게 어떤 무서운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근식은 여기까지 생각을 끌어오다가 문득 오늘 종일 자기를 괴롭힌 번민의 초점이 어디에 있음을 정확하게 집어냈다. 그것은 국민 학교의 아동이 그 제보를 그의 과외선생님의 서랍에서 얻어냈다는, 즉 그 ‘선생님의 집’이라는 그 사실인 것이다.
근식 자기는 현재 × ×국민학교 사학년의 담임이다. 사랑스러운 제자들의 사기(邪氣)가 없는 별 같은 눈동자에 이 육 척도 못 되는 이 몸뚱이가 어떻게 비쳐 있을까? 진실하고 친절하고 헌신적인 수승으로 봐주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가슴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욕심까지 빤히 들여다보는 것일까?
‘어쩌다가 그런 것을 아동의 눈에 띄게 함부로 방치했을까.’
보관용이라면 남의 눈에 미치지 않는 곳에 깊숙이 감추었어야 한다. 왜 하필이면 누이의 책상서랍 속이란 말인가. 혹시 그 오빠의 침실을 그 선생은 임시의 교실로 썼을지도 모르긴 하되, 어쨌거나 보기에도 무시무시 한, 즉 아이들에게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는 악용에 적당한 물건을 초콜릿 과자처럼, 크레용 색연필처럼 무관심하게 버려둘 수 있는 그들의 생리와 심리를 진정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방치하였던 그들의 행위로 크나큰 사건이 해결되고 그로 하여 몇 사람이 특전을 얻은 것은 깊이 찬양할 일이며 통쾌하기도 이를데 없으나 선생님의 집이었다는 이 사실만은 씻을 수 없는 수치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자신들의 어릴 때와 지금의 아동들은 그 견해부터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다. 그렇다면 내 이면에 감추어진 모든 보이지 않는 결점까지라도 그들은 목묵히 관찰했다가 필요할 때에 주저없이 용감하게 토로하고 비판하고 징계할 것인즉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전보다 몇 배나 더 반성하고 채찍질하여 그들의 좋은 선생이 되어야 하겠다고 근식은 걸음걸음 다지며 다지며 걸어서 집 근처의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저쪽 공터에서 자글자글 끓는 듯한 아이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꼬마 결투의 중재인이 되었을 때도 환하게 사위의 풍경이 보였는데 느릿느릿한 보행에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 이제는 어둑어둑한 황혼이 아랫동리에 깔리고 자기 집의 언저리도 회색빛에 잠겨 있었다.
함성이 더 크게 들리면서 칠팔 명이나 되어보이는 한패의 아동들이 구보로! 하나 둘! 하는 새띤 호령에 맞추어 이쪽으로 몰려오더니, 뒤로 돌아 구보로! 하는 호령에 다시 되돌아 공터 절반쯤 되는 지점에서 멈췄다.
대장격의 아이가 지령을 내리는지 뭐라뭐라 재잘대더니 아이들은 일제히 쇳소리 같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면서 이쪽저쪽으로 흩어졌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패의 두 명이 근식의 앞을 휙휙 지나 우편으로 가고 두 명은 왼쪽 모서리에서 정지하는데 그들이 다 각각 모조권총을 쥐고 있는 것에 근식은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변괴란 말인가.’
“얘들아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냐?”
근식은 가깝게 서 있는 아동에게 물었다. 황혼 속에서 그들은 땅에 붙은 듯 더욱 작게 보였다.
“이 속에 강도랑 간첩이 숨어있어요.”
아이는 공터를 수북하게 덮고 있는 풀숲을 가리키며 또랑또랑하게 대답했다.
“뭐라구? 다시 분명 하게 말해봐!”
“이 수풀 속에 강도 한 명과 간첩 한 명이 잠복해 있어서 우리가 지금 그것들을 체포하려는 거예요. 알아들으셨어요?”
제법 조리있고 유식한 명답이 끝나기도 전에 이쪽의 아스라한 명령이다.
“돌격!”
정사각형이 아닌 장방형의 풀숲 사면에 서 있던 아동들이 일제히 숲속으로 전진해 들어갔다. 그들은 풀숲을 혜치며 뒤지다가 못 찾았는지,
“이 새끼야! 어서 나와!”
“이 새끼들이 어디로 꺼졌어?”
“야! 빨리 자수해라!”
“그래그래. 자수하면 살려준다.”
제각기 지저귀는 소리가 풀풀 들려왔다. 풀숲은 여전히 요동하고 극성스러운 아동들은 노획물을 저 먼저 찾아내려고 풀숲을 난장판으로 짓밟으며 날뛰었다.
아까의 아동들과 거의 한 또래지만 꼬마는 섞이지 않은 소위 단체행동임에 틀림없었다. 아까는 산발적인 개인의 결투에서 중재인이 되었지만 이 단체적이요 구체적인 전투에서 근식은 한 방관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묘하게도 그 노획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강도라거나 간첩이라거나의 지명을 받은 아동은 그만큼 영악하고 민첩하더란 말인가.
“앳 이놈의 새끼 나중에 나와만 봐! 막 기합을 멕일 테니까.”
한 아이가 투덜거리며 풀숲을 헤치고 나왔다. 근식은 재빨리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는 권총 쥔 손을 떼내려고 제 손목을 마구 비틀어댔다.
“겁낼 것 없어.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되니까. 강도랑 간첩을 잡으면?”
근식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대답은 상금을 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상금은 누가 주는데?”
“우리 대장이 줘요.”
“대장이 누구냐?”
“삼학년 삼반 반장 이종수예요.”
“뭐뭐 뭐라구?”
근식의 창백하게 바랜 얼굴을 아이는 어둠 때문에 알아채지 못했다.
(1976년)
2016년 12월 1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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