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언(Ryo Kunihiko) 앨범 “Echoes”
"전 어려운 음악, 어려운 사람, 어려운 분위기를 싫어해요. 제 안에서 음악은 하나의 말이고 표현이기 때문에 쉽게 전달해야 한다고 믿어요. 다만 듣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상상의 여지는 남겨두고 음악을 만들죠."
재일교포 2세 뮤지션인 양방언이 3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 `에코우즈(Echoes)` 는 그렇게 알기 쉬운 언어로 태어났다. 음악적인 용어로 `어렵게` 얘기하자면 우리의 국악과 몽골 음악, 아일랜드의 켈틱 음악, 록, 팝, 재즈 등이 어우러져 복잡 다변한 `퓨전` 음악으로 채색돼 있다.
아무리 어렵게 버무려도 들려지는 음 하나하나는 청취의 1차 관문인 귀를 넘어 2차 관문인 가슴까지 죄다 쓸어내리고 있다. 독특한 건 각 곡들이 제목에 맞게 구성을 갖췄다는 점이다.
"내 안에는 넓고 스케일이 큰 것을 좋아하는 좀 바보 같은 면이 있다"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사람 냄새 나는 악기를 죄다 끌어 쓰고 욕심을 쉽게 버리기 어려웠다."
그는 작업의 대부분을 혼자 해냈고, 서양악기를 쓰면서도 동양의 감각과 정서를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음악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를 얘기하는 것이거든요. 제 음악이 좋은 관계 설정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양방언(Ryo Kunihiko) 앨범 “Echoes”
아티스트 : 양방언(Yang Bang Ean)
발매일 : 2004-05-14
장르 : Instrumental
전곡 이어듣기
1 Pure Imagination
2 Eventide
3 Flowers Of K
4 A Wind With No Name
5 A Dream On A Sunny Hill
6 Tears & Arrows
7 Red Desert
8 In The Air
9 Forbidden Feathers
10 If I Could ...........3AM
11 Farmer's Dawn
12 Echoes
양방언의 음악과 삶은 ‘크로스오버’ 그 자체이다. 서방의 오케스트라에 의해 민속적인 색채를 표현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음악은 동서가 같이 호흡하며, 신구가 벗하고, 고요와 약동이 공존하며, 자연과 기술이 동거한다. 그가 도쿄를 떠나 나가노현의 가루이자와로 살림터를 옮긴 것은 도쿄라는 메갈로폴리스에는 부재한 자연의 친화력을 누릴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막상 집안의 작업실에는 그가 직접 구상해 만들어, 싱크로나이즈하고 있는 컴퓨터 여덟 대가 있다. 공기 물 산 달빛을 좋아하는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기술을 원하는 것이다. 얼핏 서로 배반하는 성격의 ‘자연과 테크놀로지’를 조화하려는 사고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Prince of Cheju’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공식음악이었던 ‘Frontier!’를 통해 국내에도 일정 지분을 확보한 그는 다섯 번째가 되는 신보 < Echoes >를 통해 자신의 지향인 ‘크로스오버’가 갖는 정체성을 완성하고 있다. 과연 무엇 때문에 그는 동서(東西), 신구(新舊), 정동(靜動) 그리고 기계와 자연의 크로스오버에 집중하는 것일까. 음악 외연의 확대라는 이유도 있을 테지만 ‘크로스오버야말로 포괄적이고 중립적이며 통합적인 가치인 순수를 추구하는 가장 적합한 길’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존재하는 대치되는 요소들의 퓨전을 목표하는 것은 4장의 전작을 잇는 흐름이다. 그러나 이번은 첫 곡 ‘Pure Imagination’의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크로스오버의 존재가 ‘순수의 탐구’에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가 원하는 인간과 세상의 이상향은 바로 이 순수인 것이다.
또한 이번에 그가 역점을 둔 것은 상기한 컴퓨터 대목이 시사하듯 ‘앨범제작에 있어서 기술적으로 혼자서 어느 정도까지 구현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음악적 자립의 실현이랄까. 실제로 그는 연주 녹음 및 믹싱에 이르는 작업전반의 과정 중 80%를 혼자서 해냈다.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빌리기도 했지만 나머지 사운드는 대부분 그가 채집하고 컴퓨터로 재창조해낸 음원으로 빚어낸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적 영역, 의미, 색감에 더 근접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양방언으로선 진전의 산물이다.
그는 이번 앨범을 ‘그간 자신이 만나고 영향을 준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영감을 표현한 작품’인 동시에 그것에 대한 감사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신보의 머리 곡인 ‘Flowers Of K’는 그와 같은 휴머니티가 동서의 퓨전이라는 형식으로 가장 잘 나타난 아름다운 곡이다. 여기서 K는 한국(Korea)이며 타이틀은 따뜻하면서도 힘이 있는 한국의 여러 세대 여성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관찰한 한국의 여인을 통해 아름다움과 절제를 묘사하고자 했다. 양방언의 피아노가 주도하는 가운데 닉 잉그먼(Nick Ingman)이 지휘하는 60인조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스트링 그리고 그것을 파고드는 국악의 향기 특히 청각을 세차게 흔드는 원일의 태평소는 경이로운 어울림을 주조해내면서 전통과 현대, 한국과 서방 정서의 크로스오버로 치닫고 있다. 전작의 ‘Frontier!’보다 강렬함을 약간 누그러뜨려 획득해낸 편안한 분위기와 그로 인한 대중적 흡수력이 압권이다.
이어지는 곡 ‘이름 없는 바람 - A Wind With No Name’(가제)는 전통의 요소가 그가 첫 앨범에서부터 추구해온 몽고의 민속적 소리가 된다. 몽고와 일본을 오가는 ‘티푸르그드’라는 이름의 연주자가 풀어낸 몽고의 민속악기 마두금과 양방언의 피아노의 조화가 전편을 수놓는 가운데 2년 전 몽고에서 직접 녹음해온 여성 보컬리스트 ‘체체크마’의 노래가 애절하게 스며든 몽고와 서양정서 크로스오버의 결정판이자 ‘양방언표 음악’의 축약본이다. 이 곡이 잔잔하다면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태평소가 어우러진 ‘Echoes’는 파도치듯 휘몰아치는 중력과 속도로서,우리의 감정을 고조시키며 열정적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곡이다. 이것은 위축된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부활의 메시지이며, 누구도 표현하지 못할 다른 한편의 양방언브랜드 음악이다.
하지만 그는 동서의 혼합이 줄지 모르는 이색적인 느낌이나 난해함을 싫어한다. 그는 감상자가 각 요소의 정체를 파악하기에 앞서 전체가 주는 편안과 부드러움을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하는 대중적 접근법을 선호한다. 이 점에서 아코디언과 하몬드 오르간 소리가 인상적인 ‘A Dream On A Sunny Hill’, 스스로 삼림욕이라고 일컬은 ‘In The Air’ 그리고 역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스트링과 리코더가 주도하는 ‘Forbidden Feathers’도 빼놓을 수 없다.
음악에 대한 피로감이 극심한 지금이지만 누구라도 들으면 ‘무장해제’되고 그런 뒤 재생의 희망을 품게 하는 곡들이다. 그는 ‘Forbidden Feathers’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절대로 허락받지 못할 사랑, 그래도 그리고 향하고 만다. 비극적인 결말을 알면서도 그리고 향하고 마는 운명과 그 열정...”
금지된 것에도 도전하는 그 자세는 사랑과 인생에 대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새로움으로 만연된 세상에서 외롭지만 미지의 음악으로 화합을 향해 내달리는 양방언 자신의 음악관을 표현한 것 아닐까. 여전히 ‘가장 순수한’ 사람과 음악에 헌신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앨범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온기’가 두드러진다. 인간적인 무드가 훨씬 강조되었다. 게다가 컴퓨터 기술에 의해 그러한 따뜻한 휴머니티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 깊은 메아리는 더더욱 돋보인다. 사람에 대한 사랑, 음악에 대한 열애의 과실이다. 우리는 모처럼 ‘사랑의 음악’을 듣는다.
- 임진모/ 음악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