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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菩薩의 十種究竟大事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究竟大事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恭敬供養一切如來究竟大事와隨所念衆生하야 悉能救護究竟大事와專求一切佛法究竟大事와 積集一切善根究竟大事와思惟一切佛法究竟大事와滿足一切誓願究竟大事와成就一切菩薩行究竟大事와奉事一切善知識究竟大事와 往詣一切世界諸如來所究竟大事와 聞持一切諸佛正法究竟大事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大智慧究竟事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구경의 큰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여래께 공경하고 공양하는 구경의 큰 일과, 중생을 생각하는 대로 모두 구호하는 구경의 큰 일과, 모든 불법을 오로지 구하는 구경의 큰 일이니라.
모든 착한 뿌리를 쌓아 모으는 구경의 큰 일과, 모든 불법을 생각하는 구경의 큰 일과, 모든 서원을 만족하는 구경의 큰 일과, 모든 보살의 행을 성취하는 구경의 큰 일과, 모든 선지식을 받들어 섬기는 구경의 큰 일이니라.
일체 세계의 모든 여래가 계시는 데 나아가는 구경의 큰 일과, 일체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듣고 지니는 구경의 큰 일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큰 지혜인 구경의 일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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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구경대사(十種究竟大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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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구경대사(有十種究竟大事)하니: 열 가지의 구경 대사가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조금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 허공처럼 완벽한 것, 아무리 찔러도 터지지 않는 것, 그 완벽한 큰일이 있다. 이것이 몇 가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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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공경공양일체여래구경대사(所謂恭敬供養一切如來究竟大事)와 : 소위 공경 공양 일체 여래 구경대사와 이른바 모든 부처님께 공경하고 공양하는 구경대사라.
구경대사, 완벽한 큰일이다.
수소념중생(隨所念衆生)하야 : 생각하는 바 중생을 따라서
실능구호구경대사(悉能救護究竟大事)와 : 모두 구호하는 구경 대사와
전구일체불법구경대사(專求一切佛法究竟大事)와 :전구는 오로지 구한다는 뜻이다. 일체 불법을 오로지 구하는 데 완벽한 구경대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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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집일체선근구경대사(積集一切善根究竟大事)와 :일체 선근을 적집하는 구경대사와
사유일체불법구경대사(思惟一切佛法究竟大事)와 : 일체 불법을 사유하는 구경대사와
만족일체서원구경대사(滿足一切誓願究竟大事)와 : 일체 서원을 만족하는 구경대사와
성취일체보살행구경대사(成就一切菩薩行究竟大事)와 :일체 보살행을 성취하는 구경대사와
봉사일체선지식구경대사(奉事一切善知識究竟大事)와: 일체 선지식을 받들어 섬기는 구경대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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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예일체세계제여래소구경대사(往詣一切世界諸如來所究竟大事)와: 일체 세계, 모든 세계, 모든 여래께서 계시는 여래소에 나아가는 구경대사와
문지일체제불정법구경대사(聞持一切諸佛正法究竟大事)가 : 모든 부처님의 정법을 받아 듣고 지니는 구경대사가
시위십(是爲十)이니 :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대지혜구경사(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大智慧究竟事)니라 :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대지혜의 구경사니라.
안주차법이라는 말이 저 앞에서 ‘선용기심 하면’하는 정행품에 나온다.
전에 <정행품> 책을 한 권씩 나눠드렸는데 혹시 못 받으신 분은 나중에 말씀하시고 가져가시기 바란다.
여러분들께서 안 가져가신 책은 휴면계좌의 찾지 않은 돈과 같다. 항상 책이 비치되어 있으니 가져가시기 바란다.
안주차법, 이 법에 안주한다.
‘안주한다’는 말이 무주(無住) 아니겠는가.
편안히 집착하지 않고 무착으로 살면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초발심공덕품에도 제일 뒤에 나온다.
초발심시(初發心時)에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구절과 똑같다.
안주차법이란 말이 완전한 무르익은 발심일 것이다.
글자만 약간 다르지 내용은 똑같다.
드디어 중생을 중생이라 보지 않고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을 다 버리고 난 뒤에 구호일체중생을 하되, 이중생상(離衆生相)이라. 중생상을 떠나서 회향하는 것이다.
중생상을 떠나고 나니까 그렇게 보시를 한다.
보시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계율을 잘 안 지킨다.
오늘 문수선원에는 묵담스님께서 떡공양을 하셨는데, 묵담스님은 해마다 그런 공양을 하신다. 아까 입승스님께서 공지를 못 드렸다고 제가 쉬는 시간에 말씀드렸다.
“묵담스님, 계속 하이소. 1불 2불 3, 4, 5불 이종선근(而種善根) 이어무량천만불소(已於無量千萬佛所)에 계속 하이소.”
( 2 ) 不壞廻向
가. 菩薩의 十種不壞信
佛子야菩薩摩訶薩이 有十種不壞信하니何等이 爲十고所謂於一切佛에 不壞信과於一切佛法에 不壞信과於一切聖僧에 不壞信과 於一切菩薩에 不壞信과 於一切善知識에 不壞信과於一切衆生에 不壞信과 於一切菩薩大願에 不壞信과於一切菩薩行에 不壞信과 於恭敬供養一切諸佛에 不壞信과 於菩薩巧密方便敎化調伏一切衆生에 不壞信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諸佛無上大智慧不壞信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부처님께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모든 부처님 법에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모든 성스러운 스님께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니라.
모든 보살에게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모든 선지식에게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모든 중생에게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모든 보살의 큰 서원에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모든 보살의 행에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데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보살의 교묘한 방편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는 데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부처님의 위없는 큰 지혜의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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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괴회향(不壞廻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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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불괴회향이라.
이 불괴회향은 두 꼭지로 나눠진다.
그중에 하나는 믿음, 무너지지 않는 신심이다.
늘 말씀드렸지만 무너지지 않는 신심이라고 했는데 무엇이 신심인가? 공덕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신심이라고 한다.
기신론에서는 신심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가지는 것 ‘자성이 청정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부처님을 믿는 것보다 우선이다.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정법을 믿고, 부처님의 정법을 진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을 믿어야 되지만, 자기 자신의 청정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일단 삼보를 믿기 전에 내 일심(一心)에 대한 이 만고의 보물을 잘 믿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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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불괴신(十種不壞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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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은
유십종불괴신(有十種不壞信)하니 : 열 가지 무너지지 않는 불괴신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냐
소위어일체불(所謂於一切佛)에 : 첫째는 이른바 부처님께 대한
불괴신(不壞信)과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어일체불법(於一切佛法)에 :불법에 대한
불괴신(不壞信)과 :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어일체성승(於一切聖僧)에 : 모든 불법승에 대해서 승보에 대한
불괴신(不壞信)과 :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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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일체보살(於一切菩薩)에 :일체 보살에게
불괴신(不壞信)과 :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어일체선지식(於一切善知識)에 : 일체 모든 선지식에게
불괴신(不壞信)과 :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다.
기신론 같은 데서는 ‘귀신 마장은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 하면서 이렇게 해놓았다.
수행할 때는 죽을동 살동 엎어지고 자빠지고 눈코 뜰 새 없이 푹 파면서 몇날며칠을 한다. 그런데 안 할 때는 3년이 갔는지 10년이 갔는지 모른다. 말뚝신심으로 100일 기도만 딱 해 버리고서 노는 것은 100년을 놀아 버린다. 그런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하였다. 금방 엎어졌다가 자빠졌다가 하는 사람들은 항심(恒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 문수선원에는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르고 계속 죽자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잖은가.
어일체중생(於一切衆生)에 : 모든 중생에게
불괴신(不壞信)과 :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어일체보살대원(於一切菩薩大願)에 : 일체 보살의 대원력에 대해서
불괴신(不壞信)과 :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어일체보살행(於一切菩薩行)에 : 일체 보살행에 대해서
불괴신(不壞信)과 :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불괴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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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공경공양일체제불(於恭敬供養一切諸佛)에: 일체 모든 부처님께 공경하고 공양하는데
불괴신(不壞信)과 :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어보살교밀방편교화조복일체중생(於菩薩巧密方便敎化調伏一切衆生)에 : 교묘한 방편으로 선교방편으로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는데
불괴신(不壞信)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니라
강강난화(剛强難化) 중생, 뻑세고 뻑세서 도저히 말을 안 듣는 중생을 조복하는 방법이 뭐라고 했는가? 뻑세고 말 안 듣고 억센 중생들은 힘으로 눌러버리라고 했다.
‘무슨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그러잖는가. 말로 해서는 잘 안듣고, 몽둥이로 두드려 패야 잘 듣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드러운 중생, 아주 조순한 중생들에게는 두드려 패고 억압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알아들을 만한 사람이니 법으로 다스리라고 해놓았다.
부처님이 철저하게 이 사람은 주사를 놓을지 약을 넣을지, 수술을 해야 될지, 뜸을 놔야 될지, 침을 찔러야 될지 정확하게 표현한다. 그것이 교밀방편이다.
배 아픈 데다 아까징끼를 발라버리면 골치 아프다.
그런데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아는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가진 게 그것뿐이니 머리 깨지면 된장을 발라버린다. 할 수 없다.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보살이, 이 구절도 정행품에 똑같이 나온다.
‘약제보살(若諸菩薩)이 선용기심(善用其心)하면 즉획일체승묘(則獲一切勝妙)’경계하리니. 이렇게 똑같이 나온다. 만약에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러한 법에 안주하면
즉득제불무상대지혜불괴신(則得諸佛無上大智慧不壞信)이니라 :즉득제불의 무상대지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느니라.
나. 菩薩의 十種得授記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得授記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內有甚深解得授記와能隨順起菩薩諸善根得授記와修廣大行得授記와現前得授記와不現前得授記와 因自心證菩提得授記와 成就忍得授記와 敎化調伏衆生得授記와 究竟一切劫數得授記와 一切菩薩行自在得授記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於一切佛所에 而得授記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수기(授記)를 얻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안으로 매우 깊은 이해가 있어서 수기를 얻음과, 보살의 모든 선근을 능히 따라 일으켜서 수기를 얻음과, 광대한 행을 닦아서 수기를 얻음과 눈앞에서 수기를 얻음과 눈앞이 아닌 데서 수기를 얻음이니라.
제 마음으로 보리를 증득함을 인하여 수기를 얻음과 진리[忍]를 성취하여 수기를 얻음과,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해서 수기를 얻음과, 온갖 겁을 끝내어 수기를 얻음과, 모든 보살의 행에 자재하여 수기를 얻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곧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수기를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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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득수기(十種得授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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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십종득수기, 불괴회향에서는 두 꼭지가 있어서, 가, 나 이렇게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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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득수기(有十種得授記)하니: 십종의 수기를 얻는 것이 있으니, 앞에서는 믿음을 이야기했었다. 믿음을 가지고 공덕을 지으면 당연히 뭘 얻겠는가? 수기를 얻게 될 것이다.
불괴회향에서 자부는 믿음이라고 볼 수 있겠고,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중봉선사의 좌우명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저도 옛날, 대구의 큰스님이 글씨를 써주신 것이 있어서 창문에 붙여놓고 10년 20년 살았던 것 같다.
‘수무인신(雖無人信)이라도 막수인방(莫受人謗)이라’ 남에게 믿음을 얻지 못할지라도 남에게 비방은 받지 마라 하는 구절 이다.
남에게 믿음까지는 얻지 못하더라도 비방에까지 미끄러지지는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요새 세상을 보면 아주 재미있다.
재밌다는 말은 좀 비꼬는 투다.
각득기소(各得其所)라고 계엄할 사람은 계엄하고 탄핵할 사람은 탄핵하고 다 소임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난장판 같다.
열 가지 수기를 얻는 것이 있으니까 믿음이 충분히 갖춰진 사람들한테 얻어지는 수기가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 예약이 된 것이냐.
소위내유심심해득수기(所謂內有甚深解得授記)와 : 이른바 소위 내유심심해득수기, 안으로 깊은 이해가 있어 수기를 얻는다. 안쪽에 이 불심 부처의 마음이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래장이 도대체 뭐라고 하는 데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다 보면 거기에 대해서 수기를 얻는다.
능수순기보살제선근득수기(能隨順起菩薩諸善根得授記)와 : 보살의 선근을 따라서 일으키는 수기를 얻었다.
해탈을 갖추고 제대로 보살행을 하여 선근 착한 것을 제대로 닦는 걸 가지고 수기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수광대행득수기(修廣大行得授記)와 : 광대한 행을 닦아서 수기를 얻는다.
현전득수기(現前得授記)와 : 앞에서 깊은 마음이 있고 광대한 행이 있고 대행이 이미 다 닦여지면 현전의 득수기라. 눈앞에서 수기를 얻게 된다.
불현전득수기(不現前得授記)와 : 불현전, 눈앞이 아닌 데서도 수기를 얻는다. 대면해서 얻을 수도 있고 대면하지 않으면서도 얻을 수 있다.
인자심증보리득수기(因自心證菩提得授記)와 : 제 마음으로 보리를 증득함을 인해서 얻는 수기라. 인자심증보리, 자심으로 인해서 자심이 보리를 증득함을 인해서, 자심이 증보리라. 스스로 마음에 보리를 증득했다는 것은 무엇이냐?
기신론에서는 요 대목을 정심지(淨心地)라고 한다.
오온개공이 된 청정한 마음이다. 화엄경에서는 환희지라고 한다. 이때부터는 진정한 보살 수행자라고 해서 원효스님께서는 여실수행자(如實修行者)라고 한다. 말과 행동이 똑같은 수행자는 초지인 환희지에서 나타난다.
성취인득수기(成就忍得授記)와 : 인은 중생인이 뭔지 법인이 뭔지 무생법인이 뭔지 십인품을 잘 참조하시면 된다.
성취인이라고 하는 것은 8지 보살이 얻는 무생법인이다.
화엄경에서는 8지 6지 초지 이런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 여기 십회향답에도 보니까, 1번은 좀 내용이 많았고 불괴회향은 살짝 넘어간다.
또 짐작하건데 8번 회향에 가면 내용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십회향품을 보실 때도 반야바라밀을 이야기하는 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 제6회향에 가면 60종 회향까지 보시가 굉장히 많다. 그리고 또 8지에 가면 많고 10지에 가면 더 많다.
교화조복중생득수기(敎化調伏衆生得授記)와 :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려면 뭘 잘해야 되겠는가? 무애변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무애변재는 몇 지에서 얻어지는가? 흔히 제9 선혜지(善彗地)에서 얻어진다고 한다.
교화 조복이라고 해서 익지도 않은 감을 가지고 홍시를 만들려면, 땡감을 가지고 홍시를 만들려면 상당히 난감하다. 곶감 만들려면 엔간이 9부 능선을 넘어가야 된다.
그런데 ‘난 왜 자꾸 말을 못하지?’ 빈 깡통이라서 그렇다.
솔직하게 그렇다.
글을 많이 못 배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사유가 빈 깡통이라서 그렇다. 참선을 굉장히 많이 하는 스님들을 모셔 놓으면 저절로 법문을 한다.
참새도 법문을 하는데 사람이 왜 법문을 못 하겠는가?
구경일체겁수득수기(究竟一切劫數得授記)와: 온갖 겁을 구경하여 얻는 수기와, 일체 겁을 완벽하게 소화시켰다고 하는 걸 우리가 흔히 뭐라고 하는가? 삼아승지겁이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기서는 구경일체겁이라고 해놓았다.
화엄경 십지품에서는 십지보살인 법운지(法雲地)를 네 가지로 비유한다. 바다와 같다, 마니와 같다, 산과 같다고 한다. 마니주, 여의주와 같다고 비유한다.
십지보살이 삼대 아승지겁을 끝내야 원만하게 된다고 해서 여기서는 구경일체겁수라, 모든 시간을 초탈했다고 하였다.
이런 것을 지금 우리가 하는 이세간품 여기 들어오기 전에 7회차 설법할 때도 말했다.
모든 일체겁수를 초탈하는 것을 일체겁이라고 안 하고 그때는 뭐라고 했는가? 부처님이 삼매에 드신 것을 제불찰라제삼매라고 하였다. 일념즉시무량겁이다. 일념이 무념이다.
일체보살행자재득수기(一切菩薩行自在得授記)가: 열 번째 일체 보살행에 자재하여 수기를 얻으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니라.
청량국사가 비교하기를 열 번째 일체 보살행의 자유자재한 사람은 어떤 보살 정도가 되느냐? 미륵보살이다, 라고 이야기하였다.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도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쭉 만나고 오다가 어디에서 마무리 짓고 묘각에 들어가는가? 미륵보살을 만나면서다.
보살행이 완전히 무르익으면 사람이 어떻다고 하는가? 미륵보살은 상징하는 게 무엇인가? 대자대비다. 미륵이 자씨(慈氏)잖은가.
자비심을 얻고, 그다음에 대단히 자비로워지면 지혜가 툭 터지지 않는가. 지혜와 자비. 그래서 문수보살이 쑥 드러난다.사람이 지혜롭고 자비로우니까 보현행원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법화경도 제일 마지막 품인 28품이 보현보살권발품이다.
화엄경도 제일 마지막이 보현보살이다.
우리가 맨날 강의를 마치고 회향게를 할 때도 ‘아차보현수승행(我此普賢殊勝行)’하면서 보현행원으로 끝낸다.
보현행원으로 가기 전 앞에 앞에 징검다리가 미륵보살이다. 여기서 ‘일체 보살의 행이 자재하다’ 이렇게 힌트를 하나 줘 놓고
약제보살(若諸菩薩)이: 약제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안주하면
즉어일체불소(則於一切佛所)에 : 곧 일체 부처님 처소에서
이득수기(而得授記)니라 : 수기를 얻게 되나니라.
그다음 세 번째 단락 넘어간다.
(3) 等一切佛廻向)
가. 菩薩의 十種善根廻向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善根廻向하니 菩薩이 由此하야 能以一切善根으로 悉皆廻向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以我善根으로 同善知識願하야 如是成就하고 莫別成就하며 以我善根으로 同善知識心하야 如是成就하고 莫別成就하며 以我善根으로 同善知識行하야 如是成就하고 莫別成就하며 以我善根으로 同善知識善根하야 如是成就하고 莫別成就하며 以我善根으로 同善知識平等하야 如是成就하고 莫別成就하며 以我善根으로 同善知識念하야 如是成就하고 莫別成就하며 以我善根으로 同善知識淸淨하야 如是成就하고 莫別成就하며 以我善根으로 同善知識所住하야 如是成就하고 莫別成就하며 以我善根으로 同善知識成滿하야 如是成就하고 莫別成就하며 以我善根으로 同善知識不壞하야 如是成就하고 莫別成就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無上善根廻向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선근으로 회향함이 있으니, 보살이 이것을 말미암아 능히 일체 선근으로 다 회향하느니라.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나의 선근으로 선지식의 원(願)과 같이하여 이와 같이 성취하고 다르게 성취하지 않느니라.
나의 선근으로 선지식의 마음과 같이하여 이와 같이 성취하고 다르게 성취하지 않으며, 나의 선근으로 선지식의 행과 같이하여 이와 같이 성취하고 다르게 성취하지 않으며, 나의 선근으로 선지식의 선근과 같이하여 이와 같이 성취하고 다르게 성취하지 않느니라.
나의 선근으로 선지식의 평등과 같이하여 이와 같이 성취하고 다르게 성취하지 않으며, 나의 선근으로 선지식의 생각과 같이하여 이와 같이 성취하고 다르게 성취하지 않으며, 나의 선근으로 선지식의 청정과 같이하여 이와 같이 성취하고 다르게 성취하지 않느니라.
나의 선근으로 선지식의 머무름과 같이하여 이와 같이 성취하고 다르게 성취하지 않으며, 나의 선근으로 선지식의 가득히 이룸과 같이하여 이와 같이 성취하고 다르게 성취하지 않으며, 나의 선근으로 선지식의 무너지지 않음과 같이하여 이와 같이 성취하고 다르게 성취하지 않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위없는 선근으로 회향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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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일체불회향(等一切佛廻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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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일체불회향이라. 부처님과 동등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욕바라밀을 잘해야 된다. 왜 그런가? 부처님은 이익이나 손해나 비방과 칭찬에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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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선근회향(十種善根廻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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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선근회향(有十種善根廻向)하니 : 열 가지 선근회향이 있으니
보살(菩薩)이 : 보살이
유차(由此)하야 : 이것으로 말미암아서
능이일체선근(能以一切善根)으로 : 모든 선근을
실개회향(悉皆廻向)하나니 :다 회향하느니라.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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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이아선근(所謂以我善根)으로 : 이른바 나의 선근으로써
동선지식원(同善知識願)하야 : 동(同)이라고 하는 말은 동등하다는 말이다. 선지식의 원과 동등하여
여시성취(如是成就)하고 : 이렇게 성취하고
막별성취(莫別成就)하며 :다르게 성취하지 않으며
이아선근(以我善根)으로 :또 나의 선근으로써
동선지식심(同善知識心)하야 : 선지식의 원력과 같이하고, 또 선지식의 마음과 같이하여
여시성취(如是成就)하고 : 이렇게 취하고는
막별성취(莫別成就)하며 : 다르게 성취하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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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선근(以我善根)으로 : 나의 선근으로써
동선지식행(同善知識行)하야: 선지식의 행과 같이하고
여시성취(如是成就)하고 : 이렇게 성취하고.
그러니까 무엇인가? 원력도 선지식과 똑같이, 마음도 선지식 똑같이, 행도 선지식과 똑같이 성취하고는
막별성취(莫別成就)하며 : 다르게 성취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읽으니까 야코가 죽는다. 힘이 쭉 빠진다. 어찌하면 선지식과 같이 이렇게 행동하고 말할 수 있을까?
이아선근(以我善根)으로 :내 선근으로써
동선지식선근(同善知識善根)하야 : 선지식의 선근과 같이 하여
여시성취(如是成就)하고 : 이렇게 성취하고
막별성취(莫別成就)하며 : 다르게 성취하지 않고, 선지식처럼 산다는 것이다.
이아선근(以我善根)으로 : 나의 선근으로써
동선지식평등(同善知識平等)하야 : 선지식의 평등함과 같이 해서, 선지식의 평등과 동하야
여시성취(如是成就)하고 : 이렇게 성취하고
막별성취(莫別成就)하며 : 다르게 성취하지 않으며
이아선근(以我善根)으로 : 나의 선근으로써
동선지식념(同善知識念)하야 : 선지식의 생각과 같이하며
여시성취(如是成就)하고 : 이렇게 성취하고
막별성취(莫別成就)하며 : 다르게 성취하지 않는다.
*
이아선근(以我善根)으로 : 나의 선근으로서는
동선지식청정(同善知識淸淨)하야 : 선지식의 청정과
여시성취(如是成就)하고 : 같이하며 선지식의 그런 무착 집착 없는 그 마음과 같이 이렇게 성취하고는
막별성취(莫別成就)하며 : 다르게 성취하지 않는다. 깨끗하게 하게 조촐하게 선지식처럼 산다는 것이다.
이아선근(以我善根)으로 : 나의 선근으로써
동선지식소주(同善知識所住)하야 :선지식의 머무른 바와 같이하여, 선지식 소주도 있다.
여시성취(如是成就)하고 : 이와 같이 성취하고
막별성취(莫別成就)하며 : 막별성취라 다르게 성취하지 않는다.
이아선근(以我善根)으로 : 나의 선근으로써
동선지식성만(同善知識成滿)하야 : 내 선근이 선지식만큼 될 때까지 노력한다는 것이다. 성만이라고 하는 것은 원만 성취된 것을 성만이라고 한다.
입법계품에도 제일 뒤에 나오는 묘각(妙覺) 묘한 깨달음을 이룬 보살들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성만선지식이라고 한다.
십신선지식, 십주선지식, 십행선지식, 십회향선지식, 십지선지식, 등각선지식, 묘각선지식을 성만선지식이라고 한다.
세 분이다. 미륵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이 세 분을 성만이라고 한다. 완성되었다.
여래명호품에도 보면 완성된 달, 원만월(圓滿月)을 부처님이라 한다.
부처님의 이름이 뭐냐? 원만월이다.
부처님의 또 다른 이름은 뭐냐? 사자후다.
부처님은 늑대나 닭소리 이런 소리가 아니고 사자의 소리, 사자후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자후가 화엄경보다 열반경 사자후보살품에 더 자세하게 잘 나온다.
사자후 보살이 있는데 여덟 가지 조건으로 사자후를 할 때 사자새끼가 사자를 따라가는 것, 그 대목 중에 제일 드라마틱한 대목이 ‘야간이 100년 동안 사자 뒤를 쫓아다니더라도 사자후를 할 수 없다’는 대목이다.
야간은 족제비, 여우 같은 놈이다.
그런 대목을 보는데 찔끔했다.
그런데 사자새끼는 3년만 자라면 온갖 잡수(雜獸)들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다. 3년 자란 사자새끼가 사자후를 하면 백수들의 뇌가 찢어져 버린다. 다른 잡념이 다 사라진다.
그래서 부처님 이름을 원만월이요, 여연화요, 사자후요, 고타마요, 싯다르타요, 석가모니요, 비로자나다, 이렇게 여래명호품에 보면 자세하게 나온다.
여시성취(如是成就)하고 : 선지식의 가득한 이름과 같이 이렇게 성취하고
막별성취(莫別成就)하며 :다르게 성취하지 않고
*
이아선근(以我善根)으로 : 나의 선근으로써
동선지식불괴(同善知識不壞)하야 : 선지식의 무너지지 않음과 같이하여
여시성취(如是成就)하고 :이렇게 성취하고는
막별성취(莫別成就)가 :다르게 성취하지 않는 것이
시위십(是爲十)이니:이것이 열 가지니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안주하면
즉득무상선근회향(則得無上善根廻向)이니라 : 위없는 선근회향을 얻느니라.
나. 菩薩의 十種得智慧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得智慧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於施에 自在하야 得智慧하며 深解一切佛法하야 得智慧하며 入如來無邊智하야 得智慧하며 於一切問答中에 能斷疑하야 得智慧하며 入於智者義하야 得智慧하며 深解一切如來의 於一切佛法中言音善巧하야 得智慧하며 深解於諸佛所에 種少善根이라도 必能滿足一切白淨法하야 獲如來無量智하야 得智慧하며 成就菩薩不思議住하야 得智慧하며 於一念中에 悉能往詣不可說佛刹하야 得智慧하며 覺一切佛菩提하야 入一切法界하야 聞持一切佛所說法하고 深入一切如來種種莊嚴言音하야 得智慧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諸佛無上現證智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지혜를 얻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시에 자재하여 지혜를 얻으며, 모든 불법을 깊이 알고 지혜를 얻으며, 여래의 그지없는 지혜에 들어가 지혜를 얻음이니라.
모든 문답하는 가운데서 의심을 끊고 지혜를 얻으며, 지혜 있는 이의 이치에 들어가 지혜를 얻으며, 모든 여래가 일체 불법 가운데 말씀하심이 교묘함을 깊이 이해하고 지혜를 얻음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조그만 착한 뿌리만 심어도 반드시 능히 일체 희고 깨끗한 법을 만족하여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를 얻는 줄을 깊이 이해하고 지혜를 얻으며, 보살의 부사의하게 머무름을 성취하고 지혜를 얻으며, 잠깐 동안에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의 세계에 나아가서 지혜를 얻음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깨닫고 모든 법계에 들어가서 모든 부처님의 말하는 법을 들으며 모든 여래의 갖가지로 장엄한 말씀에 깊이 들어가서 지혜를 얻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현재에 증득하는 지혜를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득지혜(十種得智慧)
*
보살은 열 가지 지혜를 얻음이 있다.
지혜를 얻는다고 하는 것, 지혜로운 사람들은 회향할 수 있는 열 가지 행동의 완성이 있다.
육조단경이나 금강경에서 육조스님의 해석을 빌리자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나무라지 아니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기 때문에 저보다 좀 못하다 싶으면 막 찍고 달달 볶는다. 특히 강사 모씨는 더하다. 모스님은 달달달달 제자들을 볶는다. 제가 반성한다.
여러분들께는 선배님들도 계시고 하니까 그렇게 안 하는데 학인들에게는 후라이팬에 멸치 볶듯이 달달달달 볶는다.
그런데 요즘은 볶을 학인도 없다. 학인이 없으니까 빈 후라이팬만 볶는다.
복잡복잡 하면서 공부할 때가 좋았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같이 성장하는 것이다.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은
유십종득지혜(有十種得智慧)하니 : 열 가지 지혜를 얻음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소위어시(所謂於施)에 : 소위 어시에
자재(自在)하야 : 자재하여
득지혜(得智慧)하며 : 지혜를 얻으며
심해일체불법(深解一切佛法)하야 :일체 불법에 대해서 깊이 제대로 아는 것에서
득지혜(得智慧)하며 : 지혜를 얻고
입여래무변지(入如來無邊智)하야 :부처님의 한량없는 지혜에 쑥 들어가서 이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득지혜(得智慧)하며 : 지혜를 얻으며.
지혜를 얻는다는 말씀이 본지풍광(本地風光) 자기의 고향집에 편안히 앉아 보는 것이다.
어일체문답중(於一切問答中)에 :일체 문답하는 가운데서
능단의(能斷疑)하야 :의심을 끊고
득지혜(得智慧)하며 :지혜를 얻으며, 특히 경전의 말씀은 금강경이나 능엄경이나 화엄경도 문답이 많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이세간품도 문답이잖은가. 보혜보살이 2백가지로 묻고 보현보살이 2천 가지로 답하시는 대목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묻고자 하는 것도 신심이다. 물을 만한 분이 물으셨고, 대답하실만한 분이 대답하시니까 그것 역시 신심이다. 그 신심으로 인해서 옆에 있는 우리도 신심을 얻게 된다.
입어지자의(入於智者義)하야 : 지혜 있는 이의 이치, 지혜 있는 부처님의 지혜 그런 이치에 쑥 들어가서
득지혜(得智慧)하며 : 지혜를 얻는다.
선지식의 의도하는 바에 따라서 지혜를 얻고.
심해일체여래(深解一切如來)의 :심해 일체 여래의 모든 여래의
어일체불법중언음선교(於一切佛法中言音善巧)하야: 일체 불법 가운데의 말씀에 선교, 교묘한 데서 이해하고
득지혜(得智慧)하며 : 지혜를 얻는다.
화엄경을 보다가 조그만 소견만 있으면 팔딱팔딱 뛸 정도로 기쁠 때가 많다. 특히 아까처럼 예를 들자면 ‘이 대목은 기신론하고 똑같은데?’ 이러면서 보면 너무 똑같잖은가.
‘이 대목 여래명호품하고 이세간품이 똑같은데?’ 이러면서 무슨 뜻일까 싶어서 그런 대목은 돌려보고 또 돌려본다.
맛집은 가지 말라고 해도 갔던 집을 계속 가는데 책은 한번 본 것은 다시는 안 본다.
왜 그런가? 맛을 몰라서 그렇다.
어른스님 같은 경우는 그 맛을 아신다. 오랜 세월 동안에 연구해서 툭 터져 버리셨으니까 우리하고 전혀 다르게 아시는 것이다. 옆에 듣는 사람은 재미 하나도 없을 수도 있는데 당신 혼자는 계속 재미있으시다.
그러니까 스님이 제일 아쉽고 저한테서 조금 듣기 싫어하시는 말씀이 “스님, 건강 생각하셔서 25분 30분까지만 하세요.” 하는 말씀이다.
“아, 나는 좀 더 하고 싶은데? 45분 하면 안 될까?”
“조금씩 조금씩 하십시오. 가늘고 길게 가셔야 됩니다.”
너무 신이 나셔서 한 시간 하시면 어떻게 되겠는가? 건강을 해치신다. 오래오래 하시려면 조금씩 조금씩 하셔야 된다.
심해어제불소(深解於諸佛所)에 : 모든 부처님 처소에
종소선근(種少善根)이라도 : 조그만 선근을 심어도
필능만족일체자정법(必能滿足一切白淨法)하야 : 모든 백정법, 백법이 있고 흑법이 있다. 백법은 선법이라고 하고, 흑법은 악법이라고 하지 않는가. 선악이라고 하듯이.
백정법은 청정법 이상의, 선도 악도 다 초월해 버린, 다 포용하는 사람과 같다.
화엄경에서나 법화경에서 공히 수용하는 사람이 독극물 중에 독극물 아주 악독한 사람인데 제바달다다.
‘제바달다가 성불해야 모든 성불의 완성이다’ 라고 법화경에도 나오고 화엄경에도 나온다.
화엄경에는 그 근거가 대원정진력구호일체중생주야신(大願精進力救護一切衆生主夜神) 편에 나온다. 선복태자(善伏太子)가 바로 그 대목에서 ‘그때 나를 죽이려고 했던 오백 명의 대신들이 누구냐? 전생에 저기 있는 저 제바달다의 무리들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있는 제바달다가 전생에서부터 제바달다 짓을 했다. 그런 사람들이 다 성불을 해야 성불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부처님 뜻은 모든 사람이 전부 성불의 보배를 나눠 가지는 것이다. 법화경 같은 데는 어떤가? 옷 속에 보배다. 또 궁자유(窮子喩)도 있다. 아들이 집을 잃어버렸다지만 원래 자기의 휘황찬란한 집이 있잖은가.
그런 것이 모두 ‘사람사람이 전부다 보배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보배다’ 이런 말이다.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다’ 법화경에도 그렇고 화엄경에도 공히 그렇게 나오는 것이다.
지금 종소선근(種少善根)이라도 이것은 우리가 기억할 때 어느 대목에 나오는가? 여래출현품에 보면 이 대목이 나온다. 작은 성냥개비만한 불씨 하나라도 공덕을 지으면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라고 하였다.
그 근원은 여래출현품에 자세하게 나온다.
삶이 쓸쓸하고 외로우면 보시라고 제가 여러분께 나눠드린 화엄경 도표 있잖은가. 여래출현품 옆으로 쭉 가면 그 게송을 써 놓았다.
제가 어른스님께 ‘스님 혹시 화엄경 게송 중에서 이 도표에 실어서 여러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게송 좋은 게 있습니까?’ 하고 여쭤보니 ‘그 게송을 실어라’ 하셨었다.
조그만 공덕이라도 짓는 것을 우리 삶의 아주 좋은 것으로 여겨야 될 것이다.
‘모든 백정법을 만족한다’ 이것은 바로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다. 무박(無縛) 무착(無着)이다. 집착하고 구속된 것에서 완전 해탈법을 만족해서
획여래무량지(獲如來無量智)하야 : 여래의 한량 없는 지혜를 얻는 줄 깊이 이해하고
득지혜(得智慧)하며 : 지혜를 얻는다. 이런 것을 보면 ‘아, 화엄경 잘 써놨다’하게 된다. 다음은 여덟 번째
*
성취보살부사의주(成就菩薩不思議住)하야 : 보살의 부사의하게 머무름을 성취하고
득지혜(得智慧)하며 : 지혜를 얻으며
어일념중(於一念中)에 : 한 생각 사이에, 잠깐 사이에
실능왕예불가설불찰(悉能往詣不可說佛刹)하야 :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에 나아가서
득지혜(得智慧)하며 : 득지혜한다. 조금의 시간도 놓치지 않는다. 항시 부처님 곁에서 일념도 놓치지 않는다 이런 뜻이다.
우리가 천수경 할 때 맨날 이 구절을 한다.
보례진언(普禮眞言) 아금일신중(我今一身中) 즉현무진신(卽現無盡身) 변재삼보전(遍在三寶前) 일일무수례(一一無數禮) 내 지금 조그만 한 개피 향을 사루지만 아금지차일주향(我今持此一炷香) 이 향이, 지금 말하고 연설하고 보고 듣고 하는 이것, 이 일주향이 변성무진향운개(變成無盡香雲蓋) 무궁무진한 향구름이 되어 감로비를 내려서 일체중생이 우리가 오늘 공부하고 했던 이 공덕으로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이것이다.
아까 입승스님께도 말씀드렸지만 강원의 교과서를 출가해서 4년 동안 10년 동안 가르치는 것보다 염불문을 고대로 가르치면 좋겠다. 그러면 화엄의 도리라든지 인생의 도리가 정말 제대로 전해질 것 같다.
사람이 부모님께 과일도 좋은 과일을 올려야 되고 제사나 공양을 올리든지 할 때도 다 좋은 것으로 정성스럽게 올린다.
음식도 그렇게 정성스럽게 하는데 조상이라든지 돌아가신 분들에게 올리는 염불문은 오죽 잘 다듬어 놨겠는가.
염불문을 보면 전부 불생불멸만 이야기해 놓았다.
생멸에 대해서 죽고 슬프고 이런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해놨다. 아까 이야기하다가 다른 길로 갔지만 마나라존자(摩拏羅尊者)가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나 처처에 실능유(實能幽)라. 마음이 이곳저곳 다 굴러가지만 가는 곳마다 마음이 심오하고 거룩하다라고 하였다.
오늘도 하루종일 눈이 심오하고, 하루종일 귀가 심오하고, 말초신경이나 중추신경이나 사람 자체가 너무 심오하다.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은 생각할 것도 없이 너무 심오하다. 그런데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그 대목이 제가 어릴 때 이해가 안 됐던 대목이다.
수류(隨流) 이 말초신경을 따라서 색성향미촉법을 따라서 요렇게 끝에 나와 있는 것을 따라서, 그림자를 따라서, 소발자국을 따라가서 소를 딱 잡아버리는 것이다.
수류해서 흐르는 마음을 따라서 흐르지 않는 인득성이라.
심성은 아까 뭐라고 했는가?
심체는 이념이라고 했잖은가. 무념까지 딱 잡아서 소를 잡아 버리면 수류 이 흐름을 따라가다가 흐름에서 다시 역류를 해서 착 올라가다가 수류인득한다. 완전히 인가하고 탁 증득해버리면 성(性) 심성자리를 자성자리를 봐버리면, 견성을 해 버리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근심도 없고 슬픔도 없고 기쁨도 없다.
희노애락이 없다는 것이다.
무안이비설신의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나라존자가 제자인 학늑라존자에게 일러줬던 게송이다.
제가 어릴 때 왜 이해가 안 됐냐면 서장을 보다 보면 인(認)자가 인정하다의 인(認)자가 오인하다라고 많이 쓴다.
특히 그 대목에 나올 때 서장 본문에 이런 것이 나온다.
명태 눈알을 오인해서 진주로 삼지 말라.
원효스님이 그렇게 해놨다.
너희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명태알인지 진주알인지 분간이 안 간다. 기신론 같은 것이 네 눈에는 안 보인다.
이렇게 원효스님이 서문에 딱 써놨다.
뿌리를 잘라서 가지에 갖다 붙이고, 이 옷깃을 잘라서 네 소매에 갖다 붙여서 되도 않는 소리를 하고, 생멸인지 불생불멸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너희는 수행을 안 하고 보살행을 안 하기 때문에 책인지 경전인지 아무것도 분간이 안 된다.
경전이 생명이라고 하는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지식쪼가리로 알 것이다, 이렇게 해놨다. 아무나 보는 책이 아니다. 책을 글을 몰라서 못 보는 것이 아니다,
육조스님도 금강경을 해설하면서 그렇게 해놓았다.
제불(諸佛)은 차경출(此經出)이라.
일체제불이 부처님이 이 금강경에서 나오셨다.
그런데 이때 모든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글자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네 마음 심성의 경전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내 해설 육조스님 해설한 것을 볼 필요가 없다.
아직도 어두운 사람들은 길잡이 삼아서 내 이정표가 필요하지만, 길을 아는 사람은 자기 집에 가는 데 이정표를 보고 갈 필요가 있겠느냐. 저기서 여기까지 오는데 네비게이션을 켜서 내 방에 들어가고 이러면 이상하잖은가. 수퍼마켓에 갈 때도 네비게이션 켜고 올 때도 네비게이션 켜고 그러면 이상하다.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마음의 근본 자리에 불생 불멸로 돌아가기만 하면 기쁨과 슬픔이 없다.
그리고 서장에서 그다음 대목을 한참 가다 보면 제오영식(第五令息)이 불기(不起)니 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섯 번째 아들이 죽어서 병석에서 이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참선한다고 스님 밑에서 공부 배우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묻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다리 뻗고 울고 싶을 때 양껏 울어라. 울되 그 슬픔에 젖지 말고 몸 상하지 말고,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되 웃음에 도취되지도 말고 자연스럽게 결대로 살아라’ 라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참으로 매끄럽다.
나무를 다듬을 때 자귀질을 하지 않는가.
톱질도 하고 자귀질도 하는데 자귀질은 좀 거칠다.
화엄경은 대패질이 아니고 완전히 위에다가 기름칠까지 다 해놓은 듯이 매끄럽다.
거기다 우리가 괜히 자귀질하고 톱질을 해서 오히려 결을 거칠게 만든다.
선어록이나 선시, 도닦은 사람들의 글은 어떤가? 고려청자 같다. 매끄럽다. 어찌 글을 이렇게 잘 써놨는지 부럽다. 깨달은 마음에서 툭 튀어나온 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흉내 낸다고 해도 안 되는 사람은 안된다.
제가 사진을 찍어 놓으면 ‘스님 카메라 뭐 써요?’꼭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카메라만 좋은 거 있으면 자기도 잘 찍는 줄 안다.
요즘 제가 잘 찍는 사진이 산다화다.
그래서 제가 가끔씩 노래한다.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어릴 때는 그냥 그런 노래다 싶었지만, 요새 보면 이 말법시대에 저 산다화가 이 겨울에 꽃이 피어 있는데, 이 화엄경 공부하는 사람들이 산다화 같다, 이런 생각을 한다.
따뜻할 때 누가 꽃을 못 피우는가.
기한에 발도심이라, 우리는 산다화꽃이다.
산다.
각일체불보리(覺一切佛菩提)하야 :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깨닫고
입일체법계(入一切法界)하야 : 모든 법계에 들어가
문지일체불소설법(聞持一切佛所說法)하고 :부처님의 말씀하시는 법을 들으며
심입일체여래종종장엄언음(深入一切如來種種莊嚴言音)하야 :모든 부처님의 갖가지로 종종장엄 언음을 말씀에 깊이 들어
득지혜(得智慧)가 : 지혜를 얻나니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일체제불무상현증지(則得一切諸佛無上現證智)니라 : 모든 부처의 위 없는 현재에 증득하는 지혜를 얻느니라.
오늘은 열 가지 회향의 세 번째 등일체불회향까지 했다.
근념하셨다.
먼 길에 눈도 오고 했을텐데 살펴서 잘 다녀가시기 바란다.
(죽비소리)
하강례
우리들, 화엄의 삶을 산다
아침 8시 통근길에 큰스님과 함께 읽는 화엄경은 설명절을 일주일 앞두고 1월 21일에 제 63권이 끝났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러 다니면서 만난 열 번째 선지식은 승열바라문이다. 2023년 6월 29일 첫 번째로 큰스님과 함께 승열바라문을 읽었을 때는 고관절 수술 후 재활훈련을 하시고 화엄전으로 오시고 한달쯤 후였다. 법문을 해설하시면서 큰 괴로움을 겪고 나신 소회도 곁들여 주셨지만, 승열바라문을 ‘불을 숭상하는 선지식’으로 우선 소개해 주셨었다.
이번에는 그런 소개조차 생략하셨다. 곧바로 보통의 우리들 삶 속에 승열바라문을 모셔왔다.
“거기에서 아주 독특한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승열바라문은 불 속에 뛰어들라는 가르침을 내립니다. 그 불이 무슨 불이겠습니까. 화중연화(火中蓮華) 불이 활활 타는 삶 속에서도 연꽃을 피우는 불일 것입니다.”
“그 불의 의미를 모르는 선재동자는 의심을 하게 됐고 그 뜻을 알게 된 모든 사람들은 아주 찬탄을 마지않는 광경입니다.”
“다섯 군데 뜨거움으로, 오열자신(五熱炙身) 한 곳만 불에 데어도 못 견디고 고통이 심한데 다섯 군데, 오근이라고도 할 수가 있고 오체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다섯 군데 뜨거움으로 몸을 볶을 적에, 몸을 태울 적에”
“이 사바세계 중생들은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 차리고 마음을 고쳐먹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게 이 승열바라문이 권하는 뜨거운 맛 아니겠습니까.”
하하, 짧게 웃으셨는데 선정 죽비같이, 법사이신 스님께서 우리들 청중과 동참하여 법문을 듣고 계신 순간 같았다. 몰입이 더 되었다.
“그렇게 해석하니까 아주 그럴듯하네요. 승열바라문이 권하는 이 뜨거운 불, 불구덩, 불이 활활 타오르는 거, 그게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만나는 뜨거운 맛입니다. 어제 어떤 불자들 한 팀이 왔었는데 내가 승열바라문 이야기를 계속해서 조금 하면서 ‘모두 뜨거운 맛을 불맛을 많이 보시고 살았죠?’ 내 생각만 하고 그렇게 말했더니 진짜 뜨거운 맛을 봤는지 숙연하더라고요. 숙연해요. 아무 대답이 없어.”
“뜨거운 맛 제대로 보면요. 이 세상에 좋은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재색신명수 그 무엇도 좋아할 거리가 못되고 안이비설신 그 모든 것들에 즐거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도 즐거울 것이 없습니다. 이 몸이 타고 궁극에는 이 몸까지 사라지는 정도의 뜨거운 맛을 겪게 되는데 무슨 즐거운 음악이 어디 있습니까. 즐거운 춤, 즐거운 노래 아무것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뜨거운 맛, 인생의 뜨거운 맛을 보면 보리심을 내게 돼 있습니다. 기한에 발도심이라고 우리 어릴 때 그때 50년대 말 60년대 초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그때만 해도 어려운데 그전에는 더 어려웠겠죠. 그래서 절에서는 늘 내려오는 말이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 주리고 추워야 거기에서 도닦을 마음이 생긴다. 기한에 발도심 그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승열바라문은 아주 독특한 선지식이에요.”
“다섯 군데 뜨거움으로 몸을 볶을 적에, 안이비설신 그렇죠.그야말로 오근으로써 뜨거운 맛을 한껏 보여주네요. 저 같은 경우는 물론 병이 나서 수술을 했고 수술을 또 잘못해서 더 힘든 고통을 겪으면서 그야말로 기절을 했다가 아파서 깨고, 아파서 또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기절을 하고, 일일 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萬死萬生) 그런 표현이 있거든요. 만 번 죽고 만 번 깨어난다. 그래요, 되게 고통스러우면 기절합니다. 아픈 상태로 기절했는데 또 어느 정도 지나면 깨어나거든요. 아파서 깨어납니다. 깨어나면 또 아프고 아프면 기절하고 그게 일일 일야 만사만생이더라고요. 순리로 살다가 그런 고통은 겪지 않고 일생을 마칠 수 있으면 좀 좋겠습니까. 그러나 살다보면 이런저런 경우를 겪게 됩니다.
몸이 아파서 그럴 수도 있고 또 인연을 잘못 만나서 어떤 인연 때문에 그렇게 일일 일야 만사만생,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을 겪기도 하죠. 세상에 살면서 인연을 맺지 않고 살 수도 없고 또 인연을 맺으면 다 인연이 좋게만 되는 것이 아니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늘 조심하고 겸손하고 사양하고 하심하고 그래야죠.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 보니까”“이런저런 인연이 또 펼쳐지고 그러다 보면 좋은 일도 많이 있지만 기절할 정도의 아픈 고통도 많이 겪게 되고 그렇습니다. 이 승열바라문이 그러한 것을 다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그렇게 불구덩이에 집어넣어요. 불구덩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법문을 했음에도 여러 사람들이 찬탄하는 특별한 선지식입니다.”
“뜨거운 맛을 보일 적에 그게 어떤 인연으로 어떤 관계로 뜨거운 맛이 됐던간에”“이 바라문이 우리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게 했습니다.”
“아주 독특한 선지식이고 또 우리가 사바세계에 살면서, 사바세계는 뭡니까? 감인대(堪忍待) 참고 견디고 기다리면서 살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삼계는 화택이고 고해다 하는 그런 것을 아주 역력히 ‘불구덩이에 떨어져라, 뜨거운 맛을 보라’ 하는 이 법문으로써 모든 의미를 다 담고 표현해보는 선지식입니다. 우리도 이해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다 한두 번쯤은 겪어봤을 내용입니다. 뜨거운 맛 안 보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런 것을 슬기롭게 지혜롭게, 보다 더, 그 뜨거운 불길보다도 더 능가하는 원력과 의지로써 이겨내는 것, 그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 세상은 그렇게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견딜 감(堪)입니다. 감인대(堪忍待)”
화중연화 봉정식 이후에 다음카페 염화실에는 진여화 보살님이 날마다 정성스럽게 <무비스님 이야기>책을 분절해서 올려주신다. 큰스님께서 승열바라문에 대한 법문을 해주실 즈음 감인대와 함께 사형이신 통광스님이 칠판에 써주신 길상여의(吉祥如意)라고 쓴 글자가 새겨진 화엄전 칠판 그림이 올려졌다. ‘화엄경 시대’라는 제목 다음으로 직지출간 기념법회 이야기도 올려졌는데 읽으신 분들이 댓글로 직지 봉정식날의 무지개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했다.
그때 맑은 하늘에서 세 번의 무지개를 봤는데 용학스님은 네 번의 무지개를 봤다고 하셨다고 일각심 보살님이 전언하셨다.
이번 화중연화 봉정법회에는 무지개 대신 아주 특별한 모양의 구름들을 봤다는 댓글들도 속속 올라왔다.
감인대, 길상여의
화엄으로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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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신론에서는 신심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가지는 것 ‘자성이 청정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부처님을 믿는 것보다 우선이다... 고맙습니다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