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저녁 내가 먹다 남긴 피자 조각 위의 소세지들이 아침부터 안방구석에서 번식을 시작했다 엄마가 시집 올 때 해 온 베이지 색 장롱의 문을 뜯어 암퇘지 한 마리가 우리를 만들고 그 곳에 들어앉아 동글동글한 비엔나 소세지를 생산하고 있었다 나 암퇘지 몰래 그것들을 몇 개 튀겨 먹고 출근을 했다
2 버스 정류소에서 머리에 꽃을 심은 김과장을 만났다 사람들이 매일 대머리라고 놀려댔더니 머리에 꽃을 심어왔다 난 오히려 잔디가 더 어울릴 뻔했다고 심각한 얼굴로 충고했다 그러자 김과장의 입에서 복숭아 두 개가 굴러 나왔다 통근버스에 밤나무들이 타고 있었다 얼마나 따끔거리고 시끄럽던지 운전사는 나무의 허리통을 오려내 의자를 만들어 버렸다
3 아침나절에 내 책상 위에 커다란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 발신인은 귀먹은 노인이었다 열어보니 내가 교보문고 앞길에서 세 번 울린 자동차 경적소리였다 난 깜짝 놀라 그 노인의 보청기를 빌려 썼다 내 귓바퀴가 자동차 바퀴가 되자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난 얼른 서랍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4 점심시간에 박 지은씨가 하얗게 질려 식당으로 뛰어왔다 배낭에 절구통 하나를 넣은 토끼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달에 가려나, 사무실로 들어가니 한 마리의 토끼와 몇 마리의 토끼가 서로 붙어 주먹질이었다 난 잘 아는 늑대에게 전화를 했다 이빨이 다 빠진 늑대가 찾아왔다 그 사이, 놀란 몇 마리의 토끼는 집으로 돌아갔다
5 오후에 핸드백에 나 있는 푸른 이빨자국에 국화가 만발했다 국화를 몇 송이 꺾어 김과장의 책상에 꽂았더니 김과장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김과장은 내게 울먹이며 고맙다고만 했다 김과장의 마누라는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난 해를 뚝 따다 달과 반쯤 섞어 양푼에 넣고 쓱싹 쓱싹 반죽을 했다 그 다음 동그스름하게 빚어 다시 하늘에 갖다 놓았다
6 퇴근길 구두에 붉은 반점이 돋았다 동백 마트 옆 구두 병원의 의사가 며칠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병명은 스트레스성 과대망상. 당분간 푹 쉬고 약물치료를 받으면 곧 괜찮아 질 것이라고 한다 나 맨발로 집에 돌아왔다
[감상] 낯섦에서 오는 친숙함. 우선 이 시는 재미가 있습니다. 프로이드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잠재된 혹은 억눌린 본능과 무의식을 시에서 구현해 냈다고 할까요. 어쩌면 시 속의 상황들은 현실의 또 다른 시적 반영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가 좋은 이유는 현실과 시적 상상력을 동질화시킴으로서 문학적 깊이를 드러낸 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