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이다.
정세균표 교회탄압과 차별금지법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다.
차금법에 대한 우리 진영의 주장들을 보면서 느끼는 답답함은 고구마100개를 음료없이 먹는 것과 같다.
열심히 뛰는 활동가들에게 실탄이 지급되어야 한다.
이 실탄은 적전술을 이해한 상태에서 등장한 대응방안이
전제 되어야 한다.
1. 인권위가 사용하는 차별의 개념에 대한 이해
- 이 개념의 문제를 전제로 본질적으로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해야 한다.
이정훈 교수의 분석에 분노하시는 자칭 전문가 분들은 스스로 다음의 질문에 답해 보시기 바란다.
1) 정의당안과 인권위안의 차이는 무엇인가?
2) 이 차이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가?
3) 설교와 전도를 이 법이 직접 처벌대상으로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교와 전도가 탄압받을 것이라는 우리측 주장이 가짜뉴스라는 언론과 인권위의 주장에 뭐라고 반박할 것인가?
- 참고로 정답은 필자가 기독일보에 기고한 글에 나온다.
오픈북으로 시험봐도 좋다.
4) 이준일 교수나 홍성수 교수가 주장하는 '차별'에 대해 설명하고,
이 논리를 반박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2. 차별시정 방법에 대한 분석과 비판
- 차별을 정의하는 좌파이론을 모르니 차별유형에 따라 어떻게
제재하는지 (이 제재의 위험성과 대응방안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지난 국가인권기본계획(NAP) 반대투쟁 때도 대응한다고 뜨겁게 일어나 패널티킥 골문 앞에서 똥볼 차듯이 투쟁한 것도 이런 문제가 상존하기 때문이었다.
'성평등' 이란 단어가 그들의 계획서 속에 몇 번 나오는가를 카운팅 하는 수준은 분석이 아니다.
아마도 이런 아마추어적 분석(?)을 하는 수준으로는
필자가 기독일보에 기고한 차금법 분석에 관한 글을 읽어도
차금법(안)에서 여당과 협상이 필요할 때 무엇을
1번으로 제시해야 될지 파악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성적 지향'이나 '성별 등'이라는 단어에 집착해 온 전략없는 투쟁의 결과로 이런 단어 삭제해준다는 협상에 걸려들 수 있다.
그동안 이런 용어들에 집착한 반동성애 홍보와 운동이 역으로 덫이 될 수 있음이 현실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정확하게 독소조항의 위험성의 순위를 정해서,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열심히 뛰기만 한다는 뜻이다.
전략이나 전술을 가진 감독없이, 각 선수들이 각자 열심히 뛰는 축구팀을 상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상대팀은 이 좌충우돌을 구경하다가 자살골 넣기를 기다리거나,
역공으로 쉽게 이길 수 있다.
3. 전략부재
이 부분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리더를 차처하는 분들께 질문해 보시라- 위험한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하죠? 대답은 "잘-", "열심히-" 라는 동어반복의 답이 메아리 칠 것이다.
반드시 전략 속에는 교회 밖의 시민들을 설득할 방안도 포함되어야 한다.
4. 표절은 해도 적용은 하지 않는다.
우리 진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마추어리즘이 아니다.
도덕불감증이 가장 큰 문제다.
소영웅이 되기 위해, 자기 이름을 위하여-
중요한 투쟁에서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이용해 자기 이름을 알리기 위해
소영웅심에 뛰기 때문에 활동의 위력이 역설적으로 감소한다.
타인의 저작을 함부로 표절해서 자기 지식인양,
자기 아이디어인양 겁도 없이 출판하고,
표절인 줄 알면서도 진영 논리로 띄워주고,
떠들고 다녀도 원작자의 전략은 정작
자신들의 활동에 적용하지 않는다.
늘 하던대로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다.
표절은 도둑질이다.
동성애 정치투쟁과 맞서기 위해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리 파웰 목사님이 미국에서 했던 "도덕적 다수"운동과
같은 동성애에 국한되지 않는 강력한 시민운동이다.
동성애의 도덕적 문제를 지적하는 진영이
표절이나 성도덕 같은 도덕적 문제에 무감하니
본질적으로 승리가 가능하겠는가?
좌파의 내로남불과 뭐가 다른가?
5. 대안은 있는가?
간혹 이런 글을 포스팅하면, 교수님은 왜 비판만 하시고
대안을 말해주지 않으시나요?
라고 댓글다는 분들이 꼭 있다.
댓글 달기 전에 찾아보시라.
필자가 제시한 대안들과 악한 적들의 전략을
분석한 내용들을 찾아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당장, "교회해체와 전데이데올로기"와 "기독교와 선거"라는 두 가지 책만 펼쳐보아도 답이 나온다.
악한 세력의 의도와 사상적 배경을 교계에 처음으로 밝혀서
교회의 각성과 투쟁의 방향전환을 이루도록 했지만,
(좌파들의 음해와 공격은 빼고)
자칭, 우리 진영 사람들에 의해
부도덕한 표절피해를 입었고,
탈동성애 운동 하는 분들은
동성애를 이데올로기 문제로 만든
이정훈 교수가 문제라는 악성 공격에 시달렸다.
탈동성애 사역도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악법이 만들어지면 중지해야 한다고
설명을 해줘도 듣지 않았다.
6. 핵심분석과 전략제시의 시기를 조절하는 이유
필자가 처음부터 분석과 전략을
터트리지 않는 이유는 위에 열거한 부작용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정보를 제공하고 전략을 알려주면,
원작자를 공격하고 괴롭히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자기 의견인 것처럼 활동하고
정작 투쟁에는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전략들이 소리 없이 사라질 수 있다.
7. 우리가 먼저 개혁하고,
크리스천다운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한 마디로 스가랴 선지자의 외침처럼
여호와께 돌아가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요-
모든 노력이 헛되고 헛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언제나 진리는 담백하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시작된
'박해'라는 체험학습이 복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