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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의 푸른 꽃>, 1997-코르네이유 |
고교 무상교육 돌입했으나…
2009년 8월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가족수당 신설’과 ‘고교 개혁’이라는 단 두 개의 선거 공약만을 실천에 옮겼다.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우선 새로운 가족정책과 재정 지원에 국한해서 정책을 펼쳤다.(1) 예산 절감 차원에서 다른 정부부처의 예산 요구안에 대해 철저한 타당성 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하토야마 총리는 다른 공약들을 백지화해야 했다. 대표적인 예가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과 ‘고속도로 무료화’다. 공약을 포기한 대가는 컸다. 지난 6월, 하토야마 총리는 정권을 잡은 지 9개월 만에 권좌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대체 우선 과제로 고등학교 재정 지원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교 무상화 법안 표결에 나선 에바타 다카코 민주당 의원은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고교생이 늘고 있다. 그중에는 졸업장을 따야 하는 시기에 경제적 곤란을 겪는 학생도 있다”고 설명했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속출하고 있다. 졸업장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일본 학생들에게 가혹한 형벌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에 상응하는 일본의 고교 졸업장은 직업을 얻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2008년은 유난히도 어려운 해였다. 사립학교협회에 따르면, 수업료를 낼 형편이 안 되는 일본 고교생 비율이 3월 0.9%에서 연말 2.7%로 급상승했다. 그중 일부는 어쩔 수 없이 학업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일본의 영자신문 <재팬타임스>(2)는 “경기침체로 실직한 부모가 늘면서 학비가 없어 학교를 가지 못하는 고교생이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교생 근로자 수 증가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준 부교수는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원칙적으로 학교장 허가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의 근로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경제위기로 근로 허가를 요청하는 고교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시에 있는 구린칸 공립고도 “현재 시간제로 일하는 학생이 학급당 2~3명에 이르며,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고 이 학교의 영어 교사 후쿠다 히로코가 말했다.
그런데 예산이 없다
일본 고교생 근로의 ‘전통’은 경제위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몇몇 하위권 고등학교의 경우 거의 전교생이 시간제나 종일제로 일하는 실정이다. 메리 브린턴 하버드대학 교수(사회학)도 “현실이 은폐돼왔다. 고교생 근로가 금지된 만큼, 학교도 못 본 척 눈감아온 측면이 없지 않다”(3)고 지적했다. 최근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서 1인당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오키나와현에서는 고교생 6명 중 1명이 시간제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46.4%는 용돈을 벌기 위해, 31.1%는 가정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4)
상황이 이러한데도 고교 무상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기만 하다. 이번 개혁을 두고 칭찬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첫 번째 불만은 비용 3933억 엔(약 36억8천만 유로)이다. 일본 민주당이 기치로 내건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구호에 따라 공공 공사에 편성된 예산이 18%가량 삭감된 상태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은 재원 마련도 보장할 수 없는 섣부른 개혁이라며 고교 무상화에 반발하고 있다.
일본의 유력지 <아사히신문>도 “민주당은 국가예산 편성만 잘하면 공약 실천을 위한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소비세 인상이 연기되면서 그것도 불가능해졌다는 점이 확실시되고 있다”(5)고 지적했다. 하토야마 후임인 간 나오토 총리는 재원 확보를 위해 부가세 인상 카드를 내밀었지만,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참패만 안겨줬다.(6)
두 번째로, 고교 무상화 정책이 불평등 해소에 실질적인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불만도 문제다. 현행 사립고 보조금만으로는 평균 35만 엔(약 3300유로)에 달하는 수업료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명문고를 제외한 기타 사립고의 학생들은 대개 평범한 가정 출신”이라고 준 부교수는 지적한다. 어찌됐든 일본 대다수 지역에서 일반 가정 학생들은 사립고 무상혜택을 받는다. 47개 현 중 37개 현이 고교 무상화 정책을 보완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때문이다.(7)
수업료 외의 부가 비용에 대한 지원이 없는 것도 고교 무상화 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교복이나 교과서, 기타 물품을 사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후쿠다 교사는 안타까워했다. 예를 들어 도쿄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6만 엔(약 550유로)에 달하는 교복을 의무화하고 있다.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공립고 학생이 수업료를 제외하고 1년간 부담해야 하는 교육비는 총 40만 엔(약 3700유로)에 이른다고 한다.
일본의 고교 교육 격차는 뿌리가 깊다. 야스시 군지 <교토통신> 파리사무국 국장은 “이번 개혁으로 일본 교육의 현주소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부유층 가정은 자녀 교육에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자녀를 명문 사립고에 보내거나, 추가로 과외 수업까지 시킨다”고 설명했다.
수업료 말고도 엄청난 부가 비용
일본은 중학교 과정이 끝나면 입시를 거쳐 고교에 진학하기 때문에 고교별로 서열화가 심한 편이다. 피라미드의 가장 상층을 차지하는 것은 명문 고교인데, 극소수의 학생만 다니고 있다. 일본 명문 도쿄대 진학률이 가장 높은 게이세이고의 연간 수업료는 46만2천 엔(약 4300유로)에 달할 정도로 비싸다. 게이세이고 같은 명문 사립학교는 다른 고등학교보다 교육 수준이 월등하다. 실례로 1995년 도쿄대 입학생의 77%는 명문 사립고 출신이었다.
전체 고교생의 절반 가까이(46%)가 다니는 공립고는 명문 사립고 바로 다음이다. 하지만 책 <일본 학교에서는>을 저술한 아니 베르쿠테르에 따르면, 과거에 우수하다고 평판이 났던 공립고도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학군제를 실시한 이후 수준이 많이 낮아졌다.(8) 자녀를 사립고에 보내는 가정이 늘면서, 사립고 학생 수는 1993년 24%에서 2008년 30%로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피라미드의 하단은 일반 사립고가 차지하고 있다.(9)
개인과외 교습소인 ‘주쿠’(塾)의 성행도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입시에 대한 높은 압박감은 과외학원이 제도화되는 데 일조했다. 아무리 볼멘 목소리를 내는 학부모도 능력만 되면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야스시 국장은 “평균 수준의 교육을 원한다면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대입시험이 목표라면 학원이 효과적이다. 입시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고교생이 사교육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막기 위해 도쿄시는 공립학교와 과외학원 사이에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시범 운용하고 있다.(10)
학벌 피라미드와 과외비는 어떻게
일본 교육 전문가 장프랑수아 사부레는 교육 격차를 좁히기 위한 방법으로 “1970년대처럼 우수한 수준의 공립고를 활성화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입시 제도를 개혁하고, 무조건 다지선다형 문제에만 의존한 시험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용주가 편리성을 핑계로 대학 간판에 따라 직원을 채용하는 일이 지속되는 한, 대입 경쟁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입시를 치러야 입학이 가능한 일본에서 대입을 앞둔 고등학교는 입시 경쟁의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1980년대 입시를 둘러싼 여러 병폐(폭력, 자살, 학교공포증 등)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개혁의 칼날이 가해졌다. 그동안 고교 진학 지도의 기준으로 활용돼온 이른바 ‘편차치’(학력 등의 검사 결과가 집단의 평균치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가 1993년 공립중학교에서 전면 금지됐다. 또 입시 선발과는 별도로 공립고를 대상으로 한 추천입학제도 시행됐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고등학교는 여전히 폭력이나 학생들의 학습 의욕 상실 등의 문제로 시름하고 있다. “일본 학생들은 자신감을 상실한 채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갈지 혼란스러워한다. 그야말로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고 후쿠다 교사는 말했다.
글•에밀리 귀요네 Emilie Guyonne
언론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주>
(1) 고교 무상화와 함께 월 1만3천 엔(약 122유로)의 가족수당 지급안이 통과됐다.
(2) ‘퍼스트레이디의 학교 방문을 둘러싼 언론 침묵은 일본의 교육 격차를 시사한다’, <재팬타임스>, 도쿄, 2009년 4월 26일.
(3) ‘오늘날 일본 청소년 노동 현황은?’, 템플대 강연, 도쿄 캠퍼스, 2009년 6월 27일.
(4) <류큐신보>, 오키나와, 2007년 3월 2일.
(5) ‘마지막 희망, 간 나오토’, <아사히신문>, 2010년 6월 10일자,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 인용.
(6) 지난 7월 11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 민주당과 국민신당 간의 연립여당은 전체 242석 중 109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7) ‘37개 현 고교 수업료 무상화하다’, <재팬타임스>, 도쿄, 2010년 5월 11일.
(8) 아니 베르쿠테르, <일본 학교에서는>, PUF 출판사, 파리, 1997.
(9) 더욱이 24%의 학생이 기술 및 직업고에 다닌다.
(10) ‘정책 입안자들이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이, 일본 교육 개혁 아래로부터 이뤄지다’, <아사히신문>, 도쿄, 2010년 6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