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빠다’에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쓰러뜨리듯’, ‘바람이 바위산을 무너뜨리지 못하듯’이란 표현이 나온다. 바람이 세찬데, 내가 그것을 견딜 만큼 굳세지 못하면, 바람에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능히 감내하며 견딜 수 있다면 다소의 저항은 있을지언정, 바람이 나를 쓰러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전에서 말하는 바람은 외부적 환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자신의 감각기관(indriya)을 잘 지키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대한 내용이다.
경전에 여섯 도둑(六賊)이란 표현이 있다. 이 역시 비유적 표현인데, 우리에게 여섯 가지 도둑이 있다는 말이다. 눈, 귀, 코, 혀, 몸, 생각의 여섯 감각기관(六根)을 도둑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이 여섯 감각기관을 사용하며 산다. 여섯 감각기관은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정보를 받아들여, 다양한 판단을 한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그만큼 우리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우리는 옛날보다 행복하지 못하다. 이리저리 재고 따져야 할 일 많고, 남과 비교해서 상대적 박탈감이나 불행감을 보다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부 정보를 크게 세 가지로 판단한다. ‘좋다’, ‘나쁘다’, ‘그저 그렇다’ 좋은 것은 갈구하고, 나쁜 것은 멀리하며 그저 그런 것은 경우에 따라서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결국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수많은 정보들은 이 세 가지로 범주화되어, 우리에게 인식된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Paul Valery)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을 했다. 쾌락에 젖어 살게 되면, 우리는 쾌락을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된다. 그것은 곧 노예적 삶과 동일하다. 감각기관을 만족시킬 것만 생각하며 살게 되니, 어찌 감각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인가. 감각의 대상들에 마음을 홀딱 빼앗겨 버려, 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망각하기 때문에 도둑이란 말을 쓴 것이다.
이런 이유로 경전에서는 눈, 귀, 코, 혀, 촉감이 느끼는 쾌락을 바람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감각기관을 굳건히 지키지 못하면 조그만 바람에도 바로 쓰려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감각기관을 잘 단속 하지 않고, 음식에 적당량을 모르고, 게을러서 노력하지 않으면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쓰러뜨리듯이, 악마가 그를 쓰러뜨린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반대로 감각기관을 잘 단속하고, 적당하게 음식을 먹으며, 열심히 노력하면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움쩍하지 않는 바위산처럼, 악마가 그를 쓰러뜨리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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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원 박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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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인간의 욕망을 얼마만큼 잘 디자인하는지가 키워드인 사회다. 욕망을 읽고 그것을 현실화 하는 것, 그것이 요즘 모든 기업과 사회가 목표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욕망을 충족하는 삶이 역설적으로 노예의 삶으로 바로 가는 지름길이란 것을 알게 될 때, 부처님의 이 말씀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바람이 불 때면 옷깃을 여미며, 자신을 단속하고 조심해야 한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출처 : http://www.beopbo.com/news/view.html?section=93&category=99&item=390&no=74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