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벚꽃
서울 아파트 살 적에 나보다 7년 아래인 통장님과 참 많은 추억을 쌓았다.
헤어진지 20년 가까이 되어도 가끔 연락을 한다.
“반장님과 쑥도 뜯고 중랑천 자전거도로를 달리던 그 때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반장님 생각이 나서 전화 했어요^^"
아직도 잊지않고 내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얼마전에도 연락이 와서 옛 추억을 떠올렸다.
나와 통장님 등 코드가 맞는 몇 사람은 영화관을 자주 찾았다.
당시 백만 관객으로 장안의 화제가 된 영화를 조조로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흥행한 영화라도 만족도가 떨어질 때가 있었다.
너무 큰 기대를 하면 가끔은 그 기대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허탈감을 느꼈다.
그래도 우리는 흥행한 작품을 봤다는 생각에 열심히 영화관을 찾아 다녔다.
하루는 통장님과 둘이서 대학로 소극장에 "관객 모독"이라는 연극을 보러갔다.
풋풋한 젊은 대학생들 대열에 끼어 열심히 봤다.
마지막에 사회자가 퀴즈를 맞히면 레스토랑 식사권을 준다고 했다.
아줌마라고 체면 차릴 겨를도 없이 정답을 맞혀서 식사권을 획득했다.
찾아가니 거기도 풋풋한 젊은이들만 있어 좀 민망했지만 공짜 스테이크 맛은 기가 막혔다.ㅋ
해마다 봄이면 여의도 윤중로 아름드리 고목의 화사한 벚꽃길을 다녔다.
한번은 KBS 방송국 근처 벤치에 앉아 준비해간 김밥을 먹고 있었다.
어떤 아줌마가 다가오더니 도올 김용옥 교수 강의에
방청객으로 와서 1시간만 앉아있으면 3만원을 준단다.
그 당시 도올의 강의는 하늘을 찌르는 인기 폭발의 명강의로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다.
방송국 구경도하고 유명인도 직접보고 3만원까지 벌수 있다니 우리는 바로 오케이 했다.
한참 열심히 강의하는데 어떤 사람이 박수도 좀 치고 큰 소리로 웃으라고 시킨다.
방송에서 보던 명강의와 정열적인 모습도 어느 정도 연출이 포함됐다는 것을 알았다.
2부까지 연장해서 한시간 더 앉아있으면 또 3만원을 주겠다는 말에
남편 저녁 걱정도 잊고 두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아르바이트 한 돈을 그냥 생활비에 보태기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화창한 봄, 집에 있기는 아까운날. 둘이서 낭만이 흐르는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 강촌엘 갔다.
시원한 폭포 아래서 쉬며 경치를 즐겼다.
유명하다는 문배마을은 다리가 아파서 오르지 못하고 산 중턱에서 바라보다가 왔다.
춘천에서 가장 유명한 숯불 닭갈비를 먹은 것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등산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수락산이 가까워 아침만 먹으면
멤버 몇명이 살빼기 작전으로 산에 다녔다.
하지만 살빼기가 쉽지않았다. 각자 싸온 음식을 펴놓으면 뷔페 식당이 무색할 판이다.
위장의 80%만 채워야 할 음식물을 120%씩 채워서 살이 0.1㎏도 안빠졌다.
운동도 좋지만 다이어트에는 소식(小食)이 최고다.
물론 서울 근교의 명산을 오른 날, 말이 필요 없는 성취감도 맛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아지트에서 맛있는 것 해 먹고 수다나 떨고 좋은 곳만 찾아다니고 할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중증 장애인들 목욕봉사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성숙한 아이들이라 그 무게가 대단했다.
목욕탕에 들어올려서 씻기는 게 정말 힘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그들을 대하는 것도 많이 익숙해졌다.
아이들도 정이 들어 우리를 보면 천진하게 씨익 웃어 주었다.
그 모습이 애잔했다. 어떨 때는 보기만 해도 눈물나게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갈수록 정도 들고 함께 하는 순간이 소중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배웠다.
일주일에 한번 봉사한 그 경험은 지나고 보니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였다.
나의 50대 시절 추억 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우리 통장님.
통장님과 함께 했던 많은 순간이 떠오르는 새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