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점수 비판----이 글은 성철스님 법문을 정리하는 하도겸님의 글입니다.
파란색 글은 정목이 글입니다.
해오(解悟)에서의 ‘해(解)’라 함은 지해(知解), 즉 알음알이이다. 그리하여 모든 불법(佛法)의 성품 모양[性相]을 알긴 알았는데 분별심으로 알아서 번뇌망상과 사량분별이 그대로 있다.
해오(解悟)는 '알음알이'라고 해석하며 비하하는 말로 들릴 수 있는데, 이는 바른 이해이다.
해오하여도 망상과 분별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체경계 본래일심을 미혹하여 주객이 분리된 상태라는 것이지 불교의 이치를 전혀 모르는 범부와 같다는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하여 증오(證悟)라 하는 것은 실지로 자성을 바로 깨쳐서 구경각을 성취해서 참으로 체득한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현묘한 극치를 이룬다’고 한다. 증오(證悟)와 해오(解悟)의 구별이 전자는 구경각을 깨침을 말하고 후자는 사량분별로써 아는 것이다. 심해(心解)니, 지해(知解)라 하기도 한다. 육조선(六祖禪)에서 말하는 돈오(頓悟)는 증오(證悟), 즉 구경각(究竟覺)을 성취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해오(解悟)인 지해(知解)는 삿된 종[邪宗]이라고 해서 배격하였다.
해오는 부처님이 증득하신 도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과정이므로 이를 삿된 종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해오를 증득으로 착각하는 사람에게 삿된 종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구경각이란 성불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근대 불교사에 그런 사람이 없고 현실에서도 없고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가 구경각을 이루기 어려운데 그것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진실을 향하여 바르게 나아가는 과정을 높이 평가해야 할 때이다.
수심결에 나오는 돈오점수(頓悟漸修)는 먼저 깨치고 뒤에 닦는다는[先悟後修]하는 근본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못 전체에 얼음이 꽝꽝 얼어 붙어 있는데, 얼음이 본래는 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이것을 신해(信解)니 해오(解悟)라 한다. 알긴 알지만, 실지에 있어서 부처를 이룬 것은 아니고 범부 그대로 있다. 얼음 그대로가 물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지만은 얼음은 그대로 있듯이,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것은 알았지만 중생의 번뇌망상 그대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력(法力)에 의지해서 자주 닦아가야 된다.[先悟後修] 여기서 돈오(頓悟)라 하는 것은 얼음이 본래 물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았지만 얼음이 그대로 있고, 중생이 본래 부처인 것을 확실히 알았지만 중생 그대로임을 깨친 것을 말한다. 얼음이 그대로 있듯이 망상은 그대로 있으니, 얼음을 녹이기 위해서는 따뜻한 기운을 빌려야 하고, 망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꾸 자꾸 닦아가는 점수(漸修)가 필요하다.
선오후수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불교사 이래 가장 뛰어난 조사들의 말씀이다. 지금은 선오가 없으니 후수도 없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 선오 역시 물과 어름의 관계만으로 이해시키는 것은 부족하다. 부처님이 성취하신 구체적인 지혜를 가르쳐서 선오하게 해야 한다.
선종정맥에서는 돈오(頓悟)라 하면 일체 망상이 다 끊어진 것을 말했다. 돈오한 동시에 돈수(頓修)여서 후수(後修)가 필요없다. 선종정맥에서 말하는 돈오(頓悟)는 얼음이 본래 물임을 안 것만으로는 되지 않고, 얼음이 녹아서 물로 완전히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 자체도 볼 수 없는 무소득(無所得)이 되는 것을 말한다.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유소득(有所得)이니 제8아뢰야 무심(無心)을 물에다 비유한다. 돈오돈수는 깨달음[悟]이라 하면 일체 망념이 다 끊어지고 망념이 끊어진 자체, 무심의 경계 이것도 벗어남을 말한다. 얼음이 다 녹아 물이 되어 물이라고 하는 자체도 볼 수 없는 이 구경지(究竟地)를 깨달음이라고 한다.
이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나도 단박에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치와 같다. '나도 단박에 부처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치와 같다. 대개 이런 말 하는 사람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돈오한 뒤에는 어떻게 점수(漸修)해야 되는가? 목우행(牧牛行)을 보림(保任)이라고도 하는데 점수설(漸修說)에서 말하는 것은 예전 큰 스님들의 목우행과는 천지차이이다. 자명(慈明)스님이 지은 목동가(牧童歌)가 있는데 거기 보면 참으로 구경을 성취해서 호호탕탕히 자재하고 무애한 행을 목우행이라 하였지 망상이 전과 다름없는 것을 목우행이라 하지 않았다.
본래 보살의 종자를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보림은 매우 중요하다. 보림의 뜻, 보림의 필요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돈오 후에 행하는 보림을 폄하할 수 없다.
돈오돈수라 함은 이는 상상지(上上智)를 말함이니 근기의 성품과 욕락이 모두 뛰어나 하나를 들으면 천 가지를 깨닫고 대총지를 증득한다. 한 생각도 나지 않고 앞뒤가 끊어진다. 이 사람의 세 가지 업은 오직 스스로 분명히 밝아서 다른 사람이 미칠 바 아니다. 장애를 끊음은 마치 한 타래 실을 끊음에 만 가닥이 단박 끊어짐과 같고, 덕을 닦음에는 마치 한 타래 실을 물들임에 만 가닥이 물드는 것과 같다. 돈오점수와 돈오돈수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것은 알았지만 번뇌망상이 그대로 있으니까 차제로 삼현․십성을 닦아서 올라가는 것을 말하고, 후자는 한칼에 한 뭉치 실을 다 베어버리듯이, 또한 뭉치실을 다 물들여 버리듯이 하나 끊을 때 전체가 다 끊어지고 하나 물들일 때 전체가 다 물들여지는 것을 말한다.
적멸처도 아닌 사량분별이 남아 있는 곳에서 보림한다, 목우자한다고 화두를 버리면 자기가 망하고 천하사람이 다 망한다. 대적멸지, 오매일여에서도 화두참구해서 확철히 깨친 사람은 증(證)한 것이지 해오(解悟)가 아니다. 이것이 실지 공부하는 사람의 생명선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이치가 그러하다고 해도 현실은 위 글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하근기가 대분인 세상이다.
부처님이 증득하신 도가 무엇인지 바르게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또 그 진실을 향해 닦아 나아가야함이 우리들의 의무이고 사명인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지금은 구경각이 아니라 초지보살의 경계에 있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 누가 그 길을 인도하겠는가!
그러므로 진실에 도달하는 데는 근기에 따라 여러 가지 길이 있음을 전하고, 그 길을 닦는 과정에서 지혜와 복덕이 증장함을 구체적으로 전해야 할 시대이다.
이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정진하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크게 깨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불교를 관념적으로 미화하거나 우상화를 부추기는 전설을 쓰고 있을 한가한 때가 아니다.
지금은 불자들에게 불교를 구체적이고 바르고 쉽게 이해시켜 불자로서의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야 수행을 하든지 구경각에 도전하든지 할 것 아닌가!
이 시대의 불교를 논해야 한다.
* 이 글은 미래에 만들어질 새로운 대장경에 들어갈
“백일법문 (성철스님법어집)”(장경각, 1992)의 뜻을 간추리면서 몇가지 수정하기도 하였다.
첫댓글 성철스님의글을 정리한 하도경님의 글, 말만 무성합니다, 언어는 있는되 뜻이 없는것 같습니다, 돈오점수 점수가 모여져서 돈도돈수가 되는것 아닌가 의심이 갑니다 , 돈오하면 행이 부처행이 나와야 하고, 상대를 화신으로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돈오가 얼음이 물이란 사실을 아는것이라면, 물의 작용을 부릴수 알고, 물에 광명을 생각하는것은 점수가 아닌가 합니다, 단박에 물이 얼음이며, 물로, 청소를 하고, 식물을 키우고, 온도를 유지하고, 하는 등등 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수행하면서 아는것 아닌가요 /돈오돈수는 언어와 말은 있으되, 뜻과 작용이 없는 공허한 메아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미타불
하도경님! "정오" 와 "해오" 차이점 알랑가요?????
"정오" 는 엄청난종교적 경계체험에 의한 확실한 대의를 발견하여야합니다.!!!
감사합니다.아미타한국!!!
성철큰스님 100일법문(상하) 2권 구입후 책장이안넘어갔었습니다.
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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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정진하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크게 깨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우선은 발을 땅에 딛고 서는법부터 배워야 할거 같습니다.
서지도 못하는 애한테 나는 법을 가르치는 모양입니다.
바르게 인도하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서지도 못하는 애같은 스님, 수행자에게 돈오돈수 말도 안되죠, 즉 장남감 자동차 모는 아이에게, 있지도 않는 윔홀비행선(사차원 넘는 비행기)조작법 가르치는것과 똑같죠 아미타불
우리는 위의 성철스님의 법문정리하신것을 정목스님이 지적하신 말씀처럼만 알아차려도
대단한 근기에 있는 아미타 불자들입니다...아미타 한국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뚜렷이 드러나는
이런 글들을 비교 분석하여 더욱 체계적인 수행법으로 다듬어 나가야 할 때 인것 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정행 윔홀비행선! 멋집니다. 어떻게 이런것도 아셨어요? 우리도 조만간 ...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일심.광명.화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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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
성철스님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도겸님이 정리하면서 하신 이야기 같습니다. 정목스님의 입장에서 보면 또 백 번 지당한 말씀이구요. 정목스님과 하도겸님의 글은 입장과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라 사료되며, 현실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성철스님의 생각은 자기 중심성이 강하며, 하도겸님의 정리글 또한 현실과의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불교의 현실을 볼 때 아쉬움이 느껴지지만 비난할 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목스님도 답답함에서 소개하는 글인 것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진실을 향하여 바르게 나아가는 과정을 높이 평가해야 하며,
근기에 따라 여러 가지 길이 있음을 전하고,
그 길을 닦는 과정에서 지혜와 복덕이 증장함을 구체적으로 전해야 할 시대이다
지금은 불자들에게 불교를 구체적이고 바르고 쉽게 이해시켜
불자로서의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아미타 한국이 이 시대 불교 수행의 난맥을 바로 잡아 위의 글과 같은 훌륭한 선각자가
많이 나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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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동감입니다.-()()()-
감사합니다
일심광명화신아미타아미타아미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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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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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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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 선오후수. 돈오점수. 목우행(보림)은 같은 말로 들립니다.
선오는 부처님의 지혜를 바로 아는 것이다.
선종정맥의 언어를 모든 종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려면
돈오하여 교학적으로 더 공부하고 연구하여 사전적 언어로 통일해야 합니다.
초보불자와 해오하신분의 언어가 같을 수는 없지만
초등생의 언어와 대학생의 언어는 폭과 깊이가 다를 뿐 근본은 같듯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_()()()_
돈오돈수가 본각에 바로 가는길이라면 ,
돈오점수는 해오를 통해 시각에 이르러 결국은 본각에 도착함이 아닐까요.
무릇 종교라는것은 특정집단의 특권이 되어서도 안되며,집단의 이기적 배타심을 내려 놓아야합니다,
고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불교는 일종의 특권이였고 집단이기였음은 분명합니다,
거기서 유사한 발전이 참선수행이고 묘관찰지를 깨닫고 시작하니,돈오돈수가 가능할수도 있었지만,
변화를 거듭하는 인간 삶의 형태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수행법 역시 다양해야하고 살아가는 형태와 최소한의
괴리감으로 함께 해야합니다,
그침(止)과 봄(觀) 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수행법이 현대인에게는 아주 제격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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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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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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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불()()()
경전이 팔만사천이나 되는 까닭이 근기와 시대에 맞추어 대기로 응병여약하고 시기상응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방편품에서 일승일심법을 펴시고자 했으나 삼승법을 먼저 펼 수밖에 없었다 하셨고 약초유품에서는 모든 초목이 모두 법우를 받아 성장하여 일심일승이 될 수 있도록 대자비를 베푸셨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글을 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 친근한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경이 있고 율이 있고 론이 있는 까닭을 생각해봅니다. 근기에 따라 처절히 결정신심하려는 정진 또한 매우 가치 높은 것이며 그러기에 그 중요성이 배제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나무아미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파
일심.광명.화신.
감사드립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_()()()_
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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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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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파 회원님들의 실력이무궁합니다
한국의 불교가 우주광명으로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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