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6 ·끝 回 중소기업 살 길은 독자 기술 · 2015.08.24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6 ·끝 回> 중소기업 살 길은 독자 기술 |
강소기업들 영업직도 R&D … “세계 최초 아니면 생존 못해”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6 ·끝 回> 중소기업 살 길은 독자 기술
‘글로벌 강자’ 중소기업들 비결 … 검사장비 생산 고영테크놀러지결제 통합단말기 독점 블루버드 … 직원들 대부분이 연구개발 인력
지난 21일 오전 10시40분 세계 1위 SPI(전자기판 납땜 분포 검사장비) 업체인 고영테크놀러지의 경기도 광명 공장. “이게 공장인가요?” 아무리 봐도 기자에게는 덩치 큰 기계 10여 대만 덩그렇게 놓인 커다란 창고 같았다. 환한 불빛과 쾌적한 공기가 창고라기보다 빈 사무실 같기도 했다. 작업복을 입고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수많은 생산 인력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동화된 무인(無人) 공장인가 싶었지만 컨베이어 벨트도 보이지 않았다.
엔지니어 이승민(29)씨가 “이 기계가 우리가 만드는 제품” 이라며 “나처럼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공장 생산팀” 이라고 했다. 826㎡(250평)당 4~5명꼴로 근무하며 전체 생산 인력은 20명 정도에 불과하다. 모두 이씨 같은 엔지니어다.
몸체를 협력업체에서 조립해 오면 소프트웨어를 장착하고 실험을 반복하며 섬세하게 부품을 조정해 대당 2억5000만원까지 하는 검사장비를 완성한다. 고광일(58) 고영테크놀러지 대표는 “생산직은 물론 영업직도 연구개발(R&D) 인력 출신” 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연구원이나 생산직이 모두 같은 연봉 체계다.
세계 첫 스마트폰형 산업용 단말기를 내놓은 블루버드의 경우는 직원의 70%가 R&D 인력이다. 이장원(47) 블루버드 대표는 “우리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가 아니다. 독자적인 상품을 파는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세계 최초, 세계 유일 제품을 계속 내놓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고 말했다. 블루버드는 자동인식 · 결제 통합단말기와 윈도 체계 단말기 영역에서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R&D에 집중 투자해 기존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 중소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자체 브랜드로 독자 생존하기 위한 정석이다.
1977년 협신의료기상사로 시작한 대구 기업 JVM의 경우 세계 최초로 전자동 약품관리 시스템을 개발해 북미 · 유럽 시장을 70% 이상 차지했다. 처방약을 약사가 일일이 손으로 포장할 필요 없이 약의 분류부터 포장 · 인쇄까지 기계가 하도록 만들어낸 덕분이다.
유산균 바이오업체 쎌바이오텍은 세계 최초로 유산균을 이중 코팅하는 법을 개발해 글로벌 5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자체 브랜드 없이 세계 1위로 성장한 중소기업들도 있다. 국내 대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커가면서 매출이 크게 늘어난 부품업체들이다. 김기찬 세계중소기업학회장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만들어 낸 것은 대한민국 산업의 허리를 떠받친 중소기업들” 이라면서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대기업이 시장을 조성하고 이끌어갔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게 된 것” 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부품 업체에 끊임없이 품질 향상과 가격경쟁력을 동시에 요구했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납품 업체가 세계 시장에서 어깨를 견줄 만한 경쟁력을 길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78년 일진단조로 출발한 일진글로벌의 경우 2000년 3세대 자동차용 휠베어링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이 분야 세계 1위다. 현대차는 물론 GM · BMW · 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 부품을 수출하고 있다. 67년 동양정공사로 시작해 엔진 피스톤 제조 외길을 걸어온 동양피스톤 역시 아우디 · 크라이슬러 · 미쓰비시자동차 등에 납품하는 세계 4위 업체로 성장했다.
첨단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전자산업 분야 대기업의 주력 업종이 바뀌면서 중소기업의 세계 선두권 품목도 달라졌다. 평판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제우스), 노트북 · 태블릿PC용 프리즘시트(LMS), 스마트폰용 카메라 렌즈(세코닉스) 등이다. ‘IT 강국 코리아’라는 기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사업영역을 개척하기도 한다. 코나아이는 교통카드 등 IC 칩을 탑재한 ‘스마트카드’ 사업에 뛰어들어 세계 4위로 성장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핀테크 시장에도 진출했다. 다양한 종류의 신용카드를 여러 개 골라 모바일로 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결제시스템 ‘코나페이’다.
60~70년대 중소기업 수출을 견인했지만 인건비 증가로 중국 · 동남아시아 업체에 밀렸던 가발이나 섬유 분야에서도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강소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전북 완주에 있는 우노앤컴퍼니는 인조 가발 원사 시장 세계 3위다. 사람의 모발보다 저렴한 합성 원사 가발은 지나치게 짧고 잘 빠지는 고수머리 때문에 가발을 많이 쓰는 아프리카가 큰 시장이다. 우노앤컴퍼니는 최근 세계 최초로 흑인 여성 가발용 친환경 원사를 개발했다. 벤텍스는 1초 만에 물이 마르는 섬유, 여름에도 시원한 냉감 소재, 겨울에 보온 효과가 있는 발열 소재 등으로 나이키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공략했다.
이처럼 ▶글로벌 단위 시장 규모는 크지만 ▶국내 대기업이 진출해 경쟁할 정도는 아니면서 ▶진입 장벽은 높아 후발 업체의 추적을 차단할 수 있는 틈새 시장을 차세대 중소기업들이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략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기존 해외 업체가 기술 침해 관련 소송을 거는 등 글로벌 텃세도 만만치 않다. 벤텍스처럼 승소로 끝난 경우도 치른 비용이 컸다. 이정동 서울경영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단순히 여러 기업에 지원 자금을 뿌리지 말고 능력 있는 중소기업에 재원을 집중하는 전략을 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 중앙일보 | ◆ 특별취재팀=김준술(팀장)·함종선·문병주·황의영·김기환·임지수 기자 | 2015.08.24 |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6 ·끝 回> 중소기업 살 길은 독자 기술 |
매장 1160개 미국 백화점 뚫은 한국 중소기업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6 ·끝 回> 중소기업 살 길은 독자 기술
카드결제 · 재고관리 단말기블루버드, 아시아 최초 수출 … “독자기술로 일류상품 도전” 미국의 백화점 체인 콜스(Kohl’s). 1160개 매장마다 직원들 손에 ‘한국산 단말기’가 들려 있다. 한국 중소기업 ‘블루버드’의 세계 첫 스마트폰형 산업용 단말기 ‘BP30’ 이다. 이 제품 하나로 재고 관리부터 카드 결제까지 기존 여섯 가지 기기를 대체한다. 지브라(옛 모토로라) 같은 세계 1, 2위 업체가 지배하고 있는 최대 시장을 아시아 최초로 뚫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 ‘양키 스타디움’의 밤도 내년부터는 한국 중소기업이 밝히게 된다. 세계 최초로 스포츠 경기장용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만든 KMW가 올해 말까지 시공할 예정이다. 독일 분데스리가 보르시아 구단,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에 이어서다.
두터운 세계 시장의 벽을 한국 중소기업이 세계 최초 · 세계 유일이라는 무기를 들고 무너뜨리고 있다. 과거엔 대기업의 ‘하청 공장’에 그쳤지만 이젠 대기업보다 빨리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가는 ‘퍼스트 무버’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일류상품’ 생산 기업 중 중소기업의 비중은 48%. 세계 5위 이내가 356곳이나 된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이 원가 중심에서 차별화로 전략을 바꾸고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 강소기업’을 키울 환경은 아직 척박하다. 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패를 터부시 하는 풍조 때문에 중소기업은 자본금을 차입하기 어렵고, 대기업과 대등한 관계로 기술 공동 개발이 힘들다” 고 지적했다.
- 중앙일보 | ◆ 특별취재팀=김준술(팀장)·함종선·문병주·황의영·김기환·임지수 기자 | 2015.08.24 |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6 ·끝 回> 중소기업 살 길은 독자 기술 |
24시간 대기, 화장실 회의 … “삼성 · 현대차 신화 함께 일궜다”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6 ·끝 回> 중소기업 살 길은 독자 기술
대기업 성공 내조한 협력사들삼성에 반도체 장비 납품한 PSK … 공정 문제 생길 때마다 같이 밤샘일본기업이 부품 사진 못 찍게하자 … 나전 직원들, 기억 되살려 메모도 삼성전자에 15년째 반도체 생산장비를 납품해 온 박경수(63) PSK 대표는 삼성 ‘반도체 신화’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으로 산다. 1991년 삼성전자 신문 광고에 ‘새벽 3시의 커피타임’ 이란 문구가 등장할 무렵 PSK 직원들도 24시간 ‘비상대기’ 상태였다고 회고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엔 삼성도 반도체 생산공정에 불쑥불쑥 문제가 터질 때가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우리 직원들이 달려가 삼성 직원들과 함께 문제가 뭔지 파악하고 해결하느라 며칠씩 밤을 새우곤 했습니다. 그런 협력업체들의 노력 덕분에 지금의 삼성전자가 있는 것 아닐까요.”
박 대표는 “삼성의 까다로운 품질 기준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 기술력도 올라갔다” 고 말했다. 이 회사는 반도체 생산 필수 장비인 감광액 제거기 분야 세계 시장점유율 1위(42%) 업체로 성장했다.
전자 · 자동차 · 철강 같은 국내 대표 제조업체의 성공 신화에는 중소 협력업체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대기업이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 있도록 내조한 제 2의 삼성전자 · 현대차 · 포스코 직원인 셈이다. 현대 · 기아차에 15년째 플라스틱 내외장재를 납품해 온 김진우(56) 나전 대표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술력에서 일본차에 뒤졌던 현대차와 고락을 함께했다” 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당시 직원들과 일본 미쓰비시사로 기술 연수를 떠났던 일화를 들려줬다.
“일본 업체에서 엔진 부품 사진을 못 찍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연수 도중 틈틈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습니다. 직원들과 각자 기억해 온 엔진 부품 모양을 떠올려 메모지에 옮겨 적는 ‘화장실 회의’ 를 하기 위해서였죠.”
그는 “요즘 도요타 같은 곳에선 현대차의 기술력을 의식해 우리 같은 한국 협력업체에서 (도요타) 협력사 공장에 방문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며 “5년 전부터 중국 하얼빈기차에 로열티를 받고 기술 전수를 하는 등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고 말했다. 숨은 노력에 기아차는 신뢰로 보답했다. 2012년엔 생산공정에 문제가 생겨 기아차 광주공장 생산라인이 3시간 동안 멈출 ‘위기’가 닥쳤다. 협력사 대표로선 등골이 오싹할 일이었다. 그런데 기아차 직원들이 “불시에 일어난 사고다. 나전이 오랫동안 좋은 제품을 잘 납품해 왔으니 우리가 돕자” 고 공장에 의견을 내 다른 차량부터 먼저 조립을 해 줬다. 김 대표는 3시간 만에 위기를 수습해 공장에서 플라스틱 부품을 찍어 내는 대로 밤새 승용차로 날랐다. 그는 “기아차 직원들과 함께 간다는 ‘형제애’를 느꼈다” 고 술회했다.
협력사뿐 아니라 고객사도 함께 간다. 포스코 철강제품을 20년 넘게 구매해 온 홍영철(67) 고려제강 회장은 “포스코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철강제품을 가공해 파는 우리 회사도 한 단계씩 성장했다” 며 “최근엔 포스코와 글로벌 자동차 부품 시장에서 공동 마케팅을 한다” 고 말했다. 조영삼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강소기업 덕분에 제조업 강국으로 우뚝 선 독일의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며 “‘히든 챔피언’이라고 부를 만한, 독보적 기술 우위를 가진 중소기업이 많이 나오도록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고 했다.
- 중앙일보 | ◆ 특별취재팀=김준술(팀장)·함종선·문병주·황의영·김기환·임지수 기자 | 2015.08.24 |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6 ·끝 回> 중소기업 살 길은 독자 기술 |
IT 중소기업에 멍석 깔아 한국판 ‘BAT’로 키워라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6 ·끝 回> 중소기업 살 길은 독자 기술
맥킨지의 한국 제조업 미래 제언 한국경제의 성공 방정식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이전까지 획일적이었다. 주로 몇몇 제조업 부문에, 특히 대기업에 중점적으로 자본과 노동력을 몰아주는 방식이었다. 단시간에 선진국을 따라잡는 비결이기도 했다. 자원이 제한된 한국에서 제조업으로 성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다양한 신기술이 생겨나고, 산업 영역이 분화하면서 기존의 대기업 주도로는 대응이 늦고 갈수록 힘을 발휘하기 힘들어졌다. 최근 수출을 보면 이 같은 체력 저하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정보기술(IT) 부문의 수출 증가율은 2013년 9.1%에서 지난해 1.9%로 눈에 띄게 줄었다. 올해도 세계시장 평균 성장률(5.2%)의 절반에 못 미치는 2.5%에 머무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무엇보다 최근 산업의 무게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인터넷 · 모바일 · 소프트웨어 기반의 혁신으로 옮아가고 있다. 작은 기업들이 역량을 발휘하기 좋은 분야다. 한국을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의 경우 이른바 인터넷 기반의 기업인 ‘바이두 · 알리바바 · 텐센트’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BAT’가 화두다. BAT의 주도로 중소기업 · 벤처기업 생태계가 급속하게 활성화되고 있다. 국내 산업계가 이런 큰 도전을 넘어서려면 무엇보다 ‘개방형 혁신’ 이 중요하다. 대기업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핵심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기업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단일 기업의 연구개발(R&D) 대신 대기업 · 중기가 어울려 기술 경쟁을 하는 ‘신(新)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급하다. 지금까지 국내 중소기업들은 많은 역할을 해왔다.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이 5위 안에 들거나, 점유율이 5%를 넘어 세계 일류 상품으로 지정된 물건만 봐도 그렇다. 전체 750개 가운데 중소기업 제품이 48%에 달한다. 나머지는 대기업(29%)과 중견기업(23%)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작은 기업들을 위한 ‘에인절 투자자의 자금 지원→신기술 창업→투자자의 자금회수’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신기술이 있어 중소기업을 만들려 해도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기 힘들다. 이런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부 · 업계의 노력이 시급하다.
- 중앙일보 | 김주완 맥킨지 서울사무소 파트너 | 2015.08.24 |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6 ·끝 回> 중소기업 살 길은 독자 기술 |
| 경기도 의왕시의 현대차 중앙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자율주행 ‘R카’를 테스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 |
[취재일기] 정부부터 ‘퍼스트 무버’가 돼라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6 ·끝 回> 중소기업 살 길은 독자 기술
정부부터 ‘퍼스트 무버’가 돼라 본지가 6회에 걸쳐 다룬 ‘100년 갈 성장엔진을 키우자’ 보도가 나간 뒤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이 전화를 걸어 왔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 간부 출신의 ‘산업 전문가’다. 이 의원은 “한국이 연구개발(R&D) 예산을 많이 쓰지만 기술 심사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 며 “정부의 뒤떨어진 정책을 기사로 지적해 달라” 고 당부했다.
‘철강업 돌파구는 고급화에 있다’ 는 기사가 실린 직후엔 A철강사가 “업계의 미래 과제를 제시한 컨설팅 전문가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 고 요청하기도 했다. 석유화학 업체들은 “우리도 세계시장을 공략할 신기술이 있다” 며 정보를 보내왔다.
대한민국의 ‘주력 제조업’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기대 이상이었다. 기사에 소개된 철강 · 자동차 · 전자 · 건설 등은 광복 이후 70년간 헐벗은 빈곤국을 이만큼 키운 주역인 까닭이다.
하지만 뜨거운 반응의 이면엔 위기감도 짙게 배어 있다. 현대차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연구소가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3D 프린터를 500대 보유했다는 기사 내용은 우리에게 아주 민감한 부분” 이라며 자료를 요청한 것은 이런 위기감의 표현이다. 선진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르네상스’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술의 독일’은 2012년부터 ‘인더스트리 4.0’을 국가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자동화 ·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인공지능형 공장’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프로젝트다. 136년 전 전구로 혁명을 일으킨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도 ‘스마트 공장’을 무기로 꺼내들었다. GE 임원은 “공장 곳곳에 ‘정밀 센서’를 장착한 뒤 여기서 나오는 빅데이터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고 자랑했다. IT · 제조업을 묶는 ‘하이브리드 산업’은 이제 증기기관 · 대량생산 · 자동화에 이어 ‘네 번째 산업혁명’으로 불린다.
이런 경쟁에서 낙오하면 다시 선진국 ‘꽁무니’를 쫓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마침 기획재정부도 ‘신(新)산업 성장 전략’(가칭)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흩어진 각 부처의 산업 정책을 하나로 묶고 기업들에 기술 개발의 멍석을 깔아준다는 그림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과거 ‘개발시대’처럼 모든 걸 틀어쥐고 간섭해선 안 된다. 미국 · 독일처럼 제도를 잘 손질하고 R&D 불씨를 지펴주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100년 성장 엔진’을 구축하기 위한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만년 추격자 신세로는 3만 달러 시대조차 꿈같은 일이다. ‘경제추격론’을 연구해 온 이근 서울대 경제연구소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처럼 규제가 많은 곳에서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되겠다고 나서면 ‘퍼스트 루저’(패배자)가 되기 십상이다. 정부부터 퍼스트 무버가 돼라.”
- 중앙일보 | 글=김준술 경제부문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 2015.08.26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