㉗엉터리 영어로 美 대학생들 매료시키다
한국 스님이 '마음챙김 명상' 탄생에 주역!
◇ 세계 최고의 대학 미 하버드대. 1970년대 하버드대를 중심으로 미 동부지역 엘리트 학생들이 명상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음챙김 명상이 탄생했다.
미 MIT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막 받은 존 카밧진(27)은 고된 연구활동으로 인한 피로를 명상과 요가로 풀고 있었다.
당시는 1970년대초. 베트남전과 반전운동, 서구 문명을 배격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히피 물결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미국 엘리트 학생들 사이에선 ‘동양 알기’ 붐이 일어나 불교 명상과 인도 요가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카밧진 역시 개인적인 스트레스 외에 인류의 장래, 생명체의 신비, 삶의 근원 등의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이었다.
그때 동료들이 ‘영적 스승’으로 소개한 이가 보스턴 인근 프로비던스에서 세탁기 수리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한국인 숭산스님(1927~2004)이었다.
◇ 1970년대 명상을 배우던 미 동부지역 학생들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숭산스님.
숭산스님은 1960년대 일찍이 해외로 나가 훗날 세계 32개국에 120여개 선원(Zen Center)을 세운 한국 불교 세계화의 아버지다. 한국서 오래 활동한 하버드대 출신 현각 스님도 그의 제자다.
카밧진은 숭산스님과의 만남을 이렇게 말했다.
“아주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는 분이었다. 선(禪)의 대가지만 세탁기 수리도 아주 즐겁게 하고 계셨다. 어떤 뽐내는 태도나 자만심도 없이 완전 삭발에 하얀 고무신, 너덜너덜해 보이는 갈색 가사를 입고 ‘엉터리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설법을 하셨다”
그런데 그 ‘엉터리 영어’에 미국 젊은이들이 매료됐다. 지적능력으로 따지면 세계 최고인 ‘하버드의 공부벌레들’이 말이다.
◇ 미국인 제자들과 함께 있는 숭산스님(가운데)
“곧바로 나아가라, 네 마음을 확인하지 마라”, “화살은 이미 시내에 도착했다”, “내려놓아라, 다만 내려 놓아라”, “너는 이미 알고 있다”…
전혀 논리적이진 않지만 듣고 있노라면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후련해지며 뭔가 빛을 본 느낌들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카밧진은 숭산스님으로부터 배운 한국 선불교의 철학과 명상에다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명상, 인도의 하타요가 등 다양한 수행법을 녹여 이른바 ‘마음챙김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정식 명칭은 ‘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완화(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과학도인 그로서는 불교 명상법을 차용해 새로운 의료 기법을 만든 것이다.
그는 1979년 매사추세츠대 병원에서 ‘스트레스 감소 및 이완 클리닉’이란 간판을 내걸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고통 받는 난치병 환자들을 상대로 MBSR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효능은 곧바로 입증됐다. 환자의 평균 30~50%가 심신 모두 긍정적 효과를 나타냈다. 약이나 다른 의료기법의 도움 없이 오로지 명상・요가・인지행동 치료만으로 상태가 호전된다는 것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것이었다.
◇ 숭산스님 등으로부터 배운 불교철학과 명상법을 바탕으로 MBSR을 만든 존 카밧진 미 매샤추세츠의대 명예교수.
이후 입소문이 퍼지면서 1990년대 들어 영국 옥스퍼드대, 캐나다 토론토대 부속 병원 등 세계 주요 병원 및 대학에서 앞다투어 MBSR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당시 미 NBA 농구를 주름잡던 마이클 조던과 필잭슨 감독의 시카고 불스팀의 우승에 MBSR 교육도 크게 기여했다.
2000년대 들어 마음챙김 프로그램은 ▲스트레스 완화 ▲창의력 증진 ▲대인관계 개선 등의 효과가 부각되면서 구글, 애플, 페이스북, 로이터, 제너럴 밀즈,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도이치뱅크, KPMG, 글락, 이노센트, 크레딧 스위스 등 세계적 기업・은행들도 앞다투어 도입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3년 커버스토리로 ‘명상의 과학’을 다룬 데 이어 2014년 2월 다시 커버스토리로 ‘마음챙김 혁명(Mindful Revolution)’을 싣고 의료・심리 분야 뿐 아니라 직장・학교・가정으로까지 확대돼 전세계에서 불고 있는 ‘마음챙김 명상’ 열풍을 보도했다.
MBSR을 중심으로하는 ‘마음챙김’의 열풍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MBSR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마음 피트니스가 됐다. 단지 8주 교육으로 할 수 있는 ‘셀프 마음훈련법’이지만 기본적인 명상이나 호흡법을 안다면 책과 CD만 보고 독학도 가능하다.
스트레스를 풀거나 마음 수양을 위해 굳이 휴양지나 산속을 찾을 필요가 없다.
둘째, 이미 의료 현장에서 입증된 사실이지만 신체적 통증환자뿐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적 재난환자들에게도 좋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선 MBSR을 토대로 MBCT(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마음챙김기반 인지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어 우울증 재발율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렸다.
또한 긍정적인 마음 컨디션 계발은 신체 면역력 강화 뿐아니라 암, 혈압, 당뇨병 등 대사질환에도 크게 기여한다.
셋째,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경쟁적・유위(有爲)적 삶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영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최소한 시속 100km로 달리는 삶을 시속 20km이하로 감속하거나, 정지모드(Non-Doing Mode)로 바꿀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창안한 존 카밧진은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명예교수이자 세계적인 영적 리더 반열에 올라 있다.
그의 정신적 스승은 숭산스님이다. 그가 쓴 많은 책에서 스님의 이야기가 소개됐으며 그의 결혼식 주례도 스님이 했다.
정작 지금 한국인은 잘 모르지만 세계를 휩쓸고 있는 MBSR 프로그램에는 한국의 전통 선불교 사상과 기법이 녹여 있다. 그런데 왜 한국인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하는가.
글 |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