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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겨울)
바깥마당으로 나갔더니 ‘갑비’가 쏜살같이 달려온다. 사자 갈기 같은 머리털이 바람에 뒤로 쫙 갈리면서 갑비의 얼굴이 다 드러났다. 털이 눈을 가리고 있어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갑비의 두 눈도 보인다. 마치 짙게 아이쉐도우를 칠한 듯 두 눈가는 검은 빛이다. 길게 빼문 진분홍빛의 혀도 보인다. 그 색상의 조화가 하도 고와서 감탄을 하고 있을 찰나 갑비가 풀썩 뛰어오르면서 내 품에 안긴다. 저는 반갑다는 표시를 이리 하건만 나는 반갑지가 않다. 덩치가 작은 송아지만한 놈이 온 몸을 던지듯 하며 앞발을 내 가슴에 얹으니 옷에 발자국이 생겼다. 그래서 꾸중을 하는 듯이 소리를 치니 갑비는 주인이 제 마음을 몰라주는 게 야속한 지 뒤로 물러났다.
'갑비'는 우리가 키우고 있는 삽살개의 이름이다. 갑비가 맨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어떤 이름을 지어줄 지 의견이 분분했다. 아이들과 남편의 생각이 각각 달랐고 또 나는 나대로 내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을 궁리하는데 알맞춤한 이름이 떠올랐다. 바로 '갑비'였다.
우리가 사는 곳이 강화도이니 강화의 옛 이름인 '갑비고차'에서 첫 머리 글자인 '갑비'를 따와서 이름을 지어주면 뭔가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았다. 또 '갑甲'은 첫째를 뜻하는 말이고 '비妃'는 왕비라는 뜻이니 암컷 삽살개에게는 이보다 더 멋진 이름이 있겠는가. 그래서 '갑비'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짓고 보니 참 잘 어울렸다. 우선 '갑비'라고 부를 때 '갑'자에서는 아래위 입술이 마주 붙으면서 숨을 멈춰야 하지만 '비'자를 발음하면 멈춰졌던 숨이 트이면서 마치 휘파람을 부는 듯이 소리가 길게 이어져 나온다. '갑비'라는 이름 끝에 어조사인 '야'자를 넣어서 '갑비야'라고 부르면 친근감은 더 커진다.
갑비는 순종 삽살개다. 삽살개는 한때 멸종 위기에 빠질 정도로 개체수가 극히 적었는데 다행히 육종을 통해서 다시 되살려낸 우리 토종개다. 삽살개는 진돗개와 마찬가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개인데, 삽살개보존회에서는 엄격하게 혈통 관리를 하여 순종의 맥을 이어간다. 어미가 순종 삽살개라 해도 아비가 삽살개가 아니면 순종으로 인정을 받을 수가 없으며 또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미 아비 뿐 아니라 그 윗대까지 순수혈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삽살개만이 순종으로 인정을 받는 혈통서를 받을 수 있다.
십여 년 전 당시에는 언론매체에서 삽살개를 자주 다뤄주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개는 아니었다. 육종을 통해 복원한 개가 약 3000 마리 정도 밖에 안 되던 시대였으니 삽살개는 어찌 보면 귀한 개였다. 화면으로 본 삽살개는 긴 털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눈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또 체구도 듬직하고 행실 또한 체구에 걸맞게 신중해 보였다. 그래도 실제로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어떤 품성을 가진 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갑비를 만나고부터 삽살개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으니 갑비에게 어떤 특별함이 숨어 있었던 걸까.
우리 집에 온 갑비
남편이 담임을 맡고 있는 반 아이 중에 도시의 학교에서 적응을 잘 하지 못해 시골 학교로 전학을 온 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는 또래 학생들과의 교류도 활발하지 않았고 또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신뢰감을 그리 갖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이상하게 우리 남편에게는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왔다.
어느 날 그 애가 "선생님, 개 좋아하시죠? 우리 집 풍산개가 임신했는데 나중에 새끼 한 마리 드릴까요?"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당시 남편은 아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방편으로 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시골 학교인지라 학생들 대부분의 집에는 한두 마리 정도의 개를 키우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관심을 보이면서 다가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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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여름, 벌써 털이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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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휴일 오후에 마당으로 멋진 차가 한 대 들어섰다. 누굴까 하며 내다봤더니 풍산개를 한 마리 주마고 약속했던 그 학생이었다. 그 뒤를 따라서 학생의 부모님도 함께 내리셨는데 품에 아주 튼실해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오셨다. 그 강아지는 황갈색 털이 북슬북슬하게 나 있는 게 다리통 하나가 어린아이의 종아리만큼이나 될 정도로 아주 실한 놈이었다.
풍산개를 준다고 했으니 당연히 풍산개의 강아지인 줄 알았다. 그래서 "풍산개는 원래 이렇게 큰가 봐요?" 하며 인사를 했더니 풍산개가 아니라 삽살개라고 했다.
사실 그동안 진돗개도 키워봤고 또 호랑이처럼 얼룩얼룩한 무늬가 있어서 '호구'라고 부르는 개도 키워봤지만 삽살개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삽살개라면 그 무렵 한창 언론의 주목을 받는 개라서 고가에 거래가 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런 개를 그냥 주신다니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부담이 되었다. 그런데 그 학생의 부모님은 오히려 우리에게 고마워하시는 게 아닌가. "우리 애가 학교에서 잘 어울리지를 못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늘 선생님 이야기를 해요. 선생님이 개를 좋아하신다니 저희도 기쁜 마음으로 드립니다. 아무리 개라고 하지만 아무에게나 막 줄 수는 없잖아요. 진짜로 개를 아끼고 사랑해 줄 사람한테 드려야죠." 하면서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갑비는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대개 강아지들은 천방지축으로 설치게 마련이라서 오죽하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겼을 정도인데 갑비는 아주 점잖았다. 집 안으로 안고 들어와서 거실 창문 앞에 내려놨더니 우리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 뭔가. 부산스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저지레를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처신이 점잖은 걸 보고 개에게도 품격을 매긴다면 갑비는 틀림없이 양반일 것이라 생각을 했다.
족보도 있는 갑비
갑비는 삽살개 보존회에서 발행한 혈통서를 갖고 있는, 족보 있는 개다. '사단법인 삽살개 보존회'에서 내준 혈통서에는 갑비의 부계와 모계의 고조부 대까지 내력이 다 들어 있었는데 사람으로 치면 명문가의 피를 받은 우수견이었다. 대개 강아지들은 태어난 지 50일 정도 지나면 젖을 떼고 어미로부터 떨어진다. 갑비도 태어난 날인 2002년 8월 24일로부터 두 달 정도 지난 10월 26일에 우리 집에 왔다.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 그런 걸까, 갑비가 하는 짓은 뭐든지 다 예뻤다. 갑비는 항상 주인 근처에 머물렀다. 주인이 집 안에 있으면 방문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오는 기척이 들리면 벌떡 일어나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갈 때면 꼭 몇 발치 앞장서서 걸으면서 마치 호위를 해주는 군사처럼 주인을 보위했다.
(2003년 가을)
우리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도 집에 사람이 오는지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갑비는 집 근처에 사람 기척이 들리면 경계신호인 양 컹컹 짖었다. 몇 번 그렇게 짖다가 멈추면 그건 별 일이 아니라는 신호로 알아채면 된다. 그러나 위협적인 목소리로 크고 빠르게 짖어대면 우리 집 울안으로 사람이 들어섰다는 신호다. 갑비가 보내는 신호로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인지 아니면 집에 손님이 왔는지를 파악하고 맞을 채비를 했다.
천연기념물 368호 삽살개
전해 내려오는 문헌에 의하면 신라의 왕실에서는 삽살개를 애완으로 키웠다고 한다. 또 조선 시대의 민화(民畵) 속에도 삽살개가 등장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는 삽살개가 횡액을 물리쳐준다고 우리 조상님들은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삽살개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우리의 토종개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수난기였던 일제시대 때 삽살개 역시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제는 만주국의 군인들을 위한 방한용구를 만들기 위해 삽살개를 잡아들였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던 삽살개는 멸종 위기에까지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 복원을 하고 또 육종을 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데, 정부에서는 삽살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다.
갑비와 함께 한 날이 십년이 지났다. 젖을 갓 뗀 어린 강아지였던 갑비가 성견이 되고 또 자기를 닮은 새끼들을 낳아 어미가 되었듯이 우리 집도 성장하고 발전해 나갔다. 초등학생이었던 우리 아이들은 모두 잘 자라주었고, 이제는 각자 제 갈 길을 찾아 떠난 집에는 우리 부부만 남았다. 하지만 변함없이 갑비가 우리 곁에 있다. 비록 늙고 기운이 빠져서 추레해졌지만 여전히 갑비는 우리를 호위해준다.
갑비와 함께 들판을 달리던 때가 생각이 난다. 초록의 바람이 불어오던 집 앞 들판을 산책하듯이 걷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부터 달리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마침내는 마라톤대회에도 나갔으니, 그때 갑비와 나는 건장했고 또 힘이 좋았던 것 같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갑비는 이제 사람이 와도 예전처럼 활기차게 짖지를 않는다. 두어 번 짖는 듯 마는 듯이 하다가 그쳐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갑비가 늙고 힘들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동안 쌓은 내공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십여 년 세월 동안 우리 집 주변 상황을 매 순간 온 몸으로 느끼고 체득했으니 갑비는 모든 걸 통달했는가 보다. 그래서 눈을 지그시 감고 엎드린 채로 있어도 집 주변의 돌아가는 상황을 다 파악하고 몇 번 짖는 것으로 대신하는 듯하다.
장마철에 비를 맞아 추레해보여서 깎아 주기 시작했던 갑비의 털을 매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재봉 가위로 다듬어 준다. 처음에는 털을 깎는 손길을 거부하려는 듯 몸을 뒤틀던 갑비도 이제는 편히 몸을 내맡기고 가만히 있는다. 털에 가려져있던 갑비의 맨몸이 드러났다. 털이 풍성할 때는 몰랐는데 몸에 살이 없어서 배가 홀쭉했다. 세월 따라 늙어가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앙상한 몸을 보자 마음이 짠하다.
갑비는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있으면서도 더운지 혀를 길게 빼물고 헉헉대고 있다. 해거름녘에는 갑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봐야겠다. 그늘이 져서 어둑한 산 속의 숲에서도 갑비와 함께 있으면 두렵지 않다. 그 숲으로 갑비와 함께 들어가서 초록 바람을 맞으며 산자락을 걸어야겠다. 그러면 들판을 달리던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우리 앞에 찾아올 것 같다.
(최근의 갑비 모습. 털이 엉켜서 지저분해 보이길래 재봉가위로 덤성덤성 깎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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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12년 7월에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가져왔습니다.
여기에 나온 삽살개 '갑비'는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약 한 달 쯤 뒤에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참 우아하고 기품있는 개 "갑비"입니다.마음이 많이 아프셨겠어요.미감님 저도 잘못된 생각(관습)으로 개을 보다가, 최근에 반려견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고,TV프로그램의 동물농장등을 자주 봅니다.앞으로,아이들과 의논해서 비글 같은개을 키워볼까 고민중입니다.제가 개들에게 죄가 많아요.
정말 기품이 있는 개였어요.
삽살개만한 개가 없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말이에요.
다른 분들에게는 또 다른 품종의 개가 최고라고 느끼시겠지만 저에게는 삽살개가 최고입니다.
연개소문 님은 비글을 좋아하시는군요.
실외에서 키워야하기에 긴털보다는 잔털의 개가 좋을것 같아요.예전 이모님 비글을 잠시 보호해 주었는데,영리하고 순하더라구요.
아... 아쉽네요.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면서 왜 난 갑비를 한번도 보지 못했을까 했는데..
이야기속 주인공이 되곤 하늘로 갔군요.
보았으면 좋았을 걸ㅎ..
글을 읽어 내려가며 한편으로는 지난번 보고 온 재색 토끼는 어찌 살고 있을까 궁금해요.
그동안 많이 컸을텐데.. 폴짝폴짝 신나게 뛰어 다니두만. ^^
자람도서관에도 토끼가 있던데 걔들은 맘껏 뛰지를 못하게 되어서 조금 안타까왔답니다.
저들 본성 대로 뛰어야 그 모습이 아름답더라구요.
갑비를 보내면서 참 슬펐는데, 작년 이맘 때 갔으니 딱 일 년 되었네요.
토끼는 닭장 안에서 뛰어다니며 잘 살고 있어요.
많이 컸어요.
살 때는 내가 키울 듯이 그래놓고 지금은 우리 남편이 매일 칡 잎 뜯어서 갖다주고, 토끼 당번이 되어 버렸어요.ㅎㅎ
ㅇ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