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고 싶다
허 열 웅
서쪽 하늘에 자줏빛 까치 노을이 느슨하게 다가왔다. 작은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푸른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 그래, 아들 결혼 날자는 정 했어?
# 응, 한 달쯤 남았어.
* 바쁘겠구나.
# 바쁘긴, 걱정이 많아, 서울에 전세 가격이 왜 이렇게 오르는지 모르겠어.
* 아들 나이가 서른일곱인가? 우리 아이하고 비슷하지.
# 금년에 서른여덟이 됐어
* 대학교 강사랬지, 돈 좀 모아놨나?
# 외국인 노동자 임금 수준도 안 되는 강사료인데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
* 박사 학위까지 받느라 고생했겠네.
# 지금 은행 대출이자 갚기도 벅차다네,
바다 쪽으로 비스듬히 열린 유리창을 깰 것처럼 별들이 마구 쏟아졌다.
# 그래, 넌 애들 결혼시키며 아파트 한 채씩은 사주었겠구나?
* 응, 별로 크지 않은 거,
# 좋아했겠구나, 나도 돈 좀 벌어야했는데
* 공직자가 어떻게 돈을 벌어.
# 아냐, 내가 직장에 근무할 때 큰 공사 입찰 건으로 누가 헌 돈을 가득 담은 사과 상자를 두 개나 가져 왔었어, 그걸 받아야했는지도 몰라.
* 너, 그 돈 받았으면 쇠고랑 차서 이렇게 멋진 증도에 놀러오지도 못했어.
# 혹시 아니? 그 돈 받았어도 아무 탈 없었을지도 몰라, 재수 없는 놈만 걸려드는 것 이 이 세상이니, 뇌물이나 정치 자금을 몇 십억씩 챙기고도 멀쩡한 놈들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태연하게 근무하는 자들이 한두 놈이 아니 겠 지?
흰 이빨을 드러내며 출렁이던 파도들이 우리 이야기를 엿 듣는지 조용해졌다.
# 그래도 난 네가 부럽다. 좋아하는 글 써서 책도 내고, 노후를 의미 있게 보내고 있 지 않니?
* 쌀도 돈도 되지 않는 글 써서 뭐하니? 너처럼 자식에게 집도 사주고 호수가의 별장 도 물려주고 그래야 되는데.
* 그놈들이 부모가 재산 많이 물려주었다고 고마워하면서 살 것 같으냐? 저희들 끼리 싸움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넌 그래도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가 쓴 책 읽으 며 긍지를 갖고 오래 기억하지 않겠니. 이 보다 더 좋고 의미 있는 유산이 어디 있 어?
야! 너 피박에 광박까지 썼어, 갑자기 펜션의 대청마루에서 고스톱을 하고 있는 친구들의 어수선한 목소리가 파도 에 실려 목포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깊은 밤 염전에서 소금 성글어가는 짭조름한 향기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먼데서 울려오는 뱃고동 소리가 어둠을 타고 섬에 상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