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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와 우리말의 어원 연구
2.4. Teotihuacan[때오띠와깐](태워티와칸), <태양신의 터와 사람>
태오티와칸은 현재 멕이코시티 북동쪽 50km 지점에 위치한 멕이코 중부 지역 최초의 고대 문명이 발생한 지역이다. 태오티와칸 문명은 대략 기원전 50년경에 시작하여 8세기 중엽에 사라졌다. 이곳에는 멕이코의 가장 대표적인 피라밋인 태양의 피라밋을 비롯하여, 달의 피라밋, 케찰꼬아들(용) 피라밋이 있다. 이 문명의 멸망 원인은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7세기에 그 곳에 큰 화재가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멸망의 원인을 내부적 불화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은 8세기 이후에 흩어져, 돌태카(Tolteca), 아스카푸잘고(Azcapoputzalco), 촐룰라(Cholula), 소치갈고(Xochicalco) 등지로 이동하였다. Teotihuacan(태오티와칸)은 지금까지 ‘인간이 신(神)이 되는 곳(el lugar donde los hombres se hacen dioses)’을 뜻한다고 해석되어 오고 있다. 그런데 이 뜻도 역시, 앞에서 필자가 지적했듯이, 나와들어의 대부분의 어휘나 문장의 경우처럼, 유추로 해석된 것이다. 필자가 유추해석이라고 하는 것은 ‘비슷하나 정확하지 않다’를 의미한다. 이 지명의 형태소 구조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된다.
a) teo (태오): 태워. 아스텍에서 원래 ‘태양신’을 의미했으나, 나중에는 보통명사화 되어 ‘神(신)’을 의미을 한다.
b) ti(티): 티; ‘터’와 비슷한 우리말
c) hua(와): 공동격 조사 ‘와’
d) can (칸): 간. 우리말 고어에서 ‘높은 사람’을 나타낸다.
e) Teotihuacan(태오티와간)의 전체 뜻: 신의 터와 높은 사람
멕이코에서 Teo(태오)는 원래 ‘태양신’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나중에 ‘신(神)’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 이 어휘는 미국 아리조나주 호피족이나 수니족에서는 tawa(타와)> dawa(다와)로 t를 유성음화하여 지금은 dawa(다와)라고 말한다. 뉴멕시코주 북부 산타페 주변지역 인디언들은 tewa족이라고 불리는데, 태양을 tewa(태와)라고 한다.
53) 학자들은 아스카푸잘고는 풍습이 아스테카족이나 고리족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하고 있다. 환 데 토바르(Juan de Tovar)의 역사서에도 아스테카인들이 콜와족(고리족)은 동족으로 보지만 아스카푸잘고에 사는 사람들은 친하지만 동족으로 보지 않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필자는 아스카푸잘고의 사람들이 몽골인들일 것으로 추정한다. 돌태카, 촐룰라 그리고 소치갈고는 우리민족이 살던 지역으로 판단한다. 이 지역에는 우리민족과 관련된 것들이 나온다.
54) Arizona, New Mexico, Colorado, Utah의 Plateau의 절벽 위에 사는 사람들은 인종적으로 Nahua족 관련되고, 멕이코쪽에도 퍼져 살고 있다. 오늘날 멕이코 북쪽에 사는 Pueblo인디언들은 아마도 대개 Nahua인들의 혈통과 연결되어 있다(Lewis Spence F.R.A.I. , 『The Myths of Mexico &Peru』, 1920, p. 24).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들은 먼저 아메리카로 건너 온 부여 고리족들의 후예들로 보인다.
국어학자 박재양(경희대/개인대담)에 따르면, 우리말의 동사 ‘태우다, 타다’ 등은 모두 ‘태양’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설명에 근거하면, 태양신(太陽神)을 뜻하는 teo(태오)는 우리말 동사 ‘태워/태우(다)’와 관련이 있다. 우리말 ‘태워/태우’의 발음을 스페인어로 음차 표기하면 teo가 된다. 아스테카인들은 태양신을 때로는 ‘아버지 신’으로 보았는데, 불(火)의 신도 ‘아버지 신’으로 보았다. 즉 태양신과 불의 신을 동일시했다. 그리고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tata(타다)와 tlatla(타다)는 ‘불의 신’을 뜻하기도 하고, 동사 ‘타다’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아스테카인들의 사고방식에는 ‘태양=불=타다’가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다. 박재양의 설명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는다. '티(ti)’는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할 어휘는 공동격 조사 ‘와(hua)’이다. 스페인어 알파벳 체계에는 비교적 최근까지 ‘w’ 가 없었다. 따라서 ‘와’를 표기할 때에는 언제나 hua로 했다. 최근에는 영어의 알파벳 ‘w’ 를 차용하여 외래어 표기에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20세기에 미국의 언어학자 랑가커(La ngacker)를 중심으로 아스텍-나와들어를 연구한 자료집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과 예문이 보인다.
a) wa, wan = and (= 와, 그리고)
b) sin-tli, čankaka, e-tl wan čili
발음: [신들이], [찬카카], [에들] [완] [칠리]
뜻: 옥수수, 파넬라, 에들콩과 고추
예 (a,b)의 wa(와), wan(완)은 1979년 발간된 나와들어 연구서에서 사용된 우리말의 공동격 조사‘와’의 표기이다. 스페인어에서 아직‘w’를 사용하지 않던 16~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wa나 wan은 hua나 huan으로 표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위 두 예문은 아스텍의 나와들어 hua(와)가 우리말의 공동격 조사 ‘와’와 일치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껍질을 까지 않은 옥수수를 앞에서는 centl(i)(센털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고, 여기서는 sintli(신털이)라고 한다. sintli(신털이)는 1950년대 이후 현장 조사를 통하여 얻은 어휘이고, centli(센털이)는 16세기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어휘이다. 400년 정도의 시간적 차이로 인하여 발음이 약간 변했음을 보여 준다58). 마지막 음절의 모음 ‘i(이)’는 순 우리말에 매우 많이 나온다. 접사 ‘이’는 아무런 뜻이 없지만 우리말 옛 지명, 사람이나 사물 이름에 매우 많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갑돌/갑돌이, 갑순/갑순이, 날진(매)/날진이, 수진(매)/수진이 등). 나와들어와 우리말의 중요한 공통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접사‘이’가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국어학적으로 심도있게 비교 연구할 필요가 있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55) Spence, Lewis F.R.A.I.,『The Myths of Mexico &Peru』, Ballantyne Press, 1920, p. 95에서 ‘타다(tata)’를 ‘불의 신(the FireGod)’ 로 설명하면서 동시에 ‘우리 아버지(Our Farther)’로 설명하고 있다. 불=태양신의 개념은 고리족의 태양신 신앙과 직결된다. 멕이코의 태양신 숭배와 잉카의 태양신 숭배는 부여 고리족의 태양신 숭배가 그 근원일 것이다.
56) Langacker, Ronald W., 『Studies in Uto –Aztecan grammar』 Vol.2, Published in the Summer Institue of Linguistics and the University of Texas, 1979, pp. 116, 138, 146, 148, 185, 192, 194, 315 등
57) Langacker, Ronald W., 같은 책, p. 246
58) 우리 국어의 소위 ‘ㅣ 모음 역행동화’로 보인다. 즉 centli[센털이]의 마지막 음절 모음 ‘ㅣ’가 앞의 모음 ‘e(에)’를 더욱 폐모음화 시켜서 ‘i(이)’로 바꾸어 sintli가 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can(칸)은 우리말 고어 ‘간’일 것이다. 나와들어 can은 우리말 발음으로는 (간), (깐), (칸)에 해당한다. 우리말에서 ‘간’은 장소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고, 높은 신분의 사람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예로는 ‘헛간, 곳간, 뒷간, 장독간, 정지간, 마굿간, 대장간’ 등이 있고, 부여계 선조들의 활동 무대였던 아무르강 북쪽 러시아 땅의 많은 지명이 ‘kan(칸)’으로 불리고 있다. 후자의 예로는 신라시대의 고위 관직명에 사용된 흔적이 있다.
마립간(麻立干), 이벌간(伊罰干, 이척간(伊尺干), 영간(迎干), 파미간(破彌干), 대아척간(大阿尺干) 등 매우 많다. 12세기 대원제국을 일으킨 테무친도 징기스칸이라고 불렸다59). 아스텍의 나와들어에서도 can(간)은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고, 사람을 의미하기도 했다.
전자의 예로는 Cohuaca(콜와가=콜와 사람=고리족 사람)/ Colhuacan(콜와간=콜와족이 사는 곳), Tepaneca(태파네가=태파네족 사람)/ Tepanecan(태파네족이 사는 곳)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들이 매우 많다. 위 지명의 형태소 분석에서, 필자는 can이 이 두 가지 의미 가운데 ‘사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그 근거는 아스텍의 풍물 역사서를 썼고, 아스텍 제국 멸망 직후에 원주민들의 교육과 보호를 위하여 노력했던 사하군(Bernardino de Sahagún)신부가 기록한 다음과 같은 원주민 시가(詩歌)가 있기 때문이다60). 태오티와칸의 정신(신앙)은, 정복전쟁이 지난 지 몇 년 후에 베르나르디노 사하군 신부가 받아 적은, 다음의 원주민 시가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을 그들은 태오티와칸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그들이 족장들을 묻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가 죽을지라도,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다.”
59) 징기스칸을 몽공인들은 ‘징기스한’이라고 불렀다. 몽골인들은 음소 /k/를 발음하지 못했다. 따라서 만주 일대의 유목민들의 족장들을 ‘간/칸’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민족이었을 것이다. 아무르강 북쪽 러시아 극동 지방에는 ‘간/칸’을 장소 명칭으로 사용한 지역들이 매우 많다. 러시아의 동유럽 지역이나 다른 지역에는 이 어휘를 사용한 지명이 거의 없다. 아무르강 북쪽 지역도 고리족의 활동 영역이었음을 보여주는 어휘이다.
60) Juan Schobinger, 『The first American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4, p. 97
이 인용문에는 태오티와칸에 높은 족장들을 묻는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태오티와칸에는 태양신을 모시는 태양의 피라밋이 있다. 그 피라밋 꼭대기에는 작은 신당(神堂)이 있었고, 그 안에는 금으로 장식된 신상이 있었는데, 초기 정복자들이 신당과 신상을 파괴하고 금을 약탈해 갔다고 한다. 그리고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여 태양의 피라밋 앞에 길게 가로로 펼쳐진 ‘사자(死者)의 길’ 가에는 족장들의 무덤이 많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Teotihuacan(태오티와칸)은 필자의 해석대로 ‘태양신의 터와 (높은)사람’을 의미하는 우리말임이 틀림없다. 기존의 번역인 ‘사람이 신이 되는 곳’이라는 번역은 유추(類推)에 의한 오역이다. 이유는 이 지명에는 ‘사람’을 의미하는 어휘도 없고, ‘되다’에 해당하는 어휘도 없는 반면에, 우리말 의 ‘장소’를 의미하는 ‘티’와 공동격 조사 ‘와’가 분명하게 나오며, 또 위 시가에서 보았듯이 ‘족장’을 의미하는 어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필자는 Teotihuacan(태워티와칸)이라는 지명도 우리말이며, 그 뜻도 우리말의 형태소 분석으로 분명하게 밝혔다. 이렇게 이 지명을 우리말 형태소로 분석하여 나온 뜻이 멕이코 원주민들이 남겨 둔 시가(詩歌)와 일치한다. 우리의 분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오티와칸 문명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현재까지의 이론들은 Tolteca[똘떼까](돌태가)문명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들일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Tolteca(돌태가)문명에 대하여 콜와족(고리족)과 아스테카인들은 분명하게 ‘자기 조상들의 문명’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 앞에서 본 촐룰라(Cholula)의 사람들도 Tolteca(돌태가)가 망하자 도망쳐 온 사람들이었고, 이들이 오기 수백 년 전에, 태오티와칸이 8세기에 멸망하자 곧바로 촐룰라로 이동한 사람들도 있었다61). 우리는 앞에서 촐룰라의 지명뿐 아니라 피라밋에 대한 설명도 우리말이었다는 것을 보았다. 특히 손성태(2010)에서는 촐룰라의 사람들이 우리민족 고유의 검은 갓과 흰 도포를 입고 살았음을 밝혔다. 따라서 Teotihuacan(태오티와칸) 문명은 우리민족 문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는 우리민족 부여의 고리족이 몽골인의 협조를 받아서 세운 문명이라고 생각한다. 고리족은 태양신과 용신을 믿었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제기되어야 할 질문은 태오티와칸에서 우리민족임을 증거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있는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분명하게 ‘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지금부터 그 증거들을 보기로 한다. Teotihuacan(태오티와칸) 문명은 멕이코 중부 지역의 모태 문명으로서 기원전 50년부터 기원후 8세기까지 지속된 문명이었다. 그 후에 Tolteca 문명과 아스테카문명에 차례로 흡수 반영됨으로서, 태오티와칸은 지명 자체를 제외한 언어적 증거는 찾을 수 없지만, 지금까지 학자들은 언어적으로도 나와들어 계통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나와들어라면 아스테카인들의 언어라기보다는 고리족 언어일 것이 다62). 필자는 지금 부터 Teotihuacan(태오티와칸)의 고고학적 유물이 우리 민족과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기로 한다.
2.4.1. 붉은 볼연지를 찍은 여인
태오티와칸 벽화에는 붉은 볼연지를 찍은 여인의 초상화가 있다. 붉은 볼연지는 고구려 벽화에도 나오는 우리민족의 풍습이다. 좌측의 상세한 삽화 그림을 보면, 왼쪽에 고리모양의 문양 세 개가 뚜렷이 나온다. 손성태(2009b)에서 밝혔듯이 이것은 고리족의 상징이다.
61) Juan Schobinger, idem., p.89
62) 아스테카 언어와 고리족(콜와족) 언어 개념은 본 연구자가 처음 구별하는 개념이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아스테카인들의 활동이 많았던 지역의 언어가 현대 우리말에 좀 더 가까워서 이해하기 쉬웠고, 멕이코 전역과 유카탄반도를 포함한 고리족의 활동이 많았던 지역들의 언어에서는 현대 우리말과 가까운 어휘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한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근거로 임시로 구분한 개념이다. 아스테카인들의 언어가 현대 우리말에 좀 더 가까운 이유는 그들이 떠난 시기가 마지막으로 고리족이 이동했던 시기보다도 약 300 여 년 이나 늦은 기원후 820년이고, 이것은 초기 고리족 이동과 비교하면 약 900년 후이기 때문이다.
2.4.2. 상투를 한 인물상
상투는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머리 모양중 하나이다.
2.4.3. 향로
아래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발해의 유물과 태오티와칸의 유물로서, 흙으로 빚은 것이다. 배진성 학예사(국립중앙박물관/개인대담)에 따르면 아래의 고구려와 발해의 유물은 그 용도가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유물들과 매우 흡사한 유물들이 태오티와칸에서 무더기로 발굴되었고, 태오티와칸 문명이 무너진 이후에는 그 문명이 옮겨간 곳에서도 발굴되었다. 아래에서 (d)의 첫 번째 사진은 원형 그대로 발굴된 유물이고, 나머지 세 개는 복원한 삽화도이다63).
우리민족의 것과 태오티와칸의 것은 흙으로 빚어졌고, 단순한 6면체에 구멍을 뚫거나, 외면을 조각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구멍을 뚫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발해의 유물과 태오티와칸의 유물은 위로 두 개의 구멍이 뚫렸다. 이 유물들의 공통점 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옆면에도 구멍이 있다는 점이다.
태오티와칸의 유물들은 향로라고 한다. 사람들이 신전에 가서 신상 앞에서 치성을 드릴 때, 각자 향을 피워 가져 온 이 향로를 신상 앞에 놓았다고 한다. 이 설명이 맞다면, 옆 면의 구멍은 향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만든 공기구멍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발해의 두 유물 (a)와 (b)를 자세히 보면 윗면 구멍 주변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다.
2.4.4. 태오티와칸의 배치도와 요동의 홍산 우하량 유적 배치도
a) 북경 천단 배치도
b) 태오티와칸 배치도
c) 홍산 우하량 유적
위의 사진 (a)는 북경 천단의 배치도이고, (b)는 태오티와칸의 배치도이며, (c)는 북경 천단의 원형인 홍산 문명의 우하량 유적이다. 우실하(2007, pp.172~179)에 따르면 이 천단은 명나라 때 만들어 진 이후에, 청나라 때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천단의 기원은 (c)에서 보듯이, 기원전 3000여년의 홍산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64). 천단 모양의 제단 유적이 중국 요하 유역의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요하 유역은 우리의 고조선이 건설되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설명을 간단히 하기 위하여, 여기서는 (a)와 (b)의 배치도를 비교하기로 한다. 사진 (a)와 (b)를 비교해 보면, 두 배치도의 구조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a) 정면 중앙에 원형 광장이 있다.
b) 원형 광장 중앙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 있다.
c) 원형 광장 아래쪽과 위쪽으로 큰 길이 직선으로 나 있다.
d) 원형 광장 아래쪽 길은 짧고, 위쪽 길은 길다.
e) 위쪽 길 왼쪽에 피라밋이 건설되어 있다.
우리는 앞에서 피라밋을 우리 선조들은 ‘태백’ 즉 ‘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확인했고, 돌로 건축된 계단식과 흙으로 건축된 경사면식은 재료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태오티와칸의 피라밋이나 북경천단의 흙 봉우리나 모두 ‘태백’으로 볼 수 있다65).
이렇게 도로, 건축물, 제단의 모양, 그리고 그것들이 놓인 구도가 같다는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있을까? 그 지명도 우리말 형태소로 분석되고, 그 형태소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지명의 뜻도 우리말로 정확하게 이해되며, 그곳에 남겨진 고고학적 유물도 우리의 것과 비슷하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이 유사함을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필자의 판단은 중부 멕이코의 모태 문명이라고 하는 태오티와칸 문명도 우리민족이 그 주인공이라고 판단한다. 이 문명이 멸망한 뒤에 그 사람들이 이동해간 지역에는 뚜렷하게 우리민족의 문화가 남아 있었고, 우리말이 나왔음을 필자는 증명했다. 바로 그러한 지역 중 한 곳이 촐룰라(Cholula)이다.
64) 우실하,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176쪽: “중국학자들은 우하량 제2지점에서 발견된 원형과 방형의 제단 유적을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의 원형이자, 북경천단구조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65) 차이점은 테오티와칸은 중앙 광장 아래쪽에 달의 피라밋이 있고, 위쪽 길 끝에는 ‘깃털달린 뱀의 피라밋’, 즉 케찰코아들 피라밋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테오티와칸은 시대에 따라서 새로운 민족이 지속적으로 유입하였고, 그들은 기존의 건축에 더하여 새로운 기념물을 지었다고 한다.
태오티와칸 문명은 8세기까지 존속했던 문명이다. 태양의 피라밋은 100년 이상 걸려서 건축한 것으로서 2세기 중엽에 완성한 건축물이다. 북경 천단이 14세기 중엽에 건국된 명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지라도, 태오티와칸이 무려 1200여년이나 앞선다. 그렇다고 문화가 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건너왔다고 가정하는 것은 전체 문화 흐름이나 역사적 고고학적 사실과도 맞지 않다. 따라서 희미하게 남아 있는 요동과 그 주변 지역의 피라밋 문화가 이미 기원 전후에 멕이코까지 전파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66).
2.4.5. 안동 하회마을의 주지탈과 테오티와칸 벽화
안동 하회 마을은 하회탈춤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놀이는 고대로 부터 이어져 오던 무속신앙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옛날부터 가정과 마을의 안녕과 복을 산천의 온갖 신들에게 빌고 마을의 대동단결을 위하여 행하던 굿놀이가 오늘날의 민속놀이가 된 예가 매우 많다. 안동 하회마을 탈춤놀이도 그 중의 하나이다. 하회마을의 탈춤놀이는 원래 마을 성황당(서낭당)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빌던 굿 제사에서 비롯되었는데, 신(神)들을 형상화한 탈을 쓰고 하는 민속놀이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 탈 중에 하나인 주지탈에 대하여 민속학계에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모른다.
a) 주지탈
이 사진에서 보듯이, 주지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얼굴에 쓰는 탈이 아니다. 손잡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손에 들고 굿 놀이에 참가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얼굴 모양도 사람의 얼굴이 아님은 분명하다. 얼굴모양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에 따르면 얼굴은 어떤 짐승을 정면에서 바라 본 형상이라고 한다. 주둥이는 새 주둥이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탈의 눈 주변에 찍힌 붉은 점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Teotihuacan(태오티와칸)에는 개가 그려진 방과 새가 그려진 방이 있다. 필자는 이 새들의 형상에서 위의 주지탈의 형상과 흡사한 면을 발견하였다. 아래는 태오티와칸의 새와 개의 벽화로 된 현실의 복원도이다. 왼쪽에는 새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중앙에는 새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67).
66) 동북아시아, 즉 만주-요동 지역의 우리 민족이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 부터 아메리카로 건너갔는지는 알 수 없다. 멕이코 문헌에 따르면 콜와족(부여의 고리족)이 처음 멕이코에 도착한 시기가 기원후 50년이라고 한다. 가장 나중에 멕이코에 도착한 아스테카인들은 820여년경 출발하여, 도착은 대략 11세기초로 추정된다. 즉 약180여년이 걸렸다. 따라서 고리족도 출발은 기원전 1세기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요동지역의 고조선이 한무제에게 망하던 전쟁의 시기였다. 즉 우리민족에게는 격동의 시기였다. 처음 우리민족이 아메리카로 건너간 시기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기원전 1세기경이 아니다. 필자는 청동기 시대로 추정한다. 이유는 아메리카 대륙에 고인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67) Séjourné, Laurette, 『Arquitectura y pintura en Teotihuacan』, Siglo Veintiuno Editores S.A., 1966,p. 312
b) 태오티와칸의 벽화
이 벽화에 주로 나오는 새의 모습을 확대한 것이 아래 그림이다.
c) 새 형상도
아래 그림은 역시 태오티와칸의 벽화에 그려진 어떤 높은 무당으로 추정되는 인물, 즉 신격화된 인물의 모습이다. 이 벽화에서 주목할 점은 이 인물화가 ‘새’와 관련된 신인(神人)이라는 점이다. 그의 머리 위에 새머리 모양이 있는 관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 긴 깃털들이 있다.
d) 신인의 형상도
그런데, (c)의 새의 머리 부분이 어떻게 그려졌는가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아래 그림 (e)에서 보듯이, 새 두 마리가 부리를 서로 교차하면서 마주보는 모습이라고 한다. 마주 보는 두 마리 새의 옆모습을 아래와 같이 살짝 겹치도록 합친 후에, 그 두 마리새의 부리는 하나로 합쳐서, 마치 하나의 부리를 정면에서 본 것처럼 창조적으로 그렸다고 설명했다68).
e) 부리가 겹쳐진 두 마리 새의 모습
이 그림 (e)에서 주둥이 부분을 앞으로 길게 잡아 늘이면, 바로 우리의 주지탈 모습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 나타난다. 이 설명을 바탕으로 주지탈을 다시 관찰해 보면, 머리와 눈 부분은 부리를 겹쳐 놓은 두 마리 새의 옆모습일 수 있고, 앞으로 길게 튀어나온 오리주둥이 모양은 그림(e)의 경우처럼 그 두 마리 새의 부리를 겹친 후, 정면에서 보이는 모양을 앞으로 길게 튀어 나오도록 하면, 주지탈의 입 모양과 흡사한 모양이 나온다. 눈 주변의 붉은 점들은 새털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붉은 점들이 단순하게 찍힌 것이 아니라 작은 새털이 몸 바깥쪽으로 뻗치듯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도 새털을 연상하게 한다.
68) Séjourné, Laurette, idem., pp. 298~299
69) Nave Lewis, 『Teotihuacan, Ciudad de los dioses』, Instituto Nacional de Antropologia e Historia, 2008, p. 18
2.4.6. 기타 증거- 장례 풍습
유적 발굴에 의해 드러난 태오티와칸의 장례 풍습은 두 가지 점에서 우리민족과 유사하다. 먼저 거실장(居室葬)으로서, 주로 평민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것으로서, 집안의 자리 바닥을 파고서 그곳에 죽은 가족을 뭍었다69). 이것을 거실장이라고 한다. 거실장 풍습은 우리나라 맥족(고조선계)가 거주하던 요동지역에도 있었다. 박태호(2008)는 고구려에도 가족이 죽으면 일단 시신을 3년 동안 집안에 안치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70). 러시아 고고학자 브레단스키에 의하면 두만강 유역과 블라디보스톡 지역에도 있었다71). 또 태오티와칸과 가까운 지금의 El Arbolillo(엘아르볼리요)와 Zacatenco(사가탠고) 지역에는 장례식에서 사체의 입에 옥을 물려주는 풍습도 확인되었다72). 사체의 입에 옥을 물려주던 풍습도 우리민족에게 있었다.
요약하면, 필자는 지금까지 태오티와칸(Teotihuacan)의 지명을 우리말 형태소로 분석하여, 그 뜻이 ‘태양신의 터와 (높은)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러한 해석이 옳다는 근거를 몇 가지 제시했다. 그 근거는 멕이코 원주민들의 시가(詩歌)에서도 확인되고, 태오티와칸의 여러 가지 고고학적 자료들이 우리민족의 고고학적 자료들과 매우 비슷하거나 일치 한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아래에서는 아스텍의 일상생활상의 사물의 명칭이 우리말 형태소로 분석되고, 그 뜻도 정확하게 우리말로 해석된다는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3. 일상생활
아스테카인들의 일상생활 속의 많은 용어들이 우리말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우리말이다. 여기서는 전쟁에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무기의 명칭, 식량 생산을 위해 만들었던 물위에 떠다니는 뗏목으로 만든 밭의 명칭, 그리고 그들이 즐겼던 오락 명칭을 대표적으로 분석해 보기로 한다.
3.1. Macana[마까나](막까나), <막 까는 것>
Macahuitl[마까기뜰](막까기틀), <막 까는 도구>
신대륙 발견 이전에, 아스텍 제국은 철이 생산되지 않았다. 철광산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철을 다룰 줄은 알았다. 그들이 사용했던 철은 극소량으로서,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서 모은 철, 즉 운철(隕鐵)이었다. 그들은 이 철로 매우 귀한 장신구를 만들었다. 따라서 신대륙 발견 이전의 전쟁 무기로는 활, 창, 몽둥이 등을 사용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무기인 몽둥이를 그들은 macana(마까나)라고 불렀고, 아래 사진과 그림 처럼 몽둥이에 날카로운 흑요석을 끼워서 만든 무기를 (macahuitl(마까기틀)이라고 불렀다73).
a) 마까기틀
70) 박태호, 『장례의 역사』, 서해문집, 2008, 54쪽
71) 브로단스키, 데. 엘, 『연해주의 고고학』, 정석배역, 322쪽
72) Schobinger, Juan, 『The first americans』, William B. Eerdemans Publishing Company, 1994, p. 84
73) 아스텍에서는 활촉이나 칼날, 침으로 흑요석을 매우 많이 사용했다. 브로단스키에 따르면 두만강 유역에서 흑요석을 매우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브로단스키, 연해주의 고고학』, 정석배역, 297쪽
형태소 구조: macahuitl = 마(ma) + 까(ca) +기(hui) + 틀(tl) = 막 까기 틀
그런데, 한반도 주변에서도 이와같은 방법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증거가 있다. 아래 유물은 요동지역에서 출토되어, 요동의 적봉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유물은 단단한 동물 뼈에 날카로운 옥을 끼워서 만든 칼이다.
c) 적봉 박물관의 유물74)
우리는 사진 (a)와 (c)가 발견 장소가 전혀 다르고, 시기적으로도 다르지만, 그 만드는 방법과 용도에서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스텍의 이 무기의 명칭을 우리말 형태소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형태소 구조가 나온다.
a) ma(마): 부사 ‘막’. 받침은 생략됨
b) ca(까): 동사 ‘까다’의 어간. 우리말 서술어 종결 어미 ‘~다’는 19세기에 완성됨.
c) hui(기): 명사화 접사) 틀(tl): 우리말에서 많은 생활 도구를 ‘틀’이라고 불렀다: 가마니틀, 돗자리틀, 틀,
e) Macahuitl (마까기틀)의 뜻: 막 까기 틀, 즉, 막 까는(두들겨 패는) 도구
이 분석에서, ma(마)는 우리말 부사 ‘막’에 해당한다. 앞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스페인어는 받침소리를 표기하지 못한다. 따라서 ‘ㄱ’은 표기되지 못하고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Ca(까)는 우리말 동사 ‘까다’의 어간이다. 이 동사는 이 무기의 용도를 고려할 때 ‘두들겨 패다’의 의미로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우리말에서도 그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Hui(기)는 발음에 주의해야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어를 방대하게 연구했던 미국의 언어학자 마우리시오 스와데쉬(Mauricio Swadesh)에 따르면 hui는 [위]로 발음하면 안되고, ‘ㄱ’소리를 넣어서 [기] 또는 [귀]로 발음해야 한다고 한다. 그의 설명을 아래에 인용한다75).
74) 민 冰, 『赤峰 博物館 文物典藏』, 沅方出版社, 2007, 22쪽
75) Swadesh, Mauricio, Swadesh, Maurico, 「Estudios sobre Lengua y Cultura」, 『Acta anthropologica
“(스페인어의) huir의 hu와 (나와들어의) huipil이나 huincha의 hu는 다르다. 자음 h는 어떤 경우이든 발음이 되지 않으므로, 그 발음의 차이는 huir같은 경우는 u[우]로 나타내고, huipil에서는 gu[구](또는 gü[구])로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이 도구의 명칭을 현대 스페인어 발음식으로 [마까위틀]로 읽어서는 안되고, [마까기틀]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는 동사를 명사화 시키는 우리말 고유의 명사화 접사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보다>보기, 먹다>먹기, 수영하다>수영하기’등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말에서 매우 자주 사용하는 명사화 접사이다. 위 명칭에서 hui(기)는 바로이 명사화 접사를 표기한 것이다. 어미 ‘-tl’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대로 우리말의 (들), (뜰), (틀)로 발음할 수 있다. 여기서는 복원과 합치의 원칙에 따라서 ‘틀’로 발음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이 명칭이 전쟁 무기인 도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무기의 명칭을 우리말의 형태소로 분석해 보았고, 그 결과는 정확하게 우리말의 각 형태소의 발음과 뜻에 일치하며, 각 형태소의 결합 방식과 결합된 구조도 우리말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그렇게 결합된 전체의 뜻도 이 무기의 용도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렇게 언어학적인 모든 분석적 측면에서 일치한다는 것은 이 명칭이 우리말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이 명칭을 들으면 이 무기의 용도를 아무런 설명 없이도 깨닫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와들어를 연구해 온 수 많은 학자들도 이 무기의 명칭의 뜻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큰 이해의 차이는 바로 멕이코 원주민들이 우리민족이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멕이코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를 연구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대변해 준다. 계속해서 이와 같은 것을 보겠다.
3.2. Patollin[빠똘린](바돌린), <발 돌림>
아래 그림은 아스테카인들이 즐기던 소콰흐-바돌린 (Xocuah-patollin)이라는 놀이이다76).
2a, Epoca II2』, Instituto Nacional de Antropología e Historia, Comite editorialAura Marina Arriola외 6명, 1960, p. 52
76) Ramon Mena L. &Jenkins Arriaga, Juan (1930), Educación intelectual y f́ísica entre los nahuas y mayas precolombinos, P. 41.
그림에서 보듯이, 사람이 등을 땅에 대고 누워서 두 발을 들어 올리고, 그 발 위에 긴 나무 기둥을 올린 후, 두 발을 이용하여 돌리는 놀이이다. 잘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나무 기둥 양 끝에 아이들을 앉히고 돌렸다고도 한다. 이 놀이를 그들은 Xocuah-patollin(소콰흐-바돌린)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놀이 명칭의 뒷부분의 Patollin(바돌린)의 발음이 우리말 ‘발돌림’과 거의 같고, 그림의 설명에 따르면, 그 뜻도 우리말의 뜻과 일치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명칭도 우리말인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형태소 구조 분석을 해 보기로 한다.
형태소 구조: patollin =
a) 바(pa): 발
b) 돌(tol): 동사 ‘돌다’
c) 리(li): 사역보조어간 ‘리’
d) ㄴ(n): 명사형 어미 ‘ㅁ’
e) patolin (바돌린)의 뜻: 발 돌림77).
이 분석에서, pa(바)는 우리말 ‘발’을 의미한다. 받침소리 ‘ㄹ’이 표기되지 않은 이유는, 앞에서 이미 여러 번 설명했듯이, 스페인어가 받침소리를 표기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로는 우리말 음운현상 중에 연속되는 두 어휘에서 받침소리가 모두 ‘ㄹ’이면 앞의 것이 탈락하는 예가 있기 때문이다. 즉 ‘달달이>다달이, 날날이>나날이’의 경우처럼, 위 명칭에서 ‘발돌(림)>바돌(림)’으로 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놀이 명칭에는 우리말 고유의 사역동사 보조어간인 ‘리’가 사용되었다. 자동사인 ‘돌(다)’의 어간에 사역동사 보조 어간인 ‘리’가 첨가되어 타동사를 만들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말 고유의 언어적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동사를 명사화하는 명사형 어미는 우리말에서는 ‘ㅁ’을 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가다>감, 공부하다>공부함, 자다>잠’ 등처럼 매우 흔하다. 그런데 위 명칭에서는 ‘n(ㄴ)’ 으로 이 명사형 어미를 표기하고 있다. 우리민족이 살던 만주지역에서 자음 ‘ㅁ’을 ‘ㄴ’처럼 발음했던 증거가 있다. 만주의 ‘길림(吉林)’을 만주지역에서는 지금도 ‘지린[jilin]’으로 발음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명은 그 발음이 잘 변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발음이 고대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발음일 가능성이 높다78). 나와들어 놀이 명칭에서 각 형태소의 결합 방식, 즉 통사 구조적 결합 방식도 정확하게 우리말과 일치한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하다.
77) 18세기 중엽의 클라비헤로(Clavijero) 신부는 이 어휘를 ‘patolli(바돌리)’라고 기록하고, 그 뜻은 ‘놀이(juego)’라고 번역했다. 또 19세기의 몰리나(Molina)와 시메온(Simeón)은 ‘놀이를 위해서 주어진 것’ 또는 ‘행운의 놀이’라고 번역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해석의 오류이다. 그들이 ‘발돌림’을 ‘오락, 놀이’로 번역한 이유는 어휘 형태소의 정확한 뜻을 모르면서, 그림을 보고 유추해석을 했기 때문이다. 또 주목해야 할 점은 18세기에는 어휘 자체도 이미 변화가 생겨서 마지막 자음 ‘n’을 탈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스페인어가 받침소리를 표기 하지 못하고, 정복이후 스페인어의 영향이 점차 강화됨으로써, 스페인어 발음에 적응하게 됨 으로써 발생한 현상이다. 이와 같이 후기의 나와들어는 스페인어 영향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나와들어의 실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전 나와들어 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이 명칭을 들으면 이 놀이가 어떻게 하는 놀이인지 아무런 설명 없이도 깨닫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와들어를 연구해 온 수많은 학자들도 이 놀이의 명칭을 듣고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주77>에서 지적했듯이 대략적으로 유추하여, ‘놀이, 오락’ 혹은 ‘놀이를 위해서 주어지는 것 또는 행운의 놀이’라고 설명했다. 멕이코 원주민 언어의 해석은, 초기 선교사들부터 이와 같이 사용 환경을 고려한 유추 해석을 함으로써, 수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멕이코 원주민들이 우리민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3.3. Chinampa [치남빠](치남바), <채소 밭>
치남바(chinampa)는 아스텍제국에서 호수나 강물 위에 띄운 ‘채소밭’을 말한다. 이 밭은 지금도 멕이코에서 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치남바를 만드는 과정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79).
이 그림에서 보듯이, 물 위에 긴 나무 기둥을 가로 세로로 서로 겹치도록 묶어서 먼저 ‘틀’을 만든다. 그런데 이 틀을 ‘치나미틀(chinamitl)’이라고 불렀다. 바로 우리말에서 ‘창틀, 문틀, 가마니틀, 돗자리틀’의 ‘틀’과 같은 말이다80). 우리말에서도 이런 작업을 ‘틀은 만든다, 틀을 짠다’라고 말한다. 이 틀을 다 만든 후에, 그 위에 가는 나뭇가지와 풀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흙을 두껍게 덮어서 밭을 만들었다. 강물이나 호수 위에 떠 있는 밭인 샘이다. 지금의 멕이코시티에 있는 텍스코코 호수나 잘고 호수와 그 주변의 강들은 유속이 느려서 이 밭들이 안정적으로 물 위에 떠 있었고, 멕이코 원주민들은 신대륙 발견 이전부터 이 밭에 옥수수, 콩, 토마토, 고추 등을 비롯한 채소를 경작했다. 이 밭을 치남바(chinampa)라고 불렀다. 이 어휘는 때때로 치남판(chinampan)으로도 기록되어 나온다. 이 명칭을 우리말의 형태소로 보고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구성요소로 나뉜다.
78) 우리는 앞에서 신라의 경주에 북방계 민족들의 흔적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 ‘길’을 ‘질’이라고 한다. 이 발음도 ‘길림>지린’의 흔적에서 보듯이 북방계 민족들의 흔적일 수 있다.
79) Manuel Pérez Zeval!los, Juan, 『Xochimilco ayer 1』, 2002, p. 14
80) 슐리반(Sullivan)은 ‘치나미틀(chinamitl)’을 ‘울타리(fence)’라고 번역하고 있다. 물론 잘못된 유추 해석이다.
형태소 구조: chinampa = 치(chi) + 남(nam) + 바(pa)
a) chi(치) : ‘치’는 주변보다 약간 높은 지역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우리말. (예) 치솟다. 치밀다. 둔치 등에서 사용된 ‘치’와 유사하다.
b) nam(남): 남새(북한), 채소, 나물
c) pa(바): 밭
d) chinampa의 뜻 = (물가의) 약간 높은 채소밭
여기서 chi(치)는 ‘높음’을 의미하는 우리말의 ‘치’와 발음과 뜻이 같은 형태소로 보인다.
Nam(남)은 ‘채소’를 의미한다. 북한에서 아직까지 채소를 ‘남새’라고 한다. 특히 우리 민족은 ‘나물’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나물’은 채소를 양념한 물에 섞어서 만든 음식이다. 따라서 ‘나물’의 ‘나’는 채소를 의미한다. 북한에서는 채소를 ‘남새’라고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나’는 ‘남’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나물’은 ‘남+물’의 합성어일 가능성이 있다81). 그리고 보다 중요한 어휘는 pa이다. 이 나와들어 어휘는 우리말 발음으로 [바], [빠], [파]에 해당한다. 이 어휘를 좀 더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하여 다음의 Simeón사전의 설명을 보기로 한다.
“치남바 - 텍스코코와 잘고 호수 위에 떠 있는 밭의 일종, 그곳에서 꽃과 채소를 재배한다; 그 밭은 <치남바>라는 뗏목을 만든 나무 가지 위에 얹혀 있다. 치나미틀(chinamitl)과 바(pa)를 참조하시오.”
“Pa(바)- 일부 학자들은 pan과 동의어로 생각한다.”
81) 서정범은 『국어어원사전』에서 ‘나물’은 ‘나(채소)+물’의합u49457 .어u46972 .고설u47749 .하u44256 . 있u45796 .. 북u54620 .의‘남u49352 .’를고u47140 .하par 면‘남물’의 합성어일 가능성이 있다.
형태소 구조: chinamitl = 치(chi) +남(nam) +이(i) + 틀(tl)
Pan은 (반), (빤), (판)으로 발음된다. 위 인용문에 따르면, pa는 pan과 같은 말이다. 필자는 앞에서 여러 번 반복하여 스페인어로 차음 표기된 나와들어에서는 받침소리가 탈락된 경우가 뚜렷하다고 지적해 왔다. 이 발음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먼저 나와들어의 pa는 pan에서 받침소리 ‘n’이 탈락한 형태이다. 그리고 pan은 우리말의 ‘판’ 또는 ‘밭’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판단되는 이유는 먼저 발음이 같고, 위에서 보았듯이 뜻도 ‘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말에서 ‘판’과 ‘밭’이 어원이 같은 어휘로 보아야 할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모래밭’과 ‘모래판’은 동의어이다. 또 ‘모판, 들판’의 ‘판’은 ‘밭’과 뜻이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cinampa(치남바)는 원래 chinampan(치남판)으로 이해되고, ‘치남판’은 ‘치남밭’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chinampa의 뜻이 ‘채소밭’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82).
우리는 이 어휘가 우리말이라는 것을 아래 어휘 분석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어휘에는 우리말의 고유 특징 중 하나인 뜻 없는 문법소가 나타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