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했던 S-클래스가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하며 더욱 근엄하게 돌아왔다. 2017년은 분명, 2018년의 영광을 누리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 2017년은 뜻깊은 해였다. 2016년 SUV 판매량을 끌어올리겠다던 다짐은 달콤한 과육을 듬뿍 머금은 열매로 돌아왔고 입항하자마자 주인을 찾아 나선 E-클래스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섰다. 거기에, 서브 브랜드로 떨어져 나간 AMG는 고성능 분야에서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이며 큰 폭으로 성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7년 AMG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더욱 많은 고객이 AMG의 퍼포먼스를 느낄 수 있도록 ‘AMG 스피드웨이’를 발표했다. 프리미엄 소형, 중형 승용 라인업과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주는 SUV, 그리고 고성능 분야까지 장악하겠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다짐은 딜러망과 서비스 센터까지 확충했기에 충분히 가능하리라 예상된다. 끝이 아니다. 완벽했던 S-클래스가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하며 더욱 근엄하게 돌아왔다. 2017년은 분명, 2018년의 영광을 누리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언뜻 보기에 달라진 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페이스리프트 버전이기에 그럴 수 있지만, 대개 이런 경우는 전 모델이 너무 완벽했기에 크게 손댈 일이 없는 이유가 가장 크다. 이제 구형이 되어버린 이전 모델은, 프리미엄 브랜드 플래그십 모델 중 가장 완벽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외형은 기함이 응당 갖추어야 할 중후한 디자인을 현대적인 모습으로 해석하며 시선을 잡아끌었다. 물론, 풍채만 좋다고 해서 판매량으로 이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기함은 브랜드의 철학과 신기술, 그리고 디자이너의 역량이 최상의 하모니를 발휘해야만 한다. 판매량이 많든 적든 ‘우리 철학과 실력이 이 정도야’라고 대놓고 홍보할 수 있는 광고판인 셈이다.
이번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주간 주행등은 기존 한 줄에서 세 줄로 바뀌었는데, C, E, S 순으로 1, 2, 3줄을 갖게 되며 서열이 정리됐다. 이제 룸미러로 다가오는 모델이 있다면 주간 주행등으로 어떤 모델인지 비교적 빨리 알아챌 수 있게 됐다. S-클래스의 묵직한 도어 핸들을 잡아당겼을 때 펼쳐진 신세계는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제 메르세데스-벤츠의 실내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와이드 스크린 콕핏은 현대적인 멋과 실용성을 강조한 아이템으로 시인성 좋은 수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버튼 및 스위치는 각자 고유의 촉감을 살리며 손길을 기다린다. 단순히 ‘가죽 시트’라고 부르기 아까운 시트는, 어떤 체형도 안락하게 받아내며 운전하기 좋은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낸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S 400 d 4매틱. 기함 모델은 보통 가솔린 엔진이 주목을 받지만, 디젤 엔진과는 인연이 없었기에 이번 기회에 느껴보기로 했다. 이번 S-클래스는 파워트레인의 변화가 크다. 6기통 디젤 엔진의 형상을 ‘V’에서 ‘I’로 바꾸었다. 국가에 따라서는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도 선보였다. 전혀 새로운 건 아니다. S-클래스는 예전에 직렬 6기통 모델을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엔진 형식을 바꾼 가장 큰 이유는 바로 RDE(Real Driving Emissions) 영향이 크다. RDE는 유로 6를 충족하지만, 실제 주행에서는 실험 조건보다 더 많은 질소산화물을 배출하기 때문에 도입됐다. V형에서 직렬로 바꾸면 질소산화물을 제거하기 위한 후처리 장치를 엔진 내부 혹은 보다 가까이 배치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에,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선보인 디젤 엔진 최초의 가변 밸브 리프트 기술이 적용되었으며, 실린더 내부의 마찰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개선된 나노슬라이드 코팅 기술이 들어갔다. 덕분에 연비 개선 효과(최대 6%)를 가져왔고 질소산화물을 줄일 수 있어 RDE에 부합한 엔진이 태어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메르세데스-벤츠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친환경적인 엔진이 등장했다.
이토록 화려한 수치를 보여주는 엔진이건만, 실내는 너무 조용하다. 진동과 소음은 4기통 엔진에서나 찾아야 한다.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지만, 가속 페달을 밟으면 그제야 본색을 드러낸다. 34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보다는 71.4kg·m의 최대토크가 2t이 넘는 덩치를 오른발 명령에 따라 사뿐히, 혹은 상체를 시트에 묻어버리는 힘을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최대토크를 토해내는 구간이 불과 1200rpm이라는 것. 이후, 3200rpm까지 꾸준하게 힘을 쏟다가 최고출력을 발휘하는 구간으로 이어지며 지친 기색 없이 차체를 끌고 나간다. 디젤 엔진치고는 레드 라인이 5300rpm이기에 분당 회전수를 올리는 게 즐겁다. 눈을 깜빡이는 짧은 순간에도 속도를 알리는 숫자는 한참이나 올라가 있다. 9단 자동변속기는 바쁘다는 티를 굳이 내지 않고 교묘히 기어를 바꿔 문다. 속도계는 분명 두려울 만큼 올라 있지만, 차체는 너무 평온하다. 호수 위의 백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만 바쁘게 움직이고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달린다. 솔직히, S-클래스를 몰면서 신나게 달린다는 게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항상, 기품 있고 우아하게 달릴 때 진가를 드러내는 기분이다. 거세게 몰아붙이는 운행 패턴보다 나긋나긋하게 달리는 게 오히려 더 힘들 순 있지만, S-클래스는 너무 간단한 이야기다.
몇 해 전 E-클래스에 풍성하게 달려 나왔던 반자율주행 기능이 더욱 성숙해진 자태를 뽐내며 S-클래스에 이식됐다. ‘인텔리전트 드라이브 시스템’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무사고 주행’을 목표로 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비전이 담긴 최신 기술로 탑승자와 보행자 모두를 고려한 안전 기술이다. 성능이 향상된 카메라와 레이더는 S-클래스 주변의 교통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 안전한 주행을 약속한다.
맞춰놓은 속도에 따라 가속과 감속을 하는 과정이 너무 매끄럽다. 과거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은, 정해진 속도로 맞추기 위해 태코미터 바늘을 솟구치게 만들어 불쾌한 가속을 보여주고는 했기에 기술 발전에 새삼 놀라게 된다. 감속 역시 마찬가지다. 앞차와의 간격을 맞추기 위해 속도를 줄이는 과정이 베스트 드라이버를 보닛 안에 숨겨놓은 것처럼 자연스럽다.
안전에 대한 대비도 ‘S-클래스’라는 이름에 폐를 끼치지 않는다. 능동형 브레이크 어시스트는 센서와 카메라로 보행자 등을 인식해 시각과 청각으로 경고하고, 반응이 없으면 스스로 제동에 들어간다. 또한, 충돌 회피 조향 어시스트는 보행자나 자동차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스티어링 휠을 조작하면 추가적인 힘을 보내 신속하게 차체를 돌릴 수 있게 돕는다.
디젤 엔진이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와 연료 효율, 그리고 RDE에 대응하는 기술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렇지만, 정작 S-클래스는 그러한 내색 없이 탑승객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편안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드라이버와 2열 승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사치는 S-클래스의 특권이다. 보통 차를 시승할 때 2열에 앉는 경우는 없지만, S-클래스라면 아주 잠시라도 운전대를 동료에게 맡긴다. 운전석에 앉은 후배 뒤통수에 대고 사무실로 가자는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최대한 안락하게 시트를 조절하고 두 눈을 감아본다. 자잘하게 들려오는 트럭 소리와 도로 이음매를 타고 넘는 소리. 첨단 장비를 두르고 모든 걸 막아주는 S-클래스였지만, 쏟아지는 잠을 막아주는 기능은 아직 없었다. 새롭게 선보이는 ‘에너자이징 컴포트 컨트롤’ 시스템은 자동차에 있는 시간만이라도 정신적이나 육체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기술이다. 이 기능은 상쾌함, 따뜻함, 활력, 기쁨, 안락함, 트레이닝 총 여섯 가지 프로그램 중 하나를 선택하면 실내 온도와 음악, 마사지, 앰비언트 라이트를 자동으로 작동시켜 10분간 기분을 전환시켜준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만큼 유별난 시장도 없다. 잘 팔리는 모델은 없어서 못 팔고 안 팔리는 모델은 언제나 그 자리다. 그런데도 S-클래스가 한국 시장에서 팔리는 규모는 세계 3위다. 사치에 목마른 졸부가 많아서? 아니다. S-클래스의 상품성이 너무나 훌륭하고 그를 알아보는 고객이 많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