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지리산 여행기를 수필 형식으로 정리하였슴니.
한번 읽어주시오.
두류동의 이틀 밤
두류동에 사는 친구의 오두막은 허룸해서 좋다. 집이 작아 오히려 산에 눈이 더 간다.
간밤엔 바위에 누워 눈이 시리도록 별을 보다가 잤다. 모처럼 북두칠성 또렷히 보았다. 서울에도
별은 있지만, 이처럼 영롱하진 않다.
지리산 하늘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별을 모아 아예 수를 놓은 것 같다. 이처럼 별이 아름다운 곳은
공해가 없는 곳이다. 공해 없는 곳은 꽃빛이 영롱하다. 꽃이 이럴진대 사람은 어떨까? 이것이 틈만 나면 내가 지리산을 찾는 이유다.
바위에 앉아 고요히 숨을 내쉬며 별 아래서 명상에 잠겨보았다. 어둠 덮힌 산은 고요한 선방(禪房)이다. 바위는 묵언에 든 참선객 이다. 바람소리 물소리는 범패(梵唄)다. 흔들리는 풀과 나무는
바라춤 추는 무용수다. 그 위를 지나가는 달과 별, 바람 구름은 나그네다. 산이 입선(入禪)에 든
것을 본다.
호흡법이 중요함을 느껴본다. 청산을 바라보며 쉼호흡 서너번 하는새, 맑은 공기 몸에 가득찬다.
서서히 몸의 화기(火氣)가 내려가고, 정신이 맑아짐을 느낄 수 있다. 마치 가만히 놓아둔 유리컵
속의 티끌이 밑으로 가라앉고 물이 청정해지는 이치와 같다. 마음 속 잡념이 가라앉아 마음이
청정해진다.
마음이 청정하고 몸이 고요한채 청산을 바라보니, 청산은 맑고 평화롭다. 나무잎은 살랑살랑
흔들리고 구름은 흘러간다. '꽃이 피고 새가 운다'는 경지를 읊은 고승들 선시(禪詩)가 생각난다.
이것이 틈만 나면 내가 지리산을 찾는 이유다.
새벽에 일어나니, 찔레꽃 여기저기 만발했고, 밭엔 도라지와 당귀 잘 자란다. 어딘선가
산비둘기가 울고있다. 산속이 너무나 아름답다. 오늘 하루가 즐겁게 펼쳐질 것란 예감이 온다.
우리는 아침 상을 바위 위에 채렸다. 천왕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넓적 바위는 그 위가 평평하여
칠팔명이 앉을 수 있다.
밥상은 조촐해서 좋다. 원래 산중에서는 풀뿌리 나무뿌리를 캐어먹어야 제격이다. 약초 많은
신령한 방장산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날 우리 아침 식탁은, 깻잎, 당귀잎, 고구마, 감자,
방울도마도, 야쿠르트, 아카시아꿀이 전부였다.
벌꿀에 찍어먹는 당귀잎이 더없이 인상적일 수 없다. 당귀의 화사한 맛과 벌꿀 달콤함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고구마와 야쿠르트도 예사롭지 않았다. 별미다. 하나는 뜨껀뜨껀하고 하나는
시원해서 좋다. 해발 7백고지에서 캔 고구마는 유별나게 자줏빛이 곱다. 자주빛 먹거리는
안토시안계 색소를 지녀, 지방질을 흡수하고 혈관 안의 노폐물을 흡수해 피를 맑게 한다.
땅 좋고 물 좋은 곳이 이곳이다. 산 바람 쐬고 자란 대추도마도 싱싱하다. 흐르는 물에 씻어온
한 소쿠리 타원형 대추도마도는 붉은 빛 선명하다.
삼채전도 지져먹었다. 주재료는 삼채고, 부재료는 흑돼지 고기와 감자다. 삼채는 히말리야 1400
이상 고지 식물로 게르마늄이 인삼처럼 많다고 한다. 마늘 보다 천연 식이유황(MSM) 성분 6배나
많다고 한다. 잘게 썰어넣은 지리산 흑돼지 고기 고소한 맛을 내고, 감자는 사근사근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지리산 벌꿀 달콤하고, 지리산 당귀잎 화사하고, 지리산 대추도마도 싱싱하다.
우리는 이걸 선식(仙食)이라 명명했다. 불에 익힌 화식(火食)은 멀리하고 매일 아침은 이걸로
때우기로 했다. 채근(菜根)의 담박한 맛을 익혔다.
물맛도 빼놓을 수 없다. 소식(少食) 하고, 물줄기 한바가지 떠먹는 것도 멋이라면 멋이다. 우리는
그걸 산삼 썩은 물이라 불렀다. 한잔 마시면 흉중이 탁 터지고, 마음이 청산의 흰구름처럼
자유로워진다. 서산대사의 시처럼, 만국 도성이 개미집처럼 보인다.
가능하면 밥은 적게 먹고, 약초차 다려먹고, 숲을 산책하고, 먼저 서로 청소와 설겆이 하자는
것이, 산에 온 우리의 약속이다.
식사 후, 서울서 가져간 꾸지뽕과 가죽나무 묘목 심었다. 꾸지뽕은 댱뇨에 특효이고, 가죽자반은
경상도 사람에게 귀한 음식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묘목 심는 일 자체가 즐겁다. 남명선생은
두류산 양단수에 도화 뜬 맑은 물을 읊었다. 그 복숭아나무를 작년에 심었는데, 이제 꽃이 지고
작은 열매가 달렸다. 복숭아 익어갈 산골 생각하면 흥이 더 난다. 나무인삼으로 불리는 오가피는
싱싱한 새 잎 달았다. 한잎 뜯어 입에 씹으니, 마냥 쌉싸롬하다.
인삼도 싹이 올라와 있다. 산에 심었으니 산삼이다. 같은 약초도 지리산에서 자라면 약효가 강하다. 허준과 유의태 선생이 그래서 산청에 살았을 것이다. 나는 몇년 전에 지리산 남쪽 화개동천
한 시인의 산에 삼을 심은 적 있다. 이번 단오엔 함양 서상 사는 친구 집과 이곳 중산리 두류동
두곳에 심었다.
몸통에 주름 잡힌 3년근들이라, 당장 금년에 꽃 피고, 빨간 열매 맺힐 것이다. 열매는 새가 먹고
날아다니며 배설하여 먼 곳에 싹 튀울 것이다. 새야 어딘들 못날아 가랴. 지리산 이쪽저쪽에
애기삼 번질 생각하니 은근히 즐겁다. 내년 고희연 때 그걸로 삼계탕 끓이자며 우리는 미리
한바탕 통쾌히 웃었다.
이 날은 종일 약초 심고, 약초 캐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자주빛 엉컹퀴 뿌리는 정력 허실한
남자의 보약이고, 도시 주변이나 길옆, 더러운 물 흐르는 수채 주변에서 흔히 자라는
돼지풀이라고 부르는 소루쟁이는 모든 염증이나 암에 특효약이다. 발에 자주 밞히는 질경이는
차전자(車前子)라하여 이뇨에 좋고 혈압 내려주는 약이다. 산에 지천으로 깔린 흔한 산죽(山竹)도
당뇨에 특효약이다. 산 전체가 약초밭이라해도 과언 아니다.
이런 하나하나를 동행한 최상무가 알으켜 준다. 그래 우리는 처음에 그를 사부라 부르다가,
나중에는 '본초(本草)선생'이란 고상한 아호를 지어올렸다.
이날 우리는 각자 한보따리씩 산죽 뿌리를 캤다. 산죽 중에서는 가장 약효가 강한 곳이 뿌리다.
보나마나 당뇨 고혈압 있는 집사람들에게 점수 딸 일 뻔하다.
최상무는 근처의 쑥을 베어다가 컨테이너 숙소 안에 끈으로 달아놓는다. 마르면 잠자면서 쑥향기
즐기고, 밤에 바위에 모여앉아 한담할 때, 모깃불 재료로 쓰려는 것이다.
되는 놈은 나무 하다가도 산삼 캔다. 근처에 자주달개비꽃이 많다. 보라빛 그 꽃을 숙소 앞에
심었다. 부처꽃도 많다. 줄기 위로 나란히 피어오르는 그 아름다운 꽃 이름을 나는 거기서 처음
알았다. 동자꽃도 여기저기 많다. 밤에는 뭔가 이름 모르는 새가 운다. 이런 산꽃 피고, 새가 우는
델 놔두고 꽉 막힌 창고칸 같은 호텔방 선호하는 사람들 뜻을 모르겠다.
두류동 계곡은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물이 비단이다. 골짝골짝마다 연분홍 진달래 피었다.
진달래가 마치 날더러 무릉도원에서 살자고 유혹하는 산골 새악씨 같다.
그날 오후 우리는 간이 샤워장 하나 만들었다. 물줄기를 대나무 홈통에 잇고 간단히 해결했다.
산중에서의 목욕이다. 여기선 약수로 등목을 치니 얼마나 호사인가. 어찌나 차그운지 진저리가 다
쳐진다. 빤쓰까지 홀까당 벗어던지고 은밀한 곳까지 목욕시킨 후, 완전 나체가 되어 놀았다. 반석
위는 때죽꽃 한창이다. 하얀 꽃을 흔드는 맑은 바람은 저 아래 구절양장 구부러진 골짜기에서
불어온다. 바람은 우리 나체를 살랑살랑 쓰다듬고, 천왕봉으로 올라간다. 짹짹 새만 날아다니면서 우리 물건을 보고, 아무도 보는 이 없다. '그대에게 묻노니 어이하여 푸른 산에 사는고
(問君何事棲碧山), 웃으며 대답않으니, 마음은 절로 한가롭다.(笑而不答心自閑 )'. 이태백이처럼
우리도 웃어보았다.
저녂엔 생강나무 잎으로 쌈 싸먹고, 줄기는 장작불 난로에 올려 차를 끓였다. 제피 부드러운 잎은
튀겨먹었다. 향긋한 제피 튀김에 삼천포 민어조기의 고소한 배합을 도시인들은 모를 것이다
거제와 남해서 교편 잡은 적 있는 오태식 교장은 알짜배기 대구 고니 맛을 소개하고, 콩나물 넣고
쪄낸 대구뽈찜 이야기를 했다. 미조리 갈치회, 남해대교 좌측 동네 개불 맛, 금오산 전어마을
이야기를 했다. 그를 높이 치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을 제 철에, 제 장소에 가서, 제 값에
음미한다는 점이다.
해 지자 달이 솟아온다. 단소 불고, 시조창을 읊었다. 초생달 뜬 지리산 청천하늘 잔별도 많고,
거기서 내지르는 오교장의 시조창 일품이다. '산촌(山村)에 밤이 드니 먼딋 개 즈져온다.
시비(柴扉)를 열고 보니 하늘이 챠고 달이로다.'
최상무는 단소로 '청성곡(淸聲曲)'을 분다. 단소 소리는 달빛 푸른 산마루에 백학이 날라가는 것
같다. 과연 명창 안숙선씨 남편답다. 그는 쌍골죽을 베어 대금 만드는 이야기를 했다. 5월 단오
경에 갈대 속에 있는 청을 벗겨 대금의 청을 만든다고 한다.
나는 '두류동에 사는 친구에게'란 내 시조를 소개했다.
지리산 두류동에 초당을 엮었으니
앞에는 맑은 쏘가 뒤에는 천왕봉이
흰구름 장막을 치고 같이 살자 하더라
북창엔 대를 심고 남전엔 채소 심고
때로는 호미 메고 약초 캐러 나서보니
삼신산 바로 여기다 불로초 밭이로다
아침엔 일어나서 청산에 눈을 씻고
밤 중엔 홀로 누워 물소리에 귀 씻으니
한가한 청풍명월이 친구하자 하더라.
산나물 된장국에 입맛을 들였으니
산가의 별미로는 이 밖에 더있는가
그 중에 두룹 도라지 향기 높다 하더라
두견화 피는 속에 봄철이 왔다 가면
머루 다래 절로 익는 가을 또한 찾아온다
철 따라 탁주 한 병은 그 멋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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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연꽃 모양의 등잔에 관솔불 밝히고, 파초잎 술잔에 죽력주(竹瀝酒) 마시는 경지가 이럴
것이다. 옥향로에 향을 피우고 하늘에 제사 지낸 밤이 이럴 것이다. 쑥불 피워놓고, 침술 이야기,
편백나무 생잎 깐 황토방에서 자는 이야기, 한약을 벼개 속에 넣고 자는, 신침법(神枕法) 이야기
나누었다.
삼나무숲 그늘 아래 3백만원 주고 컨테이너 박스 하나 끌어다놓고, 이렇게 산채나물 맛 들이니,
산중 취미 꿈이 아니었다.
밤 늦어 등불 끄니, 새벽 1시였다. 늦게까지 이야기하고 이튿날 새벽 5시 일어나 산 속 거니니,
천왕봉은 얼굴을 흰구름으로 씻었다. 사람이 배울 것은 저 맑은 얼굴이다. 물소리와 구름 속에
몇 천년 앉아있으면 저런 얼굴 될까 생각 해보았다.
두류동의 이틀 밤을 이렇게 보내고, 하산하여 덕산 약초 골목 들렀다. 야생 흰민들레와 꾸지뽕
뿌리를 조금 샀다. 하우스나 밭에서 재배한 것 아니라서 약성이 강하고 향긋하다
경호강 따라 내려가니, 절벽에 함초롬히 이슬 젖은 두견화 보인다. 너무 고와서 차라리 외롭다.
간밤에 두견새는 아마 밤새 서편제 한마당 목청껒 토하다가 갔을 것이다.
지리산은 온갖 영초와 꽃에 덮힌 산이다. 생초 쯤에서 였을까. 상경하는 차 속에서 준수한
지리산을 다시 돌아보았다. 내가 지금 뭐하러 공해에 덮힌 서울로 가고있나. 차를 돌리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첫댓글 글 속 의 선식,선시에 취해버렸습니다.
거사의 창작력용심은 대단하구먼요,
그마음으로 자네의 마음을 깊게 느낀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