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1
Black Dog
Rock and Roll
The Battle of Evermore
Stairway to Heaven
side 2
Misty Mountain Hop
Four Sticks
Going to California
When the Levee Breaks
야드버즈Yardbirds의 음악 활동이 두절되었던 것은 1968년 초여름을 지났을 무렵이었다. 때를 같이하여 전설적인 슈퍼 그룹 Cream 또한 ‘해산극’을 벌여 런던의 록 음악 팬들은 헤아릴 길 없는 실망과 낙담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블루스 붐은 이렇게 하향 곡선을 긋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뭐라 표현해도 분명한 사실이다. 음악가가 걷는 길이란 바늘구멍에 실을 꿰듯 간단한 것은 아니다. 1968년에서 1969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환상적인 Cream의 마지막 앨범 <Wheels of Fire>가 폭발적인 판매고를 보여 기승을 부리는가 했으나, 그 마지막은 그룹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에서 조용히 다가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몰락 속에서 재즈 피아니스트 마이크 테일러Mike Taylor가 31세의 짧은 생애를 영원히 닫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후에 ‘White Room’(마이크 테일러의 작품)에 대한 인세가 그의 가족들에게 보내졌던 것까지도….
런던의 록 팬과 관계자들에게 빛을 보여주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의 화제였다. 비틀스로 시작하여 블루스 붐까지 일으키며 영국은 미국에 역수출을 거듭하면서 전 세계 록 음악의 초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이 반대로 이루어졌다.
레드 제플린의 출현과 성공은 지금까지도 하나의 신비스러운 현상으로 일컬어진다. 어째서 애틀랜틱 레코드는 이 미지수의 그룹에게 20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계약금을 주었을까. 어쨌든 레드 제플린의 성공은 미국에서부터 일어났다. 그것도 신출내기 레드 제플린이라는 약한 입장에서―.
1968년 6월, 그룹 음악으로서의 음악적 흐름을 만들어 나가던 영국 전통 그룹의 하나인 Yardbirds는 음악 활동의 밑바탕을 중단해야 할 필요에 부딪혔다. 멤버 각자의 음악적 방향성이나 진로에 관한 문제가 야기되었고 그것은 한 번쯤은 꼭 겪어야 할 관문이었다. 키스 렐프도 그랬고, 크리스 드레어, 잠 맥커티에게도 자신의 생각은 있었다. 이후 각자의 방향성을 보여주며 걸어간 길은 모두 달랐지만 마음만은 하나같았다. 즉 새로운 것을 찾아보자는 것 말이다.
Yardbirds에는 공통의 혁명아가 존재했다. 그것은 기타에 관한 한 천재적인 인물들이 계속 뒤를 이었다는 것이다. 1961년 말, 당시 하잘것없던 Yardbirds에는 초대 기타리스트 앤서니 톱햄이 있었다. 얼마 후 톱햄과 교체된 에릭 클랩턴은 그룹의 목표였던 컨트리 블루스를 모던 블루스로 바꾸었고, 클랩턴을 이은 제프 벡은 모던 블루스를 록 사운드로 변형시켰다. 그러나 지미 페이지가 제프 벡의 뒤를 이어 새롭게 확립시킨 것은 그렇게 두드러진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미 페이지가 시도하려던 것을 이미 제프 벡이 야드버즈의 밑바탕에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지미 페이지는 Yardbirds에 가입하기 전까지 L.B.S.(London Blues Society)의 회원으로서, 때마침 영국으로 건너온 흑인 블루스의 거장들, 예를 들면 오티스 스판(1964), 챔피언 잭 두프리(1964), 소니 보이 윌리엄슨(1965) 같은 인물들의 무대나 레코딩에서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지미 페이지가 생각했던 것은 블루스와 솔Soul이 융합된 그룹이었다. 블루스 붐의 과도기였던 1968년, 미국에서 Yardbirds의 마지막 공연을 끝내고 귀국했을 때 지미 페이지는 생각했다. Yardbirds를 해산하고 다른 멤버들과 한번 일해 보자는 것. 페이지는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알게 된 편곡자 겸 베이스 연주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존 폴 존스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존 폴 존스는 유명한 도너번Donovan의 <Mellow Yellow>나 그룹 Rolling Stones의 앨범 <Satanic Majesties> 중 한 곡인 ‘She's a Rainbow’의 편곡자로도 유명한 바 있었다.
6월도 중순을 넘어가고 있었다. 페이지와 폴 존스의 구상은 세 번째 멤버 로버트 플랜트를 맞이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존 폴 존스가 버밍햄에서 Crawling King Snake라는 그룹을 이끌고 왔을 때, 마침 같은 무대에 서게 된 라이벌 그룹 Shakedown Sound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적극 권유하게 된 것이다.
그룹의 네 번째 멤버 존 본햄이 결정된 것은 그로부터 1개월 후였다. 존 본햄을 알게 된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존 본햄은 한때 그룹 Crawling King Snake에 몸담고 있었다. 로버트 플랜트가 존 본햄을 추천했을 때, 그는 유영한 가수 팀 로즈의 반주 악단 멤버로서 마침 영국 순회공연 중이었다. 페이지, 존스, 플랜트 3명은 그해 7월 31일 수요일 벨사이즈 파크 오디온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하버스톡 힐이란 컨트리 클럽으로 가서 팀 로즈의 연주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윽고 존 본햄의 솔로가 시작되었는데 연주 곡목은 ‘Foggy Mountain Breakdown’이었다. 연주하는 동안 모두 무아지경을 헤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솜씨였다. 그러나 팀 로즈의 공연은 유럽 일대를 돌고 9월부터 10월까지 다시 영국에서 공연을 가져야 하는 시종 고된 일정이었다. 그러므로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형편은 아니었다.
존 본햄은 팀 로즈의 전국 순회공연에 나섰을 때, 평생 직업적 뮤지션으로 살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제까지 그는 ‘Terry Webb & The Spiders’ ‘A Way Of Life’ ‘Crawling King Snake’ 그리고 다시 ‘A Way Of Life’에 돌아왔다. 이렇게 많은 그룹을 전전했으니 그 솜씨가 어느 정도인가는 능히 짐작할 만하다. 더군다나 20세 이전에 말이다.
그룹의 멤버가 결정되자 10월부터 본격적인 트레이닝에 들어갔고 이름을 ‘Led Zeppelin’이라고 지었다. 이들은 10월 25일 금요일 서레이 유니버시티에서 공식 데뷔를 장식했다. 11월 약 한 달간의 레코딩에 이어 12월 10일 저 유명한 매키 클럽에서 첫선을 보인 뒤 1969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을 포함한 3회에 걸친 미국 공연으로 레드 제플린의 ‘바람’은 미국에서 영국 그리고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이후의 활약상은 너무나 잘 알려져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이 앨범은 레드 제플린의 4번째 작품인데 그들의 많은 레코드 중에서도 한국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이다. 오프닝을 장식한 ‘Black Dog’은 격정적이며 독특한 레드 제플린 사운드로서 ‘Rock'n Roll’과 나란히 스테이지 무드에 아주 적합하다. 듣고 있노라면 마치 무대를 보는 것 같다.
세 번째 앨범의 새로운 방향성은 다시금 조정과 반복을 거쳤다. ‘The Battle Of Evermore’는 Pentangle, Fairport Convention, Furtheringen, 이런 영국 3대 포크 그룹을 거친 거물 여성 가수 샌디 데니를 가담시킨 작품이다. 오리지널은 영국의 북부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유 민요이지만, 평소 그 점을 무시하는 이들이 이 작품만은 포크 댄스적인 맛을 살렸다.
수년 전, 영국의 뮤지션들 사이에 오르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웨일스 민요가 판을 친 적이 있었지만, 지금 현재도 영국의 포크계나 록 뮤지션들 사이에는 오랜 민요, 남부의 민요, 북부의 민요, 이탈리아의 산바레로, 그리스의 헐크 댄스, 그리고 16세기경의 클래식 음악을 자신들의 사운드에 요령 있게 집어넣는 독특한 음악 창조를 행하고 있다. Pentangle이나 Fairport Convention 같은 그룹이나 Traffic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Stairway To Heaven’은 이제까지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명작으로서 지미 페이지의 12줄짜리 기타 음향은 거의 신비에 가깝다. 또한 ‘Going To California’도 이와 흡사하다. 그 음악적 취향성은 존 폴 존스가 언젠가 한 번 시도했던 것처럼 거의 실험적인 것에 불과했다. 과거 레드 제플린의 편곡자로 일했던 PJ Proby 라는 유명한 가수가 ‘Three Week Hero’를 주기는 했으나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 단계씩 밟아가는 중이라 하겠다.
‘Four Sticks’나 ‘When The Levee Breaks’에서의 레드 제플린은 그야말로 매력적이며 폭넓은 음악성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레드 제플린의 앨범이 있지만 이것만큼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작품은 없다고 본다. 세월의 흐름에 관계없이 끈질긴 판매고를 올리는 영원한 스테디셀러다.
(나영욱/1978/한국 오아시스 라이선스 앨범 속지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