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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말씀/ 잠언 16-20장 요절/ 잠언16:3 | 2024. 2. 11 | |
잠언 4강 |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설 명절에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건강하거라,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라는 덕담을 들었을 겁니다. 덕담대로만 우리 인생이 잘 나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인생을 살아보면 내 계획대로 되지 않고 병에 걸리고 실패하고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좋은 소원을 빌고 멋진 계획을 갖고 있더라도 내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인생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내가 건강할 수 있고 일이 잘 될 수 있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의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6장 1-9절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마음의 계획이 있습니다. 한 해를 승리하기 위해서 플랜을 짜고 구체적인 방향을 잡습니다. 저는 지난 해 건강에 많은 문제가 생겨 병원을 자주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2024년 첫날을 시작하며 올해는 꼭 헬스도 하고 더 많이 걷고자 다짐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지난 해 하지 못했던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과 소감쓰기를 결단한 이들도 있습니다. 한 양을 먹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소원을 빈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의 응답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마음에 좋은 계획을 갖고 있더라도 그 계획의 성사 여부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얼마든지 마음에 품고 생각하고 구체적인 플랜도 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의 경영대로 일이 성사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의 경영을 허락하시고 인도해 주셔야 그 경영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경영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자기의 소원은 다 순수해 보이고 좋게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고 우리의 심장의 무게를 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마음의 동기도 드러나고 숨겨진 욕심도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살펴야 하며, 마음의 동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지혜롭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나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사람들은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합니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주관하시며 그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그들이 서로 손을 잡고 저항할지라도 하나님의 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문제를 해결해 주십니까? 6절을 보십시오.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요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인간의 선행이나 종교적 열심으로 죄악을 속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해 주셔야만 죄악을 속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사랑을 죄인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언약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겠다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말로만 죄를 용서하시지 않고 죄값을 친히 치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루어주시고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다시 말해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을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제사제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악에서 떠나게 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구약의 제사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우리의 죄도 죽고 우리의 옛사람도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새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원수와도 화목하게 되고 참 평화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낫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부자 되라고 합니다.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고 돈이 많으면 노후 걱정이 없고 많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적은 소득일지라도 공의를 겸한다면 불의한 많은 소득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니라.” 우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얼마든지 계획할 수 있습니다. 계획은 좋은 것입니다. 계획이 없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세상에는 나쁜 계획을 꾸미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뜻하지 않게 사고가 나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하고 그토록 원했던 대학에 낙방하기도 하고 취업과 승진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팔순이 넘어서도 산에도 자주 가시고 말도 잘하시고 글도 잘 쓰시고 매우 활동적이었기 때문에 오래오래 사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12년 전에 갑작스럽게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여행도 한 번 보내드리지 못하고 떠나보내게 되어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부모로서 저는 자녀들이 건강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바울이는 코로나 이후에 수술을 다섯 번이나 받았습니다. 여러 환난을 겪으며 내 마음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인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마음의 계획부터 하나님과 의논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나의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부모의 인생도 하나님께 맡기고, 자녀의 인생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자녀로서 부모를 섬기고 또한 부모로서 자녀를 돌보아야 하지만 내 뜻대로 주관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개인에게 뜻을 두시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인생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마음의 계획과 인생 여정 모두를 주님의 뜻에 맞추어 사는 것이 지혜롭고 행복한 길입니다.
10-15절은 왕이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말합니다. 왕은 재판할 때에 그르치지 않고 공정하게 해야 합니다. 공평한 저울과 접시 저울은 여호와의 것입니다. 왕의 보좌는 공의로 굳게 서며, 의로운 자들은 왕들이 기뻐하고 왕들의 사랑을 입습니다. 왕이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진노하게 되면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왕의 진노를 쉬게 하는 자입니다. 왕의 밝은 얼굴은 생명을 뜻하고, 그의 은택은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습니다. 늦은 비는 3월과 4월에 내리는 비로서 식물들을 소생하게 합니다. 왕의 은택은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이 백성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줍니다.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백성들을 공의와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왕은 교회의 지도자나 가정의 지도자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자기 감정과 자기 유익을 따라 구성원들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는 구성원들을 공정하게 대하고, 그들의 형편을 깊이 헤아려서 겸손과 눈물과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16-30절은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지혜와 명철이 금과 은보다 낫습니다. 지혜와 명철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이 세상을 따뜻한 가슴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줍니다. 반면에 지혜와 명철이 없는 부요함은 사람을 탐욕의 노예가 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장이입니다. 겸손한 자와 함께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낫습니다. 겸손한 자는 가난한 자를 의미합니다. 가난한 자와 함께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불법적인 재산을 나누는 것보다 낫습니다. 교만으로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지만 그런 물질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런 자에게서 나오는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됩니다. 선한 말, 아름다운 말은 마음을 밝게 하고 뼈까지 치유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불량한 자의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고,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수다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질합니다. 폭력배는 그 이웃을 꾀어 좋지 아니하는 길로 인도합니다. 젊은이는 지혜보다는 힘을 믿고 폭력이 주는 유혹에 이끌립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은 멸망입니다. 우리가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겸손과 온유를 본받는 지혜로운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6:31-17:6은 노인의 영화에 대해 말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백발은 노인을 가리킵니다. 노인은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이는 노인이 존경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백발은 공의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보상입니다. 공의의 길을 걸어온 노인을 존경으로 대해야 하며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노인은 인생의 경험이 많고 지혜가 많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존경과 공경의 대상입니다. 십계명 중 인간관계에 대한 첫 번째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나이 많고 백발이 되었다고 부모를 소홀히 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어떤 모습이든 세상에서 성공했든 못했든 많은 것을 가졌든 못가졌든 존경하고 정성껏 섬겨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가정이 화목할 수 있고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부모를 무시하게 되면 형제 간의 사이도 멀어지고 자식 간의 사이도 멀어지게 됩니다. 부모 공경이 없으면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김과 사랑을 배우는 곳입니다. 가정은 재물에 관심을 두는 곳이 아닙니다. 재물이 중심이 되면 자식들 간에 분쟁이 생기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분쟁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도 불화가 생깁니다. 가정의 평화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17:6은 조부와 손자, 아비와 자식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입니다. 한 평생 살면서 손자까지 본다는 것은 노인에게 큰 축복입니다. 세대를 건너뛰어 조부모와 손주가 심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면류관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또한 자식에게는 부모님이 그들의 자랑이요 영광입니다. 부모 자녀의 아름다운 관계는 교회 구성원의 관계를 잘 말해 줍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 가족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적 부모에 해당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영적 자녀에 해당되는 분들이 있고, 형제 자매에 해당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3대, 4대까지 맺어져 있는 영적 계보를 보면서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구정에 중남미의 한 선교사 가정이 제게 값진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 먼 데서 저를 생각하고 선물을 보냈다니 감동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가족이 진짜 가족이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2024년 새해에도 주님의 사랑으로 혈육의 가족들을 사랑할 뿐 아니라 영적인 가족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7:7-28은 미련한 자에 대한 잠언입니다. 미련한 것들이 무엇입니까? 첫째, 뇌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뇌물을 기계의 기름처럼 일을 잘 되게 하는 윤활유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뇌물은 우리 사회의 토대를 썩게 만드는 기생충과 같은 것입니다. 잠언은 작은 마음의 표현인 선물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하지만 뇌물은 반드시 더 큰 대가를 바라는 것이기에 나쁜 것이며 피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재판의 왜곡입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지도자들의 이상입니다. 재판은 정의의 최후 보루입니다. 재판은 공정해야 합니다. 오늘날 재판을 보면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될 때가 많습니다. 정의로운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정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정의이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 불의입니다.
셋째 수다입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아지고 남을 비방하게 됩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수다를 떨 수 있습니다. 수많은 말들 속에는 악플들도 많습니다. 공허한 것들도 많습니다. 말을 절제해야 합니다. 참된 지혜는 마음을 다스리고 혀를 다스리는 데서 옵니다.
넷째, 다툼입니다. 다툼은 작은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둑이 무너지는 것은 작은 틈에서 물이 새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싸움도 작은 시비로부터 출발합니다.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다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다툼을 그치기 위해서는 자기 주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기 주장이 강하면 다투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 주장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의 말을 경청하게 되면 다툼을 그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구브러져 있을 때 다투고 싸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모든 악의 근원임을 인식하고 마음을 연단하고 마음을 선한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18장은 미련한 입술과 지혜로운 입술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고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나타냅니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말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말로 인해 싸우게 되고 관계성이 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거 없는 말을 퍼뜨려서 법정에 가고 감옥에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잘 다스립니다. 지혜로운 자의 말은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립니다. 그 말은 시원한 샘물 같아서 우리의 삶을 활기차게 만들며 의의 나라, 사랑의 나라를 세웁니다.
의인은 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시편 1편에 나온대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여호와 안에 있으면 우리는 견고한 망대 위에 있는 것처럼 안전합니다(10).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 역경을 피하고자 합니다. 자신들이 가진 재물로 망대를 쌓고 성을 쌓아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만이요 어리석음입니다. 그 성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썩은 밧줄과 같기 때문입니다.
19장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과 노하기를 맹렬히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려면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잘 받아야 하며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20장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들에 대해 말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0:27을 보십시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사람의 영혼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이며,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적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영적 생명인 영혼을 주셨습니다. 영혼이 살아 있어야 진짜 산 사람입니다. 영혼이 죽어 있거나 시들어 있으면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살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고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2024년에 우리가 견고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해에 우리 모두 믿음과 인격의 진보를 이루고 생명구원역사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