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예라
하늘에 도전하다
파라샤 바예라는 유대 전통에서 경이로운 순간, 즉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의 운명을 놓고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협상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모든 기록에 따르면, 멸망할 운명에 처한 그 도시의 주민들은 별로 좋은 것이 없었습니다. 에스겔(Ezekiel)은 그들의 죄를 이렇게 열거합니다.
"그와 그 딸들은 교만하고 배부르고 태만하며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돕지 아니하고 거만하여 내 앞에서 가증한 일을 행하였느니라" (에스겔 16:49-50).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을 위해 논쟁하며, 성문 안에 의로운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주께서 무죄한 자를 죄 있는 자와 함께 멸하시나이까… 주께서 이같이 행하심은 결단코 아니시니이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세기 18:20-25)라고 묻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도전합니다. 그는 도시 사람들과 정의의 신으로서 신의 도덕적 지위를 옹호합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우상 파괴주의자임을 보여 주며, 신과 신봉자 사이의 전통적인 권력 역학을 무너뜨리고 도덕성을 행동 논쟁에 끌어들입니다.
미드라쉬에서 랍비들은 이 놀라운 상호작용을 기도로 규정합니다. 기도 중 카바나(כַּוָּנָה, kavanah)의 마음챙김 또는 의도의 중요성을 논하면서, 랍비들은 아브라함이 최고의 본보기라고 말합니다. 미드라쉬는 이 이야기를 언급하며 "…그리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처럼 기도에 카바나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당신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결단코 아니다'라고 말한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미드라쉬 탄후마, 하예 사라 1)라고 말합니다.
하늘에 도전하는 이러한 종류의 후쯔파 클라페이 샤마임(hutzpah clappei shamayim), 혹은 오늘날 우리가 "권력에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랍비들은 궁극적인 영적 표현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후쯔파 클라페이 샤마임(חוּצְפָּה כְּלַפֵּי שָׁמַיִם)- 신이나 신의 권위에 대한 극도의 오만함이나 반항을 묘사하는 데 사용.
진정한 기도를 이루다.
진정한 기도는 열린 마음과 후쯔파(hutzpah, 용기)의 결합을 필요로 합니다. 즉, 우리 내면과 주변 환경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마음의 힘과 그것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상상력의 힘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러한 방식으로 세상에 접근하는 데 집중했던 것은 일종의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 그는 하나님까지도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신학자이자 시민권 운동가이자 반전 운동가인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Abraham Joshua Heschel) 랍비 역시 기도의 주도적인 자기 성찰을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원동력으로 활용하며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기도의 핵심적인 대립적 본질을 묘사한 그의 말은 제 시두르(siddur) 앞표지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
‘기도는 전복적(subversive)이지 않고, 냉혹함(callousness), 증오(hatred), 기회주의(opportunism), 거짓(falsehoods)의 피라미드를 무너뜨리고 파괴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전례 운동(The liturgical movement)은 약속, 희망, 비전을 계속해서 파괴하는 세력을 무너뜨리는 혁명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 전례 운동(The liturgical movement)-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예배 개혁을 위한 학문 운동
뉴스 속 기도
2007년 가을, 버마(Burma: 현재 미얀마) 군부 정권에 맞서 거리로 나선 승려들이 구타당하고 살해당하는 모습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을 때 우리는 기도의 혁명을 목격했습니다. 누구에게든 가해지는 이런 잔혹함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특히 그 장면들에는 깊은 고통이 담겨 있었습니다. 무기를 마주한 채 단순히 행진함으로써, 발걸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신들의 힘을 주장하는 기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그들의 그러한 행동의 힘이 카바나(כַּוָּנָה, 의도)에 뿌리내렸음을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이 카바나를 사용할 기회를 가집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교감하는 것은 꿈만 같지만, 우리의 전례는 우리 역시 정의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억압적인 체제를 전복하고 현상 유지에 도전하는 기도는 시드루르(siddur) 전편에 걸쳐 발견됩니다.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벌거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달라는 기도는 수백만 명을 굶주리고 보호받지 못하게 하는 세계 자본주의의 사슬을 끊으려 합니다. 병든 자가 치유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기도는 우리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믿는 생명의 순환에 도전합니다. 우리가 창조의 체계 자체에 도전할 수 있다면, -다브카(דַּוְקָא, 더욱 더)—하나님의 권위를 주장하는 자들, 즉 현대의 파라오들과 군부 정권에 도전하는 것은 얼마나 더 쉬운 일입니까.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이 연습에 참여할 때, 우리는 변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 활력과 비전을 얻게 됩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모범을 따라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할 때, 우리의 행동주의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영적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약속, 희망, 비전"을 향해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바랍니다.
미국 유대인 세계 서비스(American Jewish World Service) 제공. <풀뿌리 변화를 통해 세계적 정의를 추구합니다.(pursuing global justice through grassroots change.)>
By Alana Al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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