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센 땅-이스라엘 민족의 인큐베이터(창46:1-34)
1. 전주하면 비빔밥이 유명합니다. 전주비빔밥보다 신선하고 맛있는 비빔밥은 무엇일까요? 넌센스 퀴즈에요. 전 주 비빔밥보다 더 신선하고 맛있는 비빔밥은 이번 주 비빔밥이에요. 지난 것보다 신선하고 맛있는 것은 새로운 것입니다. 오늘 성금요일 저녁입니다. 지난해 성금요일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다음 주일이 더 신선하고 낫기를 축복합니다. 최근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가 세계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며 종합우승을 했다고 해요.(1000m, 1500m, 3000m 수퍼파이널, 계주) 개인전 500m 단거리를 빼놓고는 나머지 종목 모두 우승을 했어요. 경기 하이라이트를 영상으로 보니 독보적이었어요. 이제 24살인데, 네 번째 종합우승을 했다고 하니 대단합니다.
특히, 계주 결승에서 우리나라가 3등으로 많이 처져있던 상황에서 마지막 주자로 골인 지점에서 1등으로 역전시키는 통쾌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어요. 앞서 1, 2등으로 달리던 캐나다와 네덜란드 두 선수가 머리에 손을 얹으며 충격을 받는 모습이 사진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승리 가운데, 역전승이 주는 쾌감이 있어요. 세계사에서, 최고 역전을 이룬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성금요일,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입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닙니다.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린 사건입니다. 죄를 사하는 사건이에요. 사탄은 우리로 죄를 짓게 하고 타락하여 멸망에 이르게 해왔는데, 주님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셨어요. 또 죄를 이기는 보혈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2. 오늘도 요셉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역전승의 대명사가 요셉이지요. 요셉이 20여 년 만에 형들을 만나 화해하고 아버지를 초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이 성취되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때에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을 맞기도 합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린 것이나, 억울하게 감옥에 감금되는 등의 일도 있었어요. 세상에 우연은 없어요. 고통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야곱이 아들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에 내려가기 전에 고민하였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있으니 인생 최고로 기쁜 소식이었어요. 또 아들이 당시 세계의 중심지 애굽에서 성공하여 아버지와 형제들 가족을 모두 이민 초청을 한다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야곱은 왜 애굽으로의 이주 문제로 고민을 했을까요? 해외 이민이 쉽지 않습니다. 이민은 젊어서 가는 것이지 늙어서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이런 이유 외에도 야곱은 자기 조상들이 겪은 일을 잘 알았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애굽으로 내려갔던 일을 잘 알았어요. 애굽에 내려갔다가 할머니 사라를 애굽왕에게 빼앗길 위기를 겪었어요.
3. 아버지 이삭도 할아버지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모두 기근으로 고통 가운데서 가나안 땅을 떠나 타국으로 갔다가 인생의 큰 위기를 경험했어요.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으로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얼마나 식겁했겠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가나안 땅을 떠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약속의 땅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대대로 주신 땅이에요. 이것을 잘 알았던 야곱이 고민만 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야곱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야곱이 하루아침에 이것을 터득한 것이 아니에요.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하여 그가 뼈아픈 대가 지불을 하면서 얻은 지혜입니다. 우리도 야곱이 엄청난 대가 지불을 하며 얻은 성숙한 신앙을 배웁니다. 어떤 결정을 앞두고 우리가 임의로-상식대로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묻는 습관을 가져보세요. 하나님은 야곱과 같이 우리도 주님께 묻기를 원하고 기다리십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떠나가기 전에 브엘세바에서 제사를 드렸어요.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을 요청하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특별 작정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야곱에게 응답하셨습니다.(46:3-4)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 야곱아,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아브라함과 이삭 때와는 다른 상황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도 좋다고 허락하셨어요.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다시 올라올 것이다. 애굽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스라엘의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가나안입니다. 요셉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해외 체류자의 최대 고민, 부모 임종을 못 보는 것입니다. 야곱아, 이것도 걱정하지 말라. 네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 요셉 앞에서 임종하고, 요셉이 너를 가나안 땅 선영에 장사를 지내게 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이 모든 자손들과 함께 아들 요셉이 있는 애굽 땅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야곱은 먼저 유다를 선발대로 요셉에게 보냈습니다. 요셉에게 전할 특별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거주하는 애굽의 수도로 이주를 원하지 않았어요. 야곱은 유다를 요셉에게 보내고, 자기와 가솔들은 고센 땅으로 행했어요. 이 계획은 요셉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영적인 사람들-하나님의 영의 통치를 받는 자들의 마음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성령-하나님의 영이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적 충돌이 없어요. 영적 충돌이 있음은 누군가 성령이 아닌 다른 영이나 자기 생각에 영향을 받고 있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왜 야곱이나 요셉은 대도시인 애굽의 수도가 아니라
고센 땅으로 이주를 원했을까요?
4. 이것이 오늘 우리가 나눌 메시지입니다. 첫째는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야곱의 가족은 대대로 목축업자들이에요. 농사를 짓는 정착형의 가족이 아니에요. 도시에서 장사를 하거나 행정관료로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축들이 먹을 풀을 찾아 방랑하는 가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히브리(이브리, 방랑하다) 민족이라 부른 연유가 여기에 있다. 야곱 가족은 그들이 기르던 가축 떼를 끌고 애굽으로 왔습니다. 그들이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애굽에서 부담감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고민할 때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늘 하던, 제일 잘하는 것을 하면 됩니다. 이 시대 우리 청년들이 그동안 준비하고 닦아온 일들을 평생 동안 일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지길 축복합니다.
둘째는 영적인 이유입니다. 훗날 출애굽 과정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모든 가나안 원주민들을 다 죽이라고 명하셨습니다. 유명한 진멸법(herem)이에요. 그들과 언약을 맺거나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고 명하셨다.(출23:32, 신13:18)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loving God이신데, 왜 이렇게 잔인한 법을 말씀하시고 순종하라고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을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원주민들과 동거하며,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종교와 문화에 동화되고 마는 우려가 있었어요.
5. 전지하신 하나님이 이것을 미리 아시고 당부하셨어요. 훗날 여호수아가 잘 나가다가 마음이 교만하고 말았어요. 기브온 주민들이(가나안 원주민들) 여호수아를 속이고, 자기들이 먼 나라에서 왔는데 이스라엘의 종이 되겠으니 자기 민족을 진멸하지 말 것을 간청했어요. 이때 여호수아가 그들이 온 지역이 어디 인지 지도를 가지고 확인하지 않았어요. 잠시 우쭐하고 말았어요. 자신이 위대해서 먼 나라에서도 와서 화친을 청한다고. 여호수가 기브온 사람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후 여호수아가 죽고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요셉에게 이런 영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인들과 섞여 살지 않는 환경에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이 문제를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도, 애굽왕 바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요셉이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당부했어요. 어떻게 하라고 당부했습니까? 33절, 바로 왕이 너희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대대로 목축하는 자들이라고 말하라고. 왕을 알현하기 전에 예행연습을 시켰어요. 애굽인들은 목축-짐승을 다루는 일을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애굽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고센 땅에 살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야곱과 요셉의 관심은 애굽에서의 출세나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6. 애굽에서 생활 목적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야곱이 가족들을 데리고, 일정 기간만 애굽으로 내려가도록 허락하셨어요. 하나님의 계획-비전은 야곱 가족이 씨족 단위에서 민족 규모로 번창하게 해서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입니다. 창15:13-16,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그네가 되었다가 4대 만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400년 만에 씨족이 민족으로 장성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다시 그의 손자 야곱에게 하나님이 주셨어요. 야곱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애굽으로 이주했습니다.
야곱 가족이 민족 단위로 성장할 때까지 애굽 문화나 종교에 동화되지 않고, 영적인 생활이 순전히 이뤄져야 했습니다. 1905년에 약 1,000명의 조선 사람들이 멕시코에 돈을 벌러 간다고 제물포항(인천)을 떠났어요. 그중에 300명 정도가 우여곡절 끝에 쿠바에 도착했어요. 그들은 몇 년 일해서 큰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아무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거기에서 죽었습니다. 100년 이상이 지난 지금, 그 후손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화가나 음악가, 발레리나, 대학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성공한 쿠바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꼬레아에서 온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만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7. 그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을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들은 쿠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100년이 아니라 40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국 사람이 다른 나라에 이민을 가서 살다가 세월이 흐르며 그 사회에 동화되고 흡수됩니다. 우리가 누구와 이웃하며 살고, 누구를 만나며 살고, 어떤 문화 속에서 사는가가 이런 점에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야곱과 요셉이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환경을 늘 돌아보며 잘 만들어 가며 살아가야 합니다.
고센 땅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족이 민족 단위로 성장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예비하셨습니다. 고센 땅은 세계에서 가뭄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 할 만큼 기름진 땅입니다. 이집트-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며 가보았어요. 나일강 하류의 비옥한 삼각지대에요. 이곳이 사막의 땅 이집트인가 의심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와 흡사한 모습입니다. 물이 풍족하고 비옥한 땅이에요. 이곳은 외적이 좀처럼 침입해 들어올 수 없는 지형이에요. 물이 중간 중간에 흘러가니까, 군대가 이동하기에 어려운 곳입니다.
8. 고센 땅에서 야곱의 후손들이 향후 400년간 연평균 5% 이상의 인구증가가 이뤄졌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무렵에는 애굽이 경계할만한 민족 규모로 성장했어요. 27절, 70명의 야곱 가정이 400년 후에는 300만 명 전후로 자랐어요. 고센 땅은 이스라엘 민족의 인큐베이터 같은 기능을 했습니다. 고센 땅은 장차 출애굽을 할 때 가나안으로 가는 첩경이었습니다. 만일 애굽의 남쪽 지역이라면 그들이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었습니다. 애굽 군대를 따돌리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었어요. 고센은 이후 400년 동안 이스라엘이 번창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400년 후에,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에 하나님은 정확하게 그들을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하되 세상 욕심을 버렸어요. 오직 하나님의 계획-비전을 따라 순종했어요. 야곱과 요셉이 20여 년 만에 부자상봉을 했습니다. 큰 기쁨과 감격의 시간이었습니다. 부자가 목을 안고 감회의 눈물을 흘렸다.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기쁘고, 아들은 아들 대로 감격스러운 시간이었어요. 아들보다 아버지의 기쁨이 더 컸습니다. 자식이 부모만 하겠습니까? 사랑은 내리사랑이에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30절,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9. 요셉이 형제들에 이어 아버지까지 만났습니다. 요셉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비전이 이렇게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의 성취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일부만 기뻐하지 않고 모두가 즐거워해요. 세상 사람들의 비전 성취는 그렇지 않아요. 일부에게는 기쁨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뼈아픈 상처를 줍니다. 그 비전이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덕이 되는 비전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유익한 비전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 고센 땅에서 잘 성장해간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인큐베이터에서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랍니다. 성금요일 저녁, 우리 가족-교회-민족 공동체가 주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나님과 관계가 자랄 수 있도록 이제 합심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