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가 나를 이끌어 준다 (수정)
할렐루야!
바나바는 바울을 초대교회 선교 역사 속으로 이끌어낸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한 명이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 등의 사도들이 온전히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활을 돌보아주었다.
그의 본 이름은 요셉이었으나 사도들은 그를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그를 바나바(위로자)라고 불렀다.
하나님은 바나바!(위로자)를 통해서 초대교회 선교의 불을 지폈고 바울을 초대교회 역사의 전면으로 초청하였다.
나는 40여 년의 순례 여정 속에서 수많은 바나바를 만났다.
그들의 위로를 통해서 힘을 얻었고 고난과 시련, 유혹과 미혹을 이겨냈다.
23년 12월 풍성한 축복과 은혜를 따라서 온 뒷담화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런 나의 심령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새해벽두에 여러 명의 바나바를 보내주셨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바나바들은 고통과 시련, 갈등과 고뇌 속에 있을 때 왔다.
아니면 내가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 하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준비시키고자 바나바들을 미리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금번 1월에 온 바나바들은 전자와 후자에 다 해당되었다.
생활수도공동체를 꿈꾸었던 내가 나그네 길로 들어선 지 어언 26년하고 6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흘린 피와 땀, 눈물이 바쳐진 세월의 깊이와 무게를 하나님만이 아신다.
네 개의 나라에서 떠돌며 살림 해체를 4번이나 하고 이사를 이십여 차례 넘게 하는 동안 시련과 고난, 유혹과 미혹, 절망과 상심, 시기와 질투들이 나를 따라 다녔고 그로 인하여 죽음 직전에 이르기조차 하였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바나바 (위로자)를 보내주셔서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구원해주셨다.
하나님은 낯선 사람들과 중고시절의 친구들과 선한 이웃들을 바나바로 보내어 상처받고 피 흘리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나를 위로하였고 항상 선한 길로 이끌어 주셨다.
작년 한 해만도 미얀만 난민 긴급구호 사랑의 쌀 나눔을 26 차례 실시하였다.
대형교회 담임 목회자도 아니고, 권력자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지식이나 스포츠, 가요나 연기로 대중의 인지도가 있는 인기인도 아닌 자가 3년에 걸쳐서 계속 난민들을 위한 긴급구호를 한 것 자체가 기적이요 은혜이므로 간증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때때로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부담을 느낀다. 무엇보다 내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 구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부담감으로 불편해지고 답답해진다. 그런 상황 속에서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한없이 위축이 된다. 계속적인 모금 활동에 대한 뒷담화를 듣게 되면 내가 모금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자조감과 죄책감이 생긴다.
작년 12월에만 5번이나 집중적으로 미얀마 난민 긴급구호와 10여 차례 난민 아동들을 위한 성탄축하잔치를 열었다. 난민들이 양식을 받고 웃으며 돌아가고 아이들이 캔디와 쿠키를 받고 밝게 웃는 모습에 공급과 지원을 위해 노심초사했던 것은 잊어버리고 나도 따라서 행복해진다. 그러나 몇 사람의 뒷담화를 들으면서 내전이 끝날 때까지 난민구호를 계속 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요, 허영이요,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래서 새해 들어 난민구호를 위한 모금을 제대로 한번도 못하고 피일차일 미루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난민들의 양식 걱정과 불안, 굶주림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초부터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열흘이 지난 즈음에 어느 분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어떤 실업인 단체에 속해 있다고 자기를 소개하였고 그 단체의 회장에게 난민구호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였다.
“우리 회장님이 모임에서 미얀마 난민긴급구호를 소개하였는데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단체에서 지금까지 사회적 책임과 봉사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바쁜 일상 파묻혀서 금방 잊어버리게 되어요. 그런데 우리 회장님이 난민구호에 참여한다는 말을 하였을 때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 저도 난민구호에 참여하겠습니다. 방법 좀 가르쳐주십시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났다. 그는 하나님께서 뒷담화 후유증으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위축되어 있는 나에게 당신이 친히 사람들 속에서 일하고 계시니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 보내주신 바나바 위로자였다.
회장이라고 호칭되는 그는 평상시에 말이 없고 난민구호 활동과 나눔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 앞에 설 때 벽 앞에 서있는 느낌을 받곤 하였다. 내가 보기에 그의 미얀마 난민 후원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고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여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억지춘향으로 하는 일이었다. 그런 그가 실업인 모임에서 미얀마 난민구호를 소개하며 사회적 책임과 나눔을 말하였다니 그것은 천지개벽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가 마지못해 후원을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에게 사진과 보고서를 보낼 때 마다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 로 고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를 빠트리지 않고 보냈다. 그런데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가 자고 깨는 사이에 밀과 보리가 자라는 것처럼 영적으로 성장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돌밭과 같은 그의 심령을 만지고 마음을 낮추어 겸허케 하시고 사랑의 눈을 뜨게 해주셨다. 그렇지 않고서는 목석같은 그의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난민 후원에 참여할 사람이 나올 리가 없다. 혹이 그의 권면에 감동을 받았다할지라도 굳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참여하게 해달라고 할리가 없다.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은 그만큼 강력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성령님께서 두 사람을 통하여 지금도 온 세상에서, 나의 이웃들 속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일하고 계심을 부여 주셨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사랑하라고 나누고 섬기라고설득하며 감동시키고 계신 것이다.
무관심하고 냉담했던 그의 변화는 긴급구호가 나의 개인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일임을 다시 확인시켜주었고 공급이 하나님의 손길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기가 아는 분에게 내 책을 드렸는데 그가 책을 읽고 난 뒤에 감동을 받아서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양식을 위한 기도”라는 나의 시를 읽고 그가 대뜸 ‘주님의 심장’에서 나온 시라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마얀마 난민 구호를 비롯한 여러 구호를 소리없이 감당하고 있는 생생한 증언을 듣고 싶다며 나를 초대하였다. 그는 나의 바나바였다. 나는 그의 말에 내가 잘못된 길에 서있지 않다는 안도감과 위로를 받았다.
그보다 앞선 날에도 나의 책을 읽었다고 하는 분 또한 나의 글이 주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싶다며 초청하였다. 그 또한 나의 바나바였다. 그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로 사는 나야말로 최고로 축복받은 일꾼이라고 하였다.
나는 두 사람의 초청에 정신이 얼얼하였다. 지나친 칭찬은 그만큼 앞으로 나의 갈 길이 어렵고 힘들 것이라는 예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무장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깨어 있기로 다짐하였다.
또 다른 두 분은 책을 읽고 난민 구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후원 신청을 하였다.
카톡으로 전화가 왔다.
그분은 한 달 계획으로 해외여행 중이었다. 그는 여행을 떠날 때 내 책을 챙겼다고 하였다. 그는 틈틈이 책을 묵상하면서 읽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글을 쓴 나의 마음, 정신, 가슴을 묵상한다고 하였다. 내 가슴의 온도가 너무 높아서 자기 가슴에 불이 옮겨 붙는다고 하였다. 그 불이 자기 가슴에서 계속 타오르기를 바라며 책을 읽고 또 읽는다고 하였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나는 감동의 바다에 빠졌다. 그는 이미 책을 다 읽었는데도 계속 책을 읽는 것은 난민들의 굶주림을 아파하며 염려하며 모금하는 나의 마음이 다 집히고 느껴져서 거룩한 열망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남은 생애 동안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섬기는 것이 자기 소망이며 기쁨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신속하게 모금하고 신속하게 송금하고 신속하게 나누고 신속하게 결과를 보고하는 구호활동에 반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새해에는 더 많은 나눔과 후원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그는 굶주린 사람에게 먹이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나그네를 영접하고 병 문안가고 감옥에 갇힌 자를 위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복된 사명인데 난민구호야 말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라며 좋은 몫을 받았으니 잘 감당하라고 격려하였다.
할렐루야!
나는 감격으로 목이 메였다.
그는 뒷담화에 눌려 있는 나의 기운을 회복시켜주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보내준 바나바들로 인하여 올해 비틀거리지 않고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갈 것이다.
바나바들이 나를 인도로, 네팔로, 미얀마로, 아프리카로 이끌어갈 것이다.
고아와 과부, 장애우들과 병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가난과 고통이 있는 곳, 갈등과 충돌이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폭동과 난민수용소로 이끌어 갈 것이다.
사랑이 없는 곳, 어둠과 슬픔이 있는 곳으로 데려 갈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보내주실 바나바를 기대하며 기도하며 기다린다.
할렐루야!
성령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바나바들과 함께 위기와 난관을 극복하며 험한 길을 달려가리라!
새해 벽두에 찾아 온 바나바들과 함께 한 해 동안 계속 동행하리라!
나 또한 나의 바나바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바나바가 되리라!
바나바들과 함께 바나바로 세상에서 천국의 사람을 살리라!
2024년 1월 24일. 수요일. 진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