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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 9-14절. 성령님의 인도를 받읍시다. 요약설교
1. 우리는 지금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신앙생활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의 삶에 대한 3가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9-11절은,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죽을 몸도 성령님이 부활시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12-13절은, 성령님을 모시고 몸의 행실을 죽일 때,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14절은,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2. 오늘은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면>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9-11절.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죽을 몸도 성령님이 부활시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 9절은 조건부적인 말씀이 두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1) 이 두 가지 조건부는 정반대의 경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는 성도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는 불신자를 대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로마교회 성도들 대부분은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충실한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의 교인들은 교회만 나오지, 아직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지 않는 불신자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3) 로마교회 당시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긴다는 것은 생사 문제와 직결되고 있었습니다.
즉, 예수 믿고 세례받는다는 것은, 가이사 황제를 유일한 주님으로 강요하고 있는 로마 세계에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쿼바디스>라는 영화에서 보신 대로, 원형 경기장에 끌려가서 사자의 밥이 되는 비참한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4) 이처럼 당시에는 예수 믿는 것이 생사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교회 안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결단을 못 하고 머뭇거리는 교인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직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을 아직 주님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러한 교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 영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5)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이지만, 일부 교인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그냥 친구의 권유에 못 이겨서 교회에 나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6) 성경 요한복음 3장에는, 유대교에 속한 높은 관리인 니고데모라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으로 알고 밤 중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관심은 니고데모가 높은 관리라는 데 있지 않고, 그가 아직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라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네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이 누가복음 7장의 죄 많은 여인이나,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이나,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이나, 요한복음 20장의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에게 <거듭나야 하겠다>고 하셨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종교적으로 바리새인이요, 도덕적으로 선생님이요, 사회적으로 산헤드린 공회원인 사람인데,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거듭나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나는 것은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예수 믿고 성령님을 받아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7) 저는 목회자로서, 교인들 하나하나를 짚어보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을 갖다 대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마음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목회자의 심정은 모든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영을 모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즉,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해서, 주님 앞에 서는 날, 교인들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최대의 영광입니다.
이러한 목회자의 심정을 바울 사도가 고린도후서에서 잘 표현해주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4.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주 예수님을 뵈올 때, <성도님,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말씀을 잘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우리들을 올바로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인사를 나눌 날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살아갑니다.
즉, 주 예수님 뵈올 때, 여기 성도님들 여러분들이 저의 자랑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데살로니가전서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 주 앞에 너희가 아니냐?
그러면 어떻게 거듭납니까?
요한복음 3:4-6.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즉,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한복음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처럼, 사람이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복음을 전하지만,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 사도는 복음 전하는 사람을 감히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린도후서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이처럼, 복음 전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듣는 사람들이 믿음이 생깁니다.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전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듣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납니다.
베드로전서 2: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물론,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그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성령님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에베소서 1:13.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와 같이 한 사람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가장 놀랍고 은혜로운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심히 복음의 말씀을 전합시다!
그래서,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0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살아있는 것이니라
1.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살아있는 것이니라
(1)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너희 안에 계시면>이라고 표현했는데,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표현이나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표현은 결국 같은 말입니다.
(2)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영은 의를 인하여 살아있는 것이라>란 말씀은, 예수님을 모신 사람의 영혼이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 아담이 하나님을 배신하였을 때는 그 영혼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모신 사람의 영혼은 살아납니다.
여기서 <살아있다>는 것은 <장차 살아난다>는 뜻이 아니고, <지금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죽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다는 뜻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되살아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전선이 발전소와 끊어지면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전깃불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전선이 발전소와 연결되어 있으면, 전기불이 살아난 것과 같습니다.
(3) <몸이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현재의 몸이 죽은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몸이 이미 사형 선고를 받아서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너 죽었어>라고 할 때, 앞으로 꼭 죽는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는 <죽을 몸>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현재 몸에는 <죽음의 씨앗인 죄>의 요소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죽을 몸이 장차 어떻게 될 것입니까?
11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 1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의 영이 살아있는 것을 말씀했고, 11절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가리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이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을 입겠고,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요한일서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
즉,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도 주님처럼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어떤 사람에게 이런 영광이 주어집니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즉 하나님의 영(성령님, 예수님의 영)을 모신 사람만이 부활의 영광을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이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사실이, 우리 몸의 부활의 확실한 보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1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이>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몸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습니까?
네, 우리 몸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이성으로는 알 수 없고, 체험해본 일도 없으나, 어쩌면 이렇게 몸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섭니까?
이러한 부활의 확신을 임종시에도 굳건히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임종을 맞이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우리가 얻게 된 구원은, 우리의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장차 육신의 구원까지 얻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완전한 구원은 오직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을 자기 안에 모신 자만이 차지할 수 있습니다.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을 모시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240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그 아침을 맞을 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쁨으로 주의 얼굴 뵈오리. 나의 주를 나의 주를 내가 그의 곁에 서서 뵈오며 나의 주를 나의 주를 손의 못자국을 보아 알겠네.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사랑하는 성도들 나를 맞을 준비하고 있겠네. 저희들과 한소리로 찬송부르기 전에 먼저 사랑하는 주를 뵈오리. 나의 주를 나의 주를 내가 그의 곁에 서서 뵈오며 나의 주를 나의 주를 손의 못자국을 보아 알겠네.
영화로운 시온 성에 들어가서 다닐 때 흰 옷입고 황금 길을 다니며 금거문고 맞추어서 새 노래를 부를 때 세상 고생 모두 잊어버리리. 나의 주를 나의 주를 내가 그의 곁에 서서 뵈오며 나의 주를 나의 주를 손의 못자국을 보아 알겠네.
12-13절. 성령님을 모시고 몸의 행실을 죽일 때,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 <그러므로>란 말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또 성령으로 우리 죽을 몸도 부활시켜주실 것이므로>란 뜻입니다.
2.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란 말은, 바울 사도나 우리나 모두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에게 빚진 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빚진 자’란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하는 빚을 졌다는 뜻입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성도의 자격답게 성령님을 따라 거룩하게 살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1장 14절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큰 구원의 은혜를 거저 받았는데, 이 구원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거저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15장 27절에서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빚졌다는 것은 신령한 것을 받았으니, 육신적 물질로 갚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13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우리 성도들은 영혼은 이미 구원받았는데, 아직 몸은 완전한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면, 이미 구원받은 성도가 몸이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육신대로 살지 말고, 성령님을 좇아 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이 말씀을 갈라디아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 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제 이 땅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살 것인가, 아니면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살 것인가, 투쟁이 불가피한 것입니다.
2.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1) 지난 과거의 신앙생활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이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쳐보았습니까?
얼마나, 금식하며, 철야 기도하며, 몸에 채찍을 가하며, 몸부림을 쳐보았습니까?
그러면, 그런 학대와 고행들을 통해서, 육신의 소욕을 죽이는 데 성공했습니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항상 실패했습니다.
40일을 금식하고서도, 보호식을 하면서, 바로 죄의 소욕이 온 마음과 온몸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과거에만 육신의 소욕을 죽이는데,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실패할 것입니다.
(2) 그러면, 왜 육신의 소욕을 죽이는 데 실패할까요?
그것은 로마서 7장처럼, <내가>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님만이, 성령님만이 육신의 소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가 그 뜻입니다.
즉,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은 오직 <성령>으로써만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지켜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은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4) 물론 성화의 삶은 인간의 의지력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따라 나도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을 얻지 못하고, 순전히 나의 의지대로 하려고 하면, 항상 실패할 뿐입니다.
(5)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제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님을 모시고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성령의 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즉,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육체의 소욕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성령님, 예수님,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육체의 소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있기를 축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3:13.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을찌어다.
이처럼 성령님을 늘 모시고 살면, 넘어져도 성령님이 회개케 하시고, 치료하시고, 위로하고, 새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깨어 기도하고, 생명의 말씀을 들어서, 늘 성령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께 쓰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고, 날마다 영생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4절.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라는 말보다 더 영광스러운 말은 세상에 없습니다.
결국 15절에서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란 단순히 죄 용서함과 지옥 형벌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
2.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말은 영광스러운 말씀입니다.
경찰들이 호위를 해도 영광스럽습니다.
군수와 도지사와 대통령이 호위하여주면, 더욱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그 보다도 천사들이 호위해주면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하물며, 성령 하나님이 호위해주시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오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영광스러운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3. ‘인도함을 받는’(ἄγονται)은 현재 수동태로서(are led) 항상 인도함을 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어린아이가 어른의 인도를 받는 것이나 소경이 안내자의 인도를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전능하시고, 사랑 많으신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를 늘 받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려분>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늘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을 늘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4:30. 성령을 근심케 말라, 너희가 그 안에서 구속을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면, 반드시 천국에까지 영광스럽게 들어가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데 결코 실패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되신>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시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가십시오!
그래서, 영광스러운 천국 여행을 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