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종이 남긴 유산이라고는 가마니 한 장도 없었다. 일생 사진 한 장도 안 찍었다. 추운 겨울 언 땅을 파고 그들은 스승을 땅에 묻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의 껍데기인 육신만 땅에 묻혔을 뿐 그의 혼과 얼은 제자들의 가슴에 묻혀 한국 기독교의 토착적 영성의 뿌리가 되었다. 후에 맨발의 성자라 불리었던 이현필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의 공동체인 동광원이 바로 그것이다. 이세종의 운동을 이현필은 조직과 운영으로 정인세는 이 운동을 서울로 끌어 올리는 중추 역할을 하였다. 그 영향으로 김병로와 같은 이는 대법원장으로 있을때 판결을 내리기 전에 먼저 기도하고 성경 위에 두 손을 얹고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이세종의 영향을 받은 이로서는 전 검찰총장 원택연 장로가 있고 정치가로서는 장면과 김상돈이 있다. 학계에는 전남대 농대 교수인 김준과 명예교수인 신귀남이 있다. 철학자로는 유영모가 있고 사회 운동가로는 현동완 YMCA 총무가 있었다.
한국 기독교 백년사에 이세종 선생 같은 독특한 인물은 없었다. 청빈의 길 사랑의 길 순결의 길 초월의 길 고난의 길등 그것을 생명처럼 강조하며 몸소 그렇게 산 사람도 없었고 철저한 자기비움을 통해 자기완성에 이르려 애쓴 인물도 드물다. 우리는 이세종을 통해 고난의 예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가 간 비천한 예수 청빈의 예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