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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2일(오순절 후 스물한 번째 주일)
마가복음 1:15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
하늘사랑교회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이 설교문은 존 웨슬리의 표준설교집 중에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사역하던 교회에 최 장로님이 계신 데, 이분이 쓴 글 중에 의미 있는 내용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동네에 예수를 믿는 갑부자와 을부자가 살았습니다. 갑부자는 오래 못 살 것 같으니까 하나님에게 빌었습니다.
“제가 예수를 믿는데요. 천국에 갈 수 있지요? 천국에 못 갈까 보아서 걱정이네요.”
“걱정 말아라. 너는 천국에 올 수 있다.”
“그러면 천국에서도 부자로 살 수 있게 돈을 좀 가져가면 안 될까요? 여기서 헌금한 것이 천국에 다 저축이 된다지만, 그래도 제가 워낙 돈 쓰기를 좋아해서 가져가려고요.”
“나라마다 원화, 위안화, 엔화, 달러, 마르크 등 돈이 다른데 한국 돈이 통하겠느냐?”
“그러면 돈을 황금으로 만들어서 짊어지고 가면 어떨까요?”
“정 그렇다면 그래라마는, 천국에서는 그 황금이 쓸모가 없을 것 같으니 다 두고 오너라.”
그런데도 부자는 돈을 황금으로 바꾸어 땀을 흘리면서 짊어지고 천국에 갔더니 천국 문을 지키는 베드로가 혀를 끌끌 차면서 말하였습니다.
“여기 길은 다 황금으로 아스팔트 삼아 이미 깔아놓아서 네가 지고 온 황금은 쓸데가 없다. 괜한 짓을 하였구나. 그래도 애써 가져왔으니 다음 황금 도로를 보수할 때 쓰게 예비용으로 두겠다. 네가 가지고 온 황금은 여기에 두고 빈 몸으로 안에 들어가거라.”
“빈 몸으로 가면 제가 편히 살 수 없는데… 걱정이 되고 불안하네요.”
“이 사람아. 천국에는 걱정이 다 없는 곳이다. 돈도 필요가 없어. 성경을 안 보았느냐?”
갑부자의 모습을 본 을부자는 하나님에게 다음과 같이 빌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저 갑부자처럼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무엇 달라, 무엇 해 달라, 어떻게 손 써달라고 요구를 안 하렵니다. 판단이 깊으신 하나님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요구를 하렵니다. 저는 신자거든요, 앞으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뵈올 것입니다. 그때 칭찬을 받게요.”
“음. 너 말 잘했다. 나를 만나야지. 너는 천국을 올 확신이 섰으니 신자답구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울고불고하면서 자기가 그동안 나에게 등한히 해온 행실을 생각하지 않고 일등 효자 자식이나 된 듯이 무엇 달라 얼른 낫게 해달라고 조르는데 너는 좀 다르구나.”
“예. 낙타를 아주 작게 만들어 주시든가, 바늘귀를 아주 크게 만들어 주시든가 해 주십시오.”
“잠깐, 그 말은 어디를 보고 한 말이냐?”
“신약성경에 세 군데나 있는 말인데요, 마태복음 19장 24절하고요, 마가복음 10장 25절하고요, 누가복음 18장 25절에 있는 말이 <재물이 있는 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였으니, 저는 부자거든요, 이 성경대로라면 저는 천국에 갈 수 없어서 한 걱정입니다.”
“음, 천국도 오고 싶고, 부자로 지상에서도 살고 싶고. 천국에서도 살고 싶고. 너 대단히 욕심이 많구나. 성경에 세 군데나 있다면 그것은 요지부동한 진리(眞理)니라. 나는 네가 요구한 낙타든 바늘귀든 하나만 바꾸는 그 선택을 하지 않겠다. 대신, 명령을 하겠다.
“재물을 다 놓고 홀가분하게 오너라.” 황금을 천국에 지고 와서 천국 길인 아스팔트 도로를 보수 할 때 깔려는 네 친구 갑부자 만큼도 영리하지 못하구나.
이미 성경에 쓴 것을 네 말대로 나는 고칠 생각은 없다. 큰 낙타는 큰 낙타요 작은 바늘귀는 작은 바늘귀다. 그보다 네 재물 욕심을 고쳐라. 에헴.”
-출처: 최래옥, “하나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사귐의 뜨락, 2011년 1월 9일.
많은 사람이 천국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마치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유대인이 모세의 율법에 대해 열심이었습니다.
그들은 깨끗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구별하고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방인들에게까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구별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에서 겉으로 드러난 형식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기독교 신앙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라고 말했습니다.
참된 신앙이란, 음식이나 의식을 철저히 지키는 외형적인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과 같은 내면적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성령 안에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러나 믿는 자들 안에서는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우리 가운데 임하고,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이 땅 가운데 확장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참된 신앙의 특징과 같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이 땅 가운데 의식주의 문제만을 추구하며 살아서는 안 되며, 오직 성령의 역사를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령 안에 거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될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의와 평강과 희락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그리스도 의’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신의 소욕 가운데서 행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지가 아니라 마귀를 기쁘게 하는 왜곡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상한 것과 터진 것과 곪은 종기(사 1:6)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은 부패했으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망은 단순한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과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심판을 상징합니다. 즉, 둘째 사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한 의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때가 찾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하나님의 구원의 시간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베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하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주변에 아주 성큼 다가왔습니다. 너무나 초월적인 곳이어서 우리가 도저히 바라볼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나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안에 있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의 나라를 그 마음에 소유한 자들에게 평강이 임하고, 희락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여러분은 의의 나라, 평강의 나라, 희락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를 여러분의 마음속에 소유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우리 마음에 소유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소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구원받는 믿음의 전제 조건은 회개입니다. ‘믿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믿는 것’이 성경의 순서입니다. 자신의 죄인 됨을 입술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고백한 모든 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다시 문제 삼지 않으시고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회개의 실제적인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은 하나님께 은밀히 회개하십시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범한 것이 있거든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변상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1907년 1월 14일 저녁에 있었던 평양 장대현교회의 부흥 운동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집회를 주도했던 길선주 장로는 말씀을 선포하던 중에 지난날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자백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수가 없었습니다. 약 일년 전에 내 친구 중 한 사람이 임종 시에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서 말하기를 ‘길 장로,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날 것 같으니 내 재산을 잘 정리해 주시오. 내 아내는 셈이 약하기 때문이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내가 잘 돌보아 드릴 테니 염려 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다 나는 미화 100달러 상당의 금액을 사취(詐取)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해 온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미망인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강단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길선주 장로의 고백을 들은 성도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이 열리지 않던 중에 길선주 장로의 회개가 성도들의 마음 문을 열게 된 것입니다. 순간 성령의 강한 임재가 있었고, 그곳에 참석했던 수많은 성도들은 그동안 숨겨두었던 자신들의 죄를 낱낱이 통회 자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눈물과 애통하는 소리가 들리고, 장내는 뜨거운 회개로 이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 선교사는 한국인들의 기도 소리가 마치 하늘 보좌를 향해 포효하는 것 같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의 부흥 운동은 한 마디로 ‘회개 운동’이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교회 안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뜨겁게 부흥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뜨거운 회개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안심하라. 네 죄가 사하여졌다(마 9:2).”라고 선언하시자마자,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여러분은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복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성경의 진리나 교리에 대한 단순한 동의가 아닙니다. 믿음이란 단순한 동의 이상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뢰하고 그 복음에 나 자신을 완전히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일평생 자랑하며 섬기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이 마음속에 부은바 되었습니다(롬 5:5).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진 여러분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이미 여러분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점차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어느 목사님의 솔직한 고백을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기 아내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에 긴박감 때문에 자신의 모든 욕구를 누르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재정적인 압박으로 늘 긴장하여 살아야 했고,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몹시 피곤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자기 안에 외로움이 꿈틀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서로 주고받는 부부의 사랑이 그리웠습니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은 남편의 사랑을 엄마의 사랑으로 바꾸라고만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한 치유 세미나에서 이런 자신의 견디기 힘든 감정을 다른 목사님에게 털어놓고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성적 유혹에 시달립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이 담담히 말했습니다. “목사님도 인간이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를 망치고 인생을 망친다고 자신을 정죄할 텐데, 그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성적 유혹을 받는다고 자신을 정죄하지 마세요. 그러면 유혹만 더 커집니다. 그냥 자신이 유혹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세요.”
그 후 이 목사님은 자신을 유혹받는 존재로 서서히 인정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둠을 헤쳐 나가기 위해 하나님 은혜에 철저히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간성을 무시하고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조용히 기도하며 어둠에서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결국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는 기다림이 천천히 이 목사님을 성적 욕망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습니다.
-출처: 김병년, 「바람 불어도 좋아」 (IVP, 2013); 「생명의 삶」 (두란노, 2013년 10월호), 83에서 재인용.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마음에 임하게 됩니다. 우리는 회개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마음속에 소유하게 됩니다.
성령님을 통해 부어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저와 여러분이 마음에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