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9월9일(수)■
(레위기 25장)
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4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6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27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28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29 성벽 있는 성 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 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30 일 년 안에 무르지 못하면 그 성 안의 가옥은 산 자의 소유로 확정되어 대대로 영구히 그에게 속하고 희년에라도 돌려보내지 아니할 것이니라
31 그러나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가옥은 나라의 전토와 같이 물러 주기도 할 것이요 희년에 돌려보내기도 할 것이니라
32 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들의 소유의 성읍의 가옥은 레위 사람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나
33 만일 레위 사람이 무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유 성읍의 판 가옥은 희년에 돌려 보낼지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읍의 가옥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받은 그들의 기업이 됨이니라
34 그러나 그들의 성읍 주위에 있는 들판은 그들의 영원한 소유지이니 팔지 못할지니라
(묵상/레 25:23-34)
◆ 토지의 진정한 소유권자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23)
토지는 다 하나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스스로를 남의 나라에 거하는 것과 같은 거류민(stranger)으로 인식할 것을 요구하셨다. 그들에게 이 세상의 시민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하나님 나라 시민임을 일깨우신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사상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거류민으로 살아야 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행세하면 결국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 나라 시민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어떤 사람이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경우, 그와 가까운 혈연의 형제가 도로 무를 수 있도록 요구하셨다. 그는 무르기를 하여 돌아온 땅을 다시 원소유자에게 주어야 했다. 무르기는 값을 치르고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게울라'를 번역한 것이다. 이 무르기 제도는 혈연 공동체가 손해를 함께 감당하고 회복시켜줄 의무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신약적으로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값을 지불하시고 죽으신 것을 의미하고, 또한 교회 공동체가 형제들의 어려움에 함께 동참해야 함을 보여준다.
오늘날 코로나19사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내에 형제가 생활이 어려워지면 이렇게 땅을 무르는 자처럼 기꺼이 도와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당 헌금통에 넣는 헌금의 절반만이라도 가난한 교회 형제들을 돕거나 이웃을 돕는데 썼더라면 아마도 한국 사회가 뒤집혔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오해되고 욕먹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토지에 대한 올바른 개념
많은 사람들이 토지는 영원히 자기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땅을 넓히는데 혈안이 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땅을 넓히는데 주력하다가 빈손으로 죽는다. 당장은 그 자손에게 넘겨지겠지만, 결국 그것도 흐지부지 된다. 어떤 인간도 토지를 영구히 소유할 수는 없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것을 영원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건방진 생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부동산 투자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 투자같은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사실 부동산 투자는 인간들에게 기여하는 것은 거의 없다. 모든 직업적인 투자는 나름대로 이웃에게 기여한다. 내가 입고 있는 옷, 안경, 구두 모두 누군가 만든 것이고, 식당이든, 영화든, 적절한 돈을 주고 이것들을 누리게 된다. 직업은 이웃과 더불어 함께 수고한 것을 누리고 살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직업을 통해서 서로에게 기여한다. 이웃사랑은 상당부분 직업을 통해서 실천된다. 그런데 부동산 투자 만큼은 이웃에게 기여하는 것이 없다. 한정된 땅으로 서로 땅 따먹기하면서 가격만 올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토지를 자기 소유로 하여 점점 자기 땅을 넓히는 것을 탐욕으로 보시고 저주하셨다.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 5:8)
우리는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땅과 집을 사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돈 버는 목적으로 땅 투자에 골몰하면 안된다. 부동산 투기는 당장은 내 돈을 벌게 해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우리는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고, 이웃에게 기여하는 직업을 가지려고 해야 한다. 한국의 900만명이 넘는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이런 직업관을 가지고 행한다면 사회가 많이 정화될 것이다. 그런데 애석한 것은 오늘날의 많은 타락한 교회들은 오히려 그들이 먼저 나서서 땅을 사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 땅을 세습하고, 갖기 위해 서로 싸우는 추태를 벌이고 있다.
성도들은 땅을 사서 부자된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성도들은 믿지 않는 자들이 갖지 못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이것보다 큰 재산이 어디있는가?
90세 중반이 되신 어느 자매님께서 몇 년 전에 나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 나는 내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죽음이 가까온 요즈음 이게 새삼 새삼 감사로 느껴져" 그분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구원 받았다는 것이 너무나 신나고 감사했다. 지금도 그렇게 행복하게 사신다.
우리는 하늘에 거할 곳을 확보한 사람들이며(요 14:1-3), 세상사람들이 갖지 못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다. 솔직히 우리가 그들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부러워해야 한다. 나는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기로 했다. 내게 있는 것을 감사할 줄 모르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겠는가? 나는 요즘 내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거듭 거듭 감사하고 감격해하고 있다. 이것때문에 재벌도 부럽지 않은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팩트로 인식한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를 잘 이해할 것이다.
주 예수님, 제게 영생을 주심을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제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달아 알게 해주십시오. 이런 것들을 감사할 줄 모르면서 날마다 다른 무엇을 구하고 원망했던 모든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