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이 갖춰야할 덕목이 뭔지 아시는가. 당연히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국민 소득이 어느 이상이 되어야하고 나라의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줘야 하는 등등이 있다. 이외에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하나 더 있다. 비록 구체적인 계산치가 나와있지는 않지만 무형의 재산인 바로 문화예술적인 소양이다. 먹고 사는 것과는 좀 별개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생활 곳곳 아니 생활 그 자체에 녹아들어 있는 삶의 근본적인 모습속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적 소양이라는 의미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시라. 지금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그런 나라들을 말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등등.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럽국가들이다. 미국도 유럽이 만든 나라이고 일본도 일찌기 유럽 문물을 받아드려 자국화한 나라이다. 그 국가들속에 깊숙히 담겨진 문화예술적인 소양은 일찌기 그리스 로마 그리고 어둠의 시절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그리고 종교개혁 나아가 대혁명이라는 엄청난 격동기를 거치면서 쌓이고 쌓여진, 또한 눈에 보이지 않게 그들의 DNA속에 들어차 있는 성향 성품이다.
물론 유럽문화가 다 멋지고 좋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그 유럽문화가 가지고 있는 속살을 들여다 보자는 것이다. 일찌기 그리스 로마는 문화예술을 숭상했다. 절대적인 미를 추구하며 그것에 감동하고 닮아가려고 노력했다. 건축, 문학, 철학이 꽃을 피웠다. 특히 건축과 철학의 발전은 눈부셨다. 그러나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거의 천년동안 오로지 신에게 의존하며 신을 찬양하는 문화로 변화됐다. 하지만 그속에서 도도히 흐르는 문화, 다시말해 인간을 생각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 정신은 두꺼운 얼음 아래에서도 흐르는 시냇물처럼 중세를 흘러내렸다. 그러다 돌파구를 찾은 것이 바로 르네상스이다. 옛 그리스 로마의 문화예술을 회복하자는 운동이 바로 르네상스 아니던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북쪽으로 올라가 프랑스 독일 플랑드르 등지로 그 불길은 옮겨 붙었다. 수많은 화가들이 배출됐다. 신을 추앙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일부 성직자 귀족들만 접하던 그 미술품들이 서민들의 가정에도 걸리게 됐다. 얀 반 에이크와 베르메르, 램브란트, 루벤스 등의 걸출한 화가들의 그림을 개인들도 소장하게 됐다.
유럽 사람들은 자신의 집 식탁 옆에 걸린 대가들( 당시에는 그냥 화가에 불과했다.)의 작품을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커피를 마셨다. 와인도 한 잔 했다. 식사중에 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음악은 어떤가. 음악은 미술보다는 조금 늦게 르네상스를 맞았다. 비발디와 바흐 헨델 등 바로크음악시대를 지나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이라는 고전 트로이카시대를 거치면서 귀족들 뿐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음악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귀족들의 전용물인 그 음악들이 대중들에게 전파된 것이다. 귀족들의 호화로운 대저택이 아니라 공공 극장에서 오페라와 교향곡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오페라의 아리아를 따라 부르며 문화예술을 공유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1450년대에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어내자 인쇄술이 급속하게 발전했다. 일부 귀족층에서만 돌려 보던 책이 일반 시민들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세익스피아의 햄릿 리어왕 등을 일반 시민들이 읽고 대화하기 시작했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1517년 종교개혁도 바로 인쇄술의 발달이 가져온 혁명이었다.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영어로 번역되자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면서 종교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졌다. 다양한 철학풍조가 생겨났다. 방송이 없던 당시는 바로 인쇄된 책으로 철학과 사상이 전파되었다. 유럽 각국의 시민들은 계몽주의사상이 무었인지 깨닳게 됐다. 그리고 평등과 정의 개념도 생기게 된 것이다. 그것이 번져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것 아니겠는가. 왕과 귀족이 통치하던 정치시스템에서 벗어나 일반인들이 나라를 움직이고 나라의 앞날을 결정하는 그런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것이다. 지금 민주주의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옛날 그리스 로마시대를 거쳐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종교개혁, 철학사상의 대중화 등을 통해 이뤄진 하나의 결정물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이 민주주의 기조에는 바로 문화예술의 정신이 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 문화예술적 측면에서만 보자. 한국의 K문화가 세계를 강타한다고 대단한 문화예술적인 발전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일부 독특한 재능의 소유자들이 일궈낸 혁신적인 노력의 결과물일 뿐 이 나라 국민들이 만들어낸 문화예술적 승리가 절대 아니다. 문화예술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각 가정마다 그림이 하나 둘씩 걸려 있고 그것을 바라보며 안식을 얻는가. 방송 등을 통해 이른바 클래식 음악을 듣는가. 교향곡이나 아리아 그리고 가곡 등을 듣고 있는가 말이다. 책꽂이에 철학관련 서적이 몇권씩 꽂혀있고 틈틈히 그것을 읽고 있는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적어도 한달에 한 번 정도는 가는가. 영화관은 어떤가. 오페라나 연극 공연을 틈틈히 관람하는가. 먹고 살기 바쁘고 대학 시험 공부하기에 정신을 못차리는데 무슨 그런 거창한 것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이 거창하다고 말한다면 문화예술적 소양이 극히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맑고 밝은 정신을 갖기위한 기본적인 움직임이 바로 문화예술이다. 거창한 구호나 움직임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집이나 학교 등에서 음악을 접하고, 미술을 감상하고, 철학에 관심을 갖고, 문학책을 읽고 자란 사람들은 이미 문화예술이 생활화돼 있다. 구태어 특별히 시간을 내서 할 이유가 없다. 생활 자체가 문화예술인 것 아니가. 하지만 어릴 때부터 오로지 대학입시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은 문화예술을 아예 없애 버렸다.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방해를 준다고 집에 걸린 그림을 없애고 그곳에 영어단어장을 붙여 놓았다. 좋은 음악이 나오는 방송채널은 오로지 어학과 국영수를 강의하는 소리로 대체됐다. 인문서적책은 입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사할 때 짐줄인다는 명목으로 다 버린다. 미술관 박물관은 다른 나라속 이야기다. 이런 환경속에 어떻게 문화예술적 소양이 길러지겠는가. 학교에서는 대입과 관련이 없는 역사 미술 음악 수업을 없애버린지 오래이다. 이 나라 교육에는 문화예술은 자리잡을 틈이 없다. 어떻게 이 나라 한국에서자란 아이들이 문화예술을 논할 수 있겠는가.
무조건 빨리 빨리 초가집 없애고 기와집으로 빨리 빨리, 인성은 개뿔 공부만 잘하면 오케이 오케이, 학폭을 해도 공부잘하면 만사 형통인 분위기로 어찌 어찌 지금 세계 경제 10위국은 됐지만 문화예술적인 순위에서는 아마도 후진국 중 후진국에 속할 것이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국 그리고 곧 세계 1위의 경제국이 된다고 떠들지만 중국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은 바로 중국은 문화예술적인 면에서는 지금은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경제성장만 부르짖었던 결과 아닌가. 한국도 중국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문화예술적 소양은 하루 아침에 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태어나서 자라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에 깃들여진 것이 문화예술적 소양이지 책펴놓고 밑줄 쫙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화예술적 소양이 없는 나라를 절대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 과외공부해서, 벼락공부를 해서 문화예술적인 소양을 키우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니 지금이라도 문화예술적인 측면에 눈을 돌려 보자는 것이다. 영어 단어 조금 줄이고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이야기도 하고, 한국 가곡도 듣고, 수학문제 하나 덜 풀더라도 미켈란젤로 램브란트 고흐 세잔 피카소의 그림도 쳐다 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나라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이 나라 문화예술인들이 전체 인구의 8%정도를 차지하지만 문화예술인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그야말로 극소수이다. 대선 후보들도 문화예술관련 공약을 제시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예로부터 문화예술에 관심과 소질이 많았다. 흥도 많고 끼도 충만했다. 하지만 무조건 잘 살고 보자는 방식을 도입하면서 그런 문화예술 그리고 그런 끼들을 억제하고 무시해 버렸다.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화예술도 지원하고 투자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지금 세계를 강타하는 K 문화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입으로만 문화예술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투자와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문화예술이 기초가 되지않는 나라는 후진국이요 문화예술의 소양없이 세계인이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실천하는 2022년 한해가 되길 바라고 또 바란다.
2022년 2월 1일 설날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