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05 금요일
임 은미 (유니스) 목사 묵상
호 세
아 9 장
5 - 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What will you do on the day
of your appointed feasts, on the festival days of the LORD?
구정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 한국의 명절이다.
신정도 있고 구정도 있는 우리 나라!
참 좋은 나라이다.
달력에 빨간 숫자 글씨를
늘려 주니 말이다 ^^
명절이 되니...
사람들이 나에게 묻기도 한다.
"구정때 뭐해요?"
구정때는 지방으로 내려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
명절의 뜻이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기념하는
날들 아닌가?
성경에도 명절들이 있다.
그러니 성경의 명절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명절인것이다.
그들은 왜 장막절,
부림절, 유월절 이런 절기들을 지켰을까?
하나님이 하신 어떤 일들을 특별히 기념하기 위하여 이런 절기를 만들어 놓고 그 절기를
지켰던 것이다.
그러니 그 절기가 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하여 주신 멋진 일들을 기념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에 "명절"이 있는가?
하나님과 나의 지나온 시간들 안에 하나님과 내가 아는 "명절"이
있는가?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 고마우면
그 사람에 대한 "고마운 기억"을 거듭 말하게 될 때가 있다.
그 때가
고마왔다고.. 기억하고 기억한 말을 또 표현해 주는 그런 시간들..
나는 "고맙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사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전에 어떤 일로 "고맙다"고 말해 주고 난 다음
시간 간 다음 또 같은 일에 대하여 "고맙다"라고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어! 지난번 고맙다고 했는데 또 고맙다고 하네?
이런 생각으로
지난 번에 한번 고맙다고했으면
됬지 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잊을만? 하면 또 그 때의 고마웠단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을 들으면서
이렇게 했던 고마운 인사를 또 해주는 것도
참 아름다운 일이구나..
그리고 그 일은 이제 나에게 고마운일이
되는구나..
했던 인사를 또 해 주니 말이다.
그리고 어떨 때는 내가 어떤 사람에게 고마운 일을 했다하면서
그 고마왔던
일을 다른 사람앞에서
이야기 해 주는 것 역시
참 고마운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구나..
하는 것도 경험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절"을 지키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가운데 배우게 되는 "삶의 적용"이 될수도 있구나
하는생각을 해 본다.
명절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해 주신 고마운 일들을 기억하면서
자녀들에게도
가르쳤을것이다.
"얘야 우리가 유월절을 지키는 이유는 말이다.
우리가 다 죽을 줄 알았을 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면
저주가 우리들의 집을 넘어 가는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주셨단다.
그런 방법으로 우리를 구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앞으로
너의 삶에서도 기적적인 구원을 항상 이루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명심하렴. 알았지?
그분은
좋으신 분이야!
그 분은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시지!
유월절 기간에 특별히 이런 하나님을 너가 경험했으면
좋겠구나!"
이렇게 자녀들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하나님과 나의 명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 이 때
이 때.. 이렇게 이렇게 나를 도와 주셨어..
그러니.. 이때를 이런 명절이라고 이름을 만들어 놓아야겠구나..
하나님 이때
이때는 또 이렇게 나를 도와 주셨지..
아.. 그러니.. 이 때를 이런 명절이라고 이름을 만들어 놓아야겠구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때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때
우리의 재정을 특별히 채워주시고 공급해 주신 때
내 병을 고쳐 주신 때
내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때
내 인생에 가장 좋은 짝을 허락하신 때
나에게 자녀를 주신 때
등 등 등
하나님이
항상 고맙지만 특별히 고마운 시간들 즉슨
우리 삶에 주님과 나의 명절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으면 많이 있을 수록
좋겠다.
마치 달력에 빨간 숫자 많이 있어서
이 날들을 "명절"로 지내는 것이 기쁜 것 처럼
^^
하나님과의 고마운 추억들도 명절을 일부러 만들어서
일부러 더 기억하는 것 처럼
우리들도 이웃에 대한
"명절"들을 서로 이야기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언제 어떻게 이런 이런 도움을 주었는데
그 때 참
고마왔다..
지금도 기억할 때 마다.. 너무 고마운 순간이다.
정말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면서 우리의 명절을 보낸다면?
하나님이 가르쳐 준 방법의 명절 지내기?가 되지 않을까?
오늘은 하나님에 대한 너무나 좋은
기억들에 대한
명절을 생각해 보면서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 나는 거.. 매일 매일이.. 명절인디..
그죠
주님?
주님과 나와의 이야기는 매일 매일이 명절감(?)이었구나
생각하니..
이 아침.. 감사가 완전 더블이 될 수밖에
없는것 같애요 주님!
더블 좋아!!
이런 멘트가 저절로 생각나네요!
나에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맙지만
오늘은 특별히 내 파송교회의 담임 목사님인
이 영훈 목사님이 참 고맙다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이
영훈 목사님을 만난 때는
1986년인가.. 그렇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학교
3학년으로 편입을 해서 학교를 들어간 때가 그 연도였던 것 같다.
Valley Forge Christian College 가 내가 공부한
신학교이다.
그때는 종합대학이 아니고 신학대학교였는데
세월이 흘러 지금은 펜실베니아의 종합대학이 된
곳이다.
미국에서 하나님의 성회 교단으로 내가 학교 다닐 당시 딱 두군데가 신학교였는데 그 중 하나가
Valley Forge
Christian College이다.
내가 미국에서 신학을 했기 때문에 사실 한국의 신학교 선배.. 후배.. 이런 넷 웍이
없다.
내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의 성도였다.
어느 날 내가 학교에서 방학이었기때문인가 집으로
내려 왔었다.
내가 살던 곳은 버지니아여서 펜실베니아인 학교까지는 자동차로 거의 3시간 반 가량.. 운전해야 하는
곳이었다.
방학때 잠깐 집으로 내려온 나에게
내 친구 혜경이가 자기네 교회 좀 가자고 했다.
자기네 교회가
순복음교회라고 거기 좀 같이 가자고 해서
나는 그 교회를 가게 되었다.
자기 담임 목사님 좀 만나라고 해서..
만난
목사님이 그 때 이 영훈 목사님이었다.
인사 드리고.. 어느 학교 다니냐고 나에게 물으셔서
Vally Forge
Chritian College다닌다고 했더니..
그 학교가 "하나님의 성회" 교단인지라..
한국으로 말하면 순복음교단하고 같은
교단이었던 것이다.
학교 졸업 언제 하냐고 물어 보셨던 것 같고
(30년 전이니 기억 가물 가물 ㅋㅋ
)
신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 나는 워싱톤 순복음제일교회
교육 전도사로 초청(?)을 받았다.
신학교 졸업할 즈음
참으로 많은 신학생들이
어느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할까 고민하고 결정들 하는데
나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학교
졸업하자 말자 전임 교역전도사로
워싱톤 순복음 교회 전도사가 된 것이다.
내 나이 그 때 스물 세살이었을
것이다.
(음..나도 스물세살일때가 있었구나 ㅋㅋ )
처음 전임 사역을 하는 내가 실수도 많았을 것이고
오버..
하는 것..
거기다.. 나름 잘 났다고... 천방지축 등 등..
세월 흐르고 난 다음 돌아보니..
에휴.. 나 왜
그랬을까? 싶은 부분들이 어디 한두개이겠는가..
오늘은 "명절"에 대한 묵상을 하면서
이 영훈 담임목사님에게 무엇이
감사했던가.. 하는 것을
한번 짚어 보게 된다.
그 때 우리 교회에 남자 전도사님이 한명 그리고 어른 전도사님 한명
그리고 나
세명의 교역자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이전에는 남자. 여자 교역자들의 차별.. 내지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왠지 여자 사역자들은 좀.. 더 아래(?)로..
목사 안수 안 받을 여자 사역자들이 당연
많으니?
나는 그때 "목회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했었다.
학교에서 목회학 전공으로 졸업한 여자들은 아마 5명 가량인가.. 였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사역을 하면서
내가 아마 당돌하게 물었던 첫 질문은
"저.. 여자
교역자인데.. 남자 교역자와 차이가 있게 되나요?
제가 하는 일에 남. 녀 구별이 있게 되나요?"
(지금은 세월 지나서..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여 기록하지는 못하겠다)
그 때 목사님이 해 주셨던 말을 기억한다.
"차별없습니다! 마음 껏 사역하시기
바랍니다!"
그 한마디 믿고(?) 나는 마음껏 사역을 시작했다.
그것이 내 첫 사역의 발걸음이었다.
그 이후 나는
젊은 스물 세살 나이에 워싱톤 근처에서
청소년 부흥 강사로 많은 집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교 캠퍼스 수양회 인도도 그 때 부터
하기 시작했다.
젊은(?)나이에 외부 설교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교회에서 "임 은미 전도사" 너무 밖으로
돌아다닌다고..
제제(?)가 들어오기 시작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은 것이지만
담임 목사님이 그 때 장로님들에게 나의
사역을 위한 방패(?)막이 되어 주셨다는 것..
근데 어떻게 그 시간들 단 한마디.. 생색(?)을 내지 않으셨는지..
나는
사실 내가 잘나서 ㅋㅋ
그냥 사역 마음껏 할 수 있는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닌 것임을 세월 많이 흐른뒤에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교회에서 한번 큰 잘못을 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천방지축??
교회에서 청소년 부흥회가
있었는데
내가 강사 섭외를 잘 못한것이다.
나중에 이 책임을 내가 물었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지금도 그 시간은
참으로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실 나는 그 때 교회에서 아마 "사표"를 써야 마땅한 때가 아니었는가 싶기도 하다.
내가
정의(?)에 불타는 것은 좋지만..
그 정의를 잘 전달하는데 지혜가 참 없을 때였다.
그 때 무척.. 많이 울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기도원에 기도하러 간다고 잠시 교회 사무실에 들렸을 때
목사님이 기도원 가기 전에 나를 위해 기도 해 주시겠다고
앉혀 놓으시곤
사무실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스테레오폰 커피 컵을 하나 내 앞에 놓으셨다.
그리곤 말씀을
시작하셨다.
"임 전도사님..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릇에 무엇인가 가득차면 그 그릇을 다른 그릇으로
바꾸시기도 하십니다.
잔이 넘쳐 나면..
그 잔을 다른 용도로도 쓰신다는 것이지요
우리 임 전도사님 하나님이
장차 크게 쓰실 것입니다.
장차 크게 쓰이는 그릇이 되려면 부서지는 과정들이 있기도 합니다.
이번에 우리 임전도사님
어려운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더 크게 쓰시려고 준비하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부서질때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 뒤에 하나님이 준비하는 더 큰 그릇이 있게 됩니다.
마치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이 컵..
다 부서뜨리면?
(이러면서 내
눈 앞에서 컵을 부서 뜨리셨다!)
더 큰 컵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이어서 목사님은
"우리 기도하도록 합시다!
주님! 우리 임
전도사님 이번에 어려운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떠한 잘못이라 하더라도
이 잘못을 임 전도사에게 묻지 말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담임목사인 내게 이 책임을 물어 주옵소서!
임 전도사에게는 아무런 해가 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이 부족한 종에게 책임을 물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
내가 그 기도를 들으면서 얼마나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도 그 일을 다시 상고하면서
기억을 더듬어 목사님 하신 기도를 묵상으로 적어가는 이시간
자꾸
눈물이
난다.
그 기도 받은 후 나는 기도원에 기도하러 간다고 갔고
교회로 나를 찾는(?)전화가 오면 모든 답은
"전도사님 지금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조용하게(?) 그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난
다음 나는 석사학위를 받기 위하여 공부를 좀 더 했었어야 했는데
학부 졸업하자 말자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약 한시간 거리에
웨스트 민스터 신대원이 있었다.
장로교 교단이었는데 그 때 순복음 계통의 신학대학원은 근처에 없어서
장로교 교단쪽으로
가게 되었다.
나중에 웨스터 민스터에서 또 다른 교단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지만
처음 석사학위 공부를 시작한 곳은 웨스트
민스터였다.
지금 연도.. 뭐.. 이런 것 자세히.. 짚어 볼 기억력은 안 되고 ^^
워싱톤 순복음제일 교회에서 사역을
3년인가?? 하다가
나는 다시 펜실베니아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었다.
남편 공부가 안 마쳤는데 내가 사역에 열정이 넘
많은지라..
버지니아로 내려와서 전임사역을 했는데
아무래도.. 남편이 공부를 마쳐야 할 것 같아
교회를
사임했다.
사역을 넘 좋아하던 나로서는 힘든 결단이었으나
남편을 세워(?)야 함이 이거 우선순위구나
싶어서
사역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남편이랑 함께 펜실베니아로 돌아와서..
남편 공부를 마칠 동안
나는
힐톤호텔에서 벤퀴잍 ( Banquet) 웨트리스로 일을 했다.
접시를 때로는 한 쟁반에 6개씩이나 올리고
예술? 같은 웨이트레스의
직장(?) 생활! ㅋㅋ
그 때 남편 뒷바라지(?)한 것 지금도 남편한테 가끔 생색낸다.
여튼.. 세월이 흘렀는데
남편
신학졸업이후
이 영훈 목사님은 다시 나를 불러 주셨다.
그리고 내가 석사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교회에서는 전임
전도사 월급을 받을 수 있겠금
그렇게 나를 불렀지만
나는 학교 공부 마치는 요일.. 금. 토 . 일 3일 교회 사역하고
월요일 되면 다시 펜실베니아 가서 공부를
목요일까지 할 수 있도록
배려를해 주신 것이다.
주중에 학교 공부
주말에 사역.. 그러나 사역자 대우(?)는 전임 사역자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그 당시 이것은 엄청난 배려가 아닐 수
없었다.
장로님들에게 이런 동의(?) 받아내시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다 배려 해 주셔서...
내가
석사학위를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학교 졸업은 웨스트민스터가 아니고 그 당시
이스턴 벱티스트.. 침례신학대학원에서
졸업을 하게 되었다.
교단을 바꾸어야 했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을 지금 말하고자 묵상을 쓰는것은 아니니..
하여튼
이 영훈 담임 목사님을 생각하면
이러한 배려의 이전 시간에 대한 감사가 있다.
그리고 내가 선교지로 떠나고자
할 즈음..
1994년도..
목사님은 내가 아프리카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아셨고
내가 나중에 한국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조 용기 목사님을 만나
"원주민 선교사"로 파송 가능의 인터뷰를 받았어야 했을 때
그 때 역시 조
목사님 만나 인텨뷰 할 때 어떻게
지혜롭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
잘 도와 주셨다.
목사님과 함께 사역했던 워싱톤
순복음교회 시절(?)을 돌아보면서
목사님께 배운 것은 참으로 많이 있다.
무엇보다 새벽기도를 꼬박 꼬박 나오시는 "기도하는
종"의 본보기!!
우리 교육전도사들이 새벽기도 안 나오면
참으로 의아(?)해 하시면서
느을(?) 해 주시던 말씀이
있으셨다.
"새벽에 교회 나올 때 오고가는 많은 차들 보이시죠?
세상 사람들도 일찍 일어나서 이 땅에서 성공하고자
나름대로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데
어떻게 주의종들이 새벽기도를 안 나올수 있죠?"
다른 것에는 참 이해.. 많이
해주시고.. 배려 많이 해 주시는데..
"새벽기도" 완전 얄짜리 없으셨던 담님!!
그리고 심방 나가실 때는 항상 "신앙계" 책
아니면
"행복의 초대" 순복음지.. 이거 꼭 챙겨 나가신다.
그리고 점심 약속으로 인하여 성도님들을 식당에서 만난다?
그 가는
식당 주인 꼬옥 전도하신다.
"사장님, 교회 다니시는지요?
꼭 예수님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신앙계.. 내지는..
전도지.. 주신다.
느을 한결같은 모습이다.
세월이 지나서.. 이제는 이 영훈 목사님이
우리 여의도순복음 교회의
당회장 목사님이 되셨다.
지난 30년간을 목사님을 멀리서.. 가까이에서 (요즘은 내가 본교회에서 사역하니).. 지켜(?)보면서
요즘도 목사님 만나면 내가 하는 말은 느을 정해져있다.
"목사님! 정말 한결같으세요!"
참 한결같은
분이시다.
그 때도 항상 했던 말씀은
"예수님 보다 먼저 나가서는 안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잊으면
안됩니다!
뭐든지 내가! 내가! 한다고 생각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항상 "내가" 아니라 "우리
주께서!!"
주님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가 되면 안됩니다!
느을 예수 느을
예수!
그리고 느을 감사 느을 감사!"
나는 사실 이 "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지겹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때 그야말로 귀가 따갑게 들은
"감사"의 설교가
나의 21년 케냐 선교지에서의 삶에 나의
말씀묵상 습관과 함께
기초석을 내려 주었다.. 하는 생각을
나중에야 하게 되었다.
명절을
맞이하여...
본교회에 섬기는 담임 목사님에게 이렇게도 감사한 추억거리가 많은것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려
드린다.
남.녀.. 사역자들 구별 심할(?) 그 당시에
마음껏 남.녀 구별없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내 첫 사역지에서
순탄함과 자유함을
배려 해 주셨던
내 사역하는 교회에서의 처음 담임목사님이 이 영훈 목사님이였음을 참으로 감사하게
된다.
때로.. 나는 개성(?) 강하기 짝이 없는 사역자일 수 있으나..
사역자로서 처음 담임목사님을 잘 만난 이 복은
내가 사역을 마치는 날 까지 두고 두고 감사함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지구촌 교회 청년부 수양회를 갔다가
청년부 담당 하시는 목사님이 나에게
"지난 번 이영훈 목사님 우리교회 청지기 세미나 오셔서 설교하는데
말씀하실 때
그냥 "인격"이 저절로 느껴지더군요.
대형 교회 목사님들 그러기 쉽지 않거든요.
좋은 담임 목사님 아래서 일하게 되셔서 정말
좋으시겠어요!"
라고 말하기에
그렇다고.. 말하면서
내가 경험한 나의 담임목사님에 대하여
마음껏 기쁘게 이야기
할 수 있었음이 또한 감사했다.
나도 이제는 나이가 50이 넘었다.
내가 우리 담임 목사님 나이가 되면 어떤 사역자로 평가
받게 될까?
나를 모르는 사람들 말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말할까?
내 멘티들.. 벌써 20년
멘토링 받은 멘티도 있는데
내 멘티들은 "우리 멘토님에 대한 명절"이야기를 하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오늘은 성일교회 마지막 부흥집회 인도하는 날입니다.
아침에는 "부모 세미나"
저녁에는 부흥집회인데
본교회서 사역하면서
이렇게 외부설교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담임목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안 가질수가
없네요
요즘은 제가 이전보다 조금 철이(?)들어가는 것 같기도 해요.
이전에 당연시(?) 여기던 일들도
감사가 있어야
함을 알아가는 요즘.
.
주님과 명절의 추억 더 더욱 많이 만들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이웃들과도 "명절의 추억" 더 더욱
많이 만들면서 살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이런 노력을 우리 주님 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당!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편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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